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
1.
마파람에 된바람 보내다
낡은 기왓장 같은 친구 하나 두고 싶다는 그대의 글은
친근감이 가득하군요.
하긴 좋은 친구 하나 얻으면
세상 살아가는 보람이 있다고들 하지요.
무슨 뜻으로 저에게 이런 글을 보내셨는지요?
그냥 오다가다 좋은 글을 보내신 것이라면
그래도 고마울 뿐이지요..
중년을 맞이하거나 넘긴 세대에 계신 모양이네요.
좋은 인연 만나시기 바랍니다.
저는 칠십 줄을 벗어나는 낭인입니다.
범부라고나 할까요.
평안하소서.
2.
된바람 보내고 나서
바람이 지나갔다고 할까?
물이 흘러갔다고 할까?
인연이 사라졌다고 할까?
참 좋은 글이었는데~
평안하라는 인사말에 인사도 없이 돌아서버렸다.
낡은 기왓장 같은 친구란 무얼 뜻할까?
와이셔츠 칼라를 하얗게 추켜세울 필요도 없는
붉은 서기 뿜어낼 필요도 없는
반쯤은 풀어져도 좋을 훈훈한 눈빛의 친구
콧날이 다 뭉그러져 만만하게만 보아도 좋을
편안한 친구
두 손은 호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자신의 어깨에 올라타 머리채 붙잡고 흔들어대도
웃음만 지어줄 것 같은
긴 세월 견뎌냈으니 쓰다 달다 말조차 없는
그런 친구를 그리워했던 걸까?
그렇다면 지나간 게 다행이지.
아직도 나는 낡은 기왓장이기를 거부하고
여전히 긴장된 세월을 살고 있지 않은가.
목덜미의 관자놀이가 자주 솟아오르고
양미간을 찌푸리며
무엇인가를 노려보고 두 주먹 불끈 쥐어도 보는
어설픈 승냥이 같은 나를
어느 누가 낡은 기왓장으로 받아줄까.
누군가가 들어내고 갈아 치워도
아쉬워할 것 없이 허허로워지는 날
나도 낡은 기왓장 같은 친구 하나 찾아보리라.
3.
다시 날아온 마파람에 하늬바람을 보내다
만나면 영일만을 거닐어야겠습니다.
한반도에서 제일 먼저 해가 뜨는 곳이라지요.
호미곶의 해돋이도 보아야겠군요.
먼바다에서 돌아오는 돛단배의 모습도 보렵니다.
모래펄에 내려앉는 기러기의 모습도 보아야지요.
갈산의 해질 무렵에 반사되는 모습이나
용택의 낙조도 보렵니다.
죽림산의 맑고 부드러운 바람을 쐬고
형산강 저녁나절에 비 내리는 모습도 보렵니다.
서쪽 저수지에서 흐르는 봄날의 물빛을 보고
신포에서 낚시도 줄길 수 있겠지요.
여러 해 전
정동진에서의 해돋이는 장관이었습니다.
두고두고 잊을 수 없지요.
호미곶에서의 해돋이는 얼마나 장관일지
마음이 설렙니다.
4.
다시 연풍(軟風)을 보내다
충남 홍성이 저의 고장이랍니다.
그곳이 鐵의 고장이라면
저의 고장은 忠節의 고장이라 하겠네요.
사육신 성삼문의 고장이요
토정 이지함의 고장이요
만해 한용운의 고장이요
백야 김좌진 장군의 고장이기도 하지요.
이웃에는 禮의 고장이라는 예산과
옛날 당나라와의 무역기지라 할 당진이 있고
삼존마애석불로 잘 알려진 서산이 이웃하고 있지요.
남과 동으로는 무창포를 떠올리는 보령과
칠갑산을 떠올리는 청양이 이웃하고 있고요.
간간 여행을 즐기신다니
지나는 길에 기별이나 하소서.
5.
물을 떠도는 사내
그대를 만난 후 하루하루가 즐거운 날입니다.
