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고 있던 옷 벗겨져 날아가”… 비행중 벽 한쪽 뻥 뚫린 보잉機
美국내선 긴급 회항… ‘공포의 20분’
벽으로 개조한 비상문 ‘펑’하며 뜯겨
“구멍 보며 ‘이렇게 죽는구나’ 싶어”… 승객들 가족-친구에 ‘사랑한다’ 문자
177명 전원 무사… 당국, 조사단 급파
항공사에 납품하며 비상구를 벽으로 개조한 부분이 5일(현지 시간) 뜯겨 나가는 사고가 발생한 알래스카항공 1282편의 외관. X(옛 트위터) 캡처
“비행기 벽이 뻥 뚫린 걸 보자마자 ‘아, 이렇게 죽는구나’ 싶었죠.”
주말을 앞둔 5일 금요일 저녁(현지 시간).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에서 캘리포니아주 온타리오로 가는 비행기에 타고 있던 비 응우옌 씨(22)는 좌석에 앉자마자부터 살짝 졸고 있었다. 이륙한 지 5분쯤 지났을까. 갑작스러운 굉음에 눈을 뜬 그 앞에는 산소마스크가 내려와 펄럭거렸다. 놀라 옆을 보니 여객기 벽 한쪽이 뜯긴 듯 뚫려 있었다. 그는 뉴욕타임스(NYT)에 “구멍 너머 검은 밤하늘을 보며 죽음이 다가왔음을 절감했다”고 했다.
연초 일본 하네다공항 비행기 충돌 사고에 이어 미국에서도 대형 비행기 참사가 벌어질 뻔했다. 날아가던 여객기 기체가 부서지며 20여 분 동안 ‘죽음의 운항’이 이어져 승무원과 승객 177명이 공포에 떨어야 했다. 다행히 비상 착륙해 인명 피해는 비켜 갔으나 규제 당국은 기체 결함 등을 의심하며 정밀 조사에 나섰다.
● “운항 중 벽으로 개조한 비상문 뜯겨 나가”
5일(현지 시간) 미 오리건주 포틀랜드 국제공항에 출발 20분 만에 회항해 비상 착륙한 알래스카항공 1282편의 벽 한 칸이 뜯겨 나간 모습이다. 좌석마다 비상용 산소마스크가 내려와 있다. X(옛 트위터) 캡처
CNN에 따르면 5일 오후 5시 7분경 포틀랜드공항을 떠난 알래스카항공 1282편은 출발 6분 만에 회항을 결정해 오후 5시 27분경 다시 출발지로 돌아갔다.
사고는 현재는 사용하지 않아 벽으로 개조한 비상구가 뜯겨 나가며 벌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비행기는 시속 440마일(약 708km)로 1만6000피트(4876m) 상공을 날고 있었다. 다행히 구멍이 난 해당 벽면 바로 옆 좌석엔 승객이 없었다. 그러나 구멍으로 공기가 쉭쉭 소리를 내며 빠져나갔고, 그 바람에 근처에 있던 10대 소년이 입고 있던 셔츠가 통째로 벗겨져 밖으로 빨려 나갔다. 승객 스테퍼니 킹 씨는 “소년의 엄마가 ‘우리 아이 옷이 찢어졌다’고 비명을 질러 승무원들이 즉시 다른 자리로 옮겨줬다”고 CNN에 전했다. 기내 압력이 급격히 떨어지자 기내에선 헐떡이는 소리도 들렸다.
갑작스러운 소란이 승무원들의 노력으로 잦아들자 기내엔 ‘절망의 적막’이 찾아왔다. 킹 씨도 “나 역시 죽겠구나 싶어 남자친구와 엄마에게 ‘사랑한다’는 메시지를 보냈다”며 “비행기가 착륙한 뒤에도 한동안 으스스할 정도로 조용했다”고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아기 울음소리만 들려오던 기내에서 승객들은 “잠시 자리에서 기다려 달라”는 기장의 착륙 안내 방송이 나오자 그제야 긴장을 풀었다. 승객들은 눈물을 터뜨리며 환호했다. 알래스카항공 측은 6일 “승객 171명과 승무원 6명 등은 모두 무사하다. 일부 (가벼운) 부상을 입었으나 모두 귀가했다”라고 밝혔다.
