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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익 선생 전화를 받았습니다.
전화를 받고 3일 내로 영광의 시대 릴레이 글을 올려야 된답니다.
아직 총각인 대익이는 잘 모르겠지만,
애 둘 딸린 아빠의 삶은 생각 이상으로 바쁩니다.
미안합니다.
오늘에서야 쓰게 되었습니다.
대신 정말 열심히 썼습니다. 흠흠;
얼마 전, MBC 무한도전 예능 프로그램에서 방영 된 '토요일 토욜은 가수다'
90년대 전성기 시절을 보냈던 가수들이 다시 한 자리에 모여 그 때를 추억했습니다.
백투더나인티s
90년대 가수들에게도 영광의 시대가 있었듯이
정보원 동문들에게도 찬란했던 시대가 있었을 겁니다.
복지순례에서 만난 누나,
백두대간에서 만난 형,
시골 팀에서 만난 동생,
실무 합숙에 만난 친구,
캠프에서 만난 많은 친구들
열정과 젊음을 보냈던 시절,
지금은 SES 슈 처럼 아이 엄마, 아빠로 살고 있겠지요?
그 때 그 친구들 다시 만나는 자리, '사회복지정보원 총동문회'
동문회에서 만나 그 때 그 기억을 나누어요.
오래오래 기억해요.
망설이지 말고 지금 바로 신청해세요.
1544-XXXX
우리 동문회 때 만나! ♪ 당장 만나!♬
영광의 시대 Ⅰ: 정수현의 무개념 시대
2005년 3월, 대구 달구벌복지관에 계약직으로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 이문희 선생님(3차순례?, 실무합숙)이 계셨습니다.
입사 한 달 정도가 지났을 때
이문희 선생님이 제게 1장의 편지와 함께 직원 학습 모임을 제안했습니다.
꿈지락
꿈: 사람은 꿈을 꾸어야 합니다. 어쩌고 저쩌고
지: 지혜로워야 합니다.
락: 즐거워야 합니다.
선생님 제안에 '하겠다'고 답했습니다.
학습을 하고 싶어서라기 보다는 선임의 말을 거부할 수 없어서?
그 때만해도 개념이라는 녀석은 어디다 버려두고 살아갈 때였죠.
입사 첫 날에 초록색 힙합 바지를 입고 출근했으니까요.
이런 힙합 바지가 녹색이라면?
그렇게 시작한 학습이 바로 '복지요결'이었습니다.
복지요결을 읽으며 뒤 통수를 세게 맞은 기분이었습니다.
국어 사전 두께의 복지요결에 나오는 여러 선생님의 사례를 읽으며
김세진, 박시현, 김동찬, 김진원, 나찬호라는 사람이 궁금했습니다.
2005년 8월, 공부를 더 하고 싶어서 편입학을 했습니다.
계약이 끝날 때쯤 부서 팀장님께서 제게 이력서 몇 장만 달라고 하셨습니다.
계속 일하면서 공부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는 뜻이었죠.
당시 팀장님 아버지께서 다른 복지관 관장님이셨기에 충분히 가능했을 겁니다.
팀장님께서 생각해 주시는 마음 감사했지만 공부를 더 하고 싶다며 사양했습니다.
어쩌면 공부를 더 하고 싶은 마음보다
학생 신분으로 정보원 활동을 해보고 싶었다는 표현이 맞겠습니다.
달구벌복지관, 이문희 선생님은 제 복지 인생의 전환점이 된 소중한 곳입니다.
달구벌복지관 사회재활팀
영광의 시대 Ⅱ: 정수현의 개념이 생길똥말똥 시대
다시 대학생 신분으로 돌아왔습니다.
정보원 활동을 통해 배우고 싶었던 마음이 컸는데,
첫 번째 기회(8차 순례)는 복지관 계약 기간과 저의 미흡함을 생각하여 포기했습니다.
두 번째 기회, 2006년 4월 11차 캠프 LT(전북대였던 걸로..) 입니다.
헉.. 그런데 LT는 리더십 트레이닝의 약자!
즉, 대학의 동아리 리더들이 모이는 자리였습니다.
편입해서 친구도 없는 사람한테 동아리라니..
하늘이 무너지는 듯 했죠. 한 선생님이 원망(?) 스러웠습니다.
편입생에게는 동아리 가입 기회도 거의 없었습니다.
