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틱낫한,『죽음도 없이 두려움도 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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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참된 본성은 가지도 않고 오지도 않습니다.
어딘가에서 오지도 않았고 어딘가로 가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조건이 성숙되었을 때 드러나고,
조건이 충분하지 않으면 드러나지 않습니다.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닙니다.
... 이 세상 어느 것도 홀로 존재하는 것은 없습니다.
... 모든 현상을 자세히 관찰해보면 우리 자신을 포함해서
모든 것이 다 전체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 모든 것들은 상호연결돼 존재해왔으며, 존재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존재할 것입니다.
... 사물은 만들어지지도 없어지지도 않습니다.
단지, 끊임없이 드러나고 숨고 하는 과정에 있을 뿐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머리로, 지식으로 이해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진정으로 이해한다는 것은 머리에 지식을 하나 더 넣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깨달음이며 상호연결된 존재로서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와 같이 '깊이 들여다보기' 수행을 통해 일상생활 속에서 '태어남과 죽음은 없다'라는 통찰(깨달음)을 키워가야 합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선물인 '두려움으로부터의 자유로움'을 받게 됩니다.
* 태어남과 죽음이란 것이 단지 우리가 만들어낸 생각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태어남과 죽음이 실재한다고 믿는 것이
바로 고를 만드는 가장 강력한 착각이라고 말이지요.
* 죽으면 소멸되어 없어질 것이라는 생각을 거둘 떄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집니다.
이것은 커다란 위안입니다.
소멸에 대한 두려움을 벗어버릴 때 비로소
우리는 새로운 방식으로 삶을 즐기고 음미할 수 있게 됩니다.
* 무지가 슬픔을 부른다.
태어남도 없고 죽음도 없습니다.
가는 것도 없고 오는 것도 없습니다.
있는 것도 없고 없는 것도 없습니다.
같은 것도 없고 다른 것도 없습니다.
* 만약 여러분이 가슴 깊은 곳에 말 못할 슴픔을 간직하고
있다면,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면,
소멸이나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하다면,
저의 가르침대로 수행을 시작해보십시오.
수행을 잘한 사람이라면 구름, 장미, 조약돌, 아이들을
붓다가 우리에게 전해주었던 눈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태어나, 죽으, 있고, 없고, 오고, 가는 것도 없다는
실재의 본성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강하고 안정된 존재가 되어 진정한 평화로움 속에서
모든 일을 미소로 맞이할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살 때 여러분은 주위의 많은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습니다.
* 생각을 태워버리라
성냥갑과 성냥개비는 불꽃을 만들 수 있는 조건입니다.
성냥개비를 그으면 불꽃이 일어나겠지요.
성냥개비의 불꽃을 오래 태우려면 성냥개비 자체를 태워야
합니다. '모든 것은 변한다'는 '무상(無常)'에 대한 가르침도
이와 비슷합니다. 무상에 대한 가르침은 무상에 대한 깊은
지혜와 통찰(불꽃)을 얻도록 도와주지만, 그렇게 해서 얻어진 무상에 대한 통찰은 결국 무상이라는 관념(성냥개비)을 태워버릴 때 얻어지는 것입니다. '무아(無我)'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아는 성냥개비입니다. 무아에 대한 가르침은 무아에 대한
통찰이라는 불꽃을 일으키는 데 도움을 줍니다. 그렇게 해서 생겨난, 무아에 대한 이해는 무아의 개념이라는 성냥개비를
태워 없애야 불꽃과 같은 통찰이 생깁니다. 진정한 수행은
무상, 무아, 열반 등등의 온갖 관념을 쌓아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관념이나 이론들을 말하고 전파하는 것은 불교 공부나 수행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우리가 진정한 통찰을
갖기 위해서는 이론이나 관념을 뛰어넘어야 합니다.
그것은 생각을 태워 없앰으로써 가능합니다.
* 파도는 생生, 멸滅, 고高, 저低, 미美, 추醜를 두려워하고
다른 파도를 시기하고 질투합니다. 하지만 파도가 자신의
본성을 깨닫는다면, 즉 자신의 본성이 물이라는 것을
깨닫는다면, 두려움과 시기 질투심은 멀리 사라질 것입니다. 물에게는 생, 멸, 고, 저, 미, 추가 없습니다.
* 붓다의 가르침 중에 삼법인(三法印)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 그 세 가지는 무상, 무아, 열반입니다.
... 무상을 깊이 깨달으면 무아를 발견하게 됩니다. 무아의 발견은 우리를 열반으로 이끕니다. 열반이 바로 천국입니다.
