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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불기 2565년 부처님 오신 날입니다. 스님은 봉축 법요식이 열리는 문경 수련원에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치고 봉축 법요식 준비 상황을 점검한 후 오전 9시 40분에 대웅전에 자리했습니다. 대웅전 앞마당에는 아침 햇살을 받은 연등이 봄바람에 나부꼈습니다.
뇌정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는 문경 수련원은 정토행자들의 마음의 고향입니다. 드론으로 촬영한 문경 수련원의 전경을 영상으로 함께 본 후 사전 행사로 지부별 으뜸절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구미 아도모례원, 경주 남산 천룡사, 무안 미륵사, 장수 죽림정사를 생중계로 연결해 부처님 오신 날을 함께 축하하고 기뻐했습니다.
이어서 타종과 함께 봉축 법요식을 시작했습니다.
다음은 스님이 모든 중생의 해탈을 염원하며 부처님 전에 향을 올렸습니다.
이어서 깊은 지혜를 발원하며 도량을 밝히는 등을 올리고, 부처님을 찬탄하며 부처님 전에 꽃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간절한 염원을 담아 헌공 예불을 올렸습니다.
“나무 영산불멸 학수쌍존 시아본사 석가모니불 석가모니불 석가모니불...”
대중이 삼배의 예로 법을 청하자 스님은 먼저 정토회의 고문이신 불심 도문 큰스님의 법어를 대독 했습니다.
천상천하 유아위존 요도중생 생로병사
天上天下 唯我爲尊 要度衆生 生老病死
하늘 위와 하늘 아래 오직 내가 존귀하도다.
원하건대 중생의 생로병사를 제도하려 하노라.
이 게송은 시아본사 석존의 탄생송(誕生頌)인데
장아함 대본경(長阿含 大本經)의 말씀이십니다.
시아본사 석존께서는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 오시고,
용성 진종조사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중략)...
세계 만방을 부처님 법으로 교화하여 다스려,
전 세계 인류가 대한민국을 진리의 조국으로 잘 섬겨서
성불도 선근인연(成佛道善根因緣)을 짓도록 하시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스님의 봉축 기념 법문이 이어졌습니다. 스님은 부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의미와 그 뜻을 기리는 우리의 자세에 대해 법문해 주었습니다.
“오늘은 부처님 오신 날입니다. 부처님께서 입멸하신 해를 기원으로 하면 2565년째가 되고, 부처님이 탄생하신 해를 기원으로 하면 2645년째가 되는 기념일입니다.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뜻은 중생을 구제하러 오신 것이다.’
흔히 이렇게 말을 하는데, 누군가 이 세상에 올 때 어떤 목적을 갖고 왔다는 것은 실제 사실이 아니라 사람들의 생각입니다. 부처님이 평생 살아가신 그 모습, 그 인격, 그 삶을 결과적으로 정리해보니 이분은 스스로 괴로움이 없는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사셨고, 또 괴로워하는 많은 사람들이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인도하신 분이었던 거예요. 후세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고 ‘부처님이 오신 뜻은 중생을 구제하러 오신 것이다’ 이렇게 표현한 것이지 본인이 태어날 때 ‘나는 이런 목적으로 태어났다’ 하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다 부처님의 삶을 최종적으로 평가한 후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탄생게를 듣고 낙담할 필요가 없는 이유
그러니 오늘날 우리도 ‘나는 태어날 때 한 손을 들고 한 손으로는 땅을 가리키며 사자처럼 외치지도 못했고 걷지도 못했다’ 이렇게 낙담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러분도 본인이 수행해서 괴로움 없이 살아가고, 또 나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도 그렇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면, 결국 여러분의 삶도 마지막에는 그렇게 평가받을 수 있어요. 그 모습을 종교적으로는 ‘이런 일을 하려고 이 세상에 왔다’ 하고 표현하는 거예요. 그래서 이 탄생게는 부처님이 태어나자마자 일성(一聲)을 질렀다기보다는 사실은 부처님의 일대기를 쓴 분들이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뜻을 한마디로 이렇게 정리한 것이라고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부처님은 수행을 그냥 명상하는 것이라고만 생각하지 않으셨어요. 당시 사회가 갖고 있는 모순을 깊이 탐구하셨습니다. 그래서 우선 자신이 가졌던 지위나 부를 모두 버리고 평범한 한 사람으로 돌아가서 깊은 사색과 명상을 통해서 모순을 탐구했어요. 과거로부터 전승되어 온 윤리나 도덕, 관습이나 습관, 경전이나 계율에 근거해서 논쟁을 하는 게 아니라, ‘사실은 어떤가?’ 하고 확인하는 작업을 하는 것과 같은 정진을 했습니다. 그렇게 정진한 끝에, 욕망을 따라가는 쾌락도, 욕망을 억제하는 고행도, 양쪽 모두 해탈과 열반으로 가는 길이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하셨어요. 편안한 가운데 사물을 직시해서 그 본질을 꿰뚫어 알게 되었습니다. 이걸 ‘중도(中道)’라고 해요. 중도를 발견하시고 결국 깨달음을 얻으셨습니다.
