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과 김정은의 개입을 부르려는 제2의 黃嗣永帛書 사건? '프란치스코 교황 방북'이란 유령이 아직도 배회하고 있다!
* 교황 곁에 있는 유흥식 추기경이 지속적으로 방북설을 띄우는데 교황이 김정은에게 초청을 구걸하는 인상까지 주고 있다.
* 교황과 김정은의 개입을 부르려는 제2의 黃嗣永帛書 사건?
* 은퇴 추기경: "프란치스코 교황은 공산주의에 호의적이라 잘 속는다."
* 문재인과 어용방송이 일으킨 두 차례 교황방북 대소동 내막
黃嗣永帛書 사건을 생각한다
작년 대전교구 박주환 신부는 페이스북에 윤(尹) 대통령 부부가 비행기에서 추락하는 이미지를 게시하고 어린아이가 두 손 모아 기도하는 모습을 합성하여 올렸는데 천주교는 정직 처분만 내렸다. 세속권력과 교황권의 오랜 싸움에서 정리된 하나의 약속이 있다면 정치와 종교의 분리이고, 이 대원칙에 비추어 교황에 복종하는 사제가 합법적으로 선출된 국가 원수에 대하여 이런 식의 저주를 해선 안된다는 것은 상식이며, 이를 방치하면 외교문제로 삼아야 한다. 한국 정부는 윤석열 타도를 외치고 다니는 신부들에 대한 교회법적 검토를 한 뒤 인사 조치를 바티칸에 요구해야 할 권한과 의무가 있다. 모든 외교의 궁극적 전략은 상대국의 권력핵심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인데 그렇게 하려면 윤석열 대통령은 바티칸 시국(市國) 교황청에 파견되는 한국대사를 천주교 편이 아닌 '대한민국 사람'으로 임명해야 할 것이다.
자칭 정의구현사제단을 비호하는 한국 천주교와 교황청에 대하여 국민들이 갖는 상식적은 의문은, 김일성 세력과 대한민국이 생존투쟁을 벌이고 있는 한반도에서 천주교는 누구 편이냐 하는 것이다. 세계 천주교가 세계적 문제인 북한인권문제에 대하여 조직적으로 침묵하는 것 하나만으로도 어느 편에 서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지만 이런 의심은 천주교인 전체에 대한 것이 아니라 신부, 주교, 추기경, 교황으로 올라가는 지도부에 대한 의문이다. 천주교는 군대처럼 확실한 명령계통을 유지하므로 자연히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향하는 의문이기도 하다.
조선조 말기인 19세기에 천주교가 박해를 받아 약1만 명의 신도와 신부들이 희생된 이유 중의 하나는 사대주의적 반역세력으로 낙인 찍혔기 때문이다. 교황의 권위와 중국의 영향력과 외세의 무력을 끌어들여 조선 왕조를 압박, 천주교 탄압을 중단시켜 보려 한 1801년의 황사영백서(黃嗣永帛書) 사건과, 교황의 권위와 김정은의 핵무력을 끌어들여 대한민국을 압박하려는 시도는 닮은 점이 있다. 다른 점도 있다. 황사영은 탄압 받는 천주교도들을 위한 자구책(自救策)으로 그렇게 한 것이지만, 교황방북 추진세력은 종교의 자유를 마음껏 누리면서 교황의 권위를 악용하고, 종교말살의 원흉 김정은에게 의지하려 한다는 점일 것이다.
張勉 총리의 수도원 피신
대원군 집권시기의 무자비한 학살로 세가 꺾인 천주교는 그 뒤 권력에 도전하는 행위를 삼가했고 독립운동에서도 멀어졌으며 역사 흐름의 주도권은 개신교로 넘어갔다. 천주교는 대한민국 건국 후 이승만 정부 때는 야당 편으로 인식되었다. 장면(張勉)과 경향신문을 중심으로 反정부 투쟁을 하기도 했다. 1961년 5월16일의 군사 쿠데타를 만난 장면 총리가 미국 대사관 관할지역으로 피신하려 했다가 실패, 카르멜 수도원으로 들어가서 연락두절이 됨으로써 진압작전을 펼 수 없게 만든 것을 천주교의 사대주의적 성격과 연관시키려는 이들도 있지만 그는 반공주의자였다.
