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료공동화장실이 있던 그 시절,
그 때를 아십니까?
70년대, 국민학생(지금은 초등학교지만ᆢ)때다.
반월당에서 이모님이 장사하시는 봉덕시장까지 놀러가곤 했었다.
놀러를 가면 봉덕시장 이모님가게나 이모님 가족이 사는 시장안 공동주택(2층에 중간통로 양편으로 방들과 그에 딸린 각각의 연탄부엌, 그리고 공동수도가 있는 그런 공동주거시설이었다.)에서 이종사촌형이나 동생들과
놀곤 했었다.
놀다가 소변이 급하면,
요강이나 수돗가에서 해결하곤 했다.
그런데 대변을 봐야되면 시장공동변소에 가곤했는데,
그 공동변소 문앞에는 변소를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돈을 받는 아주머니가 있었다.
그래선지 시장에서 일하거나 사는 사람들은 소변이건 대변이건
많이 참는 듯 보였다.
그렇지만 그래도 생리현상인지라,
어쩔수가 없었는지,
이모가게뿐 아니라,
시장대부분의 가게에는 한쪽 구석에는 박스나 물건으로 가린 공간안에 요강단지가 있곤 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황당하지만
그땐 그랬다.
좀전 주문받은 만두와 찐빵을 찌는 동안, 소변이 급해 엉거주춤한 자세로 묘하게 부산(?)을 떨며 타이머만 보고 있었다.
그러자 사러오신 손님이
"사장님 어데 아픕니꺼?" 라는 소릴,
그래서 차마 화장실이 급하단
소릴할 순 없고해서
"언지예."라니까,
눈치를 꼽았는지,
"혹시 화장실 급하마 갔다오이소.
자꼬 참으마, 빙남니더. 여어 기다리고 있으끼예. 갔다 오이소." 란다.
그에 바로
"예, 그라마 쫌ᆢ" 이란 소리와 함께 빛의 속도로 화장실을 다녀와서
손을 씻고, 만두, 찐빵을 포장해 드렸다.
손님에 화장실 참으면 병된단 소리에
약 50년전 한푼이라도 아끼려 소변대변을 참던 시장상인들,
그리고 그 틈에서도 화장실이용료를 받으며 수입을 챙기던 유료공동화장실 주인이 생각났다.
참아야 하느니라가 무조건 능사는 아니다. 묵고 싸고 잘 자는게 만수무강에 지름길이요, 장땡이다.
-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