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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모차와 해바라기/정현숙 시조집 읽기
김문억
지난여름에 받아 놓은 책을 몸이 계속 불편해서 미루어 오다가 지금 읽고 있는 중이다
대충 몇 편을 건너뛰면서 읽다가 처음부터 다시 읽기로 했다. 문장은 쉽지만 뜻은 예사로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미치면서 편편마다 천천히 읽어 보기로 한다. 기력도 자빠지고 視力도 무너지고 보니 남의 글에 오자 탈자가 있을까 봐서 걱정이 되고 읽기에 지루하지 않았으면 한다
책 전체가 하얀 분칠을 뒤집어쓰고 나왔다. 밝고 따듯하다. 유모차와 해바라기 또한 맑은 날씨에나 만날 수 있는 풍경이다. 풀꽃 작품을 첫 장에 올린 것을 보더라도 작가가 지향하는 작품의 실제가 어디 있는지 나는 하마 눈치 채고 있다.
보랏빛 젖꼭지가 유난히 아리던 날
바람이 목말 태운 꽃씨 한참 바라봤다
터 잡을 낯선 땅에서 웃음 잃지 말란 듯
쇠별꽃 쥐손이풀 민들레 봄구슬붕이
어쩌면 우리 자매 모습 같은 안부 같은
어머니 가슴 양지서 초록 싹을 키웠을
「풀꽃」전문
풀꽃은 무엇이고 다 예쁘다. 화려하지는 않더라도 작은 꽃 소박하다. 시문학이라는 그림 판도가 다 그렇겠지만 이 작품집은 처음부터 풀꽃의 이미지를 끝까지 유지하고 있다. 테크닉 수려하고 근사한 문장 이라기보다는 키 낮은 이야기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숨김이 없는 직관으로 맑고 따듯한 언어들이 해바라기 씨앗처럼 곳곳에 빼곡하게 박혀있다. 정말 마치 유모차를 끌고 가던 엄마가 길을 멈추고 서서 누구랑 이야기 하는 것 같은 쉬운 글귀다.
소극장 음악회 같은 기분이지만 멜로디는 우렁차고 시사성이 깊다
선하나 그어놓은 국경 마을 프셰미실
밀폐된 기차역에 어둠 뚫은 기적소리
그곳엔 희망을 찾아온 난민들이 살고 있다
눈이 큰 해바라기 그 꽃 닮은 사람 웃음
총 든 자 가슴마다 서늘하게 꽂혔으리
유모차 단잠 잔 아기 나비 꿈은 꾸었을까
한 끼니 빵과 물로 하루를 건너는 고통
눈물은 기도 되어 평원을 적시지만
가을도 이슥해 가는데 지구촌은 대답 없다.
「유모차와 해바라기」 전문
時調는 때를 맞춰 쓴 노래다. 계절을 노래하는 것에서부터 작가가 살고 있는 현실문제까지 쓰고자 한다면 낭만적 서정도 있겠지만 가슴 아픈 현실 문제에 맞닥뜨리게 된다. 때문에 예전에는 時節歌調라는 명칭이 있었을 것이다.
정현숙 시인은 따듯한 사람 이야기도 있지만 지구촌의 아픔에 대해서 외면하지 않고 고발적인 외침이 확성기를 타고 있다.
완력으로 뺏고 빼앗기면서 수시로 나라 이름이 바뀌는 수난을 격어야 하는 작은 마을이 있다. 기득권자의 욕심에서 양민들만 고통을 격어야 하는 잘못된 역사다. 지금도 전쟁 속에서 시달리고 있는 난민들을 바라보기만 하는 시인의 마음이 너무 슬프다.
일상적인 생활시조에서 벗어나 이웃을 사랑하고 지구촌을 돌아보는 넉넉한 詩力은 시조문학이 지향해야 하는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집요하게 파고들어야 한다. 그것은 붓을 든 자의 책임이기도 하다.
집과 길 걸레처럼 찢어진 우크라이나
엄마를 깨워대던 소년 혼자 걷고 있다
갈 곳을 잃은 걸음이 눈에 밟혀 아프다
「전쟁과 소년」전문
시조문학이 여가선용이나 취미로 흘러서는 아니되옵니다. 유모차와 해바라기에 눈을 돌리듯이 거시적인 대상을 갖고 집요하게 파고 들어가야 한다. 반드시 문학장르가 아니더라도 인류문명에 이바지한 대중적 가치를 인정하여 노벨문학상을 수여한 경우는 얼마든지 있다. 다른 나라에서는 듯도 보도 못한 시조라고 하는 매우 독특한 글 판이 우리나라에도 있다는 자부심을 갖어야 한다. 이렇게 45자 내외의 짧은 노래 가락으로 전쟁의 참화를 단적으로 표현하는 독특한 장르다.