1970년대부터 천주교는 김수환(金壽煥) 추기경의 지도 아래 민주화 운동에 적극 참여, 교세와 권위를 확대해갔다. 1987년의 직선제 개헌 전후에 운동권에 김일성주의 세력이 침투, 주도권을 잡아가던 시절 천주교 안에서도 자칭 정의구현 사제단과 같은 종북세력이 反국가적 활동에 나서고 이에 대한 일반 신도들과 상식적 국민들의 반감이 천주교의 고민꺼리인 냉담자들을 양산하고 있다.
천주교 내외에서 축적되고 있는 불안의 핵심은 천주교 지휘부가 대한민국 편이 아니라 김정은 편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다. 이는 천주교 박해를 부른 조선조 조정과 민심의 불만을 연상시킨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레이건 미국 대통령 및 대처 영국 수상과 손잡고 일종의 신성동맹을 맺어 소련 공산제국을 무너뜨린 것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사람들은 한국 천주교의 정체성 변화에 경악하고 있을 것이다.
비오 12세의 경고
지난 200년 사이 천주교 신부와 신도들이 가장 많이 학살된 두 곳을 꼽으라면 19세기의 조선과 20세기의 스페인이다. 스페인 내전 때 공산주의자들이 주도한 공화파가 천주교도들을 학살한 실상은, 헤밍웨이 같은 反프랑코(親공화파) 지식인들의 활약으로 묻혔다. 이 무렵(1937년) 교황 비오 12세가 발표한 'DIVINI REDEMPTORIS(구세주이신 하느님)'이란 제목의 교서는 공산주의 무신론에 대한 가장 철학적인, 그래서 가장 본질적인 비판인데 몇 구절은 오늘의 한국 천주교와 교황청에서 주도권을 잡은 것으로 보이는 "무조건적 평화주의자들"에 대한 경고로 읽힌다.
"공산주의 지도자들은, 평화를 갈망하는 세계적인 열망을 눈치채고는 즉시 사해(四海)동포애 운동에 자기네가 가장 열렬한 지지자요 선전가들인 것처럼 꾸며댄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계급 투쟁을 유발하여 피의 강을 흐르게 만들며, 체제 전복의 원리는 한치도 양보하지 않으면서 이른바 인도주의나 자선분야에 협력해 달라고 가톨릭 인사들을 초치하고 있다. 때로는 그리스도교 정신과 교회의 교리에 전적으로 합치된 제안까지도 한다. 경애하는 형제 여러분, 신자들이 그 술책에 기만 당하지 않도록 감독하기 바란다. 공산주의는 근본적으로 틀렸으며, 그리스도교 문명을 수호하는 이는 그 누구도 어느 형태로든 공산주의와 협력해서는 안된다. 공산주의에 기만당하여 공산주의가 자기 나라에서 승리를 거두게 조작하는 사람들은 그가 누구든지 간에 첫 번째 희생자가 될 것이다. 그리스도교 문명이 오래 되고 위대한 지역일수록 공산주의가 일단 침투하는 데 성공하고 나면 악인들이 휘두르는 증오도 훨씬 무서운 황폐를 가져올 것이다. 그러나 본인은 어둠의 자식들이 유물론적이고 무신론적인 선전물로써 밤낮으로 사주하는 그 광분이 결국 빛의 아들들을 충동하여 지존의 영광을 위하여 똑같은 열성, 아니 그보다 큰 열성으로 임하게 만드는 성스러운 목적에 이바지하게 되리라는 굳은 희망을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다."
이승만(李承晩)도 1941년 일본제국 해군의 진주만 공격 직전에 미국에서 펴낸 "일본의 내막(Japan Inside Out)"이란 책에서 "무조건적 평화주의자는 결과적으로 간첩과 같다"고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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