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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동양화전시사업에서 얻은 수익으로 평소에 하고 싶었던 봉사업을 적극적으로 2년간, 소극적인 방법으로 현재까지 실천하고 있다.
자고로 한국은 동방예의지국으로 효를 100가지 행실의 근본이며 최고의
가치로 생각한 국가였다. 대가족시대에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손자손녀를
품에 앉고“본관이 어디냐?”“어느 파에 몇 대 손이냐?”고 질문하면“밀
양박가이고 복야공파에 36대 손입니다. 라고 답해야 한다.”고 가르쳐서
자신의 뿌리를 가르쳤고 스스로 효와 우애를 실천하여 자손들이 보고
배웠다. 그런데 핵가족시대가 되면서 효와 우애의 가치는 헌신짝이 되고
황금만능주의와 이기주의사상이 극도로 팽배하여 청소년문제와 노인문
제, 이혼문제가 날로 심화됨을 안타깝게 생각하여 해결방법을 모색했다.
이와 같은 사회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뿌리를 알리고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깨닫고 생각을 바꿔 행동하는 사람을
만드는 것이다. 나를 탄생시킨 조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으면 효와
우애를 누구나 느낀다. 느끼면 생각이 바뀌고 행동이 바뀜으로 부모에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하게 된다. 따라서 효와 우애를 실천하는 사람은
이웃도 상경하애(上敬下愛)하게 됨으로 사회적인 문제가 있을 수 없는 법
이다.
이 같은 소신에서‘도덕재무장운동본부’라는 1인 단체를 만들어
봉사사업을 했다.
직계 조상의 이름도 모르는 자에게 효심을 어떻게 기대하며, 친척 간에
촌수도 모르는 자에게 우애를 어떻게 기대하고, 효와 우애를 모르는
자에게 윤리도덕을 어떻게 기대할 수 있는가? 부모와 형제간에 돈 싸움을
하면 천하에 웃음꺼리로 망하고, 국가적으로는 망국적인 지역이기주의와
집단이기주의, 부정부패가 팽배하여 국가가 망하는 것이 자연의 이치
이자 하늘의 섭리이다.
작금의 현실을 보면 어마어마한 부자들이 부모자식간, 형제간 법정에서
재산싸움을 하는 짐승들의 이야기가 언론이 대서특종으로 보도하고 있어
내 자식은 물론 청소년을 오염시킬 수 있다는 생각에 걱정이다.
진실로 큰 욕심은 부모에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하며 웃음이 넘치는
가정에서 이웃과 조금이라도 나누는 삶이다. 큰 욕심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
사람들이 어떻게 그 많은 돈을 벌어 부자가 되었는지 하늘이 무심하다.
필자는 이런 사회에 조금이라도 기여할 생각으로 뿌리찾기와 효와
우애의 중요성을 인식시키는 교육자료를 담은‘孝와 友愛’라는 제목의
소책자와 생활예절을 담은 책명 례(禮)을 출간했는데 현재 이 책을
www.bio119.co.kr에서 무상으로 다운받아 볼 수 있다.
이 책자와 자신의 뿌리(조상)을 용이하게 찾는‘가계도’및 자고로 명인
명사들의 가훈과 좌우명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참고자료를 서화작품
전시회를 개최하듯이 전시하여 누구나 가훈이나 좌우명을 가질 수
있도록 빌딩로비나 빈사무실에 자료를 전시해 놓고 관람객을 향해 입이
닳도록 말했다.
“가훈 없는 가정은 돛대 없는 배입니다. 좌우명 없는 사람은 항구 없는
배입니다.”“사훈과 가훈, 좌우명을 선택하는데 도움도 드리고 써주기도 합니다.”
이렇게 뿌리의 중요성과 가훈, 좌우명보급운동을 열심히 했다. 특히
가계도를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무상으로 배포하고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배포해서 학부모와 함께 학생의 뿌리는 찾는 숙제를 주고, 그 가계도를
회수하여 통계를 낸 다음 다시 되돌려 줘서 액자로 만들어 공부방 벽에
붙이도록 지도해 줄 것을 간곡하게 부탁했다. 그 도표가 할아버지 할머니
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1일 1학교를 목표로 2년을 열심히
해서 통계를 만들어 보았다. 서울시 동작구 남성초등학교와 상도여중 등
선생님에게 부탁하여 2,800명 학생의 숙제를 분석한 결과 친가증조부모
의 이름을 아는 학생은 0.06% 친가조부모의 성함은 19% 외조부모의
성함은 0.02%에 불과했고 친척의 촌수를 아는 학생은 0.02%로 이는 우리
사회의 효사상과 우애, 도덕성의 지표이다.