● 같은 기종 잇단 사고… 탑승 기피 움직임도
국가교통안전위원회(NTSB)는 포틀랜드에 진상조사단을 파견했다. 또 미 연방항공청(FAA)은 다음 날인 6일 사고 기종인 보잉 737 맥스9의 운항을 전면 중단시키고 즉각 점검을 명령했다. 현재 미 항공사가 보유했거나 미국 내에서 운항하는 해당 기종은 171대인 것으로 파악됐다. 일부는 점검을 마치고 다시 운항에 투입됐다. 보잉은 “FAA의 결정에 전적으로 따르겠다. 조사를 위해 규제 당국, 고객사와 협조하고 있다”고 밝혔다.
해당 기종은 크기가 작은 순서대로 7, 8, 9, 10으로 구성된 737 맥스의 하위 기종으로 2017년 출시됐다. 항공정보사이트 플라이트어웨어에 따르면 알래스카항공 1282편은 지난해 11월 처음 운항해 지금까지 145차례 비행했다.
737 맥스의 다른 하위 기종 맥스8은 2018년 인도네시아와 2019년 에티오피아에서 두 차례나 추락해 탑승자 전원이 숨지는 참사를 겪었다. 출시 2년도 안 된 맥스8에서 사고가 잇따르자 안전시스템 결함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번 사고로 737 맥스 기종에 대한 불신이 커지며 ‘탑승 기피 운동’도 벌어졌다. 소셜미디어에선 해당 기종을 보유한 항공사 명단이 공개됐으며, 예약번호로 기종을 확인하는 법도 공유되고 있다.
이지윤 기자
사고 기종 전세계 215대… 각국, 운항 일시중단-긴급점검
국내 항공사 ‘맥스9’ 도입 안해
정부, 이전 기종 ‘맥스8’ 점검 지시
미국에서 비행 중이던 보잉 737 맥스9 항공기 동체에 구멍이 뚫려 비상 착륙하는 사고가 나자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 튀르키예 등이 해당 기종 운항을 일시 중단하고 긴급 점검에 나섰다. 국내 항공사들은 맥스9을 도입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국토교통부는 이전 세대 기종인 맥스8에 대해 긴급 안전 점검 지시를 내렸다.
7일(현지 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튀르키예 국적 항공사인 터키항공은 자사가 운영하는 맥스9 항공기 5대를 점검하기 위해 운항을 일시 중단한다고 밝혔다. 유럽연합항공안전청(EASA)도 미국과 마찬가지로 맥스9 기종 검사 명령을 내리기로 했다.
항공 정보업체 시리움은 전 세계에서 운항 중인 맥스9 항공기가 모두 215대라고 집계했다. 유나이티드항공이 가장 많은 79대를 운영 중이고, 이번에 비상 착륙한 항공기가 소속된 알래스카항공이 65대를 보유했다. 이 외에 파나마의 코파항공, 아에로멕시코, 터키항공, 플라이두바이, 아이슬란드항공 등이 운항 중인 것으로 조사됐다.
국내 항공사는 맥스9을 도입한 곳이 없다. 하지만 맥스8 기종은 ‘737-8’이라는 명칭으로 대한항공이 5대, 이스타항공 4대, 제주항공 2대, 티웨이항공 2대, 진에어 1대 등 총 14대를 운영하고 있다. 맥스8의 경우 2018년 인도네시아 추락 사고, 2019년 에티오피아 추락 사고를 일으켜 20개월간 운항이 중지되기도 했다. 다만 기체 개선을 통해 2020년 11월 운항을 재개했다.
국토부는 7일 국내 항공사들에 공문을 보내 맥스8 항공기 도어 장착 상태와 작동 시스템, 도어 밀봉 여부 등을 긴급 점검하라고 지시했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맥스8 기종은 예전 사고 이후 자동차로 치면 ‘풀 체인지’급 업데이트가 이뤄졌으며 현재까지 문제 없이 운항되고 있다”고 말했다.
곽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