이렇게 기회를 또 날려보내나 하던 차에,
문희 쌤에게 전화했습니다.
나: 쌤 어쩌죠? 이번 캠프는 동아리 학생 중심의 캠프라네요..ㅠㅠ
문희: 그럼 네가 동아리(학습모임) 하나 만들면 되잖아! 뭘 어렵게 생각해?
나: 아... 그렇게 해도 되는 거예요?(몹시 당황ㅎㅎㅎ;)
문희: 소모임 하나 만들어서 이름 걸고 가
나: 네^^
이렇게 11차 캠프 1차 LT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친구도 없고, 동아리도 없던 저는 혼자 전북대를 갔습니다.
거기서 만난 경북대 두잉, 원한이 전북대 참깨 석이.
전북대 1차 LT를 마치고 학교로 돌아와 함께 할 사람을 찾았습니다.
실습 때 만난 보라(대구대 04학번, 섬활4기)에게 학습모임을 제안했고,
보라가 함께 공부할 여러 친구들을 데려 왔습니다. (보라의 인간 관계는 끝판 대장)
그렇게 시작한 것이 대구대학교 사회복지 전공소모임 '네비' 입니다.
두잉이나 다른 학교 소모임처럼 역사도 근본도 없이 급조(?)한 대구대 학습모임 네비,
결성한지 1~2달 만에 11차 캠프(광주대 본 캠프)에 참여합니다.
엉성했지만 부스도 꾸미고 열심히 즐기고 누렸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어떻게 가능했지?(응?)
대단해요~ 대단해!
지금도 기억 나요.
김상진 선생님이 캠프에 참여한 학생들에게 제안했던
'내 손으로 만드는 마스터클래스'
그 강의를 듣고 청소년 복지 순례를 함께 할 사람을 모집했고,
약 9명 정도의 학생들과 1주일 간 청소년 복지 단기 순례를 떠났습니다.
청소년 복지 단기순례팀
그리고 그 해 여름, 섬사회사업팀 4기 활동을 위해 생일도에 '입성'합니다.
섬활4기 눈사람, 생일도 입도 하던 날 / 활동이 끝나고 생일도를 떠나던 날
생일도에서 두 달이 마치 꿈만 같아요.
저는 생일도 청소년과 활동했습니다.
사진을 다시 꺼내어 보니, 그 때 기억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응? 한 선생님은 터미네이터? 농활1기 생일도 들어온 날 / 생일도 청소년들과 생일도 도보 여행
그 때 만난 4기 친구들은 카톡 단톡방이 있습니다.
내년에는 10주년 모임 해야지요.
영광의 시대 Ⅲ: 사회사업 공부의 즐거움을 깨달아가던 시대
섬활이 끝나고 3학년 2학기 때는 오로지 네비 모임에 집중했습니다.
현장 찾아 삼만리, 학습여행, 삶 나눔, 책 나눔, 도시락 나눔
매 주 1회 네비 모임을 함께 했습니다.
네비 학생들과 가까운 경북대, 계명대 학생들이 서로 교제하고 공부했어요.
편입생인 제게 좋은 동료를 얻게 되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2007년 대구지역 고전읽기 모임, '10년 뒤 오늘을 기억하자' 문구가 벌써..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또한 어떤 분야에서 사회사업하면 좋을지 막막했습니다.
그래서 4학년을 맞게 되는 겨울 방학, '네비 복지순례'를 기획했습니다.
사과대 곳곳에 홍보지를 붙이고 함께 할 동료를 찾았습니다.
복지현장 고수 찾기
엘리트 기관 찾기
네비 복지순례단 서울 입성, 한선생님이 후원금도 주셨어요. / 오창식 최윤진 동문이 서울역 마중도 나왔죠.
'지역복지 엘리트 기관, 방아골'
3주간 자기 비용, 시간을 내어 서울 대구 부산 경기 전북 전국 곳곳을 누볐습니다.
좋은 선배님들을 만났고, 배움이 컸습니다.
무엇보다 기획 과정부터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준비하고 진행했던 것이
저와 네비 학생들에게 잊지못할 추억과 경험을 얻게 해주었습니다.
영광의 시대 Ⅳ: 배움의 깊이, 근본을 좇아 가려했던 시대
그리고 4학년 2학기 졸업을 앞두고 결정한 10차 복지순례
한덕연 선생님 가까이에서 배우고 싶었습니다.
선생님의 품성, 언어, 작은 것 하나도 가까이에서 배우고 싶었습니다.
