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이제 사회 선진화 고민할 때
전성기 맞은 한국, 선진국들과 어깨 나란히
고령화, 성장률 저하로 발전 속도는 더뎌져
고용, 복지, 금융 등 발전의 여지 남아 있어
다가오는 총선, 사회 선진화 길 모색하자
해외 근무를 희망하는 직원이 줄어서 기업들이 주재원 파견에 애를 먹고 있다고 한다. 선진국이나 영어권 국가도 예외가 아니다. 예전에는 선진국에 대한 동경, 아이들 교육, 경제적 이득, 해외 생활에 대한 호기심 등등의 이유로 주재원 인기가 높았다. 그러나 해외여행도, 영어 연수도 쉽게 할 수 있는 요즘에는 한국에 있는 것이 아이들 교육을 위해서도 가장 좋은 선택이라고 한다. 한국이 그만큼 잘사는 나라가 되었다.
두 달 전 오랜만에 도쿄 중심가 백화점에 갔다가 깜짝 놀란 일이 있다. 백화점 여기저기에 한국 연예인이나 스포츠 선수의 대형 화보가 있었기 때문이다. 국내외 유명 브랜드의 모델들이었다. ‘겨울연가’ 이후로 많은 한국 연예인이 일본에서 인기를 누렸지만, 지금처럼 일본 최고 백화점에 대여섯 이상의 한국인 모델 사진이 한꺼번에 걸린 적은 없었다. 아마 도쿄뿐만이 아닐 것이다. 지금 우리는 대한민국의 전성기를 살고 있다.
전성기는 경제 데이터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2022년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구매력 기준으로 4만5600달러였다. 영국, 프랑스보다 조금 낮고, 뉴질랜드, 이탈리아, 일본보다 조금 높다. 한국은 이제 과거에 선망하던 나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선진국이 되었다.
이 전성기는 언제까지 갈 수 있을까? 아니, 아직 전성기가 오지 않은 것은 아닐까? 한국의 1인당 GDP가 전 세계 1, 2위를 다투는 날도 오지 않을까? 미래를 알 수는 없지만 아마 어려울 것이다. 2000∼2012년 한국의 1인당 GDP 증가율은 연평균 3.8%였다. 2012∼2022년에는 2.3%로 내려갔다. 한국의 고령화와 잠재성장률 저하를 고려하면 앞으로는 2%를 하회할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금방 1% 정도까지 내려갈 수도 있다. 서유럽과 일본이 한국보다 훨씬 더 전에 겪었던 일이다. 반면, 같은 기간 베트남의 성장률은 5.3%와 5.0%였다. 과거 한국의 모습이다.
한국이 일본과 유럽을 추격해서 그들과 같은 수준의 구매력을 가지게 되었듯이 앞으로는 말레이시아, 베트남 등이 한국과의 격차를 줄여 나갈 것이다. 한국은 이제 거북이처럼 천천히 걷겠지만 그들은 토끼처럼 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한국 경제는 피크에 서 있다.
그러나 피크에 서 있다고 해서 앞으로 내려갈 일만 남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서유럽과 일본은 GDP 성장률이 낮아진 이후에도 선진국으로는 여전히 진화했다. 성장률을 비교적 꾸준히 유지하면서, 산업 재해와 노동 시간을 줄이고, 모성을 보호해 여성의 경력 단절을 막고 출생률을 반등시켰다.
최근 한국에서 전세 사기로 많은 사람이 큰 피해를 입었다. 집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집값이 폭락할까 봐, 집이 없는 사람은 집값이 폭등할까 봐 두려워한다. 새 아파트에 입주하면, 그 비싼 분양가에도 불구하고 하자투성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부동산 세제가 널뛰기를 하니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알 수가 없다. 집이 주거의 대상이 아니라 투자와 투기의 대상인 나라에서 사람들은 너나없이 집 때문에 너무나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
주식에 투자한 사람들은 주가 조작이나 불법적인 공매도로 고통을 받았다. 머지않아 전 세계에서 가장 고령화된 사회가 될 터인데, 아직도 휠체어를 탄 사람은 대중교통을 이용하기가 어렵고 택시 잡기는 더더욱 어렵다. 청년 고용 시장이 여전히 어렵기 때문에 정년 연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적극적으로 추진하기가 어렵다.
경제성장률은 낮더라도 이런 점들을 하나둘씩 개선해 나가면 한국은 지금보다 훨씬 더 살기 좋은 나라가 될 것이다. 4월에 있을 총선까지는 어떻게 해야 더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 것인가 하는 논의를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여야 할 것 없이 패권 다툼과 선동 정치에 몰두하다 보니 그런 논의를 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서다. 그러나 그 후 대선까지 3년의 기간이 있다. 그때는 정치권도 한국 사회를 선진화하는 방안을 가지고 경쟁했으면 한다. 그래야 해결책이 구체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겨우 정점에 왔는데 여기서 금방 내려가는 건 너무 억울하다. 더 올라가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더 좋아질 수 있다.
박상준 객원논설위원·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