2015년 노벨문학수상작가로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있다. 알다시피 알렉시예비치는 문인이라기보다는 언론기자다. 제2차 세계대전, 소련-아프간 전쟁, 소련 붕괴, 체르노빌 사고 등 극적인 사건을 겪은 목격자들과의 인터뷰를 끈질기게 기술했다. 10년 넘게 집필한 체르노빌의 목소리』는 1997년 처음 출간되었고 2006년 미국 비평과 협회상을 받으면서 세상에 더욱 알려지게 되었다.
2015년 스웨덴 한림원은 “알렉시예비치의 다층적 작품은 우리 시대의 고통과 용기를 동시에 보여주는 기념비적이다"하여, 노벨문학상 선정 이유를 밝혔다. 사뭇 대중적인 일이기도 하다. 2016년 수상자로는 미국 가수 밥 딜런이 있고
2016년 수상자 밥 딜런 역시 본격적인 시인 이라기보다는 대중가수로 유명하다. 어려서부터 시를 썼지만 사회적 저항 운동계의 상징적인 음악가로 더 많이 알려졌다. 1988년에는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으며 그가 지은 가사의 시적인 면모는 대중음악의 가사를 문학의 경지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중음악 장르로 치부된 포크를 현대 예술 장르로 탈바꿈시킨 역사적인 인물로 평가되기도 한다. 밥 딜런은 "위대한 미국 음악 전통 안에서 새로운 시적 표현을 창작했다"는 평가로 2016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처음에는 어찌 딜런 같은 음악가가 문학상을 받는가 하는 의구심이 생겼지만 노벨의 뜻과 부합된다는 생각에서 수긍이 갔다.
본격문학을 하지 않으면서도 노벨문학상을 수여하게 된 두 사람의 업적을 역시 대중적이라는 폭 넓은 문화 창달에 두고 있다. 인류문명에 크게 공헌 했다는 이유다.
2009년 수상자 헤르타 뮐러는 루마니아 출신의 독일 여성 작가로 니콜라에 차우세쿠 독재정권 아래에서 고통 받은 이들의 상처를 작품에 담아왔다. ‘응축된 시정과 산문의 진솔함으로 소외층의 풍경을 묘사했다’고 선정이유를 밝혔다. 그런가 하면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는 스웨덴 서정시를 대표하는 국민 시인으로 특히 스칸디나비아 특유의 자연환경에 대한 깊은 성찰과 명상을 통해 삶의 본질을 통찰하며 서구 현대시의 새 길을 연 것으로 평가된다. 자국의 토속적 환경에 대한 작품으로서의 평가를 받고 있다. 맞다 그래 우리에겐 시조가 있다.
좁다란 바닷길 따라 열두 척 배 따라가면
대장선 병사들의 북소리 함성소리
우우우 바다가 우는 파도 소리 들려온다
아직도 신에게는 열두 척 배 있다는 말
구월의 시린 달빛 해협에 반짝일 때
결연한 그 눈빛들이 무명옷을 펄럭였다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
군령은 한 가지로 날이 서게 세워두고
울돌목 의병과 백성 한 몸 되어 맞섰다
신호기 높이 세워 격전 속에 뛰어들고
금박의 단청 적함 비단 깃발 부러지니
그날은 흰옷의 백성 강강술래 춤을 췄다
「바다가 우는 길목」 전문
글을 쓴다는 일은 역사를 남긴다는 뜻이 된다. 창작을 하는 개인의 역사는 물론 나라의 역사 세계사까지 그 글속에 결연하게 들어있기 때문이다.
이순신 장군의 무용담은 세계의 전쟁사에서도 으뜸으로 빛나는 戰功 이야기다. 역사가 증명하고 있는 실전의 이야기다. 이런 부분을 시조창작에서 관심 두었다는 일은 대단히 고무적인 일이다. 제목처럼 바다가 울 수밖에 없는 처절한 순간으로 국운이 위태로운 때다. 바다를 끼고 있는 남해의 지리적 모양을 보면 바다가 우는 길목 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무명 옷 하얀 수군들과 강강술래 노래와 춤사위로 적군을 쫓아내는 장면 자체가 장엄한 무대요 오페라 뮤지컬이다. 장군은 군복을 입은 연출가요 연기자였다.