지혜의 눈이 열려서 세상의 진실을 바라보니까 브라만이라는 창조신이 있다는 것도 그냥 하나의 믿음일 뿐이었어요. 당시 사회는 사람에게 영롱한 아트만이 있다고 믿었지만, 그렇다고 말할 수 있는 증거는 아무것도 없었어요. 죽은 시체를 깊이 관찰해 보았지만 거기에는 어떤 실체도 없고 다만 작용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감촉하고, 생각하는 작용들이 있고, 그로 인해 기분이 좋거나, 기분이 나쁘거나, 즐겁거나, 괴롭거나 하는 느낌이 일어나고, 그렇게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이 작용해서 이런 판단, 저런 판단,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이 일어나고, 그로 인해 ‘이래야 하겠다’, ‘저래야 하겠다’ 하는 욕구 작용과 의지 작용, 사물을 식별하는 작용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에게는 이런 여러 작용이 있을 뿐이에요.
누구나 다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게 길을 열어주신 분
부처님께서는 ‘신의 분신인 아트만이라고 하는 것이 있다’라는 주장에 ‘그렇지 않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부처님은 ‘있다, 없다’ 이런 논쟁을 하지 않으셨어요. 그런 주장에는 아무런 근거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모든 것은 항상 한다는 믿음에 대해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리 관찰해도 항상 하는 것은 없다. 형성된 것은 다 이러저러한 원인으로 이루어지고, 이러저러한 원인으로 소멸하고 변화할 뿐이다.’
항상 즐거움만 있다는 믿음에 대해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지 않다. 즐거움이 있으면 괴로움이 있고, 괴로움이 있으면 즐거움이 있다. 즐거움과 괴로움이 늘 윤회할 뿐이다. 즐거움이라는 것의 본질을 꿰뚫어 보면, 즐거움이 곧 괴로움이다.’
브라만은 성스럽다는 믿음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성스럽다고 할 게 아무것도 없다. 태어남에 의해서 성스러움이 정해지는 것도 아니다. 남자라고 성스러운 것도 아니고, 브라만이라고 성스러운 것도 아니고, 여자라고 천한 것도 아니고, 계급이 낮다고 천한 것도 아니다. 굳이 성스러움이 있다면 깨끗한 마음, 깨끗한 말, 깨끗한 행동이야말로 성스럽다고 할 수 있다. 천한 마음, 천한 말, 천한 행동이야말로 천하다고 할 수도 있다. 그가 하는 행위에 의해서 성스럽고 부정한 것이 나타나는 것이지, 본래부터 성스러운 존재라는 것은 없다.’
