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868) - 올림픽을 통해 확인한 시민의식
7월 23일에 개막된 2020 도쿄올림픽이 17일간의 열전 끝에 엊그제(8월 8일) 무사히 막을 내렸다. 폐막식의 이색장면, 올림픽의 기원이 된 그리스의 국기가 먼저 게양되고 올림픽의 상징종목인 마라톤의 시상식이 눈길을 끈다. 관중 없는 올림픽도 처음, 1년 연기되어 열린 것도 처음인 도쿄올림픽이 남겨준 성취와 과제는 무엇일까?
폐막에 즈음하여 33개 종목의 경기에서 전통적 스포츠 강국인 미국이 금메달 39, 은메달 32, 동메달 18개로 종합 1위에 올랐고 중국이 금메달 38, 은메달 14, 동메달 17개로 종합 2위를 차지하였다. 세계의 패권을 노리는 양웅이 올림픽에서도 자웅을 겨룬 셈. 개최국 일본은 금메달 27, 은메달 14, 동메달 17개로 종합 3위를 차지하여 올림픽 개최에 미온적이던 국민들의 사기가 크게 올랐고 대한민국은 금메달 6, 은메달 4, 동메달 10개로 종합순위 16위를 차지하여 개막 전에 설정한 금메달 7개와 종합 10위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 올림픽 결과에 대한민국이 실패했다고 보는 시선은 드물다. 이는 과거처럼 선수나 시민들이 성적이나 메달획득에 집착하지 않고, 자신의 노력에 대한 적절한 보상 기준에 맞춰 최선을 다한 데서 긍지와 만족을 느낀다는 게 전문가의 설명이다. 육상 단거리 100m와 200m를 제패한 자메이카, 남녀 마라톤 우승을 거머쥔 케냐를 비롯하여 60여개 국가에서 골고루 금메달을 한두 개씩 차지한 것이 눈길을 끌고 대를 이은 부녀간, 동일 종목에서 남매간, 단체전에 동시출장한 자매간이 금메달을 목에 건 사례도 감동이다.
이번 도쿄올림픽은 결과에서 얻는 쾌감보다 젊은 선수들의 당찬 도전 과정이 국민들에게 청량감을 안겼다. 수영의 황선우(18) 선수는 200m 자유형에서 150m까지 1위를 달리다 5위로 마무리했음에도 메달에 대한 아쉬움보다 150m까지의 기록에 놀라며 스스로를 칭찬했다. 또한 군인 신분의 우상혁(25) 선수는 육상 남자 높이뛰기 결선에서 한국 신기록인 2m35를 넘어 4위를 차지 해 메달을 놓쳤지만, 밝은 표정으로 매 순간을 즐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4강에 올라 대회 최종일까지 끈질긴 승부를 펼친 여자배구 대표 팀은 우리보다 강한 상대들을 꺾어가며 강렬한 이미지를 남겼고 엄청난 기량과 강한 투지로 혼신의 힘을 쏟아 부은 주장 김연경은 대한민국은 물론 전 세계의 주목을 끌었다. 한편 경기에 패하고도 승자를 향해 활짝 웃으며 엄지를 치켜든 태권도의 이다빈(25) 선수는 승복에 인색한 우리 사회에 묵직한 교훈을 던져줬고 일본 유도 심장인 무도관(武道館) 가장 높은 곳에 태극기를 걸겠다는 꿈이 눈앞에서 좌절됐음에도 자신을 쓰러뜨린 일본 선수의 손을 치켜들어 준 재일동포 조구함(29) 선수의 의연함이 믿음직하였다. 한마디로 도쿄올림픽은 세계를 놀라게 한 한류와 선진국에 진입한 경제 발전을 통해 전반적으로 향상된 대한민국의 사회문화적 저력을 함축하여 보여준 성취올림픽이었다. 다만 무기력하게 무너진 남자 야구와 축구, 전통적 강세종목인 태권도와 유도, 레슬링, 여자 골프에서의 부진은 아쉬운 대목이다. 이를 교훈삼아 2024 파리올림픽에서 더 좋은 성적과 기량을 펼치시라. 올림픽은 스포츠를 넘어 개최국은 물론 참가국에게도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제 영역에 큰 영향을 주는 빅 이벤트다. 2020 도쿄올림픽을 통해 발현된 선수들의 발랄한 자세와 메달에 연연하지 않은 시민의식의 성숙이 돋보인 대한민국, 파이팅!
강호들을 물리치고 도쿄 올림픽 4강에 오른 대한민국 배구 선수들의 자랑스런 모습
* 올림픽 기간 중에 새긴 도전 정신의 사표(師表), 히말라야 14좌 완등의 위업을 이루고 홀연히 떠난 산악인 김홍빈의 사연을 소개한다.
