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2. 2. 주일 큐티
에스라 6:16 ~ 22
모세의 책에 기록된 대로 진행되는 성전 봉헌과 유월절
관찰 :
1) 모세의 율법대로 행해지는 성전 봉헌식
- 16절. “이스라엘 자손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기타 사로잡혔던 자의 자손이 즐거이 하나님의 성전 봉헌식을 행하니” => 하나님의 은혜로 예루살렘 성전이 재건되었습니다. 그것을 기쁨으로 성전 봉헌식을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열 두 지파가 모두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유다와 베냐민 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또한 아니었기에, 이스라엘 전체를 상징하여 “이스라엘 자손”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을 따로 표현하고 있는 것은 이들이 제사를 수종드는 자들이고, 앞으로의 이스라엘 공동체가 지향해야 하는 것이 신앙 공동체로서 하나님 앞에서 나아가는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의 중요성을 부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타 사로잡혔던 자의 자손”은 그 동안 포로에서 귀환하여 가나안 땅으로 돌아온 이들의 새로 태어난 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 17절. “하나님의 성전 봉헌식을 행할 때에 수소 백 마리와 숫양 이백 마리와 어린 양 사백 마리를 드리고 또 이스라엘 지파의 수를 따라 숫염소 열두 마리로 이스라엘 전체를 위하여 속죄제를 드리고” => 솔로몬 성전의 봉헌식 때에는 소 22,000마리, 양 120,000마리를 제물로 사용했습니다. 그에 비하여 이 때 드린 제물은 크게 비교됩니다. 그만큼 이 때의 경제적인 상황은 솔로몬의 때와 크게 부족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드린 제물은 마치 가난한 과부가 드린 두 렙돈과 같은, 더욱 귀한 가치가 있는 최선의 제물이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속죄제를 드린 것입니다.
- 18절. “제사장을 그 분반대로, 레위 사람을 그 순차대로 세워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을 섬기게 하되 모세의 책에 기록된 대로 하게 하니라” => “제사장을 그 분반대로”는 대상 24:1 ~ 19에 의하면 제사장들은 24분반으로 나누어져서 성전 봉사를 행했습니다. 각 분반은 차례에 따라 돌아가면서 일주일씩 희생 제사의 직무를 감당했습니다. 제사장 뿐만이 아니라 레위 사람들도 24순차로 나누어서 성전을 봉사하게 했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분반과 순차가 아닐 때에는 각자가 속한 향리에서 생활했습니다(느 11:20). 예루살렘 성전이 완공됨으로 인해서 희생제물을 드리는 일이 완전히 정상적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 모든 일들이 바르게 진행되는 것은 모세의 책에 기록된 대로 하게 된 것으로 확인되는 것이었습니다. 에스라가 예루살렘에 도착하기 전부터 이들은 말씀대로 행하고자 했고, 전통을 지켰으며, 그러한 일들이 하나님이 일으키시는 부흥으로 이어지게 되었다는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2) 말씀대로 유월절을 지키다
- 19절. “사로잡혔던 자의 자손이 첫째 달 십사일에 유월절을 지키되” => 스 4:8 ~ 6:18까지 아람어로 기록된 에스라서는 본 절부터 다시 히브리어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에스라는 이 사건을 출애굽과 연관하여 설명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즉, 포로 귀환은 제2의 출애굽의 의미가 있다는 해석입니다. 출애굽 사건을 기념하는 유월절이 이들에게 얼마나 의미있게 다가온 일이었던 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 20절.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일제히 몸을 정결하게 하여 다 정결하매 사로잡혔던 자들의 모든 자손과 자기 형제 제사장들과 자기를 위하여 유월절 양을 잡으니” => 온전한 유월절을 위해서 강조되고 있는 것은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자신의 몸을 정결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들이 대표가 되는 이들이기 때문에 그렇게 정결함을 유지하고, 또 정결예법에 의해서 자신들의 몸을 깨끗하게 해야 했던 것입니다. 원래 유월절 양을 잡는 것은 한 가정의 가장에 의해서 실시된 일이었습니다(대하 30:17). 그러나 히스기야 시절에 백성들의 부정으로 인해서 레위인들이 그들을 대신하여 양을 잡은 이후로는(대하 30:16, 17), 레위인들이 유월절 양을 잡는 것이 하나의 관례가 되었습니다(대하 35:10 ~ 12). 이들은 자기 자신들 뿐만이 아니라 이스라엘 다른 모든 자손과 형제들을 위하여 유월절 양을 잡았습니다.
