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환율 시대에 한국 정부의 외환 대응 능력이 시험대에 올랐다. 외환보유액뿐 아니라 외국환평형기금까지 동원하는 등 대응에 나섰다. 하지만 과거 마지노선까지 무너뜨릴 수 있는 '긴급처방' 성격으로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12월 3일 비상계엄 사태부터 14일 대통령 탄핵에 이르기까지 환율은 주식시장과 함께 가장 빠르고 크게 요동쳤다. 지난 3일 비상계엄을 선포한 직후에는 원-달러 환율이 1달러=1443.51원까지 떨어졌다. 외환당국이 진화에 나섰지만 탄핵안을 가결한 뒤인 16일에도 1435원에 거래를 마쳤다. 지난달부터 이어진 1달러=1400원대가 '뉴 노멀(새로운 표준)'로 자리 잡는 양상이다.
환율은 경제의 체력을 반영한다. 원화 약세가 경제의 펀더멘털(기초체력) 저하와 관련된다면 가볍게 볼 문제가 아니다. 게다가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이 외환위기에 취약한 점도 고려해야 한다. 원·달러 환율이 1400원을 넘은 것은 1990년 환율변동제를 도입한 이후 외환위기가 있었던 1997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있었던 2008년, 레고랜드 사태와 미국의 금리인상이 있었던 2022년 세 차례다. 그런데도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은 환율 상승에 문제가 없다고 해명해 왔다.
현재 환율 상승 리스크는 과거와 달리 복합위기인 점이 특징이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과거 1400원대 시세가 외부 변수에 따른 위기였다면 현재는 미-중 패권 경쟁과 2차 트럼프 행정부 출범이라는 외부 변수뿐 아니라 경제의 기둥인 수출이 흔들리는 데 탄핵 정국이라는 내부 변수까지 겹친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정부의 해명과 달리 외환보유액과 외국환평형기금의 대응수단이 모두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외환보유액은 지난달 말 기준 4153억 9000만달러를 기록했다. 정부가 비상계엄 사태 이후 환율 대응에 적극 나선 만큼 외환보유액이 줄었을 가능성이 크다. 외환보유액은 2021년 10월 4692억 1000만달러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한 이후 3년째 감소하고 있다.
외환보유액이 충분하면 국가 신용도가 올라가 해외 조달 비용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 외환위기까지 겪은 한국은 심리적 마지노선인 외환보유액 4000억 달러 확보에 특히 민감하다. 외환보유액이 4000억 달러를 밑돈 것은 2018년 5월이 마지막이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외환보유액이 상징성을 지닌 4000억 달러 아래로 떨어지면 외국인 투자자의 자본 유출이 빨라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기재부 관계자는 "외환보유액이 세계 9위 수준인데다 과거 외환위기와는 달리 지금은 한국이 달러 채무국이 아닌 채권자여서 우려가 크지 않다"고 말했다.
외국환평형기금을 무너뜨리는 것도 우려스럽다. 외국환평형기금은 환율이 급등락할 때 달러나 원화를 사고팔아 환율을 안정시키는 역할을 해 외환의 방파제로 불린다. 대규모 세수 부족에 빠진 지난해부터 외국환평형기금을 공공자금관리기금으로 유용해 일시적으로 부족한 세수를 충당하기도 했다. 지난해 19조원, 올해 4조~6조원의 외국환평형기금을 이런 식으로 동원했다.
기획재정부는 내년 외국환평형기금 운용 규모를 올해보다 64조 8000억원 적은 140조 3000억원으로 편성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줄어든 외국환평형기금 규모라도 환율 변동에 대응하는 데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지난해 결산보고서에서 외국환평형기금의 재원 활용에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