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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개심(白開心)의 농간(弄奸)
나구 형제는 소어아가 밖을 향하는 것을 보자 당황하여 입을 열
었다.
"형씨, 형씨께서는 오늘밤 여기서 주무시지 않겠습니까?"
소어아는 문 앞에 당도하여 뒤로 돌아서며 싱긋 웃었다.
"그 위엔 거미가 있어 잠이 잘 오지 않을 것 같군요. 그러니 내
일 오지요. 만약 강옥랑의 소식을 들으면 저에게 연락해주는 것을
잊지 마십시요."
그는 말을 마치자 성큼성큼 걸어나가버렸다.
나구는 사라져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거미? 거미...... 네가 보기엔 저 녀석이 좀 이상하다고 생각
하지 않느냐?"
나삼이 그의 말에 응답했다.
"좌우지간 매우 조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잘못하다가는 그를
이용하기는 커녕 도리어 우리가 이용만 당하고 말지도 모르니까
요."
"저 녀석이 설혹 머리 위에서부터 발끝까지 모두 나쁜 생각만
하고 있다 할지라도 설마 우리보다 더 하겠느냐?"
"하하, 천하에 악인이 많다 하지만 과연 우리를 따를 수 있는
자가 어디 있단 말이오?"
밤은 점점 깊어 갔다. 길거리는 사람의 종적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한적했고 소어아는 이리저리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녔다.
한참을 돌아다닌 그는 다시 나구 형제의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등불이 완전히 꺼진 것을 확인한 후 지붕 위로 몸을 솟구쳐 올라
가더니 어둠침침한 곳에 몸을 숨겼다.
하늘에는 달빛이 영롱했고 별빛이 반짝거리고 있었으며, 대지는
더없이 조용하기만 했다.
지붕 위에 숨어 있는 소어아는 다락의 창문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다락의 창문은 반쯤 열려있었고 그 사이로 넋을 잃고 멍
하니 앉아 있는 모용구매의 모습이 보였다.
차를 두어 잔 마실 시간이 지났을 때 돌연 옷자락이 바람에 스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한 흑의인이 소어아가 숨어 있는 이층집
지붕 위로 사뿐히 올라섰다. 그리고는 그도 지붕 위에 몸을 눕히
고 모용구매가 있는 다락을 유심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소어아는 속으로 웃었다.
(과연 내 예측대로 왔구나!)
그는 조용히 엎드려 뭔가를 멍하니 생각하고 있는 모용구매를
바라볼 뿐 옆에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였
다.
평상시에는 그토록 예리하던 눈빛이 지금은 마치 안개가 덮힌
듯 애수에 젖은 눈동자 같았다. 별빛 아래 그의 모습은 더없이 쓸
쓸하게만 보였다.
이때 소어아가 웃음을 터뜨렸다.
"이토록 별빛 찬란한 밤에 너는 무얼하러 여기 왔느냐?"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흑 지주는 이미 그의 앞에 우뚝 서
놀라움이 가득찬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넌 누구냐?"
"여기 있을 사람이 나 밖에 또 누가 있느냐?"
흑 지주의 눈빛이 칼날 같이 날카로와졌다. 한참 동안 소어아를
노려보던 그는 맥이 풀린 듯 입을 열었다.
"또 너로구나!"
"너와 그녀 사이는 다섯 장에 불과한데 왜 달려가서 만나지 않
느냐?"
"난...... 나는 그녀 때문에 온 것이 아니야!"
그는 말은 이렇게 했지만 음성은 매우 부자연스러웠다.
"그녀를 위해서가 아니라면 누구 때문에 이렇게 늦은 야밤을 무
릅쓰고 왔느냐?"
"물론 그 나씨 형제 때문이지."
"그래?"
"그들 형제는 신분이 확실치 않을 뿐만 아니라 행동 또한 수상
했어. 내가 십 개월 이상이나 그들의 뒤를 밟은 것은 그들의 비밀
을 캐내려는 것이야!"
소어아는 그의 말에 관심이 없다는 듯 아무렇지도 않게 물었다.
"그것이 너와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이냐?"
"흑 지주가 남의 일에 참견을 잘한다는 것은 이미 천하에 알려
진 사실이 아니냐?"
"저 나구 형제의 일이 네가 참견할 정도의 가치가 있단 말이
지?"
"그들 형제의 목적이 얼마나 엄청난지를 말한다면 너는 아마 놀
라 까무러칠 걸."
