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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9: 18 믿지 아니하고 - 요 9: 24 우리는 이 사람이 죄인인 줄 아노라.
요 9: 18 믿지 아니하고 - 유대인들이 그가 맹인으로 있다가 보게 된 것을 믿지 아니하고 그 부모를 불러 묻되, ( 유대인들이 저가 소경으로 있다가 보게 된 것을 믿지 아니하고 그 부모를 불러 묻되 )
유대인들의 마음은 어둡고 강퍅하였다.
그들은 그 시각장애인이 예수님에 의해 고침을 받은 사실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1] 유대인들이 그가 맹인으로 있다가 보게 된 것을 믿지 아니하고
유대인들은 바리새인을 포함한 좀 더 넓은 의미에서 사용되었다.
처음에는 기적 자체는 의심하지 않았으나 이제는 기적 자체를 의심하는 행동을 하게 된다. 그들 속에 있었던 불신앙적 선입견은 그들이 명확한 사실조차도 믿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그들이 그 불신앙적 편견을 버린다면, 예수님을 바로 알고 믿을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은 잘못된 선입견을 버릴 때에 어떤 사물이든지 바르게 분별하고 판단하고 믿을 수 있다.
2] 그 부모를 불러 묻되,
바리새인들은 고침을 받은 시각장애인의 사건에 있어서 믿으려는 마음으로 질문하지 않고, 어쨌든지 믿지 않으려는 악한 마음으로 거듭거듭 질문한다.
신자들은 믿으려는 목적으로 사실과 진리를 찾으나, 불신자들은 어쨌든지 믿지 않으려는 결심으로 끝까지 진리와 사실을 피하며 또 힐난한다.
바리새인들은 고침을 받은 시각장애인의 부모에게서 저희의 불신앙을 지지하는 좋은 증거가 나타날까 하여 저렇게 질문하였다.
요 9: 19 너희 아들이냐? - 이는 너희 말에 맹인으로 났다 하는 너희 아들이냐? 그러면 지금은 어떻게 해서 보느냐? ( 이는 너희 말에 소경으로 났다 하는 너희 아들이냐? 그러면 지금은 어떻게 되어 보느냐? )
바리새인들은 시각장애인의 부모를 증인으로 불러 그들의 자녀인 시각장애인의 출생과 보게 된 사유를 캐물었다.
1] 이는 너희 말에 맹인으로 났다 하는 너희 아들이냐?
이 질문은 부모들에게 굳이 묻지 않아도 많은 증인이 있다.
8절에 ‘이웃 사람들과 전에 그가 걸인인 것을 보았던 사람들이’ 존재하므로 부모에게 다시 물어야 할 사안이 아니다.
그러나 재차 질문한 이유는 사실의 확인보다 겁박을 행사하려는 의도가 더 커 보인다.
2] 그러면 지금은 어떻게 해서 보느냐?
그들은 시각장애인이었던 아들의 지금 상황을 확인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사람의 치료는 오랜 시간과 물질적인 부담이 있었을 것이며, 어떻게 예수를 만나게 된 것인지 그 상황을 파악하여 그들을 정죄할 의도로 보인다.
요 9: 20 아들인 것과 맹인으로 난 것 - 그 부모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 사람이 우리 아들인 것과 맹인으로 난 것을 아나이다. ( 그 부모가 대답하여 가로되, 이가 우리 아들인 것과 소경으로 난 것을 아나이다. )
그 부모는 정직하게 시각장애인으로 예수의 치료로 눈을 뜨게 된 자가 저희 아들이며, 시각장애인으로 태어났다고 증언하였다.
1] 그 부모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 사람이 우리 아들인 것과 맹인으로 난 것을 아나이다.
그러나 오히려 그의 부모의 확인을 듣자 그들은 기적 자체를 부인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왜냐하면 부모는 아들인 것과 시각장애인으로 태어났음을 증언하였기 때문이다.