그대에게 향하는 마음으로 저의 몸은
한참이나 기울어 있습니다.
아니지요.
그대가 저에게 향하는 마음으로 밀려 저의 몸은
한참이나 기울어진 것 같습니다.
항아리가 기울면 물이 흘러내리듯
저의 입가엔 미소마저 흘러내리는 밤입니다.
저 또한 그대를 한참이나 향하고 있음을
숨길 수 없네요.
뿌리는 물줄기를 따라, 꽃은 해를 따라
손짓하고 고개 내미는 법,
그것은 우리를 두고 하는 말이기도 하겠습니다.
물에도 네 가지의 덕이 있다고 하는군요.
인, 의, 지, 용(仁義知勇)이 그것이랍니다.
모든 생물을 씻기고 만물을 흐르게 함이 인이요
맑은 것을 떠오르게 하고 탁한 것을 휘둘러
찌꺼기를 없애는 게 의요
부드러워도 범하기 어렵고
나약하여도 이기기 어려움이 용이요
강을 인도하고 넓히면서 가득 찬 것을 미워하고
겸손하게 흐르는 것은 지라는 것이지요.
물이 곧 도(道)라 하였으니
물을 닮아가는 삶이 필요하다 하겠습니다.
그대를 향하는 저의 마음은
물을 좇는 마음이리라 여겨봅니다.
고등학교 1 학년 때의 일이었군요.
돌아가신 아버님께서
여섯 달 분의 하숙비를 한꺼번에 주시더군요.
그 연유를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때 돼지새끼 한 배를 팔아 목돈이 생기셨던 모양입니다.
다달이 하숙비를 부쳐줄 일이 거추장스러우셨던지
한꺼번에 주고 한참 동안 잊고 싶은 심사이셨겠지요.
여섯 달 동안 자취생활을 하면
그 돈의 반은 남아돌리라는 계산을 하였습니다.
그 반으로 우선 우리말큰사전 한 권을 사고도 남아
하모니카를 샀습니다.
그래도 돈이 남아 손목시계를 하나 샀지요.
여섯 달 동안 자취생활을 하리란 계획은
여섯 달을 더 하고서야
하숙으로의 자리를 다시 찾게 되었습니다.
제가 사전을 사게 된 것은
그대에 대한 사랑의 말을 찾기 위함이었던 것 같습니다.
시계는 아마도 그대와의 약속을 예비하기 위함이요
하모니카는 그대에 대한
사랑의 노래를 부르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수업이 끝나면 으레 하모니카를 들고
뒷동산에 올랐습니다.
그 뒷동산 너머에는 여학생들만 기숙하는
우리 학교의 기숙사가 있었지요.
입이 아프도록 아리랑인가를 불러댄들
아무도 쳐다보는 이 없었지만
지금은 제 노래를 듣는 이 있어 즐거운 밤입니다.
지국총지국총 어사와...
그대가 물을 휘젓는 때문일까요?
비가 내리는 때문일까요?
우거(寓居) 앞의 구곡산(九谷山)은
는개에 젖어 출렁입니다.
별이 숨어버린 남도의 바다
의제 미술관의 산수화에도 는개는 내리겠지요.
하늘과 바다가 청명한 날
운길산(雲吉山)에도 올라야겠습니다.
거기 물을 닮은 구름이 흐르고 있을 테니까요.
육신을 분해해 볼까요?
팔 할 가량이 물이라 하네요.
나머지는 탄수화물이나 단백질, 지방질의 육질과
뼈대로 나뉜다고 하고요.
육질은 수소화합물이니
공기 중의 수소를 떠다 놓은 것에 다름 아닐 테지요.
뼈대는 칼슘덩어리가 아니겠습니까?
혈액 속에 흐르는 물질이야 철분이 대부분이라니
쇠붙이 몇 조각으로 분류되겠네요.
여기 비닐봉지 하나를 준비해 보지요.
