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다잉(well-dying), 노년의 화두로 등장
어떻게 살다 갈 것인가가 초미의 관심사
가을날 곱게 물든 단풍처럼 떠날 수 있을까
(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 정명화 자유기고가)
새해가 되면 사람들은 먼저 한 해의 계획을 세우고 바라는 바를 꿈꾼다. 올핸 지난해보다 낫기를 빌고 그러리라 기대한다. 인생이 과연 계획대로 될까 싶지만 희망찬 미래를 소원하는 것까지 그 누가 말리랴.
영화 '기생충'에서 배우 송강호가 아들 최우식에게 '너는 계획이 다 있었구나' 하는 유명한 대사가 나온다. 그 계획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달려 가족들은 모두 불행의 끝을 보지만 말이다. 인생이 계획대로 된다면야 무슨 어려움이 있을까만은….
신년백두부터 뭔가 부정적인 뉘앙스를 풍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건 아니다. 진정 한 해를 시작하며 지난 시간들을 둘러보며 일상들을 계획해 보자는 거다.
웰빙의 역사
한때 일상의 화두가 '웰빙'이던 시절이 있었다. 원래 웰빙은 자본주의의 극대화로 말미암은 현대 산업사회의 병폐를 인식하고, 육체와 정신적 조화를 통해 행복하고 아름다운 삶을 영위하려는 삶의 문화 또는 그러한 양식을 말한다.
1980년대 중반의 유럽에서 시작된 슬로푸드(slow food) 운동, 1990년대 초에 느리게 살자는 기치를 내걸고 등장한 슬로비족(slow but better working people), 부르주아의 물질적 실리와 보헤미안의 정신적 풍요를 동시에 추구하는 보보스(bobos) 등도 웰빙의 한 형태이다.
이러한 붐으로 우리나라에 '웰빙'이라는 용어가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시기는 2000년 이후로, 이전에도 다양한 형태로 육체적·정신적 삶의 유기적 조화를 추구하는 움직임이 있기는 했지만, 삶의 문화등 포괄적 의미로서 '웰빙'이라는 이름을 얻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다.
문제는 웰빙 신드롬이 확산되며 유행처럼 번져 나가서 웰빙족을 겨냥한 웰빙을 표방한 각종 상품광고가 쏟아져 나왔다. 이러다보니 웰빙 열풍이 상업적으로 변질되면서 '웰빙'의 원래 목표는 퇴색되었고 심지어는 식상할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2010년대 이후로는 쓰임새가 점차 적어지더니 사실상 존재감이 미미해졌다. 여기엔 경기침체의 영향으로 서민들이 먹고 살기 힘들어진 상황에서 조화롭지 못한 분위기로 비쳐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란 신조어가 부상하며 대체된 것 같다.
따라서 웰빙이란 것도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고 먹을 것을 골라 먹을 수 있는 풍족한 환경에 있어야 할 수 있다는 이야기일 뿐 이를 반증하듯 세계 금융 위기의 대침체기 이후로 대한민국에서는 웰빙 열풍이 거의 사그라 들었다.
봄을 알리는 청초한 하얀 제비꽃처럼 기억되었으면 하는 바람. ⓒ정명화 자유기고가
안티에이징에서 웰에이징으로
한편 밀레니엄 이후 웰에이징이란 단어 역시 급부상했다. 잘 늙는다는 웰에이징의 참뜻은 항노화 같은 확실한 의미를 전달하는 일반적인 단어가 아니다. 건강한 노년의 삶 웰에이징은 더 나은 인생의 많은 가치가 함축되어 있는 특수 복합어이다.
사람은 태어나서 성장하고 성숙되면 쓰이다 은퇴하면 서서히 사라지는데 이것이 인생의 사계절이다. 크게 30년마다 정점을 찍는 우리의 인생이 호르몬과 운명을 같이 한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다 늙는다(aging). 우리는 늙는 것을 거부할 수 없고 단지 개개인에 따라 조금 늦출 뿐이다. 그 길어진 인생에 쓰이는 기간을 연장하여 봉사를 하던 자신에게 가장 가치 있는 사회적 유대감을 담는 것은 각 개인의 선택이다. 결국 well-aging(잘 늙음)은 본인의 가치로 완성시키는 것이다.