지금은 정현숙 시인이 세 수로 표현하면서 판 위에 돌 하나를 소중하게 놓았다. 언젠가는 이 부분을 역시 집요하게 파고들어 대하시조를 만들어 내야 한다. 적벽가 수궁가 심청가 같은 현대판 판소리 사설로 만들 수도 있는 글감이다. 시조문학이 닿아야 할 막중한 희망이요 책무다. 정현숙은 부산에 거주하는 작가로 유리한 부분을 갖고 있다. 부산에서 여수까지 지형지물 마다 모두 답사를 하여 임진왜란으로 전해오는 숨은 이야기까지 수집하는 자료를 만들어 가면 한 십년이면 가능할 지도 모른다. 이순신 장군의 무용담으로 빼곡한 현대판 창작판소리 사설을 국악무대에 올려서 완창을 하는 날이 와야 한다. 소리꾼 역시 늘 전해오는 여섯 마당 판소리만 반복해서 부르기는 지루하고 재미가 없을 것 같다. 이렇게 정현숙 시인이 깃발을 올렸으니 언젠가는 그런 작품도 나오리라 믿는다.
동해 반 남해 반 몸 섞는 몰운대는
낙동강 하구와 다대포가 포개는 곳
뻘 밑에 막대조개도 살찌우며 산다네
안개구름 자주 끼어 국방의 요충지로
격전의 임진왜란 선봉장인 이순신도
왜선의 나쁜 출몰에 애를 끓여 지켰던
층층이 기암괴석 빛 고운 모래밭에
다섯줄 향비파의 세상소리 잠잠하면
우거진 숲의 성정이 무딘 혼을 벼리다
소금기 묻은 달빛 해도海圖 속에 부서지면
크고 작은 무인도 별점이나 치는 건지
물소리 잠든 적 없이 푸른 날을 닦는다
「아, 몰운대」전문
물운대로 잘 못 알고 지내던 이름을 여기에 와서 바로 잡게 되었다
시인은 냉정한 입장으로 감탄사를 아끼라고 하지만 몰운대를 이야기 하자면 아, 하고 반벙어리 같은 감탄사가 저절로 나올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냉정한 창작정신도 중요하겠지만 감정에 충실 하는 것 역시 중요하기 때문이다.
남해는 어느 곳이고 다 이순신 장군의 호령 소리가 쩡쩡거리던 곳이다. 안개구름이 자주 들었다면 어찌 아군만 어려웠겠는가 그 놈들도 안개 속에서 어리버리 하다가 깩! 하고 모강댕이가 떨어졌으리라.
소금기 묻은 달빛 해도海圖 속에 부서지면
크고 작은 무인도 별점이나 치는 건지
물소리 잠든 적 없이 푸른 날을 닦는다
명품이다. 장군이 휘두르는 長刀처럼 마지막 수는 빛나는 검과 같다. 지난여름에 몰운대에 오르지 못 하고 조개구이에 꼼장어만 구어먹고 온 나의 부산여행 뒤끝이 사뭇 부끄부끄하다. 몰운대에 다시 올라서 이 작품을 꼭 읽고 싶다.
정 시인은 다시 유모차를 끌고 해바라기가 피어있는 비닐하우스 가정을 방문한다
아득히 가물대는 지평선을 보았다
해 뜨고 날 저문 뒤 은색 움집 빗장 거는
그곳은 남방에서 온 철새 요람 이었다
지폐를 세어가듯 들깻잎 단 묶으며
얼마를 따 쟁여야 고향 다녀 올 수 있지
머리 위 뜨는 비행기 올려보는 월남댁
늘그막 색시 얻은 햇님농장 주인 박씨
한시도 입가 웃음 떠나지 않는 일터
서로가 등을 기대며 꾸려가는 생이다
어디서 흘러와서 어떻게 살아간들
가끔은 흔들리며 뿌리를 내린다며
부추 꽃 흰 이 보이며 수화하고 있었다.
「비닐하우스 가정」전문
비닐하우스는 안에 들어가지 않아도 이미 밖에서도 그 속내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곳이다
그러면서도 햇볕을 받아야 온도가 올라가는 곳이다 남루하고 참을성이 있어야 하는 곳이지만
월남 댁은 타국의 모자라는 살림도 안으로만 삭히면서 희망을 갖고 살아간다. 이렇게 열악한 다문화 가정까지 들여다보는 시인의 눈은 측은지심으로 가득하다. 사회적인 문제로 떠오르고 있는 이런 어려운 부분까지 살펴보면서 해바라기를 심고 있다.