"그래?"
"그들 형제는 강호의 흑백양도를 막론하고 선량한 사람이든 악
한 사람이든 모두를 해치려고 하고 있어. 그들은 천하 무예계의
인물들이 서로 혈투를 벌이게 하는 것이 목적이야. 그래야만 그들
이 그 틈을 타서 이익을 볼 수 있으니까. 지금까지만 해도 그들에
게 당한 자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아."
"그래!"
"너는 이 개월 전 발해방과 황해방 사이에 크나큰 싸움이 벌어
졌던 일을 알고 있느냐? 일 개월 전 노산방과 쾌도문의 격투는?
피비린내 나는 대혈전은 모두 그들 형제가 일으킨 것이다."
"너는 왜 그들을 없애지 않았지?"
"우선 증거를 내놓을 수가 없었고, 또 사실 그들이 해친 자들도
결코 좋은 놈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아직까지 그냥 지켜보기만 할
뿐이야."
"너는 그들이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처음에 나는 그들이 십대악인이 아닌가 했어. 하지만 나중
엔......."
흑 지주는 갑자기 말을 멈추었다.
"나중엔 어떻게 됐단 말이냐?"
소어아는 다그쳐 물었다.
흑 지주는 그의 재촉을 받자 그제서야 다시 입을 열었다.
"십대악인을 상세히 조사한 후에야 십대악인 중엔 그들 두 사람
이 없다는 것을 알았지."
"그렇다면 확실히 너는 저 소녀를 위해서 이곳에 온 것은 아니
겠구나?"
흑 지주는 한참이나 망서리더니 우물거렸다.
"완전히...... 관련이 없다고 할 수도 없지!"
"그녀가 누구인지는 알고 있느냐?"
"몰라. 나는 다만 그녀가 불쌍한 소녀라는 것을 알 뿐이다. 악
당들의 손에 빠져있으니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를 보호하겠단 말인가?"
"......."
"그렇다면 왜 그녀를 구해내지 않지?"
빛이 도사렸던 흑 지주의 눈은 이 말이 떨어지자 갑자기 암담해
졌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태연한 척하고 한바탕 호탕하게 웃었
다.
"하하하, 만약 그녀를 구해낸다면 데리고 다니기라도 하란 말인
가?"
"그녀가 따라다니는 것이 뭐가 나쁘냐?"
흑 지주는 이 말을 듣자 침울하게 말했다.
"너는 내가 어떠한 생활을 하고 있는지 아느냐? 나는 일정한 거
처도 없고, 한 끼니를 먹고 나면 또 한 끼니를 어디서 먹어야 될
지도 모르는 팔자야. 비록 오늘밤은 살고 있지만 내일은 햇살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르고 게다가 죽고 나서도 어디에 파묻힐지조차
몰라. 그런 내가 어떻게 그녀를 데리고 다닐 수 있단 말이냐?"
"그러나 너의 실력으로 편안히 살 수도 있잖아?"
"나는 이미 이러한 생활을 선택했으니 이대로 지낼 수밖에 없
어. 지금은 심지어 고치려해도 고칠 수가 없구나...... 설사 내
자신이 이런 생활을 계속하고 싶지 않다해도 이젠 다른 사람들이
허락하지 않는다......."
이렇게 말한 그는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울부짖는 음성으로 원망
스러운 듯 말했다.
"이런 내가 어찌 그녀와 함께 지낼 수 있단 말이냐?"
"하지만 네가 그녀를 좋아하고, 그녀가 너를 좋아한다면 설사
생활이 좀 고생스럽다 하더라도 뭐 그리 대수로운 일이 되겠느
냐!"
소어아의 이런 말을 듣자 흑 지주는 처량한 눈빛을 하며 스스로
에게 타이르듯 말을 했다.
"누가 저 여인을 좋아한다고 했느냐? 나 같은 사람은 아무도 좋
아할 자격이 없다! 설사......."
소어아는 그의 말을 가로챘다.
"넌 그녀를 좋아하면서도 왜 마음 속 깊이 감춘단 말인가?"
흑 지주는 그의 시선을 바라볼 용기가 없는 듯 고개를 돌렸다.
"나불대지 마라."
"나는 이제껏 네가 냉혈동물이라 생각했었는데 이제야...... 이
제야 비로소 네가 따뜻한 사람이라고 생각되는구나!"
흑 지주는 몸을 일으키며 소리쳤다.