전설이 된 도전 정신 ‧‧‧ 산악인 김홍빈 대장 영면
장애인 최초로 세계 7대륙 최고봉과 히말라야 14좌를 완등한 후 하산 중 실종된 김홍빈(57세) 대장의 영결식이 지난 8일 광주 염주체육관에서 산악인장으로 엄수됐다. 지난달 18일, 장애인으로는 처음으로 히말라야 14개 봉우리를 모두 정복한 김홍빈 대장은 해발 8천 47미터 히말라야 브로드피크 정상을 오른 뒤 하산하다 실종됐다. 30년 전 북미 최고봉 등반에 나섰다 열 손가락을 잃는 등 숱한 난관을 이겨냈던 김홍빈 대장이기에, 유족은 물론 고인과 함께 앞서거니 뒤서거니 산을 올랐던 동료들도 아직까지 그의 죽음이 믿겨 지지 않는다. 장례기간에 정부는 고 김홍빈 대장에게 체육훈장 청룡장을 추서하며 그의 업적과 도전정신을 기렸다. 일면식 없는데도 안타깝게 다가오는 산악인의 엄숙한 죽음을 애도하며 그의 30여년에 걸친 세계 7대륙 최고봉과 히말라야 14좌 원정 과정의 치열함에 머리를 숙인다. 엊그제 월간잡지 ‘산’ 8월호에서 살핀 실종에 이른 마지막 원정의 처절한 등반 및 구조상황을 다룬 글, ‘내 목표는 정상이 아닌 안전한 귀환’을 옮겨 적는다.
'내 목표는 정상이 아닌 안전한 귀환
장애인 최초로 히말라야 14좌 완등에 성공한 김홍빈 대장이 하산도중 실종되었다. 김홍빈 대장은 파키스탄 현지시간 7월 18일 오후 4시 58분(한국시간 오후 8시 58분) 브로드피크를 등정했다. 하지만 김홍빈 대장은 정상 등정 뒤 캠프3(7100미터)으로 하산과정에서 조난을 당했다. 브로드피크를 등정한 적 있는 산악인의 말에 의하면 오후 4시 58분은 너무 늦은 등정시간이라는 것, 날씨가 맑고 바람이 없는 날 올라도 위험한 8,000미터 고봉을 어둠이 내려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는 시간에 하산하는 것은 훨씬 더 위험한 상황인 셈이다. 또한 예정했던 해발 7,400미터의 캠프4 설치가 좌절되면서 캠프3(7,100미터)이 최종캠프였다. 하산해야 하는 거리가 훨씬 늘어난 상황이라 셰르파를 비롯한 외국원정 대원들은 상당히 긴박했던 것으로 예상된다. 김홍빈 대장은 열손가락이 없는 장애인이라 고산등반 시 셰르파의 도움이 필요한데, 하산 중 고정 루프가 끊어지는 등의 크고 작은 사건으로 하산이 더 지체되면서 앞서가던 셰르파와의 소통에도 문제가 생긴 것으로 추측된다.
이날 김홍빈 대장 원정대에 고용된 셰르파 후세인을 비롯해 정상 공격에 나선 외국 대원과 셰르파는 15명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간격을 두고 하산하던 중 외국 대원 한 명이 추락하였다가 다시 능선으로 올라왔으나, 시간이 지체되면서 뒤쪽에서 하산하던 김홍빈 대장에게 더 큰 악재로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현지 언론인 파키스탄 익스플로러에 따르면 김홍빈 대장은 얼어붙은 눈구덩이 틈 속에서 비박을 한 후 다음날 오전 9시 58분 무선으로 구조요청을 했다고 한다. 비박 후 하산하던 도중 추락한 것으로 추측된다. 다음날 아침 러시아 원정대 안톤 푸고프킨과 비탈리라조 대원은 정상공격에 나섰다가 악천후로 실패하여 캠프3으로 내려가던 중이었으나 구조 요청을 무선으로 듣고, 다시 올라가 구조에 나섰다고 그들의 SNS를 통해 밝혔다. 러시아 대원들은 김 대장을 끌어올렸으나 로프가 끊어지며 다시 추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브로드피크 등정 경험이 있는 한 산악인은 7,900미터 일대는 커니스(눈처마)가 있는 천 길 낭떠러지라며 여기서 중국 쪽으로 2차 추락을 했다면 1,000미터 이상 추락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본지와 SNS로 대화한 러시아 원정대는 ‘Kim died’라고 말했다. 김홍빈 대장의 실종은 확실시 되고 있으나 극한의 고도인 7,900미터에서 당시 벌어진 일을 객관적으로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려운 것이 현재의 상황이다. 외교부는 파키스탄과 중국 접경지대에서 추락한 김 대장 수색작업 지원을 위해 양국 정부에 구조대 파견 등을 요청했다. 파키스탄은 군 헬기를 급파해서 현장을 수색하겠다고 밝혔으나 기상이 악화되면 헬기투입이 어려워질 수 있다.’
월간 산 8월호의 김홍빈 대장 관련기사 중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