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속초여행을 하면서 친해진 식당이 있다. 갯배 선착장 가까운곳에 '선인장 횟집'이라는 간판을 걸고 30년은 훨씬 넘게 식당을 경영하고 계시는 부부의 맛깔스런 식당이다. 내가 그 식당을 드나들기 시작한게 30년은 된것같다.
속초쪽으로 들르게 되면 반드시 찾는 집이다. 꼭 내집처럼. 주인아주머니와 나는 비슷한 나이이고 회를 뜨는 솜씨가 내가만난 횟집 주방장으로서는 정말 가장 솜씨좋으신 분으로 생각하고 있는 분이다.
생선회를 꼭 찾아 먹어야 할 정도로 좋아하는 음식은 아닌지라, 그집에 가면 꼭 먹는음식은 도루목조림, 혹은 가자미 조림인데 산오징어가 있으면 빠지지않고 먹게되는 메뉴. 솜씨좋으신 남편분은 젊은시절 일식당 주방장을 하셨고 자신의 칼 솜씨를 은근히 자랑을 늘어놓으실 때가 많지만 그건 정말 자부심이라 여겼다. 그집에서 먹는 오징어회는 어디에서도 맛 볼수없는 천하제일의 맛이라 장담하고 있었다. 요즘 오징어회를 주문하면 자동으로 썰어주는 기계에 넣어 쉽게 썰어서 내 놓는 식당이 대부분이지만 선인장횟집 에서는 지금도 반드시 직접 썰어서 내 놓는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이집 오징어 회 맛을 보고나면 자동썰기 기계로 썰어내는 오징외회는 먹고싶지 않을것이다. 나도 그랬으니까.
코로나 19 탓에 한달에 최소한 한번은 가게되는 속초부근 여행을 7개월만에 나섰다. 오색온천을 아주아주 좋아하는 나는 온천매니아이다. 특히 오색온천의 탄산온천수에 매료되어 한달이면 2-3일은 꼭 그곳에서 지내기를 몇년인지 모른다. 오랜만에 오색으로 떠났고 당연히 속초시내에 들렀다. 선인장횟집에 들러야 했으니까.
요즘 도루목조림이 맛있다고 권하길래 당연히 도루목조림을 주문하고 오징어회를 시켰으나 오징어가 잡히지 않아 무척 비싸기도 하고, 공수가 되지않아 먹을 수가 없었다.
아주아주 맛나게 도루목조림으로 식사를 하고 나오는데 주인아주머니가 계산하는 우리를 보고
"7월 말일까지 영업하고 그만둡니다. 아들보고 식당을 해 보라고 했지만 싫다고 하고 나이든 우리는 더 이상 힘들어서 식당운영을 할수가 없어서 양양의 밭에가서 농사나 지으며 살기로 했어요. 오랜 단골인데 다음에 찾아오셨다가 섭섭하실까봐 미리 얘기 해 드리는 거예요."
어쩌나.....내가 속초길을 우리동네 길처럼 잘 아는것도 선인장횟집이 있어서이고, 설악산 주변을 여행하게될 때 꼭 속초시내를 나오는 이유도 선인장 횟집이 있어서인데........
이건 나에게 있어서 정말 큰 이변이라고 할 수 있다.
나이들면서 시장나들이도 줄었고 속초에 들러도 중앙시장을 어슬렁 거리는 일도 없어졌다. 구미에 당기는 음식도 차차 줄어들고 인터넷쇼핑에 익숙해진 아이들 한테 뭔가를 사다주는것도 줄어버려 동해젓갈집을 찾을일도, 건어물 가게를 들러 마른오징어나 진부령덕장의 황태를 사는일도 없이 단순히 선인장횟집 들러서 식사하는게 꼭 치루는 행사였을 뿐인데....더 이상 속초시내 길을 제대로 알 필요가 없어진 듯한, 아주아주 큰걸 잃어버린 느낌이다.
이번에 다녀가고나면 7월 말일까지는 다시 올수 없다는걸 알기에 다시한번 들러 오징어 회라도 한번 꼭 먹고 가야겠다.
다음날 아침....전화로 오징어회 먹을 수 있냐고 했더니 여전히 오징어가 없다고 대답. 그렇다면 오징어를 사서가면 썰어줄수 있으시냐고 했더니 사가지고 오란다. 남편분의 손맛을 마지막으로 보는 날인데 그냥 갈 수는 없었다.
물치항에 들렀다. 오징어는 씨 오징어도 없다. 그길로 대포항 단골집에 전화를 해서 오징어부터 물었다. 있는데 비싸다고 했다. 하지만 마지막 손맛을 봐야하는데 싸고 비싸고가 그리 문제될게 없다는 생각이었다.
대포항, 자잘한 오징어들이 수족관에서 헤엄을 치고있다. 평소때 같으면 다른음식 주문하면 서비스로 한접시는 내어주던 오징어회 인데....그 자잘한 오징어값이 꽤 비싸다. 그대로 포장을 해서 선인장횟집으로 향했다 아점메뉴도 역시 도루목조림. 오징어를 내밀자 솜씨좋으신 남편분의 칼질이 시작되고 그 달디단 오징어회를 게눈감추듯 삼켰다. 다시는 맛 볼수없는 이 손맛, 솜씨.
어디에서 뭘 하든, 이렇게 아쉬워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성공한 삶이 아닐까? 몇해전부터 이 식당의 주인부부도 언젠가는 은퇴를 하실텐데.....이분들이 그만두면 30년이상 다니면서 꼭 챙겨먹을 만 한 뭔가를 찾을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했었다. 30년 전 그 식당엔 저녁 식사 시간이면 예약이 많아 테이블마다 음식이 차려져 있곤 했었는데 그분들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식당엔 종업원도 없이 두 부부만의 식당이 됐고 음식맛은 항상 같았다. 절대로 실망하지 않는 그 맛. 식당이 없어져 이렇게 아쉽다는 이야기는 그리 많이 듣지 않은것 같다. 가끔 주치의 선생님이 연세가 드셔 더 이상 그곳에 갈수없어 정말 아쉽다는 연세많으신 회원의 이야기를 들은적은 있지만.......
나에게 있어 속초는 곧 선인장횟집이었다. 많이 허전하다. 언니를 불러서 꼭 마지막 그집식사는 함께 했어야 했다는 생각이 나를 잡는다. 2020년 7월13일 마지막으로 내 기억속에 자리잡을 부부의 모습. 더이상 늙은 모습이 아닌채로..... 특히 여행중에 만난 음식점 주인들 대부분은 나이 들면서 건강을 잃어갔고, 여행지에서 아픈사람이 만들어 주는 음식을 먹고 싶지않아 내가 먼저 발길을 끊었었다. 선인장횟집 부부는 건강하다. 지금도 건강한 모습으로 손님을 맞고, 가을이면 농사지은 대봉감을 식당 한켠에 놓고 팔기도 하고 맛을 보여주기도 하신다. 칠순을 넘기고도 건강하시고, 건강 때문이 아니라 이젠 쉬어야 할 때라고 생각해 은퇴를 결정하신 그분들이 나는 정말 좋다.
현재를 살아가고있는 젊은이 들에게 이 부부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 나 또한 그들처럼 누군가의 기억속에 남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