[강주안 논설위원이 간다]"비만 오면 태양광 산사태 걱정 잠 못 자" "주민 생떼에 암 걸려"
남자천사
2021.07.06. 06:52조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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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만 오면 태양광 산사태 걱정 잠 못 자" "주민 생떼에 암 걸려"[강주안 논설위원이 간다]
[중앙일보] 입력 2021.07.06 00:34 | 종합 25면 지면보기
강주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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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저녁 충북 제천시 대랑동에 마을 사람들이 모였다. 태양광 발전소를 오가는 중장비 때문에 파손된 도로 복구 방법을 두고 격론이 벌어졌다. 시멘트로 할지 아스팔트로 할지, 시기는 언제가 좋을지 갑론을박했으나 합의가 안 됐다. 동네 입구엔 ‘대랑동 주민 일동’ 명의로 ‘덤프 2.5톤, 굴삭기 4톤 이상은 통행할 수 없다’는 경고문이 붙었다. 진입로를 돌아보니 도로 곳곳이 파손됐다. 발전소 측은 “방법을 정하면 공사를 해주겠다고 해도 계속 마찰이 일어난다”고 했다. 몇 년째 태양광 발전소와 주민들 사이에 충돌은 잦아들지 않는다.
[장마철, 불안 커지는 산지 태양광 발전소] 숲 없앤 산지 태양광 1만곳 넘어 부동산 노린 투자에 삼림 거덜 곳곳서 붕괴에 주민 갈등 조장 뒤늦게 틀어막지만 캄캄한 앞날 |
충북 제천 태양광 발전소 진입로 입구에 붙은 경고문. 강주안 기자
울창한 숲을 없애고 패널을 깐 산지 태양광 발전소가 1만 2000곳을 넘어서면서 산촌이 전쟁터가 됐다. 마을 사람들은 “멀쩡한 나무를 잘라내고 발전소를 만든 게 무슨 친환경이냐”며 항의한다. 발전소 사업주들은 “정부에서 장려했고 마을에 발전기금도 냈는데 끝도 없이 괴롭힌다”며 억울해한다. 제천의 충돌이 한 단면이다. 직접적 피해자와 사업주 사이의 갈등은 더 극단적이다.
극한 치닫는 갈등
지난해 8월 산사태 피해를 본 김석주(65) 씨는 “장마가 시작되니 불안해서 잠을 잘 수가 없다”고 말한다. 그는 작년 사고 순간을 이렇게 설명한다.
“밭에서 일하고 있는데 발전소 쪽에서 우르르하는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그쪽에 있던 집사람에게 ‘빨리 피하라’고 소리치고 저도 피했습니다. 밭은 다 망가졌고 키우던 개와 강아지들이 흙더미에 파묻혀 죽었어요.” 김 씨는 “사고 이후로 비만 오면 벌벌 떠는 청개구리 신세가 됐다”며 “와이프와 내가 태양광 때문에 천수(天壽)를 다하지 못할 거 같다”고 말했다.
충북 제천에 사는 김석주씨가 공개한 지난해 태양광 발전소 붕괴사고 직후 복구 작업 모습. [김석주씨측 제공]
태양광 사업자 측은 상반된 주장을 한다. “김 씨는 초기부터 돈을 요구하며 사업을 방해해왔다”며 “이 때문에 아직 토목 허가도 못 받아 금전적 피해가 이만저만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몇 년 동안 김 씨와 마을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시달려 암에 걸렸다”며 “내가 하도 억울해 태양광 발전소 현장에 가서 죽겠다는 생각도 했다”고 밝혔다.
잡음이 끊이지 않는 태양광 발전소의 현장 목소리를 들어보려 지난 5월부터 경상도ㆍ전라도ㆍ충청도 산속을 다녔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문제의 심각성은 비슷했다. 주민들 사이에선 ‘산림 파괴’에 대한 반감이 가장 컸고 붕괴 위험 등 안전사고 우려, 발전소 고압선으로 인한 건강 걱정도 많았다.