요 9: 21 그에게 물어 보소서 - 그러나 지금 어떻게 해서 보는지 또는 누가 그 눈을 뜨게 하였는지 우리는 알지 못하나이다. 그에게 물어 보소서. 그가 장성하였으니 자기 일을 말하리이다. ( 그러나 지금 어떻게 되어 보는지 또는 누가 그 눈을 뜨게 하였는지 우리는 알지 못하나이다. 저에게 물어 보시오. 저가 장성하였으니 자기 일을 말하리이다. )
그러나 그가 어떻게 눈을 뜨게 되었는지에 대하여는 대답을 회피하였다.
이것은 받은바 은혜에 대하여 감사할 줄 모르는 그들의 어두운 태도인 동시에, 진리 증거를 회피하는 겁약이다.
1] 그러나 지금 어떻게 해서 보는지 또는 누가 그 눈을 뜨게 하였는지 우리는 알지 못하나이다.
부모들은 예수께서 고쳐주셨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이들에게 빌미를 제공하지 않기 위하여 우리는 알지 못하나이다.라고 대답했다
2] 그에게 물어보소서. 그가 장성하였으니 자기 일을 말하리이다.
부모들은 자녀의 상태를 잘 알 수밖에 없다. 더구나 장애를 가진 자녀를 아무렇게나 방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단지 자녀가 장성하여 자기 스스로 했던 모든 일을 다 알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는 앞을 볼 수 없었으나 집 밖에서 구걸하던 모습을 주위 사람이 목격한 것으로 보아 부모 곁을 떠나 바깥출입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사유를 들어 지금 그가 보게된 과정은 본인에게 직접 물어보라는 핑계거리를 말하였다.
요 9: 22 출교 하기로 - 그 부모가 이렇게 말한 것은 이미 유대인들이 누구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자는 출교하기로 결의하였으므로 그들을 무서워함이러라. ( 그 부모가 이렇게 말한 것은 이미 유대인들이 누구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자는 출교하기로 결의하였으므로 저희를 무서워함이러라. )
시각장애인의 부모가 저렇게 겁약하여진 이유는, "유대인들이 누구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자는 출교하기로 결의"하였던 까닭이다.
1] 그 부모가 이렇게 말한 것은 이미 유대인들이 누구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자는 출교하기로 결의하였으므로 그들을 무서워함이러라.
부모들도 예수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자임을 안다.
왜냐하면 시각장애인으로 태어났던 자녀가 어느 날 눈을 띄웠으니까. 이러한 일은 보통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러니까 부모도 그가 하나님께로부터 온 자로 그리스도임을 알았을 것이다.
이 분은 분명히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자인데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리스도이다. 왜냐하면 이사야 19: 18-19, 35: 5-6절에서 종말에 메시야가 하나님으로부터와서 지체 부자유자를 고치고 시각장애인의 눈을 뜨게 하는 데 그가 자기 아들인 시각장애인의 눈을 띄웠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 부모는 그러한 신앙고백을 하기를 회피하는 자들이다. 공개적으로 하기를 회피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이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한 자들은 출교하기로 결의를 했기 때문이다.
이 부모는 유대공동체로부터 쫓겨남을 두려워했다. 그들은 유대인들의 불의한 법을 무서워하였다.
진리와 경건을 떠나서 인간의 고집을 세우기 위한 법은 실상 두려운 것이 아니다.
그들이 저렇게 두려워하였으니, 그들의 심령의 어두움과 생활의 부패가 이로써 추측된다.
칼빈(Calvin)은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그의 교회에 출교권을 주신 것은 교권자들로 하여금 영혼들의 목을 매라고 주신 것이 아니고, 다만 그의 백성을 다스리기 위함이다.
집권자는 하나님뿐이시고 사람들은 그의 사역자가 되는 것뿐이다. 소위 감독이라는 자들로 하여금 그들의 소원대로 교권을 가지고 우뢰와 같이 덤비려면 덤비라고 하여라.