"어린 나이에 네가 뭐 안다고 떠드느냐? 입 닥쳐라."
"왜 그렇게 화를 내지? 너의 진심을 좀 말했다 해서 그렇게 역
정을 낼 것까지는 없지 않느냐?"
흑 지주는 한참이나 그를 노려보더니 껄껄 웃으며 그의 손을 잡
아 당겼다.
"며칠 전, 친구를 한 명 새로 사귀었는데 그는 오늘밤 나에게
술과 고기를 대접하겠다고 했다. 시간이 됐으니 같이 가보는 것이
어떻겠나?"
"좋다! 너의 친구가 될 자격이 있는 정도의 사람이라면 아마 매
우 재미있는 녀석일 것이다."
두 사람은 허공에다 몸을 솟구쳐 지붕 위에서 내려오더니 달려
가기 시작했다.
소어아는 흑 지주의 뒤를 바싹 쫓아 한참을 달렸다.
흑 지주는 고개를 돌리며 웃음띤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 동안 무공이 상당히 발전했구나."
"너도 칭찬하는 말을 다 할줄 아는구나."
흑 지주는 그의 비웃음에 대꾸하지 않고 화제를 바꾸었다.
"이번에 사귄 그 친구는 문학적으로나 무공으로나 일가를 이루
고 있다. 너도 아마 그를 만나면 좋아하게 될 거야."
"그래? 이름이 꽤 알려진 인물인 모양이지?"
"그의 성은 고가고 이름은 월언이라 한다. 비록 유명한 사람은
아니지만 유명한 사람들보다 몇십 배 몇백 배 이상의 실력을 지니
고 있지."
그들이 말을 주고 받는 동안 이미 성을 벗어났다. 얼마를 더 달
려가자 앞으로 울창한 수풀이 드러났다. 그 수풀 속에 희미한 불
빛이 얼핏 보였으며 가까이 다가간 소어아는 그 불빛이 황폐되어
버린 사당에서 흘러나오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그곳에 당도한 그들은 향긋한 고기향내를 맡을 수가 있었다.
소어아가 먼저 입을 열었다.
"보아하니 너의 친구는 비단 문학과 무술에 능통할 뿐만 아니라
요리도 잘하는 모양이다."
"강호를 방랑하는 사람들이 가끔 배불리 먹는 것 외에 또 무슨
낙이 있겠나?"
그들은 사당 안으로 들어섰다. 사당의 마당 한 가운데는 한 뭉
치의 불이 피워져 있었고 그 위에 큰 냄비 하나가 놓여 있었다.
고기향기는 바로 그 냄비 속에서 풍겨나오는 것이었고, 냄비 옆에
는 그릇과 젓가락들이 모두 준비되어 있었으며 술도 놓여 있었다.
그러나 어떻게 된 일인지 사람은 보이지를 않았다.
흑 지주는 사방을 두루 둘러보더니 큰소리로 외쳤다.
"고아우!... 고아우! 친구를 하나 소개해 주겠다. 빨리 나와 인
사를 나누어라!"
소어아는 그의 말을 듣자 속으로 웃음을 금치 못했다.
(보아하니 이 자는 형님을 하고 싶어하는 성질을 아직도 버리지
못했구나.)
흑 지주가 한참을 외쳤지만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
는 사당밖으로 나가 고월언을 한참이나 찾아 헤맸다. 그러나 한참
후 그는 사당 안으로 다시 들어오며 미안한 듯한 얼굴로 소어아에
게 말을 던졌다.
"고아우는 활발한 성격의 소유자라서 한 자리에 오랫동안 앉아
있는 성질이 아니야. 아마 어디 놀러나간 모양이다. 그러니 우리
가 먼저 먹고 보자꾸나!"
소어아는 벌써부터 젓가락을 들고 있었으며 그의 말을 듣자 웃
음띤 얼굴로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오랜만에 내 맘에 드는 말을 했구나!"
그는 흑 지주와 함께 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고기 한 조각을 입에 넣더니 바로 젓가락을 놓아버
렸다. 흑 지주는 코까지 두건을 걷어올리고 이미 십여 토막의 고
기를 먹고 그릇에 담긴 술을 따라 마셨다.
그는 그제서야 소어아가 고기를 먹고 있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
고 웃으며 말했다.
"고기가 연하고 맛도 좋은데 왜 먹지 않는 거지?"
소어아는 씹고있던 고기를 내뱉으며 입을 열었다.
"이 고기는 먹을 것이 못 돼!"
