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과 자야, 그리고 나타샤
통영(統營)
-백석-
옛날에 통제사가 있었다는 낡은 항구의 처녀들에겐
아직 옛날이 가지 않은 천희(千姬)라는 이름이 많다
미역오리같이 말라서 굴껍지처럼 말없이 사랑하다 죽는다는
이 천희의 하나를 나는 어느 오랜 객주집의 생선 가시가 있는 마루방에서 만났다
저문 유월의 바닷가에선 조개도 울을 저녁 소라방등이 불그레한 마당에 김냄새 나는 비가 나렸다.
1939년 늦가을, 스물여덟살의 젊은 시인은 경성에서 만주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싣게 됩니다. 바로 백석(白石, 1912-1995) 시인입니다. 차창가에 펼쳐지는 드넓고 을씨년스러운 만주벌판은 가도 가도 반복되는 풍경만을 보여줍니다. 반복되는 풍경은 내면을 응시하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시인의 눈에는 차창의 풍경에 두 여인의 얼굴이 겹쳐집니다. 바로 란(蘭)과 자야(子夜)라는 여성입니다. 부모의 강권으로 시인은 20대에 이미 세 명의 아내를 두었던 사람입니다. 그렇지만 불행하게도 그가 사랑했던 여인은 란과 자야뿐이었습니다. 1935년 6월, 경성의 조선일보사에 근무하던 스물네 살의 백석은 통영 출신 이화여고 학생 란을 만나게 됩니다. 북방 출신이었던 백석에게 해풍을 머금고 자란 란은 무척 이국적인 소녀로 보였을 겁니다. 바로 란이라는 여성이 시인의 첫사랑이었습니다.
그녀를 얼마나 사랑했던지 백석은 그녀가 살았던 통영을 직접 방문했고, 그때마다 아름다운 시를 지었지요. <통영>이란 제목의 시가 세 편이나 있습니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아마 1935년 6월에 쓴 것으로 보이는 첫 번째 <통영>이란 시입니다. 시에는 “저문 유월의 바닷가”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란을 보고 한눈에 반했던 백석은 그녀를 조금이라도 더 알기 위해서 같은 달에 혼자 통영을 내려가본 것 같습니다. 사랑에 빠지면 상대방을 알려는 욕망이 강해지는 법이니까요. 그렇지만 불행히도 시인은 그녀에게 자신의 뜨거운 속내를 고백하지도 못합니다. 사실 란은 친구의 애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처지가 서러웠던 걸까요. 1936년, 스물다섯 살의 백석은 조선일보사를 사직하고 함경남도 함흥(咸興)의 영생고보(永生高普)에 영어 선생님으로 부임하게 됩니다. 그리고 란에 대한 사랑이 가시기도 전에 그는 함흥에서 조선권번(朝鮮券番) 출신의 기생 자야를 만납니다. 선생님들의 회식 자리에서 말입니다. 궁중무용을 포함한 가무에 능했던 당시 스물한 살의 자야, 만나자마자 사랑에 빠진 백석은 그녀와 3년이나 동거를 하게 됩니다.
자야는 본명이 김영한(金英韓, 1916-1999)으로 나중에 길상화(吉祥華)라는 법명을 가지게 됩니다. 1996년 그녀는 자신이 운영하던 대원각이란 요정을 길상사로 바꾸어 법정(法頂, 1932-2010) 스님에게 기증한 것으로도 유명하지요. 인구에 회자되는 일입니다. 아무것도 모른 순수한 여성 란과는 달리 자야는 모든 것을 품어줄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여성이었습니다. 당연히 백석은 자야의 가슴에 묻혀 첫사랑의 상처도 치유했을 겁니다. 그렇지만 함흥에서 시작된 자야와의 동거는 계속 불안하기만 했습니다. 동거 기간 중 부모의 강권으로 두 번이나 결혼을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럴 때마다 백석은 얼마 지나지 않아 부인을 버리고, 다시 자야의 품에 안깁니다. 그렇지만 어디 이것이 이런 식으로 정리될 수 있는 상황인가요. 마침내 백석은 1939년 자야에게 만주로 도망가자고 제안합니다. 그렇지만 백석의 장래를 걱정했던 자야로서는 그의 의견을 따를 수 없었습니다. 그해 늦가을, 싸늘한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백석이 만주로 가는 기차에 홀로 몸을 실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누이처럼 그의 모든 것을 품어주었던 자야는 백석에게 ‘나타샤’라고 불리는 여성으로 응결됩니다. 1938년 3월, <여성>이라는 잡지에 실린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바로 이렇게 탄생한 시입니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스물일곱 젊은 시인이 겪고 있는 사랑의 열병이 차가운 눈발과 대조되어 낙인처럼 선명하게 드러나는 애절한 시입니다. 자신의 사랑을 방해하는 일체의 것들을 눈으로 덮어버리고 나타샤와 함께 “출출이(뱁새) 우는 깊은 산골 마가리(오막살이)에” 살고 싶었던 청년의 바람에 마음이 아리기만 합니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라는 시를 통해 우리는 백석이 감각에 얼마나 민감했던 시인인지를 확인하게 됩니다. 특히 주목하고 싶은 것은 “푹푹”과 “응앙응앙”이란 의성어입니다. “푹푹”은 눈이 내리는 소리인 동시에 성교를 연상시키는 의성어이고, “응앙응앙”도 하얀 눈을 만지듯이 나타샤를 애무하는 백석의 손길이 없다면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의성어니까 말입니다.
감각의 풍성함! 백석은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이란 오감으로 세계를 느끼고 살았던 겁니다. 컬러 텔레비전을 보고 MP3를 들으며 자란 우리 현대 시인들이 시각이나 청각이란 협소한 감각에 매몰되어 있을 때, 백석은 인간에게 가능한 모든 감각들로 세계를 살아냈던 겁니다. 백석이 우리 시인들에게 접근하기 어려운 노스탤지어로 남아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성복 시인이 <네 고통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한다>라는 산문집에서, 백석 시인은 우리와는 다른 아가미로 호흡하고 있었다고 말한 것도 다 이유가 있었던 셈입니다.
-강신주, 철학적 시읽기의 괴로움 중에서 일부 인용-
첫댓글 백석 시인의 란에 대한 애틋한 정신적 사랑, 그리고 자야와의 짧았지만 뜨거웠던 사랑,
그것을 시로 승화시킨 시인의 詩心, 그리고 철학자 강신주의 공감 가는 분석과 설명,
어느것 하나 버릴 것이 없기에 이 가을, 서정성 짙은 시간이 되었으면 하고 올려봅니다.
애틋한 사랑시 감명깊게 읽었습니다.
꽃길처럼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멋진글 감사합니다
통영에서 찍은사진 놓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