그들의 공허한 소리는, 진리를 배우지 못하여 의심 가운데 방황하는 자들 외에 아무도 두렵게 하지 못 한다"라고 하였다(Calvin's Commentary, John's Gospel, Eerdmans Publishing Co. 1949, Vol. I,P.381).
이 부모는 예수가 분명히 하나님으로부터 온 선지자로 출교 당함을 알고 있었다. 당시 출교를 당한다는 것은 유대교의 입장에서 종교적으로는 구원의 가능성에서 배제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사람은 예수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선지자 메시야로서 출교당하는 것이 구원의 가능성으로 부터 배제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구원을 얻는 길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의 삶에 엄청난 피해가 오는 것을 두려워하여 즉 유대공동체로부터 완전히 고립되어 완전히 삶의 터전을 잃게 됨을 염려하여 증언하지 못했다.
팔레스타인도 그렇고 디아스포라 세계에서도 그렇다. 그들이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은 유대공동체의 일원으로서만 존재할 수 있었다. 여기서 출교를 당하면 삶의 터전을 잃는다. 그래서 부모와 같은 태도를 취하는 자들이 있다.
구원을 체험하고 능력을 알고도 공개적으로 나타내지 못한다. 그러나 시각장애인은 출교를 무릎 쓰고 신앙을 고백했다.
요 9: 23 장성하였으니 - 이러므로 그 부모가 말하기를 그가 장성하였으니 그에게 물어보소서. 하였더라. ( 이러므로 그 부모가 말하기를 저가 장성하였으니 저에게 물어 보시오. 하였더라. )
그가 장성하였으니라는 말은 최소한의 연령이 13세 이상이 되었음을 가리킨다.
1] 이러므로 그 부모가 말하기를 그가 장성하였으니 그에게 물어보소서. 하였더라.
장성하였다는 것은 부모의 힘이나 경제력에 의존하지 않고 본인의 자력으로 자기의 앞가림을 해결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시각장애를 갖은 자가 일반인과 동일한 나이가 되었을지라도 동일한 능력을 소유했다고는 볼 수 없다.
그런데도 이러한 증언을 한 것은 바리새인의 겁박에 잔뜩 겁을 먹었을 것이다.
4. 바리새인의 회유 ( 9: 24-27 )
24 이에 그들이 맹인이었던 사람을 두 번째 불러 이르되, 너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우리는 이 사람이 죄인인 줄 아노라. 25 대답하되, 그가 죄인인지 내가 알지 못하나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맹인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그것이니 이다. 26 그들이 이르되, 그 사람이 네게 무엇을 하였느냐? 어떻게 네 눈을 뜨게 하였느냐? 27 대답하되, 내가 이미 일렀어도 듣지 아니하고 어찌하여 다시 듣고자 하나이까? 당신들도 그의 제자가 되려 하나이까?
부모로부터 어떤 방증도 수집하지 못한 바리새인들은 재차 시각장애인을 불러 문책하였다.
시각장애인은 그들의 겁박에 두려워함이 없이 자기의 소신있는 증언으로 그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요 9: 24 우리는 이 사람이 죄인인 줄 아노라. - 이에 그들이 맹인이었던 사람을 두 번째 불러 이르되, 너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우리는 이 사람이 죄인인 줄 아노라. ( 이에 저희가 소경 되었던 사람을 두번째 불러 이르되, 너는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라. 우리는 저 사람이 죄인인줄 아노라. )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죄인이라고 단정하였고 그 일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1] 이에 그들이 맹인이었던 사람을 두 번째 불러 이르되,
바리새인들은 자기들의 유리한 증언을 확보하기 위하여 증인에게 회유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자기들이 요구한 답변을 듣기 위해 증인을 다시 불러 질문을 던졌다. 빈번하게 괴롭도록 고통을 가함으로 본인들이 제시한 답변을 증언하도록 하였다.
여기 "이에"란 말의 헬라 원어(*)를 직역하면, "그러므로"란 말이다.
바리새인들은 그들의 불신앙을 고집하기 위하여 이 때까지 변론하여 왔으나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두 번째 그 시각장애인되었던 사람을 불렀다.