요즘은 백세시대로 평균수명이 길어지면서 우리네 풍습도 변해가고 있다. 칠순잔치도 건너뛰고 환갑은 거의 사라져 가는 개념이다. 도리어 세계는 노년기의 젊음과 건강에 대한 이슈에 집중하는 분위기다. 우리나라에도 이 물결이 흘러들어 중·노년의 피부 시술과 성형수술이 성행했다. 그러나 수명에 따라 한동안 안 늙겠다고 안티에이징에 매달려 봤지만 어차피 우리는 늙는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도리어 긍정적인 사고로 돌아서면서 어떻게 하면 이 길어지는 세월의 나이를 잘 먹어 갈 것인가에 관심이 쏠리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지각 있는 이들은 antiaging(항노화), 즉 나이를 먹지 않게 하자는 게 아니고 aging well, 잘 나이 들자 즉 잘 늙도록 하자 하는 방향으로 선회하였다. 나이를 잘 먹는다는 것은 외적인 모양새보다 정신적 신체적 관리와 성숙에 이르는 형이상학 방향으로 다가가자는 의미다.
노화는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현상이다. 이제는 의학, 과학적 기술을 통해 독립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건강을 유지하는 것에 촛점이 맞춰지는 추세다. 나이 듦이라고 하는 노화는 인간의 신체 기능적 쇠퇴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시간에 따른 경험으로 만들어지는 성숙함, 지식의 축적 그리고 삶의 지혜 등 젊은 사람들이 가지기 어려운 부분이 시간에 따라 형성되기도 한다. 따라서 노화가 되더라도 수명연장뿐 아니라 기능이 건강하게 유지되는 것에 대해서 많은 관심들을 가지고 있다.
다양한 노화의 기초개념 그리고 관련된 인문학적, 사회적 그리고 의학적, 다양한 정보들을 통해서 그동안 우리가 지켜봐 왔던 노화 그리고 노인문제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따라서 미래의 고령화 사회는 기존의 흑빛, 회색빛의 이미지가 아니라 조금 더 활력 있고 적극적인 금빛 미래로 바꾸는 시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웰다잉(well-dying)의 존재
이렇듯 웰빙, 웰에이징도 중요하지만 인간이 피해 갈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죽음이다. 웰빙에 대한 사회적 관심에 이어 웰다잉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흔히 웰다잉이라 하면 죽음에 초점을 맞추는데 아름다운 삶을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웰빙, 웰에이징, 웰다잉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나이가 들면서 이렇게 설레는 한해를 맞는 심경이 앞으로 몇 해나 될까 하는 두려운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매년 색다른 계절을 만끽하며 모진 겨울의 추위를 이겨내고 맞이하는 봄이 오면 화사한 꽃들에게 마음을 빼앗기기 일쑤다. 그런데 봄이 되면 내가 또다시 다음의 봄을 맞이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나이가 되고 보니 웰다잉이 무엇일까를 진지하게 생각케 된다.
웰다잉은 얼핏 보면 ‘어떻게 죽을 것인가’의 문제라고 생각되지만 이 고민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질문에 다다르게 된다.
태어난 이는 모두 죽음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시기와 방법만 모르고 다를 뿐 죽음은 인간의 숙명이다. 이에 웰다잉 관련 전문가들은 죽음은 두려워할 것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죽음에 대해 알고 그 준비만 철저하다면 죽음이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맞이하는 긍정의 마음이 생기게 된다고 설명한다.
종이 한 장 차이 삶과 죽음
2008년 개봉된 영화 ‘버킷리스트’. 가난하지만 한평생 가정을 위해 헌신하며 살아온 정비사와 자수성가한 백만장자지만 성격이 괴팍해 주변에 아무도 없는 사업가가 같은 병실에 입원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었다. 공통점이라곤 전혀 없는 이 두 사람의 유일한 공통점은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려온 인생과 병으로 인해 그 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제껏 열심히만 살아온 자기 자신에게 바치는 특별한 ‘버킷리스트’를 시도한다.