이 말을 들은 흑 지주는 놀라움이 가득찬 음성으로 급히 물었
다.
"어째서 먹을 만한 것이 못 된다는 것이냐?"
"너는 이 고기가 무슨 고기인줄 아느냐?"
"무슨 고기냐? 사람의 고기라도 된단 말이냐?"
"그렇다. 바로 사람의 고기다!"
이 말을 들은 흑 지주는 놀라운 비명을 지르며 입에 들었던 고
기를 재빨리 내뱉었다.
"뭐라고 했지?"
"내 말은 이 고기가 사람의 고기라는 말이다. 절대로 틀리지 않
을 거다!"
"네가...... 네가 그걸 어떻게 알지?"
"세 살 때부터 사람의 고기를 맛보았으니 그 맛을 모를 리가 없
지!"
흑 지주는 또 한 번 놀랐다.
"네가 세 살 때부터 사람의 고기를 먹었단 말이냐?"
"솔직히 말해 주지. 나는 악인곡에서 자랐어. 그렇기 때문에 이
것이 사람의 고기라는 것을 알 수 있지. 만약 이 고기가 금방 죽
은 사람의 몸에서 잘라낸 것이 아니라면 내가 내 코를 먹겠다!"
이렇게 말한 소어아는 흑 지주가 먹었던 고기들을 모두 토하기
를 기다렸다. 그러나 흑 지주는 토하기는 커녕 도리어 껄껄 웃었
다.
"그렇다면 이 고기를 삶은 자는 이대취 아닌가?"
"혹시 그럴지도 모르지."
"응! 그래! 고월(古月)을 합하면 호(胡)자가 되고...... 고월언
(古月言)은 호설(胡說 : 개나발)이 되겠구나! 그는 벌써부터 나에
게 자기가 개나발을 불고 있다고 가르쳐 주었는데, 나는 이제야
비로소 그 점을 발견했구나!"
"구역질이 나지 않느냐?"
"이미 먹은 이상 구역질이 난다고 토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나?"
"그래도 웃음이 나오나?"
"이대취와 같은 사람을 친구로 사귄다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야.
좋든 나쁘든 그래도 그는 강호에 이름을 떨친 사람이었으니 말이
다. 더욱이 그와 같은 인물도 드물지 않느냐?"
소어아는 속으로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 녀석은 정말 호탕하구나. 절대로 구역질나게 연극하지 않으
니 말이다.)
"그러나 그 호설 선생은 이대취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건 또 무슨 말이냐? 이대취가 아니면 누구란 말이냐?"
"또하나 그럴만한 사람이 있다. 이대취를 흉내내어 너로 하여금
사람의 고기를 먹게하고 오직 토하는 것을 볼 목적으로 말이다.
그는 너를 골탕 먹이고 흥겨움을 느끼려는 것이지......."
소어아는 갑자기 말을 멈추더니 다시 낮은 음성으로 말을 이었
다.
"혹시 너를 토하게 할 목적 외에 또다른 음모가 있을런지도 모
른다!"
이때 흑 지주는 재빨리 코까지 올렸던 두건을 내리며 차디찬 음
성으로 외쳤다.
"밖에 계신 친구! 이곳까지 왔는데 왜 들어오지 않는 것이오?"
소어아의 귀도 밝았지만 흑 지주 귀 또한 보통이 아니었다.
그의 말이 완전히 끝나기도 전에 사당 밖에서 이미 한 인영(人
影)이 날아 들어왔다.
번쩍거리는 불빛이 그 사람의 날씬한 몸매를 비추었다. 그 사람
은 불 같이 빨간 옷을 걸치고 있었고, 날카로운 빛이 반짝거리는
두 눈에는 살기가 가득차 있었다.
그녀는 놀랍게도 소선녀였다.
깊은 밤, 소선녀가 이토록 황막한 사당을 찾아오자 소어아로서
도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지만 겉으로는 여전히 태연하게 앉아 있
었다.
흑 지주는 젊은 여자가 달려들어올 것이라곤 생각지 못한 듯 너
무나 깜짝 놀라 넋을 잃고 있었다.
그녀는 장검을 번쩍거리더니 검끝으로 냄비를 젖혀 올려 땅바닥
에 내팽개쳤다. 고기가 땅바닥에 흩어지며 그 속에서 금비녀가 하
나 나타났다.