지난 5월 경북 군위의 태양광 발전소 모습. 기존 발전소 인근에 새로 태양광 발전소를 만들고 있다. 강주안 기자
지난 5월 경북 군위군 소보면의 작은 산길을 올라가자 태양광 패널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의2리로 들어갈수록 태양광 발전소 면적이 점점 넓어졌다. 주변의 울창한 숲 사이사이에 태양광 패널이 가득 찼다. 대구에 살다 5년 전 이곳에 온 류호식(55)씨는 태양광 발전소 때문에 고통이 너무 심하다고 주장한다. 그는 투병 중인 아들을 위해 귀농을 택했다. 그런데 산으로 이사 온 직후부터 옆에 하나둘 태양광 패널이 들어섰다. 류 씨는 "나무를 잘라낸 뒤 이를 부수는 과정에서 엄청난 소음과 먼지가 발생했다"며 “평소에도 산소마스크를 써야 하는 아들에게 몇 차례 위기가 닥쳤다”고 했다. 그는 “몇 년 사이에 주변이 온통 태양광 패널로 가득 차 좋은 환경을 찾아 이주한 선택이 엉망이 됐다”고 말했다.
태양광 중요하나 과속이 문제
경북 구미에 새로 설립된 태양광 발전소. 강주안 기자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여 온난화를 막는 데 태양광 활용이 중요하다는 건 상식이 됐다. 화석연료의 대체재로 태양광을 이용하려는 연구가 활발하다. 토니 세바 스탠퍼드대 교수의 "휴대폰이 유선전화 시장을 붕괴시킨 것은 구리가 모자라서가 아니다"(『에너지 혁명 2030』)라는 말은 원유ㆍ천연가스가 풍부해도 결국 태양광으로 대체된다는 논리를 설득력 있게 전파한다. 환경ㆍ신재생에너지 전문가인 장택희 박사는 "태양광을 에너지로 전환하는 존재가 바로 나무"라며 "태양광 기술이 발전하면 나무보다 효율적으로 에너지를 생산하는 날이 올 수 있다"고 말한다. 세바 교수가 꼽은 태양광 발전의 경쟁력은 가격이다. 우리는 태양광의 가격 경쟁력이 아직 그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 차근차근 준비해야 할 태양광을 급격히 늘리려다 보니 숲을 쳐내고 넓은 발전소를 세웠다. 산업통상자원부와 산림청 등이 국민의힘 윤영석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산지 태양광 발전소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1만 2000곳을 넘어섰다. 윤 의원은 “문재인 정부가 탈원전을 위해 무리하게 밀어붙이면서 산지가 무차별적으로 훼손됐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충남 천안의 산지 태양광 발전소 모습. 강주안 기자
이에 대해 산업부 관계자는 "지난 정부 때부터 산지 태양광 발전소가 늘었다"고 반박한다. 산림청 간부 역시 "산지 태양광의 신재생에너지공급인증서(Renewable Energy CertificateㆍREC) 가중치를 높인 건 박근혜 정부"라고 말했다. REC는 신재생에너지 생산자의 수익에 결정적 역할을 미치는 요소다. REC 가중치를 높일수록 태양광 사업자의 수입이 는다.
거기에 부동산 혜택이 불을 붙였다. 산지에 태양광 발전소를 만들면 임야에서 잡종지로 지목을 바꿔주는 특혜가 땅 투기를 부추겼다는 얘기다. 경북의 한 지자체 공무원은 "태양광 사업자 중 상당수가 전력 송출이 어려운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다"며 "전력 생산보다 부동산 수익을 노린 행위로 판단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정부는 2018년 시행령을 개정해 산지 태양광 막기에 나섰다. 발전소를 세워도 임야에서 잡종지로 바꾸지 못하게 했다. REC 가중치도 떨어뜨렸다. 사실상 산지 태양광에 대한 철퇴다. 실제로 한 태양광 사업체를 찾아가 산지 태양광 발전소 투자를 문의하자 "이제 산지 태양광은 권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태양광을 설치하는 한국신재생서비스 측은 "요즘은 건물 옥상에 설치하는 태양광의 REC가 좋아 많이 권유한다"고 설명했다.