웰다잉 즉 잘 죽기 위해서는 건강하게 잘 살아야 하고(웰빙) 정신적 도덕적으로도 건강해야 하며(웰리빙) 잘 늙어가는 것(웰에이징)이 웰다잉을 하기 위한 준비라는 것이다. 태어나는 것은 순서가 있지만 죽는 것은 순서가 없기 때문이다. 죽음을 두려워 말고 우리가 가야 할 길을 가는 또 하나의 길이라 생각하며 맞이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 우리 사회는 죽음을 외면하고 싶어 한다. 그렇더라도 연세 많으신 부모님이나 시한부 삶의 질병을 앓고 있는 가족이 있다면 웰다잉에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다.
인생의 봄을 맞이하고 여름이 지나면 결실의 가을이 온다. 계절의 순환 속에 매서운 겨울도 지나쳐야 한다. 겨울 없는 봄은 없기 때문이다. 삶의 질곡이 평탄할 수만은 없기에 우리에게 닥치는 시련도 나를 단련하는 또는 나의 뿌리를 더욱더 깊게 만드는 과정이라 여긴다면 이겨 낼 수 있으리라.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자세
그러나 이제 타인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현실로 직면해야 할 시점이다. 나는 한때 삶의 중심에서 무한 질주하다 이젠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삶에서 생활한다. 죽음은 능선 넘어 저 멀리 있던 개념에서 이젠 그 능선을 넘어 좀 더 가까이 다가가는 처지가 나의 현주소다. 문득문득 나의 죽음은 어떤 형태일까 궁금해진다. 먼저 죽음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 생각해 봐야할 때다.
그중에 버킷리스트와 자서전 쓰기에 관심을 갖고 내 삶의 중간단계를 점검해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죽기 전에 후회하지 않게 정리해 보는 것이다.
동네 산에 오르는 중 초목들을 보며, 인간의 마지막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진지하게 상념에 빠진 적이 있다. 물론 그들의 겨울로 가는 길목에 있는 모습은 찬란할 내년 봄을 위한 동면에 드는 상태긴 하나, 그 이후를 생각 안 한다면 아마도 다양한 형태로 돌아갈 우리들의 모습과 많이 닮지 않았나 싶었기 때문이다.
산다는 것은 배워가는 일 같다. 내가 몰랐던 삶의 지혜를 하나씩 알아가고, 삶의 난제 앞에서 적용해가며 하나씩 풀어가고, 이제 죽음을 배우고 알아야할 계단 앞에 섰다.
가족들이나 유명인들의 죽음을 목도하며 인생무상에 허무감을 느낄 때가 많다. 고운 가을 단풍처럼 나이 들어갈 거라고 생기 넘치던 집안 큰엄마도 본인의 바람과는 반대로 치매로 고생하다, 그리고 친정 부모님는 암으로 모두 세상을 등졌다. 팔순에도 운전하며 에너제틱하던 구순 고모님도 치매로 투병중이다.
인생의 종착점에 어떤 모습으로 당도할 지는 누군들 알 수 있을까? 그래도 나는 오늘도 꿈을 꾼다. 가을의 낙엽들을 보며 욕심이랄까, 호사를 부리고 싶어졌다. 정말 형편없이 사그라진 모습보다는, 예쁘게 물든 단풍처럼 보는 이들에게 기쁨을 주고 싶다는 생각. 바람에 날리고 길거리에서 굴러다니면서도 마지막까지 아름다움을 뽐내는 그 모습이란, 마지막 내 모습이었으면 한다는. 거기다 뽑혀서 책갈피에 꽂혀 누군가에 선물로 보내지거나 남은 사람들에게 기억 속 좋은 추억으로 남았으면 하는 바람 들이다.
이제 인생의 늦가을에 접어들었다. 머잖아 겨울이 닥칠 것이다. 그러나 나쁘지 않다. 예쁜 단풍처럼, 삶을 아름답게 물들이며 또 보여주며 오랫동안 이 가을을 만끽하고 싶다.
정명화는…
1958년 경남 하동에서 출생해 경남 진주여자중학교, 서울 정신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연세대 문과대 문헌정보학과 학사, 고려대 대학원 심리학 임상심리전공 석사를 취득했다. 이후 자유기고가로 활동 중이다.
출처 : 시사오늘(시사ON)(http://www.sisao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