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기 찾기 작전
남영은
벌써 10년도 더 된 일이다.
어느 날, 오 선생님이 급히 나를 찾아오셨다.
어제 수업시간 중에 한 학생의 휴대전화기가 울리는 일이 있었고. 학생은 자신의 부주의에 대해 사과했으며, 전화기를 제출한 후 다음날에 돌려받기로 한 일이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오늘 출근해서 보니 서랍 속에 넣어둔 물건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참 난감한 일이었다. 어찌 된 일인가. 있던 것이 없어졌다면 누구든 가져갔다는 뜻이다.
나는 이 당혹스러운 일을 오 선생님과 함께 해결해 보기로 했다.
일단은 휴대전화기의 주인인 경수(가명)를 불러 이 황당한 상황을 말해 주었다. 그는 할 말을 잃고 머리만 긁어댔다.
제3의 누군가가 손을 댔다는 사실에 우리는 불쾌해질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의 서랍을 열어 물건을 빼내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어쨌든 찾아야 한다. 어떠한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찾아야 한다.
우리는 곧 작전을 세우고 실행에 돌입했다. 그러면서도 악의적 절도 행위의 주인공이 우리가 가르치는 학생만은 제발 아니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첫 번째 작전은 ‘설득 작업’이었다.
도난당한 전화기의 번호로 전화를 걸어 누구를 막론하고 통화만 된다면, 모든 걸 이해하고 용서할 테니 전화기를 돌려줄 것을 간곡히 요청할 심사였다.
‘책상 잠금장치를 소홀히 한 선생님께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해. 견물생심이라는 말도 있잖아. 책임을 묻지 않을게. 나와 둘만 만나서 대화할 수 있겠어? 비밀은 꼭 지킬게…….’
대략 이 정도의 호소력 있는 언변도 연습해 놓았다. 얼마나 겸손하고 호의적인 피해자인가.
나는 경수의 전화번호를 또박또박 눌러 전화를 걸어 보았다. 다행히도 신호가 갔고 여러 번 울렸다. 가슴이 뛰었다. 전화기가 어딘가에서 살아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상황은 그리 녹록치가 않았다. 신호음이 멈추는가 싶더니 절도자로 의심되는 익명의 상대방이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리는 게 아닌가. 그러더니 이후로는 아예 받지도 않거니와 급기야는 전화기를 꺼 놓는 것이었다. 상황이 생각보다 어렵게 되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에 사오일의 시간이 지났다.
안 되겠다. 더 지체해서는 안 되겠다. 우리는 ‘제2의 작전’을 수행하기에 이르렀다.
경수와 오 선생님이 해당 통신사의 지점을 방문하였다. 법정대리인인 어머니의 신분증도 지참했다. 그리하여 발급받아 온 통신기록지에는 그간의 수발신 통신 내역이 그대로 인쇄되어 있었다. 일시와 통신시간까지도 아주 세밀하게.
옳다! 또한 거기엔 절대적인 중요 단서 한 가지가 확연히 드러나 있었다. 도난 전화기로 수차례의 통화나 문자를 주고받았던 몇 명의 수신인 전화번호였다. 수신인을 통해, 경수의 전화기를 사용한 발신인의 인적사항을 알고자 하는 것이 우리의 계획이었던 것이다.
나는 떨리는 심장을 달래며 얼굴 모르는 수신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람! 웬 초등학교 저학년쯤이나 될 법한 목소리가 전화를 받는 것이었다. 아니, 이런 상황이라면 어린이의 보호자와 통화해야 하나? 순간 나는 멈칫했다. 그러나 한편으론 제3의 학부모에게까지 알려지도록 이 일을 확대하고 싶지는 않았다. 무엇이 최선이란 말인가. 아, 어렵다. 어렵다.
일단은 차분하고 다정한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랬더니 이 고마운 꼬마 수신인은 내게 최적의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제 친구 승후(가명) 번호인데요. 며칠 전에 핸드폰 샀다고 매일 전화해서 자랑해요.”
승후라니? 승후는 인근 초등학교 2학년 남자아이라는 것이었다. 어찌하여 그가 도난 전화기를 가지고 있다는 말인가? 하긴, 경우의 수가 얼마든지 있을 법하다. 추리는 이러했다.
괘씸한 누군가가 부당하게 취득한 타인 소유의 물품을 이 초등생이 샀든지 얻었거나, 예의 그 괘씸자가 소지할 용기가 없어 버린 것을 초등생이 주웠거나, 아니면 괘씸자가 동생인 초등생과 비밀스런 판을 짰거나……. 적어도 이중에 하나는 진실이렸다.
이쯤 되면 다른 방도가 없었다. 잘못된 일은 바로잡아야 한다. 해결을 위한 협의체가 필요했다. 이를 공조라고 하던가. 초등학교에 전화하여 승후의 담임선생님을 찾았고, 방과 후에 학교 옆 공원에서 조용히 만났다.
“승후는 그런 행동을 할 아이가 아녜요. 남의 전화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부터가 이해되지 않네요. 성실하고 생각도 깊고, 그리고 엄마가 교사이기도 하고…….”
담임선생님은 난감해 했고 나는 갑자기 목덜미가 선뜻해지는 걸 느꼈다. 거기엔 딱히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긴장감이나 불안감이 있었다.