경기도 평택의 태양광 업체 한국신재생서비스 전시장. 강주안 기자
순식간에 난립한 산지 태양광 발전소는 사고 위험도 크다. 장마가 닥치자 박진규 산업부 차관은 충남으로, 최병암 산림청장은 전남으로 달려가 산지 태양광 발전소의 안전을 점검했다. 그러나 언제 어디서 무너질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작년 사고도 복구 안 돼
전북 장수의 산지 태양광 발전소 붕괴 현장은 아직도 복구가 안된 채 또 장마가 시작됐다. 강주안 기자
전북 장수는 지난해 발생한 태양광 발전소 붕괴 사고가 아직도 복구되지 않았다. 이곳을 지난 2일 찾아가 봤다. 고속도로를 타고 덕유산 휴게소를 지나자 거대한 태양광 발전소들이 길 양쪽으로 나타났다. 장수 톨게이트를 빠져나가 마을에 들어섰다. 한 주민은 "동네 사람 대부분 태양광 발전소를 싫어한다"며 "장수가 자연경관이 좋기로 유명한 곳인데 산에 있는 나무들을 다 베어내면서 친환경 발전을 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했다. 그는 "주민들이 시위도 해봤지만, 당국에서 다 허가를 내줘 별도리가 없더라"며 "한 때 이 동네 식당 손님은 온통 태양광 건설 인력들이었을 정도"라고 말했다.
지난해 붕괴 사고가 일어난 전북 장수의 산지 태양광 발전소. 주변 곳곳에 태양광 발전소들이 보인다. 강주안 기자
붕괴 사고가 난 주소를 찾아가 보니 푸른 숲 사이에 거대한 태양광 발전소가 나타났다. 철제 울타리엔 ‘특고압’ 이라는 경고문이 붙었다. 주변을 돌아보니 인삼밭 옆에 태양광 패널이 가득하고 반대편 산 중턱에 거대한 면적을 깎아내고 세운 태양광 패널들이 눈에 들어왔다.
문제는 이미 난립한 산지 태양광 발전소에 대한 대책이 별로 없다는 사실이다.
사업자도 "해보니 문제"
한 산지 태양광 사업자는 "솔직히 내가 운영해보니 산지 태양광은 문제가 있다"고 털어놨다. 그는 "비가 오면 물을 머금은 토양이 경사면에 압력을 가해 언젠가 무너질 위험이 크다"며 "지금 규제 강화로 압박을 받는 사업자가 많은데 부도가 나면 해당 발전소의 안전을 누가 챙기겠느냐"고 반문했다. 중심이 기울어진 상태에서 물을 계속 뿌려 무너진 광주 건물 붕괴사고와 산지 태양광 발전소의 조건이 똑같다고 덧붙였다.
정부 관계자들은 “안전점검을 철저히 해 사고를 막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미 파괴된 숲을 어떻게 할지에 대한 답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4대강 반대 등 환경 운동을 벌여온 최병성 목사는 "산지 태양광 문제는 4대 강보다 훨씬 심각하다"며 "4대강은 보의 수문을 열면 회복이 가능하지만 이미 파괴한 숲은 어떻게 되살릴 거냐"고 지적했다. 최 목사는 "지금부터라도 산지 태양광 발전소를 어떻게 바꿔나갈지 연구를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태양광이 초래한 갈등과 지역 사회의 분열을 치유하는 방안도 손 놓은 상태다. 충북에 사는 한 주민은 "오랫동안 사이좋게 살아온 동네에 갈등이 심해졌는데 태양광 발전소를 허가해준 당국이 나 몰라라 하는 게 맞느냐"고 말했다. 경북의 한 농민은 "평생 농사만 짓고 살아온 사람들이 태양광 발전소 때문에 소송에 휘말린다"며 "돈 없는 주민들이 변호사 비용을 대가며 발전소와 법정 다툼을 하기가 얼마나 힘든지 모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