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극복되어야 할 그 무엇이다! –프리드리히 니체-
불변하는 자아는 없으며 만나는 외부에 의해서 그 본질은 변한다.
주체가 자신을 넘어서는 것은 타자와의 만남을 통해서이다.
여기서 타자란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인식과 의지를 변화시켜 나의 한계를 극복시켜주는 스승같은 존재를 말한다.
우리는 스승을 통해 변화 발전하지만 종국에는 스승마져 부정할 수 있을 때 참된 주체로 우뚝 설 수 있을 것이다.
싯다르타가 마자막에 한 말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아니었던가.
외부와의 마주침을 통해서 얻은 새로운 성장의 의미를 다시 자신의 삶속에서 창조적으로 체화시킬 수 있는 것은 인간이 자유로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영화 ‘위플래쉬’는 영화 제목처럼 혹독한 훈육을 통하여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는 재즈 드러머에 관한 이야기이다. (위플래쉬의 뜻은 채찍질이다. 영화에서 노래 제목이기도 하다.)
미국 최고의 음악학교 세이퍼에서 주인공 앤드류는 첫 눈에 최고의 지휘자 플래처에게 발탁되어 그의 밴드에 들어가게 된다. 앤드류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발견한 플래처는 격려와 지지대신 폭언과 학대를 통하여 앤드류의 최고가 되고 싶은 욕망을 자극한다.
서편제에서 예술적 한을 품게 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자신의 딸을 장님으로 만들어 버린 것처럼 스승 플래처는 앤드류의 영혼을 처참하게 파괴시킨다.
박자연습을 하는데 앤드류는 최선을 다해 연주하는데 서두르거나 질질끈다고 다그치면서 앤드류를 극도의 혼란에 빠뜨린다. 나는 이것을 보면서 베이트슨의 이중구속을 떠올렸는데 앤드류가 어떻게 하든 무슨 대답을 하든 플래처는 틀렸다고 계속 따귀를 때린다.
메인 드러머 자리를 놓고 가장 밑바닥의 거친 욕설을 뿜어내며 무한 경쟁시키는 장면에서는 피눈물도 없는 악마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그의 표정연기와 카메라 앵글은 압권이다!!)
앤드류는 그러한 처참한 자기부정의 과정을 겪으며 여자친구 니콜과의 달콤한 연애도 종지부를 찍고 미친듯이 드럼 연습에만 몰두하게 된다.
교육(education)의 어원이 경작(educate)에 있듯이 내면에 있는 잠재성을 극대화할 때 자신의 본성은 최상을 향해 변화 발전해 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플래처와 같은 교육방식이 교육 일반으로 확장시켰을 때 교육공학적으로 적합한 것인지, 교육철학적으로 의미있는 것인지는 대해서는 나는 동의하기 어렵다.
플래처는 ‘그만하면 잘했어!’(Good job!)이 이 세상에서 가장 쓸데없는 말이라고 비하했지만 때론 그런 격려도 필요할 때가 있다.
진정한 자존심은 당당함이지 결과에 대한 집착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교육 철학을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감독은 ‘위플래쉬’를 통하여 재즈 음악의 가슴 벅찬 아름다움과 최고의 뮤지션이 되기 위한 처절하고 냉혹한 현실, 그리고 진정한 최고의 자리는 자기 세계를 열어 나가는 모습에서 얻어질 수 있다는 감동을 보여주고 싶어한다.
영화의 라스트 신은 그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카네기 홀에서 자신을 곤경에 빠뜨린 스승 플래처에게 환멸을 느끼며 드럼을 치다말고 자리를 박차고 나온 앤드류는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미친 듯이 격정적으로 ‘카바나’곡을 연주하는데... 그 모습에서 칸트가 말한 숭고미까지 느껴진다.
결국 앤드류는 스승 플래처를 부정함으로서 비로소 플래처와 공감을 하고 자신의 템포로 밴드 전체를 리드한다.
엔딩 크레딧이 오르며 감동적인 연주는 계속되는데, 내 마음 속 엔딩 크레딧은 끝나지 않는다.
첫댓글 감사~ 한번 찾아서 볼께요 ㅎㅎ
이 영화를 보고나선 조금 우울해 졌습니다. 우울이라는 단어가 적절한 표현일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침묵하고 싶어지더군요.
애써 참고 억눌러왔던 무언가가 고개를 들면서 현실을 부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를 얽어매고 있는 것들로부터 벗어나고픈 욕망에 다시금 사로잡혀 힘이 들었습니다.
침묵하고, 산책하고, 사색하며 그럴듯한 책을 읽습니다.
"---
이러한 나의 진면목을 알았다면
'분명한 기쁨'이 일지 않는가?
그리고 '불행에 이르는 도식'을 그려 온
기계적인 조건반사 기능을 잡아낸다면
그것은 더욱 위대한 발견이고
드디어 자신에 대해 대청소하는 개운함에 이른 자는 복되다!
---"
저는 진정코 그 개운함에 이르고 싶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다시금 저를 눌러 앉혀 안개 속에 가둘 것입니다. 그러니 이런 종류의 채찍질은 계속해서 필요할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