이렇게 부처님은 당시 사람들이 믿거나 알고 있던 것이 진실에 바탕을 두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밝혀주셨습니다. 사람들은 그런 허구에 바탕을 두고 남을 현혹시키고, 서로 옳다고 논쟁하고, 갈등하고 싸우고, 잘났다고 목에 힘주고, 못났다고 기죽고 삽니다. 이것은 마치 꿈속에 사는 것과 같아요. 이런 허구에서 벗어나버리면 잘난 것도 없고, 못난 것도 없고, 목에 힘줄 것도 없고, 기죽을 것도 없고, 즐거울 것도 없고, 괴로울 것도 없고, 누구나 다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부처님은 본인이 직접 그것을 체험했어요. 또 그런 어리석음에 빠진 사람을 깨우쳐서 그들도 자유롭고 행복하게 되는 것을 직접 보이셨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신성하다고 내세우던 많은 브라만들도 그 허위의식을 버리고 겸손해지도록 하셨고, 천하다고 기죽어 살던 많은 노예 계급 사람들도 그 허위의식을 버리고 당당함을 가지게 됐어요. 그렇게 누구나 다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신 분이 부처님입니다.
무엇이 진정한 발전일까요?
이러한 부처님의 삶을 오늘날 우리 시대에 비추어본다면, 우리는 브라만 신이 아니라 돈신 또는 재물신을 섬기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자본을 주인으로 섬기는 시대에 살고 있어요. 욕망의 충족을 개인의 자유라는 말로 합리화하고 살고 있습니다.
그 결과 많은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기후위기로 인한 생존의 위협입니다. 돈과 욕망을 추구한 결과 우리가 오래도록 살아가야 할 삶의 터전인 자연환경이 파괴되고, 이상기후가 일어나서 우리의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요즘 나타나는 각종 바이러스도 대부분 기후위기의 부작용으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앞으로는 갈수록 더 심해질 것이라고 과학자들은 내다보고 있습니다. 기후위기란 가뭄이 든다, 홍수가 난다, 기온이 오른다, 빙하가 녹고 침수현상이 일어난다, 이런 것뿐 아니라 온갖 바이러스나 세균 또는 그 변종이 나타난다는 것을 뜻합니다.
아직 과학적으로 정확하게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지금 인도에서 이런 현상의 단면을 볼 수 있어요. 인도의 빈민들은 거의 자연 속에서 동물처럼 살아가고 있는데, 이런 사람들은 지금 유행하고 있는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력이 굉장히 강하다고 합니다. JTS가 학교를 운영하고 있는 불가촉천민 마을 둥게스와리에서도 집집마다 온 가족이 다 코로나19에 걸렸지만 대다수가 열만 좀 나고 그냥 지나갔다고 합니다. 뭄바이 빈민촌에서도 조사를 해보니 80퍼센트가 집단면역이 생겼다고 해요. 그런데 인도에서 지금 코로나19에 감염되어 죽는 사람들을 조사해보면 대부분이 중산층 이상이라고 합니다. 물론 과학적으로는 아직 그 이유가 안 밝혀졌지만, 이 소식을 접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코로나19가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이미 면역력이 생겨났기 때문에 크게 문제가 안 되는데, 자연으로부터 격리돼서 위생을 지나치게 중시하고 인공적인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는 더 큰 위험이 되고 있구나. 우리는 나름대로 잘한다고 하고 있지만, 현대 문명은 오히려 지금 커다란 위험을 자초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프레온 가스를 발견했을 때 무색, 무취, 무해하다고 열광했지만 오존층을 파괴하는 결과를 가져왔고, 원자력 발전을 발명해서 에너지 무한대 시대를 얘기했지만 방사능 오염이라고 하는 더 큰 위험을 초래했듯이, 우리가 지금 발전인 줄 아는 것들이 일시적으로는 우리에게 굉장히 유용하지만 길게 봤을 때는 더 큰 해악을 끼치는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발전인지 퇴보인지는 단기간에 검증할 수가 없어요. 한쪽에서는 ‘풍요 속의 빈곤’이라고 해서 굶고 병들고 고통받는 사람이 즐비한데도 다른 한쪽에서는 쾌락과 명품과 기호에 빠져 있고, 그 결과 자연환경까지 파괴가 되고 있습니다. 이런 삶이 과연 바람직할까요?