그 비녀를 본 소선녀는 즉시 놀라움의 비명을 터뜨렸다. 그러자
사당 밖에서 또 한 인영(人影)이 황급히 날아 들어왔다. 그는 다
름아닌 고인옥이었다.
소선녀는 그의 품으로 달려 들어가 울부짖는 음성으로 더듬거렸
다.
"완아의 금비녀가...... 완아의 금비녀가 냄비 속에 있다."
고인옥은 큰 눈을 부릅뜨고 소어아를 노려보며 사나운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너...... 너도 사람이라 할 수 있느냐?"
소어아는 그들이 자기를 알아 보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기에 태
연하게 웃음띤 얼굴로 말을 받았다.
"나도 당신들과 똑같이 생겼는데 왜 사람이라 할 수가 없소?"
"저 냄비 속에 들어 있는 것이 무엇인지 말해 보아라."
소어아는 계집애 같이 수줍음을 타는 고인옥이 이토록 흉악하게
말을 할 줄은 몰랐다. 그가 극도로 화가 나 있는 것으로 보아 다
만 살해된 자가 그들과 매우 친한 관계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소어아는 그들이 어떻게 이곳까지 찾아왔는지, 또 어떻
게 냄비 속에 금비녀가 있는 것을 알고 있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가슴속에 가득한 의아심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웃음띤 얼굴로 입을 열었다.
"당신이 보기엔 저 냄비 속에 뭐가 들었을 것 같소?"
고인옥은 이 말을 듣자 얼굴색이 빨갛게 타올랐으며 전혀 입을
열지 못했다.
이때 갑자기 한 가닥의 음성이 들려왔다.
"세상에서 먹을 수 있는 고기 종류가 매우 많은데 두 분께서는
왜 하필이면 사람의 고기를 즐깁니까? 동류끼리 이렇게 잡아 먹으
면 두 분이 짐승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그 음성은 분명히 사람을 욕하고 있으면서도 전혀 더러운 말을
쓰지 않고 매우 평온한 감이 깃들어 있어 마치 다정한 친구에게
이야기를 하는 듯 했다.
두 사람이 천천히 사당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 눈에는 비록 노
여움이 가득찼으나 표정은 여전히 태연한 것이 바로 그 남궁유와
진검이었다.
소어아는 여전히 표정을 바꾸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비록 나보고 사람을 먹는다고 탓하지만 어떻게 내가 이곳에서
사람 고기를 먹고 있는 것을 알았소? 혹시 누구에게 밀고를 받은
것이 아니오?"
진검이 그의 말에 응답하기도 전에 소선녀가 이미 발을 구르며
소리쳤다.
"당연히 밀고한 자가 있었지! 이런 하늘이 용서치 못할 일을 저
지르고 있으니 그 누가 너희들을 용서할 수 있단 말이냐!"
남궁유가 뒤를 이어 차분히 입을 열었다.
"완아 같은 총명하고 귀여운 소녀를 이렇게 하다니 참으로 유감
이오."
일이 이쯤 되었는데도 그는 여전히 평온한 음성으로 말할 수가
있었다.
소선녀는 더 참지 못하고 큰소리로 외쳤다.
"이런 놈들과 무슨 말이 더 필요 하겠습니까?......."
남궁유가 그녀를 말리며 차분히 말했다.
"일이 이쯤 되었는데 두 분께서는 무슨 할 말이 있습니까?"
소어아가 대답했다.
"일이 이쯤되었으니 말하는 것과 안하는 것이 별 차이가 없겠군
요."
이때 흑 지주가 갑자기 몸을 일으키며 사나운 음성으로 소리쳤
다.
"불초는 아직도 할 말이 있소이다......."
갑자기 진검의 눈에서 빛이 번쩍거렸다. 그러더니 의아심이 가
득찬 음성으로 물었다.
"댁은 혹시 흑 지주가 아닙니까?"
흑 지주는 급히 응답했다.
"바로 내가 흑 지주요."
진검은 눈썹을 잔뜩 찌푸리며 다시 말을 이었다.
"보아하니 강호의 소문은 결코 믿을 것이 못되는군요. 흑 지주
가 당신 같은 인물일줄이야 미처 몰랐소."
"강호의 소문도 비록 믿을 것이 못되지만 밀고자의 말은 더욱
믿을 것이 못됩니다. 내 말을 한 번 들어 보십시오. 우리가 만약
친히 고기를 삶은 자라면 어떻게 냄비 속에 금비녀가 들어있는 것
을 모르고 있겠습니까?"