* 무상은 단순히 실재를 설명하는 또 다른 이론이 아닙니다.
우리의 변형과 치유와 해방을 도와주는 도구입니다.
무상이란 모든 것이 변하므로 매순간 똑같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말입니다.
* 참을 수 없이 화가 날 때
나는 눌을 감고 깊이 바라본다.
300년이 흐른 뒤에
너는 어디 있고 나는 어디 있을까.
* 진정 삶이 무상함을 깨달은 사람이라면
바로 지금 이 순간 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남을 행복하게 해줄 것입니다.
내게 주어진 소중한 스물제 시간을 다른 사람에게,
심지어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름들에게 화를 내는 데 쓴다면 무상을 깨닫지 못한 어리석은 일입니다.
'참을 수 없이 화가 날 때 나는 눈을 감는다...
당신이 살아 있어서...
나는 행복합니다...'
* 무상이 시간의 관점에서 실재를 바라보는 수행이라면
무아는 공간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수행입니다.
무아는 무상의 드러남이고 무상은 무아의 드러남이니까요.
만믈이 변한다는 것(무상)은 홀로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없다(무아)는 말입니다.
공이란, 한마디로 '관계로써 이뤄진 존재'란 뜻입니다.
관계로써 이뤄진 존재란 존재가 없다거나
텅 비었다는 것이 아니고
다른 많은 원인들과 결부되어 유지되어가는 존재나
형태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공이란 다시말해, '관련성'과 동의어입니다.
이처럼 상호관계, 즉 무아 속에서 무상을 깨닫는 것,
그것이 바로 열반이빈다.
* 깊이 바라보기 수행을 하면 무상의 본질을 깨달아 깊은 통찰을 얻을 수 있습니다. 무상은 우리 삶을 살아가는 철학의 일부가 되고 매일의 일상적인 경험이 됩니다. 무상을 화두로 명상한다면 무상에 대한 깨달음은 깊어질 것입니다. 그리하여 무상은 날마다 우리 안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 비록 어느 한순간 무상의 깨달음을 얻었다 해도 우리는
다시 이 우주 만물이 영원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사물을 보게 됩니다.
... 날마다 무상 수행을 잊지 않고 살아간다면 지금 여기 나와 함께 하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새삼 느끼게 됩니다.
... 화가 날 때 '모든 것은 변한다'를 속으로 되뇌는 무상
수행을 한번 해보세요.
... 무상의 눈으로 들여다보면 화를 멈추고 호흡을 고를 수
있습니다.
... 진정 삶의 무상함을 깨달은 사람이라면 바로 지금 이 순간 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남을 행복하게 해줄 것입니다.
* 행복으로 향하는 하나의 조건이 충족됐다 싶으면
우리는 또 다른 조건을 만들어냄니다.
승진을 해도 또 승진을 바라고, 좋은 직업을 가졌다 싶으면
더 좋은 직업을 바라고,
좋은 집을 가지면 더 좋은 집을 바랍니다. 끝이 없습니다.
* 붓다는 행복은 '바로 지금 여기'에서만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이 행복에 대해 갖고 있었던 관념이나 생각들을 천천히 되짚어보십시오.
그러면 이미 행복의 조건들은 내 삶 속에 모두 있었다는 것을 꺠닫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행복은 바로 지금 나의 것이 됩니다.
*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야말로
궁극적인 행복입니다.
그떄 비로소 다른 위대한 존재들처럼
당신도 태어남과 죽음이라는 파도를
고요하고 평온한 마음으로 타넘을 것입니다.
* 당신은 이미 오래전 당신이 되고자 했던 당신 자신입니다.
왜 다른 어떤 것을 또 찾지요?
당신은 이미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이 모든 우주가 당신의 존재를 이미 완전하게 하고 있습니다.
천국, 열반, 지고지순의 행복이 모두 당신의 것입니다.
* 어떠 과학자들은 우리가 손뼉을 치면
저 먼 별에까지 그 효과가 미친다고 합니다.
우리에게 일어난는 모든 일이
우주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는 말이지요.
우주 또한 우리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모든 것은 이처럼 서로서로 모든 것의 영향 아래 있습니다.
* 여러분들이 명상센터나 선방에서 수행을 할 때는
괴로움과 고통을 줄여보고 싶은 희망이 있습니다.
물론 가능한 일입니다.
수행을 통해 위안을 받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진정한 위안, 궁극적 행복은 태어남과 죽음이 없다는 깨달음에 닿을 때에만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붓다가 우리에게 가르쳐준 가장 심오한 가르침입니다.