인류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꼭 필요한 가르침
지금 인류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는 소비주의의 극복입니다. 욕망을 절제하고 성질을 자제하고 자기주장을 절제하고 포용하는 새로운 문명을 만들지 않으면, 과거에 인류 문명이 발달했다가 멸망했듯이 현대 문명도 길게 보면 결국 그 길로 가게 됩니다. 짧은 시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그것이 보이지 않지만, 길게 보면 결국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오늘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부처님의 삶을 다시 돌아보고 배우면 좋겠습니다. 부처님은 그 당시에 신이라는 허구, 철학이라는 허구, 계급이라는 허구, 이런 것들을 꿰뚫어 보셨지만, 그렇다고 그런 믿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내치지도 않으셨어요. 그들도 허위의식을 버리고 해탈의 길로 가도록 인도하셨습니다. 또 빈곤층이나 하층민도 외면하지 않으셨어요. 그들도 포용하고 깨우쳐서 해탈의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욕망에 끄달려서 돈의 허구와 쾌락적 욕망을 합리화하고 있습니다. 방송이든 어디든 온 세상이 그 순간의 짧은 쾌락적 욕망을 합리화하고 거기에 가치를 부여하고 있잖아요. 욕망을 충족하면 즐거워하고, 욕망을 충족하지 못하면 기가 죽습니다.
그러나 욕망을 추구하지 않으면 기죽을 일도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담배도 안 피우는 것보다는 못하고, 아무리 좋은 마약도 섭취 안 하는 것보다 못한 것과 같아요. 아무리 좋은 술도, 아무리 좋은 차도, 아무리 좋은 커피도, 어쩌면 안 먹는 것보다 더 못합니다. 좋은 공기 청정기에서 나오는 공기보다 자연의 공기가 건강에 더 좋아요. 좋은 정수기에서 나오는 물보다 자연의 맑은 물이 건강에 더 좋습니다. 온갖 조미료를 쳐서 만든 음식보다 자연의 음식이 건강에 더 좋아요. 이런 이치를 탁 깨달아버리면 내 삶이 헐떡거림에서 자유로워집니다. 이 세상의 수많은 대립과 갈등이 저절로 사라지게 됩니다.
그러니 이런 좋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2600년 전의 가르침으로만 치부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등을 달면 복 받는다’, ‘경을 읽으면 복 받는다’, ‘공양을 올리면 복 받는다’ 하는 식으로 종교화하지도 말아야 해요. 이처럼 돈과 자본에 중독된 것을 합리화하는 쪽으로 이 좋은 법이 쓰이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오늘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현대 문명이 안고 있는 모순과 현대인들이 겪고 있는 고통을 해소시키는 양약으로 이 좋은 법이 새로이 쓰일 수 있기를 기원해 봅니다.
불교를 믿는다고 불교인이 아니에요. 진정한 불교인인...
어제는 나라를 지켜야 하는 군인이 30여 년 전 제 국민을 학살하는 광주의 아픔이 있었던 날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런 아픔을 극복하고 민주화를 이뤘습니다. 그러나 지금 미얀마 국민들은 그 비슷한 아픔을 겪고 있습니다. 군인들이 쿠데타를 일으켜서 국민이 선출한 합법적 정부를 몰아낸 뒤 권력을 잡았고, 거기에 항의해서 평화적으로 시위하는 국민들을 총기로 살해하거나 위협하고 있습니다. 미얀마는 전 국민의 80퍼센트 이상이 불교도인 불교 국가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그저 불교라는 종교를 믿는다고 해서 그것이 곧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현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할 줄 알아야 그것이 진정한 불교 국가, 불교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미얀마 국민들의 안정과 미얀마 사회의 평화를 기원합니다. 그리고 북한 주민들의 생존권 보장을 위한 인도적 지원을 기원합니다. 북한 주민들의 인권이 존중받는 사회를 기원합니다.
초파일을 맞아 평화로운 우리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주위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도 함께 생각하며 나도 행복하고 너도 행복하고 다 함께 행복한 정토세계를 함께 발원했으면 합니다.”
다음은 부처님이 이 땅에 태어나심을 기뻐하는 강생 찬탄 의식을 했습니다. 스님이 선혜 행자의 서원과 수기, 호명 보살의 서원, 부처님의 탄생이 기록된 경전을 읽고 선창하면 대중도 따라서 읽었습니다.
이어서 마야 부인이 입장하고, 마정 수기와 욕불 의식을 했습니다.