10차 복지순례 일정표
10차 순례 자유여행, 저는 4일간 남도 자유여행을 했습니다.
10차 순례는 제게 '기록'이라는 큰 깨닳음을 주었습니다.
또한 10차 순례를 통해 '재가복지사업'을 해야겠다는 확신을 얻게 되었습니다.
10차 복지 순례를 다녀와 제 손으로 처음 만든 책자를 만들었습니다.
그것이 저의 사회사업 기록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영광의 시대 Ⅴ: 사회사업 실천 현장에 다시 발을 내 딛은 시대, 초심으로 돌아가자.
2007년 10월, 서울에 복지관 지역사회보호팀 재가복지 담당자로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입사 2일 째 되던 날부터 블로그에 사회사업 실천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습니다.
지역사회복지관 신입 사회복지사로 입사하여
주민을 만나며 인사하고 묻고 의논하고 부탁하고 감사했던 기록을 남겼습니다.
기관에 복지요결에 대해 아는 사람 하나 없었고,
복지요결 방식을 이야기할 때 이상주의자로 치부했던 조직이었습니다.
직원들에게 학습을 하자고 제안해도 반응이 없었습니다.
그 속에서 나름의 생각과 가치를 지키고자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하수 중에 하수가 실천하는 수준이었지만, 어쨌든 바르게 실천하려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제 기록에 반응해 주시는 분들이 늘기 시작했습니다.
블로그에, 정보원 카페에서 공감해 주시고 댓글로 의견 주시는 분들로 인해
사회사업 실천 기록의 즐거움을 찾게 되었고,
힘들어도 버틸 수 있는 힘이 되었습니다.
서울 복지관을 퇴사할 때 3년 2개월 간 실천했던 기록을 책으로 묶어
관장님을 비롯한 모든 직원에게 한 권씩 드리고 퇴사했습니다.
퇴사할 때도 그 동안 관계했던 당사자, 지역 주민들께 감사 인사 드렸습니다.
제 후임으로 오는 분에게는 저 보다 더 예뻐해 주시길 당부 드렸습니다.
사회사업, 인사로 시작해서 감사로 마쳤습니다.
영광의 시대 Ⅵ: 사회사업가 정수현에게 날개를 달아 준 시대
서울 복지관에서 실천한 기록을 모아 김세진 선생님께서 책으로 엮어 주셨습니다.
'사회사업, 인사가 절반입니다.'
어깨가 으쓱해지고 기분이 좋았습니다.
한편으로는 부끄럽기도 했지만 더 열심히 의미를 찾아 실천하고 기록하고 싶어졌습니다.
서울 복지관을 그만두면서 지역으로 내려 오려고 했습니다.
기회가 되면 내려오기 전에 숭의복지관 최장열 관장님 밑에서 꼭 한 번 일해보고 싶었습니다.
기회가 찾아 왔습니다.
숭의복지관에서 직원을 채용했습니다.
결혼을 보름 앞두고 주저하지 않고 입사 지원서를 썼고
숭의복지관 인사위원님들께서 기회를 주셨습니다.
신현환 선생님과 함께 입사했습니다.
짧았지만 숭의에서 2년 3개월, 참 의미있게 실천했습니다.
최장열 선배님께서는 하고 싶은 사회사업,
마음 껏 펼쳐 보라며 적극 도와주셨습니다.
여러 교육의 기회와 사례 발표 할 수 있게 배려해 주셨습니다.
여러 사람 앞에서 처음으로 발표한 자리가 바로 꽃동네대학교에서 진행한 12차(?) 캠프입니다.
김세진 선생님, 권태용 선생님, 김기철 선생님, 문미숙 선생님, 원혜진 선생님, 화현이, 대익이.
'복지현장 희망이야기' 희망의 실천가들을 만나고 함께 했던 경험이 귀한 경험이었습니다.
희망의 실천가 사회사업캠프 에프터 모임, 사진 : 권태용 선생님
숭의복지관에서 짧은 기간동안 크게 성장했습니다.
숭의복지관 사례관리 팀 직원들과 두 권의 사례집(지역보호, 사례관리)도 만들었습니다.
숭의에서 사회사업 하는 것이 즐거웠습니다.
신현환 선생님과 좋은 동료들 만나 마음 껏 실천할 수 있었던 시간이 꿈만 같습니다.