그 안에 바닷물 여남은 바가지와 공기 중의 수소 몇 리터,
그리고 조개껍질 한 무더기와 쇠붙이 몇 개를 담아
허공에 매달아 볼까요?
이게 우리 육신이 아닐는지요.
우리는 물의 본향인 바다를 망각하고
한갓 비닐봉지에 갇힌 채 나라고 고집하나 봅니다.
이것을 탁 터뜨리면 어찌 될까요?
물은 바다로 돌아가고
수소나 탄소, 산소는 공기 중에 흩어지고
조개껍질이나 쇠붙이는 땅 속으로 흩어지겠지요.
그러노라면 물은 바다에서 나뉨 없이 출렁일 테고
수소나 탄소, 산소는 공기 중에서 나뉨 없이 흐를 터요
칼슘이나 철분도 땅 속에서 나뉨 없이 엉길 테지요.
내 몸이 바닷물의 일부가 되어 물속에 여여하고
내 몸이 공기 중의 일부가 되어 허공에 여여하고
내 몸이 땅 속 광물질의 일부가 되어 흙 속에 여여하면
진정 자유는 거기서 오는 것일 텐데
이게 막힘없는 자유자재의 경지가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육탈을 하지 않는 한 속박은 여전하려니
마음만이라도 흐르는 물을 바라보아야겠습니다.
마음의 창공에 갈매기가 훨훨 나는군요.
잠수교를 건너리라는 그님이야
지금쯤 그렇게 건너고 있겠지만
내린천을 이야기하던 그님은
어디를 흘러가고 있는 것인지,
서해대교를 건너리라는 그님이야
지금쯤 그렇게 건너고 있겠지만
불영계곡의 불영 담을 좋아한다던 그님은
또 어디를 들여다보고 있는 것인지,
화양구곡을 찾아 들리라는 그님은
그렇게 찾아가고 있겠지만
다도해의 어느 하늘 아래
물 위를 미끄러지리라는 그님은
지금쯤 그렇게 미끄러지고 있는지~
추적추적 비가 오는 날이면 배만 헛헛한 게 아니니
그저 발이 저리면 기별이나 하소서.
*사진은 동작동 현충지에 내려앉은 해오라기다
첫댓글 굳모닝
인연중에 최고의 인연은 아름다운5060카페와 인연입니다
벌써 8년이 되가네요 개근상을 탈 정도로 꾸준히 신나게 즐겁게 행복하게 활동함니다
그동안 수많은 회원들을 만나고 헤어지고 사라지고 저세상으로 갔습니다
이제 모든것 내려놓고 마음비우고 외로운 70대 중년남자1명
카페가 유일한 편안한 쉼터 휴식처 안식처 입니다 끝까지 마지막까지 최후까지 함께 함니다 하하하
평화로운 주말 되세요
아침부터 화창합니다.
화이팅~
세월에 빛바랜 낡은 기왓장이 되고픈 심정으로
좋은글 맘속 담고 갑니다..
그런심정이라면 불심이지요.
좋은 하루~
부서질 것 같지만 단단한 기왓장,
빠져나갈 것 같지만 꽉 잡고있는 기왓장,
화려하진 않지만 예술이 들어있는 기왓장
멀리서 보면 스스로 겸손한 기분이 들게 만드는 기왓장.
이런 오래된 기왓장 같은 친구가 한사람이라도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좋은 말씀이네요.
산애님이 이르기를
그런사람 찾기보다 그런사람이 되어야한다고 했는데
그런사람 되기도 얻기도 어렵지요.
하루하루를 즐겁게 살아 가렵니다
감사합니다
그것밖에 더 노릴게 없지요.
어제부터 여행중이어서
어제는 인사도 드리지 못 했습니다.
인생이 여행인데 또 무얼 찾으려 하느냐 하셔도
딱히 대답이 떠 오르지를 않네요. 그저 길 떠나는 가을에게 손이나 흔들어 주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