방송 현장에 있는 행자님 두 분이 대표로 스님에게 마정 수기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스님은 생방송을 시청하는 정토회 회원들에게도 온라인으로 마정 수기를 했습니다.
“제가 ‘여러분은 미래의 부처님입니다’ 이렇게 말하면서 수기를 주면 여러분은 ‘부지런히 정진하여 부처를 이루겠습니다’ 이렇게 대답하십시오. 눈 딱 뜨고 이마를 화면 앞에 대세요.”
스님이 붓을 들고 카메라를 향해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미래의 부처님입니다.”
“부지런히 정진하여 부처를 이루겠습니다.”
10초 만에 수천 명의 정토회 회원들에게 마정 수기를 할 수 있었습니다. 스님은 수기를 받는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려주었습니다.
“다들 수기 잘 받으셨습니까? 수기라는 것은 일종의 예언 같은 겁니다. 우리가 지금은 이렇게 괴로워하며 살아가고 있지만, 탐진치(貪嗔癡) 삼독(三毒)으로부터 벗어나게 되면 누구나 다 괴로움 없는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자유롭고 행복하게 사는 사람을 ‘부처’라고 해요. ‘모든 사람이 다 부처가 될 수 있다’ 이 말은 어떤 상황에 처한 사람이든, 어떤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이든, 누구나 다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오늘 수기를 받으신 분들은 더 이상 자기 생각에 사로잡혀서 괴로움에 빠지지 말고, 마치 악몽을 꾸다가 깨듯이 눈을 번쩍 따서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다음은 부처님의 탄생 선언을 함께 읽은 후 스님이 직접 발원문을 낭독했습니다.
“오늘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하여 부처님을 찬탄하고 공경하고 공양 올리며 예배한 이 모든 공덕 일체중생에게 회향하오니 배고픈 자는 배불러지고, 병든 이는 속히 나아지며, 어린아이들은 배움을 성취하고, 괴로운 자는 평안하여지며, 방황하는 이는 바른 길로 나아가고, 어둠 속을 헤매는 자는 빛을 보게 하여지이다.
특별히 발원하옵나니, 올 춘궁기에 북한동포들 굶주림이 없어지고 나라와 백성은 평안하여지고, 남북 간에 화해와 협력과 교류가 증대하여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고 통일이 이루어져 이 땅에 다시는 전쟁이 없고 분단의 아픔과 슬픔이 사라지게 하옵소서.”
본래부터 갖추어진 내 안의 지혜와 자비가 꽃처럼 피어나 어려운 이웃과 함께 나눌 수 있기를 기원해 봅니다.
오늘 부처님 오심을 축하하며 이웃 종교인 분들이 축하 인사를 보내주었습니다. 함께 영상으로 만나보았습니다.
이어서 청년들의 퍼포먼스를 영상으로 함께 보았습니다. 청년특별지부에서는 불교를 만나고 매일 108배를 하며 달라진 자신의 삶을 재미있는 노래 가사로 표현했습니다. 노래를 듣고 나서 스님이 웃으며 질문했습니다.
“정말로 저런 노래가 있어요?” (웃음)
“아니요. 노래를 개사해서 부른 겁니다.”
마지막으로 부처님 가르침을 만난 기쁨과 그 공덕을 먼저 돌아가신 조상 영가님께 회향하며 모든 영가님들의 왕생극락을 기원하는 천도재를 올렸습니다.
스님은 곧바로 대웅전을 나와 문경 수련원을 출발해 두북 수련원으로 향했습니다.
문경에서 두북 수련원으로 이동하는 길에 잠깐 구미 아도모례원에 들렀습니다.
스님의 깜짝 방문에 손님맞이를 하고 있던 대구경북지부 활동가들은 너무나 기뻐했습니다.
“두북 수련원으로 가는 길에 잠깐 들렀어요.” (웃음)
법당을 참배한 후 대구경북지부 활동가들을 격려하고, 정갈하게 가꾸어진 도량을 둘러보았습니다.
“깔끔하게 잘 가꾸어 놓으셨네요. 수고들 많이 하셨어요.”