된비알에 싹을 내린 북경 들판 민들레
바람결에 홀씨 되어 흘러온 생의 여정
반도 땅 햇볕 비바람 어색하지 않았다
말려도 자꾸 젖는 어깨 가려 주는 나무
오빠가 여보 되는 달콤한 이야기가
평범한 연속극 보다 두 배나 뜨거웠다
만삭의 몸이지만 환한 미소 민들레 향
황무지 광야여도 마음 주면 내 고향 뜰
우렁찬 첫아기 울음 홀씨 대궁 울렸다.
「북경 새댁 이야기」전문
그런가 하면 또 자신의 존재까지 질문하는 자아의식에 들어가 보기도 한다. 매우 깊은 사고력으로 인간 생명의 근본까지 파고 들어가서 물의 원리에 이르고 있다. 아버지의 아버지까지 어머니의 어머니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물소리를 듣고 다시 물소리로 돌아가는 무소유의 회귀를 이야기 하고 있다. 어느 누구도 딱히 대답을 할 수가 없는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를 안고 고민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는 일은 이제 시인의 연륜이 많이 깊어가고 있다는 증거일 것 같다 누구도 겉으로는 말로 할 수 없는 문제들을 이렇게 시조 한 수로 들어낸다는 일은 시인만의 특권이요 자유다. 한 번 본문을 살펴 읽어 보자.
내 생애 첫 인연도 물의 원자 이었으리
아버지 어머니의 양자물리학 덕으로
수궁을 헤엄쳐 나와 별과 달을 보았으니
무논을 화폭 삼아 붓을 든 아버지는
바닥이 말라가자 푹 수그린 작물 앞에
지극한 눈물샘 그렁 돌려댔으리, 수차를
물에서 출발하여 다시 물로 가는 시간
까마득 영혼 하나 별자리로 옮겨 앉아
어머니 그 어머니의 품에 안겨 울었을
「물, 아버지」 전문
생명의 근원을 찾아 가는 물의 화엄은 나와 조상의 관계마저 끈끈한 줄로 이어지면서 제문 한 수를 올리고 있다. 아들딸을 구분하지 않는 가부장제를 성토하면서 지극한 정성으로 선조의 영혼을 달래고 있다
어머니, 제사상을 저가 차려 모십니다
오빠네 가족 모두 오미크론 확진자라
착잡한 이 상황 두고 꾸짖지는 마셔요
세월이 하 수상해 난리법석 세상에서
아들네 딸네 집이 손닿을 지척이지만
조금도 서운타 마시고 간을 맞춰 드셔요
그립고 그립단 말 마스크 벗지 못해
무명 달 한 뼘 잘라 제문 지어 올리오니
자시에 별자리 보고 부디 살펴 가십시오
「2022 제문祭文」전문
작품 집 어디를 읽어봐도 문장에 화장 끼가 없이 순수하고 쉬워서 좋다
작품에 멋을 내느라고 욕심이 가득 들어간다든가 말과 말이 뒤엉켜서 앞으로 나가지 못 하고 말씨름만 하는 글이 없이 보다 더 현실적인 이야기로 뒷이야기를 감추고 있다.
오빠 대신 조상의 제사상을 차리면서 올리는 제문이 마치 둘이서 대화를 하는 듯 말 품새가 너무 따듯하다. 어려운 상황이오니 두루두루 살피시어 이해를 바라는 간을 맞춰 드시라고 하는 대목이 뭉클하다. 이는 결코 맛 간을 맞추라는 뜻이 아니다. 종장에 이르고 보면 자식의 도리를 하고자 하는 마음 씀씀이 때문에 감정이 넘쳐 흐는다.
그립고 그립단 말 마스크 벗지 못해
무명 달 한 뼘 잘라 제문 지어 올리오니
자시에 별자리 보고 부디 살펴 가십시오
이런 제문이 어디 있을까. 명품이다. 얼마나 지극한 정성이면 무명 달 한 폭을 잘라내어 제문 지어 올린다 하겠는가. 마스크 라는 용어가 들어가고 보니 마치 고전과 현대가 어우러진 작품 같다. 시조 쓰기가 이렇게 나가야지 국민들 모두가 부담 없이 시조를 쓸 수가 있다.