그 말을 들은 진검과 남궁유는 서로 잠시 바라보더니 먼저 남궁
유가 차분히 가라앉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댁의 말씀은 다른 사람이 죄를 뒤집어 씌운 것이라는 뜻입니
까?"
"당연히 그렇소!"
남궁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리 있는 말씀이군요."
이때 소선녀가 발을 굴리며 끼어들었다.
"남궁 오빠! 설사 오빠는 이 자들을 놓아준다 해도 저는 이 자
들을 놓아줄 수가 없어요. 그 밀고한 자가 정말로 이들이 사람을
죽이고 고기를 삶은 것을 보고 알려줬을 가능성이 없단 말입니
까?"
남궁유는 여전히 차분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그녀의 말에 응답
했다.
"당연히 그럴 가능성도 있지."
소선녀가 다시 큰소리로 외쳤다.
"완아를 이렇게 했으니 구매(九妹)도 당연히...... 당연
히......."
그녀의 음성은 갑자기 신음소리로 변했고 더이상 말을 잇지도
못했다.
진검은 날카로운 눈으로 소어아와 흑 지주를 바라보며 말을 걸
어왔다.
"이 일은 비로 석연찮은 점이 없지는 않으나 두 분이 무죄란 증
거를 내놓지 못한다면 우리를 따라가는 수밖에 없을 것 같소."
흑 지주는 그의 말에 냉소를 터뜨렸다.
"흥! 귀하의 말씀은 참으로 겸손하군요. 우리를 데려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귀하께서도 우리에게 증거를 보여 주어야
하겠습니다."
소선녀가 또 노여움이 가득찬 음성으로 끼어들었다.
"이 금비녀가 증거가 아니란 말인가? 너희들이 이래도 잡아뗄
속셈이냐?"
흑 지주가 두 눈을 부릅뜨고 무엇인가를 말하려는 찰나 소어아
가 껄껄 웃으며 불쑥 끼어들었다.
"내가 언제 잡아 뗀 적이 있느냐?"
일검을 뿜어내려던 소선녀는 그의 말을 듣자 멈칫하며 놀라움이
가득찬 음성으로 다그쳐 물었다.
"그럼 네가 시인하겠단 말이지?"
"사람 고기를 먹는 것은 그리 대수로운 일도 아니다!"
흑 지주는 소어아의 말을 듣자 마치 말채찍에라도 일격을 맞은
듯 깜짝 놀라며 소어아에게 외쳤다.
"넌 지금 뭐라고 했지?"
소어아는 그의 말에는 대꾸도 않은 채 웃음띤 얼굴로 소선녀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소저가 말한 그 구매란 소저는 눈이 크고 얼굴이 창백하며 나
이는 약 십팔구 세 되는 녹색 옷을 걸친 소녀가 아니오?"
이 말을 들은 소선녀는 떨며 말도 제대로 하지 못 했다.
"네...... 네...... 네가 그녀를 어떻게 했지?"
소어아는 깔깔 웃었다.
"하하! 내가 그녀를 어떻게 했는지 말을 할 필요가 있을까?"
이 말을 들은 흑 지주는 크게 당황했다.
"네 녀석이 미쳤느냐? 함부로 거짓말을 지껄이니 말이다."
"그것이 뭐가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그렇게 두려워하는 것이
지?"
소어아는 도리어 흑 지주를 나무랐다. 남궁유와 진검이 아무리
침착한 사람들이라 해도 이 말을 듣고는 얼굴색이 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소선녀는 더욱 팔짝 팔짝 뛰며 슬픔이 가득 찬 음성으로 대들
듯 말했다.
"오빠들도 들었죠...... 그 자신도 시인했어요!"
그녀는 울부짖으면서 재빨리 검을 휘둘렀다. 독사 같은 일검이
뿜어 나왔다. 그녀의 옆에 있던 고인옥은 더욱 대노하여 대갈일성
을 치면서 삼 초의 권법을 악랄하게 뿜어냈다.
그 삼 초의 권법과 일 초의 검법은 모두 소어아의 급소를 향하
고 있었다.
검은 번개 같았고 권(拳)은 우뢰 같았다.
소어아는 실로 절대절명의 위기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정말
목숨이 경각지간에 달린 순간이었다.
첫댓글 즐감~!
즐감 하고 갑니다.
좋아좋아
감사
감사 합니다..
감사.. 감사.. 잘 읽었습니다.
잘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