영광의 시대 Ⅶ: 지금도 영광의 시대
숭의복지관 입사할 때 다짐한 것이 있습니다.
만약 내가 숭의를 떠나게 된다면 더욱 낮은 곳으로 가겠다.
그곳이 농촌이면 좋겠다.
결혼하고 2년을 주말 부부로 지냈습니다.
첫째가 태어나고 6개월을 따로 살았습니다.
그래도 숭의가 좋아서 계속 일하고 싶었습니다.
아내가 전북 지역 자리가 날 때마다 얘기했는데
한 번도 원서는 커녕 홈페이지 공고도 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김제사회복지관의 '남다른' 채용 공고를 보고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채용 공고에 4가지 조건이 있었습니다.
1. 남다른 생각과 가치로 사회사업 실천하려 힘쓰는 자
2. 자기 성장을 위해 끊임없이 학습하고 발전하려 힘쓰는 자
3. 기독교 정신을 이해하고 실천 할 수 있는 자
4. ?
이런 기관이라면 도전해 볼 만 하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김제에서 즐겁게 사회사업 하고 있습니다.
월급도 많이 받는 제도권 복지관에 근무하기에 낮은 곳이라 표현하기 부끄럽지만,
기회가 되면 농촌 지역 더 깊숙히 들어가 실천하고 싶습니다.
정보원을 만남이 영광이었고,
정보원 활동이 영광의 시대를 만들어 주었고,
지금도 정보원의 방식을 현장에서 실천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니, 굳이 정보원 방식이라 할 것도 없이
사람을 사람답게, 사회를 사회답게 돕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두 아이 아빠가 되어 가정과 일터에 충실히 살고 있습니다.
동문회에서 만납시다.
ps. 다음 릴레이는 제게 복지요결을 소개해 주신 달구벌복지관 이문희 선생님과 사랑하는 신현환 선생님께 전화로 요청하겠습니다. 두 분 모두 애 딸린 아빠이므로, 넉넉하게 7일 드리겠습니다.
첫댓글 우와 역시 정수현 선생님!
감동과 재미. 한 권의 책을 읽은 듯해요.
10년의 이야기를 이렇게 잘 함축하다니.. 쓰고도 놀랍네요.ㅎㅎ
자랑스런 저희 직속상관 정수현 과장님입니다
아침에 사무실 출근해서 부랴부랴 썼어요. 다시 읽어보니 오타 투성, 엉망진창이네요.^^ 상빈이와 함께 일할 수 있음이 제게도 복입니다. 자랑스럽습니다.
한편의 아름다운 수필을 보는거 같아요. 정수현 선생님.^^
선생님 덕분에 저와 꿈디 동료는 배우고 성장하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이름만 들었던 정수현 선생님, 섬활21기 최드보라입니다. 섬활 선배님이셨군요! 지금 제가 만나는 멋진 선생님들께서 젊은 날을 함께해온 동료라는 것이 확 다가와요~ 저도 멋진 대학생활 하고 싶어집니다. 고맙습니다
영광의 시대 릴레이를 제안하며 간과한 것이 있었습니다.
저를 비롯한 동문들이 '운이 좋아서' 혹은 '때가 맞아서' 영광의 시대를 맞은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정수현 선생님의 7부작을 읽으니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영광의 시대를 '손수 만들었구나' 싶습니다.
정보원 동문들 모두 적극적으로 영광의 시대에 기여한 사람들이었네요.
무개념시대부터 알고 지낸 사람이지만 7부작을 모두 보고 나니 정수현 선생님이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고마워요, 재미있는 글을 남겨주셔서. 그리고 이 글답게 살아주셔서 참으로 고맙습니다.
우와~
생각해보니 선생님의 학창시절을 자세히 들은 적이 없었어요. 놀라워요. 재밌게 잘 읽었어요.
늘푸른에서 공익근무요원으로 일할 때 강서구실무자모임에서 처음 만났지요. 그 때의 책모임 경험이 지금 서울책사넷 진행하는 큰 힘이 되고 있어요.
숭의에서의 실천, 지금까지 이어지는 뜻있게 사회사업하기, 좋은 선배로 남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선배님 따라 이 길 잘 걸어갈게요. ^^
멋지다~ 역시 정수현!!
정수현선생님에 대해 더 가까워질 수 있어 좋았습니다.
귀한 이야기 감사해요~ 응원합니다^^
그나저나 우리 안동 다시 모임해야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