* 꽃을 기르는 농부는 꽃을 창조하지 않습니다.
농부는 꽃을 있게 하는 하나의 조건에 불과합니다.
꽃은 창고에 보관된 꽃씨와 들판과 비, 비를 만든 구름, 퇴비, 햇빛, 이 모든 것들의 도움으로 피어납니다.
물론 농부의 힘 없이 피어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다른 모든 요쇼들도 다 똑같이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한다는 것은
뭔가 있다, 없다, 생겼다 혹은 만들어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존재한다는 것은 드러남이고,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드러남을 멈춘 것입니다.
* 궁극의 차원에서는 우리는 태어난 적도 없으며
결코 죽지도 않습니다.
* 우리는 과거로, 미래로 끌려 다니면서 이런저런 계획이나
절망, 분노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어것은 진정으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 진정 '지금 여기에서' 꽉 찬 존재가 되어 살아 있게 됩니다.
먹을 때에도, 마실 때에도, 숨쉴 때에도, 걸을 때에도,
앉아 있을 때에도 부활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언제나 자신을 지금 여기에 굳건히 든든히 세워
꽉 찬 존재로 살아 있으십시오.
그것이 진정한 부활 수행입니다.
* 우리는 하루하루를 방금 달에서 구조된 사람들처럼
살면 좋겠습니다.
이 소중하고 아름다운 별에서 살고 있다는 그것 자체로도
얼마나 소중하고 행복한 일인지
자각하면 삶을 즐길 수 있게 됩니다.
중국 당나라 때의 임제 선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물 위를 걷는게 기적이 아니라 땅 위를 걷는게 기적이다."
참으로 소중한 가르침입니다.
저는 걷는 것을 좋아합니다.
한발 한발 걸으면서 어머니의 땅 지구를 걷고 있는
내 발걸음에 주의를 기울입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해보세요.
그러면 삶의 매순간을 즐길 수 있습니다.
* 여러분은 지금 당장 행복해질 수 있는 조건들을
이미 넘치도록 지니고 있습니다.
오고 감과 위 아래와 태어나고 죽음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조건들을 말입니다.
삶이 여러분에게 줄 수 밖에 없는 놀라운 선물들로
모든 날을 축복하십시오.
현재 순간 속에 종재하는 자신을 축복하십시오.
천국을 거니십시오.
* 아이들은 우리 삶의 연장입니다. 지속입니다.
아이들은 우리들 자신이며, 우리들 자신이 바로 아이들입니다. 우리는 이미 그들 속에서 다시 태어난 것입니다. 딸이나 아들 속에서 우리의 몸과 영혼은 지속됩니다. 다른 사람 속에서도 지속됩니다.
* 우리 안에는 항상 두려움이 있습니다. 늙음에 대한 두려움, 병듦에 대한 두려움, 죽음에 대한 두려움,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질지 모른다는 두려움
...... 붓다는 이런 감정들을 억누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마음속 두려움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그것들에 미소 지으라고 하셨습니다.
... 두려움이 일어나면 그것에 빠지지 말고 그것을 마치 남의 일처럼 바라보면서 미소를 지으세요. 그러면 두려움은 점점
힘을 잃을 것입니다. 차츰차츰 작은 씨앗으로 변할 것입니다. 우리가 수행을 매일 쉬지 않고 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한두 번 수행으로 두려움이 힘이 잃지는 않으니까요. ...
막상 수행을 시작하면 수많은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그럴 때면 언제나 호흡으로 돌아오십시오. 들이쉬고 내쉬는 호흡에 집중하면서 숨이 들어오는 때와 나가는 때를 가만히 지켜보십시오. 그렇다고 부자연스럽게, 혹은 너무 의식적으로 호흡을 길게 혹은 깊게 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어떤 것도 일부러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자연스럽게 내가 원하는 대로 바라는 대로 호흡을 내맡겨보세요. 그렇게 하다 보면 호흡은 차츰 안정되어 어느덧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줄 것입니다. 호흡을 통해 마음의 평화를 얻으면, 그 다음에는 집중을 도와줄 말들을 사용해도 됩니다.
두려움을 치유하는 수행
*숨을 들이쉬며, 나는 들숨을 느낀다.(들숨)
*숨을 내쉬며, 나는 날숨을 느낀다.(날숨)
*숨을 들이쉬며, 나는 나이가 듦을 느낀다.(나이듦)
*숨을 내쉬며, 나는 나이듦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피할 수 없음)
*숨을 들이쉬며, 나는 병들게 되어 있음을 안다.(병듦)
*숨을 내쉬며, 나는 병을 피할 수 없음을 안다.(피할 수 없음)
*숨을 들이쉬며, 나는 죽으리라는 것을 안다.(죽음)
*숨을 내쉬며, 나는 죽음을 피할 수 없음을 안다.