담임선생님이 아이의 부모님과 통화를 시도하였다. 계속 부재중이었다. 세 명의 해결사는 성실하다는 이 어린이의 가정을 방문할 도리밖에 없었다. 이제 안개에 싸여 보이지 않던 전말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관리 소홀로 학생의 물건을 잃어버리고 밤낮으로 고심하던 오 선생님에게 안식이 찾아올 것이다. 또한 이리저리 굴리느라 복잡해진 내 머릿속에도 휴식이 올 것이다. 더욱이 경수가 수업시간 중에 전화기를 만지작거리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아니하든.
주소를 든 담임선생님이 이끄는 대로 승후의 집을 찾아갔다. 선생님은 조심스레 초인종을 눌렀고 오 선생님과 나는 숨죽이며 뒤로 물러나 있었다. 아이의 엄마가 문을 열어주는 듯했다.
한참의 대화 후 담임선생님이 이쪽을 향해 손짓했다. 우리는 괜히 죄인이 되는 기분이었다. 어쩌면 평화로운 이 가정에 폭탄을 던져놓는 형국이었다. 쭈뼛거리며 들어가 민망한 표정의 얼굴을 들어 집주인들과 마주하였다. 그 순간이었다.
“아니, 강 선생님(가명)!”
“아니, 오 선생님! 남 선생님!”
나와 오 선생님은 너무 놀라 기절하는 줄 알았다. 거기엔 동료인 강 선생님이 벌건 얼굴로 서 있는 것이었다. 우리가 그토록 찾고자 했던 전화기의 소지자인 승후는 바로 강 선생님의 귀한 막내아들이었던 것이다.
까무러칠 뻔했던 심정이 어느 정도 차분해지고서야 나는 이 사안의 처음과 끝을 정리할 수 있었다. 어쩌면 가슴 먹먹한 해명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휴대전화기가 없어지던 날, 강 선생님은 밤 11시가 넘도록 그 넓은 교무실에서 홀로 야근을 해야 했다. 다음날까지 정리해야 할 사업보고서가 있었던 것이다. 마침 남편의 귀가도 늦어져 학원에서 돌아올 2학년짜리 어린 아들을 돌볼 사람이 없자, 엄마는 아들을 학교로 데려왔다. 그리고 적막한 교무실 한가운데에 세워놓고는 한번의 눈길조차 주지 못한 채 컴퓨터 자판기만 열심히 두드려야 했다.
호기심이 많은 아들은 무료함을 잊으려고 교사 책상 위의 물건을 이리저리 둘러보았고 미처 잠기지 못한 오 선생님의 서랍을 열어보게 된 것이다. 그런데 그곳에는 그리도 갖고 싶어 하던 멋진 휴대전화기가 떡하니 자리 잡고 있는 게 아닌가. 그것을 본 순간, 어린 아들의 가슴은 방망이질을 해대기 시작했고, 흘깃 바라본 엄마는 여전히 컴퓨터 자판기만 두드리고 있었다.
며칠 후 강 선생님이 나를 찾아왔다.
어지럽고 복잡한 감정들이 엄마의 얼굴과 목소리에 뒤섞여 있었다.
“그날, 일을 마치고 둘러보니, 승후가 구석의 책상에 엎드려 잠들어 있었어요. 정 말이지 정신없는 하루였어요. 잠든 아이를 업다시피 하고 교무실을 나왔죠. 학원 가방 안에 전화기가 들어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나는 동료에게 할 수 있는 다른 말을 찾지 못하고 고개만 숙인 채 한참을 앉아있어야 했다. 머리는 생각 이상으로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지금까지는 가볍게 넘겼던 것들에 대한 후회나 반성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직장과 가정을 동시에 짊어져야 하는 우리 부모들이란, 아이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쳐지고 있으며 어떻게 비쳐져야 할까.
우리는 집 밖의 업무와 세상일에 부대껴 때로는 어린 자녀를 홀로 세워두는 부모여야 했고, 이는 변명조차 군색한 현실이 되곤 했다. 그렇다면 나는 강 선생님과 뭐가 달랐을까, 내 아이는 승후와 뭐가 달랐을까.
그러면서도, 제때에 도착하는 택배처럼 정량을 표시하는 저울처럼, 내 아이만은 당연히 잘 자라주어야 한다고 고집하던 그런 부모는 아니었는지. 엄마와 함께 있으려고 온 아이가 외로움과 피로감에 지쳐 차가운 책상에 엎드려 잠든 줄도 모르고 자판기만 여전히 두드리던 그런 부모는 아니었는지.
나는 며칠 동안을 이 먹먹함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생각해 볼 일이다.
우리 모두는 이제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첫댓글 우리는 집 밖의 업무와 세상일에 부대껴 때로는 어린 자녀를 홀로 세워두는 부모여야 했고, 이는 변명조차 군색한 현실이 되곤 했다. 그렇다면 나는 강 선생님과 뭐가 달랐을까, 내 아이는 승후와 뭐가 달랐을까.
그러면서도, 제때에 도착하는 택배처럼 정량을 표시하는 저울처럼, 내 아이만은 당연히 잘 자라주어야 한다고 고집하던 그런 부모는 아니었는지. 엄마와 함께 있으려고 온 아이가 외로움과 피로감에 지쳐 차가운 책상에 엎드려 잠든 줄도 모르고 자판기만 여전히 두드리던 그런 부모는 아니었는지.
나는 며칠 동안을 이 먹먹함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