그러면서 작가의 고운 마음씨가 담뿍 들어있는 아래 작품을 읽어 보자
저울에 순리 달 땐 추는 별로 필요 없었다
새 아침 나팔꽃이 머금은 이슬방울
그 무게 평형 이루며 흙에 스민 평화 보면
대숲에 밤새 내린 함박눈 보고 있으면
고봉밥 못 푼 엄니 울컥울컥 눈물 난다
이팝과 조팝 그 사이 쌀이 못 된 예전에
네 생각 내 생각의 기울기 짐작 말고
하나쯤 덜 가지면 행복을 나누는 일
눈금을 움직이는 손 자꾸자꾸 떠는 날들
「천칭天秤」전문
天秤은 긴 막대를 중심으로 양 끝에 추와 무게를 다는 옛날 저울이다
천칭 이라는 한자 이름을 보면 어쩌면 하늘이 내려 준 저울 뜻인지도 모른다
작품을 보면 결코 무게로 가늠할 수 없는 친 자연적인 것 앞에서 사람의 손이 자꾸만 떨려오는 무게를 달면서 살았던 것 같다. 하나쯤 덜 가지고 보면 비록 실제의 저울추는 기울더라도 마음 만큼은 수평 이상으로 행복하다 한다. 이는 지극한 사랑의 힘에서 나오는 행복이다. 쌀밥 같이 소복하게 함박눈이 쏟아진 겨울풍경을 보고도 고봉밥을 푸지 못 했던 어머니의 주걱 역시 눈금으로는 가늠할 수 없는 사랑의 밥주걱이었다. 얼마나 쌀이 귀하고 아픈 것이었으면 필자는 쌀을 일컬어 살 이라고 했었다.
나라와 말과 글을 빼기지 않으려고
옥중에 갇혔어도 갈고 닦은 우리말본
태극기 휘날리던 날 소나무로 섰습니다
「외솔 선생님」전문
사는 게 바쁜 건지 시간이 아까운지
방콕 탈출 아점으로 하루 두 끼 역설 빈국
분해된 자모음들로 진화하는 한글이다
고농축 압축파일 YYZ 풀어보면
그 속에 은거하는 희망절벽 혼밥 혼족
절반은 씹어서 뱉는 카톡문자 헉 ㅠㅠ
오나가나 폰 화면에 눈을 둔 사람들은
도태를 벗어나려 춤을 추는 엄지족
해마다 한글날이면 세종대왕 뵐 낮 없다
「신조어 시대」전문
사과를 뚝딱 따서 네 바퀴 반들고요
통수박 반을 잘라 차 지붕 씌웠어요
부르릉 시동을 걸면 자금모음 굴러요.
「한글 자동차」전문
외솔 선생님이나 신조어 시대 글을 읽어보면 작가가 얼마나 한글 사랑을 하고 있는지 단적으로 말 해주고 있다. 작가는 시조문학의 뿌리를 알고 있는 분이다. 훈민정음이 창제되고부터 비로소 우리는 한문 문화권에서 서서히 벗어날 수가 있었다. 그러다가 인쇄술이 발달하면서 본래의 시조창은 국악으로 가라지고 말과 소리가 글자로 표현되는 미디어 시대가 오면서 시조문학이 발달하는 출발점이 되었던 것이다. 시조작가는 특히 그런 역사를 인지하고 행복한 마음을 갖어야 한다. 한글에 관계되는 작품이 여러 편 나온 까닭도 거기에 있다. 본래의 한글이 변질되어 가는 신시대 용어를 바로 잡아야 하면서도 어느 경우는 시조작품에서 글자 맞추기를 한답시고 이상한 변용의 한글 쓰기를 하는 작가도 있어 개탄스럽다.
작품 감상은 빼어난 의미로 엮어가는 작가의 단수 몇 편을 읽어 보면서 나가기로 한다
연륜의 손자국이 단수 작품 마다 정감 있게 묻어 있어 같이 소개 하고 싶다. 특히 즐거운 셈법에 가서는 작가의 너그럽고 넉넉한 마음을 보고 있어서 읽는이의 마음도 행복하다.
땡초가 칼칼하게 맛을 낸 찌개라 해도
아무런 생각 없이 떠먹다 간 도로 뱉지
비릿한 세상일 또한 다를 바가 없으니
「매운 맛」전문
내 사랑 아홉 마디 꽃으로 피어나서
속앓이 흔적이듯 보라색 물이 들고
가느린 바람결에도 흔들리는 까치발
「구절초」전문
위층의 외동이가 둥글둘글 뛰는 소리
물방울 번지듯이 포물선 그리듯이
귀 쭝긋, 천장의 발자국 세어보다 졸다가
「즐거운 셈법」
거미손 아버지는 늘 앞서 이끌었다
우리는 서로서로 한 호흡의 어깨동무
한 명도 낙오자 없이 높은 벽을 넘었다
「담쟁이 가족」전문
밤이면 함지박에 별 소복 이고 와서
새벽밥 짓느라고 쌀 씻는 소리 함께
첫닭이 울기도 전에 세상 꼼꼼 살피던
「찔레꽃」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