(피할 수 없음)
*숨을 들이쉬며, 나는 언젠가는 내가 사랑하고 아끼는 것을
모두 버려야 한다는 것을 안다.
(아끼는 것을 모두 버림)
*숨을 내쉬며, 나는 아끼는 모든 것을
버릴 수밖에 없음을 안다.(버릴 수밖에 없음)
*숨을 들이쉬며, 나는 나의 육신과 말과 마음의 행위만이
나의 참된 소유임을 안다.
(생위만이 나의 참된 소유)
*숨을 내쉬며, 나는 내 행위의 결과를 피할 수 없다.
(결과를 피할 수 없음)
*숨을 들이쉬며, 나는 하루하루를
정념 속에서 깊이 살고자 한다.(정념으로 살기)
*숨을 내쉬며, 나는 현재 순간에 사는 것이 가져다주는
기쁨과 축복을 본다.(기쁨과 축복)
*숨을 들이쉬며, 나는 내가 사랑하는 이들에게 날마다
기쁨을 선사하겠다.(기쁨을 선사하기)
*숨을 내쉬며,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 주겠다.(고통을 덜어주기)
* 죽음이 임박하면 누구든지 몸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평소에는 잘 느끼지 못하다가도 '이 몸이 곧 나'라는 관념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몸이 죽으면 나도 죽는다는 생각에 갇힙니다. 그래서 우리는 두려워합니다. 죽으면 없어지리라는, 다시 말해 무로 돌아간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몸이 죽는 것은 우리의 참된 본성에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우리는 죽어가고 있는 사람에게 그가 끝없는 생명임을 일깨워주어야 합니다. 이 몸은 단지 구름처럼 왔다가 가는 것입니다. 구름이 더이상 구름이라는 모양을 취하지 않더라도 그것은 없어지는 게 아닙니다. 아무것도 아닌 무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는 말입니다. 단지 변형입니다. 구름은 비가 되고 강이 되고 바다가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몸으로 규정지어선 안 됩니다. 이 몸은 내가 아닙니다. 나는 몸에 갇혀 있는 게 아닙니다.
... 눈은 내가 아니며 귀도 내가 아니며 입도 내가 아닙니다.
... 감각기관을 하나하나 명상해보면 그 모든 것이 내가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 관념이나 느낌은 그저 오고가는 것입니다. 그것들은 나일 수 없습니다. 의식 또한 하나의 드러남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몸은 내가 아니니,
나는 이 몸에 갇혀 있지 않네.
나는 다함 없는 생명이니,
태어난 적도 죽은 적도 없어라.
광막한 대양과 무수한 은하를 거느린 하늘 위로
만물이 의식의 바탕에서 드러나나니.
시작도 없는 떄로부터 나는 늘 자유로웠노라.
나고 죽음은 드나드는 문일 뿐.
나고 죽음은 숨바꼭질놀이일 뿐.
그러니 미소를 지으며 내 손을 잡고 작별인사를 건네게나.
내일 우리는 아시 만날 것인.
우리는 언제나 저 참된 근원에서 만나고 있을 것이니,
언제나 저 무수한 생명길에서 다시 만나고 있을 것이니
* 너무 바쁘게 살지 마세요.
바쁘더라도 짬을 내 수행하는 데 시간을 쓰세요.
행복하고 평화롭게, 즐겁게 오늘을 사는 법을 배워보세요.
태어남과 죽음의 본질을 깊이 이해하고 깨닫는 수행을 하세요.
아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 불필요하고 사소한 것들에 시간을 낭비할 필요는 없습니다. 부자가 되는 일이나 명성이나 권력을 쫒는 일은 필요 없습니다.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은 자유와 당당함이며 평화이며
즐거움입니다. 행복, 즉 마음의 안정은 돈이나 명예를 갖는다고 해서 오는 게 아닙니다. 수행을 통해서 찾아옵니다.
일단 정념 수행에 몰두하면 우리의 두 눈이 밝아지고 미소가 맑아지며 발걸음이 당당해집니다. 이러면 우리의 에너지가
주위 사람들에게 흘러넘칩니다. 겉껍데기 같은 일에 시간을
주지 마세요. 수행하는 데 시간을 쓰면 삶은 훨씬 더 나아질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 자식들 손자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선물입니다. 친구들에게도 나누어줄 수 있는 가장 훌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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