활동가들이 만남의 장소로 사용하기 위해 폐허가 된 건물을 꾸미고 있는 곳도 살펴보고, 농사를 짓고 있는 밭도 살펴보았습니다.
“이 밭에는 무엇을 심었어요?”
“토란을 주로 심었고, 고추와 들깨도 조금 심었습니다.”
길 건너 넓은 밭에는 감자가 빼곡하게 심어져 있었습니다.
“잡초가 많이 자라는 것을 보니 땅이 비옥한가 봐요.” (웃음)
아도모례원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보수 법사님과 향존 법사님도 스님의 깜짝 방문에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다시 차를 타고 이동하여 오후 3시에 두북 수련원에 도착했습니다.
반나절 정도 일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겨서 스님은 곧바로 작업복으로 갈이 입었습니다.
길 밖으로 흐드러지게 피어 지나가는 차에 잘 부딪히는 장미를 안으로 넣어주고 농사 창고로 갔습니다.
“오늘은 못으로 갑시다.”
논 위에 작은 저수지가 있는데, 얼마 전에 저수지의 수량을 조절하는 배수 장치가 고장이 나서 계속 물이 빠지고 있었습니다. 급기야 저수지 바닥이 드러났습니다.
행자들이 산윗밭에 설치해 두었던 펌프를 저수지에 가져가기로 했습니다. 굵은 호스를 연결하기 위해 작년에 사용했던 부품을 찾는데 아무리 찾아도 안 보였습니다.
행자들이 펌프를 손보고 있는 사이 스님은 곳곳에서 줄기를 뻗어나가고 있는 칡덩굴을 벴습니다.
결국 펌프에 맞는 부품을 찾지 못해 마을 어르신에게 펌프를 빌리고 도구를 챙겨 저수지로 올라갔습니다.
며칠 비가 왔는데도 저수지는 한쪽 바닥이 보일 정도로 물이 말라있었습니다. 스님이 물속에 넣어두었던 호스 입구는 마른 바닥 위에 덩그러니 놓여있었습니다. 먼저 저수지에 설치되어 있었던 배수 장치를 고치기로 했습니다.
지난번에 마을에 사는 스님 친구분이 배수 장치를 쓸 수 있게 해 주겠다며 열었다가 고장이 나버렸습니다. 아무리 장치를 닫아보아도 그 뒤로 저수지 물이 계속 새고 있습니다. 아래쪽에 돌과 판으로 임시로 막았지만 새는 물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저수지에 물을 더 빼야 배수장치를 고칠 수 있기 때문에 먼저 펌프를 설치해서 물을 뺐습니다.
스님은 비옷과 논장화를 갖춰 입고 물속으로 들어가 배수 장치 아래쪽을 살펴보았습니다. 물속에 있던 거머리들이 때를 만나 다리와 손에 들러붙었습니다. 거머리를 떼어가며 작업을 했습니다.
스님은 물속에서 배수장치 입구에 쌓인 흙을 퍼내고 위에서는 뻑뻑한 손잡이에 기름칠을 해가며 배수 장치를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했습니다.
막아두었던 논 쪽 구멍에 돌과 판자를 빼내니 물이 터져 나왔습니다.
“이제 물이 잘 빠져나가네요!”
스님 발아래로 물이 소용돌이치며 빠져나갔습니다.
스님은 계속해서 펌프 주변 흙을 파냈습니다.
“계속 열어보세요.”
물은 점점 빠져 배수장치 입구가 조금씩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입구가 이렇게 생겼네요. 예전에 주변에도 시멘트 미장을 다 해놨네요. 이 주변으로도 물이 새고 있어요. 시멘트로 아예 봉해버리는 게 좋겠어요. 오늘은 여기까지 해두고 내일 아침 일찍 와서 계속 작업을 합시다.”
울력을 시작할 때에 비해 저수지 바닥이 더 드러났습니다. 배수장치와 펌프가 물을 빠르게 빨아들이고 있었습니다.
7시가 다 되어 울력을 마치고 저수지를 내려왔습니다.
저녁에는 원고 교정 및 업무를 보고 하루를 마무리했습니다.
내일은 하루 종일 전국법사단회의 및 연수가 온라인으로 진행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