2] 너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1) 시각장애인을 회유하기 위한 명분을 하나님께 빗대었다.
이들은 비꼬며 너는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라. 그러나 자신들은 예수를 죄인으로 알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겠다.라는 의미가 배어 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라"고 한 말은 진리를 말하라는 뜻이다.
* 사 5: 20 -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며, 흑암으로 광명을 삼으며, 광명으로 흑암을 삼으며, 쓴 것으로 단 것을 삼으며, 단 것으로 쓴 것을 삼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2) 영광
구약 성경에서 영광은 어떤 사람이나 사물에 무게와 명예, 또 그와 더불어 힘과 권위도 주는 그 무엇을 뜻한다.
여호와의 영광에 대해 말할 때는 하나님의 위엄이 눈에 보이게 드러난다는 점이 덧붙는다.
* 출 16: 10 –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매 그들이 광야를 바라보니 여호와의 영광이 구름 속에 나타나더라.
* 레 9: 6, 23 – 6 모세가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하라고 명령하신 것이니 여호와의 영광이 너희에게 나타나리라. 23 모세와 아론이 회막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백성에게 축복하매 여호와의 영광이 온 백성에게 나타나며
* 겔 1: 27-28 – 27 내가 보니 그 허리 위의 모양은 단 쇠 같아서 그 속과 주위가 불 같고 내가 보니 그 허리 아래의 모양도 불 같아서 사방으로 광채가 나며 28 그 사방 광채의 모양은 비 오는 날 구름에 있는 무지개 같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의 모양이라. 내가 보고 엎드려 말씀하시는 이의 음성을 들으니라.
이러면 환히 빛나는 광채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출 33: 18-23과 다른 여러 본문에 따르면 죽을 존재인 사람이 이처럼 빛으로 나타나는 바를 보면 죽는다.
* 출 33: 18-23 – 18 모세가 이르되, 원하건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19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내 모든 선한 것을 네 앞으로 지나가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선포하리라. 나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20 또 이르시되,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21 여호와께서 또 이르시기를 보라. 내 곁에 한 장소가 있으니 너는 그 반석 위에 서라. 22 내 영광이 지나갈 때에 내가 너를 반석 틈에 두고 내가 지나도록 내 손으로 너를 덮었다가 23 손을 거두리니 네가 내 등을 볼 것이요 얼굴은 보지 못하리라.
그러나 이사야(사 6장)와 에스겔(겔 1-3장) 같은 예언자들은 환상 가운데 그 영광을 보고 묘사한다.
신약 성경에서는 이 표현이 하나님의 불멸의 생명을 가리키는데, 이 생명에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뿐만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해서 교회도 참여한다.
요 1: 14, 2: 11에 따르면 이 영광은 예수께서 이 땅에 사시던 동안에는 이미 그에게서 알아볼 수 있었다.
* 요 1: 14 -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 요 2: 11 -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3] 우리는 이 사람이 죄인인 줄 아노라.
죄인이란?
하나님의 뜻과 목적에 관심을 두지 않는 사람을 지칭한다.
복음서에서는 특별히 유대인들이 "율법"과 전통을 엄격히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 마 26: 45 - 이에 제자들에게 오사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보라. 때가 가까이 왔으니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 막 14: 41 - 세 번째 오사 그들에게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그만 되었다. 때가 왔도다. 보라.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 눅 5: 8 -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 눅 6: 32-34 – 32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만을 사랑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는 사랑하느니라. 33 너희가 만일 선대하는 자만을 선대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이렇게 하느니라. 34 너희가 받기를 바라고 사람들에게 꾸어 주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냐? 죄인들도 그만큼 받고자 하여 죄인에게 꾸어 주느니라.