- 21절. “사로잡혔다가 돌아온 이스라엘 자손과 자기 땅에 사는 이방 사람의 더러운 것으로부터 스스로를 구별한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속하여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찾는 자들이 다 먹고” => 본 절에서는 이 때의 유월절 행사에 참여한 두 그룹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사로잡혔다가 돌아온 이스라엘 자손들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원래 이방 민족이었으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서 귀환한 후에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개종한 자들입니다. 이스라엘 언약공동체는 출애굽 이후에도 이방인들이 개종하여 들어오는 것을 환영했습니다(출 12:44, 48). 유월절 양을 잡아서 이스라엘의 포로 귀환자들과 이방인 개종자들이 함께 먹었습니다. 이방인과 함께 식사하지 않는 이들이 이 때 개종자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은 유월절 행사의 절정이었습니다.
- 22절. “즐거움으로 이레 동안 무교절을 지켰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즐겁게 하시고 또 앗수르 왕의 마음을 그들에게로 돌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신 하나님의 성전 건축하는 손을 힘 있게 하도록 하셨음이었더라” => 여기에서 갑자기 등장하는 앗수르 왕. 이 때는 앗수르가 아닌 페르시아의 통치시대인데 왜 앗수르 왕이 나오는 것일까요? 그런데 공동번역 성경에서는 이 본문을 “그리고 이렛 동안 기뻐하며 무교절 축제를 지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야훼께서 다리우스 황제의 마음을 돌리셨으므로 용기를 얻어 당신의 성전을 짓게 된 일이 마냥 즐거웠던 것이다”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쉬운성경도 “그들은 칠 일 동안, 무교절을 매우 즐겁게 지켰습니다. 여호와께서 당시 앗시리아 전역을 다스렸던 페르시아 다리오 왕의 마음을 바꾸셔서, 하나님의 성전 짓는 일을 돕도록 하셨습니다”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물론 공동번역과 쉬운 성경은 의역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의역을 하게 된 이유가 있습니다. 당시 앗수르의 땅을 점령하던 제국이 페르시아이지만 그 지역의 이름은 앗수르로 불리우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앗수르의 왕이라는 표현은 비록 페르시아의 왕 다리우스이지만 페르시아의 왕으로 표현하지 않아도 통용되는 표현이었던 것입니다. 성경을 해석할 때, 이거 잘못된 거 아냐? 이러한 관점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대전제 속에서 말씀을 보아야 함을 생각하게 됩니다.
가르침 :
1) 성전을 재건한 이들의 주된 관심은 모세의 율법대로 하는 것이었습니다. 자신들의 보기에 옳은 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말씀대로 하고자 했습니다. 그것이 전통이 되고 그 전통이 또 다른 부흥을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18절을 보면 “제사장을 그 분반대로, 레위 사람을 그 순차대로 세워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을 섬기게 하되 모세의 책에 기록된 대로 하게 하니라”고 기록했습니다. 이 당시의 부흥은 이렇듯 말씀을 따르는 것으로 나옵니다. 그리고 대략 500여년이 흐른 뒤에 구약과 신약의 중간기를 끝내는 또 다른 부흥이 임하게 되는데, 그 부흥을 연 것이 바로 세례 요한의 사역입니다. 그 세례 요한이 누가복음 1:5 “유대 왕 헤롯 때에 아비야 반열에 제사장 한 사람이 있었으니 이름은 사갸랴요 그의 아내는 아론의 자손이니 이름은 엘리사벳이라”, 누가복음 1:8 ‘마침 사가랴가 그 반열의 차례대로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의 직무를 행할 새“. 다시 말하면, 스룹바벨 성전이 세워지고, 제사장의 반열의 차례대로 성전을 복무하며 묵묵히 말씀과 전통에 따르며 수종드는 하나님의 종들의 가문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는 사람으로서는 가장 큰 자가 되는 세례자 요한이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기록이 면밀히 남겨짐은 성령님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메시지가 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결국 부흥이라는 것이 새로운 것과 새로운 일로 드러나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 속에는 말씀과 전통의 바탕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의 메시지가 파격이었고, 그가 예비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역사는 완전히 혁명적이었지만,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말씀과 그 말씀을 수종드는 이들의 전통속에서 무르익는 법인 것입니다. 이들의 수고는 500여년의 시간을 통해 쉬지 않고 이어졌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열매가 결국 맺게 된 것입니다.
2) 앗수르 왕의 마음을 그들에게 돌린 것이 NIV에서는 “changing the attitude of the king of Assyria"로 나오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태도를 바꾸시는 분이시고, 그 마음의 중심이 드러나는 태도에 관심이 있으신 분이십니다.
적용 :
1) 하나님은 나의 태도가 바뀌기를 늘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태도로 언제나 맞추어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현재 대한민국의 지도자들의 태도가 바꾸어지기를 주님께 간구드립니다. 이 엉터리 같은 상황에서 제 살 길만 찾는 것이 아니라 진정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습이 드러나게 되면 정말 좋겠습니다.
2)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성전 건축하는 손을 힘 있게 하신 것처럼 주님의 몸 된 교회들을 바르게 세우고자 하는 이들의 손을 힘 있게 하여주시길 기도합니다. 오늘 주님께 중심으로 예배드리고자 하는 모든 교회에 임재해 주시고 힘주시길 간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