* 눅 7: 39 - 예수를 청한 바리새인이 그것을 보고 마음에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라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 하거늘
* 눅 15: 7, 10 – 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1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
* 눅 18: 13 -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 눅 19: 7 -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이르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 눅 24: 7 -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한대
* 요 9: 16, 24-25, 31 – 16 바리새인 중에 어떤 사람은 말하되, 이 사람이 안식일을 지키지 아니하니 하나님께로부터 온 자가 아니라. 하며 어떤 사람은 말하되 죄인으로서 어떻게 이러한 표적을 행하겠느냐? 하여 그들 중에 분쟁이 있었더니 24 이에 그들이 맹인이었던 사람을 두 번째 불러 이르되, 너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우리는 이 사람이 죄인인 줄 아노라. 25 대답하되, 그가 죄인인지 내가 알지 못하나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맹인으로 있다가 지금 보는 그것이니이다. 31 하나님이 죄인의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경건하여 그의 뜻대로 행하는 자의 말은 들으시는 줄을 우리가 아나이다.
* 롬 3: 7 - 그러나 나의 거짓말로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 풍성하여 그의 영광이 되었다면 어찌 내가 죄인처럼 심판을 받으리요.
* 롬 5: 8, 19 – 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19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 갈 2: 15, 17 – 15 우리는 본래 유대인이요 이방 죄인이 아니로되 17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되려 하다가 죄인으로 드러나면 그리스도께서 죄를 짓게 하는 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 딤전 1: 9, 15 – 9 알 것은 이것이니 율법은 옳은 사람을 위하여 세운 것이 아니요, 오직 불법한 자와 복종하지 아니하는 자와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과 거룩하지 아니한 자와 망령된 자와 아버지를 죽이는 자와 어머니를 죽이는 자와 살인하는 자며 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 히 7: 26 -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이라.
* 히 12: 3 -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 약 4: 8 -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 약 5: 20 - 너희가 알 것은 죄인을 미혹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그의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할 것이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임이라.
* 벧전 4: 18 -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받으면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은 어디에 서리요.
* 유 1: 15 - 이는 뭇 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하지 않은 자가 경건하지 않게 행한 모든 경건하지 않은 일과 또 경건하지 않은 죄인들이 주를 거슬러 한 모든 완악한 말로 말미암아 그들을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
"버림받은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쓴 "죄인"도 있다. 복음서에서 이 낱말은 구약의 음식 규정이나, 이방인과의 교제를 금지한 규정을 지키지 않음으로써 성전 예배가 금지된 유대인들을 가리킨다.
이러한 유대인들은 그들의 많은 동료 유대인으로부터 멸시를 받았고, 예수는 이러한 사람들과 사귄다고 많은 비난을 받았다.
* 마 9: 10, 13 – 10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13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 마 11: 19 -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 막 2: 15-17 – 15 그의 집에 앉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으니 이는 그러한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예수를 따름이러라. 16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죄인 및 세리들과 함께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세리 및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 17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 눅 5: 30 - 바리새인과 그들의 서기관들이 그 제자들을 비방하여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
* 눅 7: 34 -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너희 말이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 눅 15: 1-2 – 1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2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려 이르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죄인이라고 판정한다.
이것은 그들이 저희의 구원 받지 못한 사실을 자증(自證)하는 말이다. 실상은 저희들이 죄인이고 예수님은 절대의 의인(義人)이시건만, 그들은 이 사실을 거꾸로 인식하였다.
예수께서 죄인인 증거는 무엇인가?
하나님의 독생자께서 오셔서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증언하신 것이 죄가 되는가?
그것이 죄가 되려면, 그들은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님을 증명해야 할 것이다. 또 예수께는 정죄 받을 도덕적인 죄악이 없으셨다. 그는 참으로 정죄 받을 일이 없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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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하루도 삶이 잔잔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들은 쉽게 성내지 않고 쉽게 흥분하지 않고, 흐르는 물처럼 고요했으면 좋겠고,
괴롭고 슬픈 일이 있어도 표 내지 않고 혼자 간직하다 이내 평온해지는
그러한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즐겁고 좋은 일 많은 하루 되시길 기원합니다.💖
설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