이것이 바로 나와 가족 그리고 우리 모두가 생존하는 현실이다. 당시 개 족보는 돌돌 외우면서 정작 자신의 뿌리를 모르는 사람을 너무나 많이 접하면서 도대체 교육기관을
무엇을 하는 기관인지 원망스럽기도 했다.
사회문제해결에 인성교육보다 더 효과적인 교육은 없음으로 교육부에
아이디어를 제공했었다. 퇴직공무원 중에는 봉사활동을 자원하는 사람이
많음으로 이들을 교육시켜 초등학교 학생의 할아버지, 할머니 역할을
하도록 만들어 효와 우애 그리고 국가관을 심어주는 인성교육 아이디어
였다.
24 5월 5일 어린이날에는 과천대공원입구에서 도표를 나눠주기도 했고
소책자를 여러단체 행사에 찾아가 무상으로 배포하거나 지방자치단체장
에게 부탁하여 군민에게 배포하는 등 다각도로 실천했다. 이후에도
필자가 망해서 라면을 먹으면서도 형편에 따라 지속적으로 실천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국가가 할 일을 개인이 한다고 격려해 줘서 느끼는
보람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2년이나 그림장사로 번 돈이 이 운동으로 사용되어 수익사업이 필요한
시점에 새로운 아이디어사업을 시작하였다. 무늬목에 가훈이나 좌우명을
서각(書刻)하는 조각기계를 개발하여 서각작품을 판매하는 수익사업으로
빌딩로비와 은행객장에 전시해 놓고 고객을 향해‘가훈 없는 가정은 항구
없는 배요, 좌우명 없는 사람은 돛대 없는 배’라며 권고했으나 만 1년이
되는 1985년에 또 다시 전화벨이 울리면 빚쟁이 독촉전화가 아닐까!!
두려운 신세가 되었다.
내 인생에 세 번째 쓴맛을 보며 망하는 노하우가 생겼다. 망하는
노하우란?‘내일은 좋아지겠지’라는 막연한 기대를 버리고 내일을 준비할
수 있는 여력이 있을 때 과감하게 정리하는 것이다. 최초 스크린인쇄족자
사업실패를 제외하곤 가족과 친구, 고향에 봉사도 잊지 않아 주변에서
어렵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게 비밀리에 폐업하고 다시 창업하였다. 알아봐야 죄 없는 처자식에게 피를 말리는 걱정만 주기 때문이다.
궁즉통(窮則通)
자고로 궁하면 통한다는 궁즉통(窮則通)으로 돈 없이 돈벌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어느 강이든 지천으로 많은 수마석에 사진을 인화하듯 감쪽
같이 붙이는 기술을 개발하고‘한국미술문화원’이란 상호로 견본 수석
사진을 많이 만들어 서울시에 산재한 사진관에 전시해서 주문을 받아
제작해 주는 사업을 시작했다. 그런데 주문보다 작품을 어떻게 만드는지
궁금해 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래서 주문을 받아 수입을 보는 사업보다
지역별 대리점 상권을 주고 만드는 방법을 가르치는 사업을 시작했다.
조선일보나 동아일보에 손가락 크기만한 지면에‘소자본으로 떼돈 버는
대박아이디어 대리점 모집’이란 광고를 보고 1시간이면 열 명은 찾아
왔다.
이들에게 수석사진작품을 선보이며 대리점을 권장하면서 상권과 수석
사진제작기술을 전수하는 대가로 서울시 종로구는 상권이 좋아 500만원,
성동구 300만원 중소시군은 50만원 이런 식으로 전국을 모두 팔아 팔
것이 없던 어느 날 신문에 이민을 주선하는 광고가 눈에 보였다. 광고를
보는 순간 브라질과 캐나다로 이민가는 사람들에게 나라를 팔아먹자는
아이디어가 떠올라 당시 이민국을 모두 팔았다.
어느 날 수석이 필요하여 팔당댐 하류 미사리에 산재한 수석을
채취하러 갔는데 수석을 채취하려는 대리점 수십 명이 경쟁하듯
이 돌을 줍고 있었다. 사진은 주문자가 공짜로 주고 수석도 공짜
인데 작품을 만들면 10,000원에서 30,000원까지 받으니 돌멩이가 아니라
돈이 었다. 돈을 줍는 대리점을 향해 말했다.
“여러분 여기는 미사리가 아니라 돈사립니다.”
이때 대리점들이 수석사진을 공급하는 업체가 있으면 좋겠다는 요청이
있어 즉각 아이디어가 떠올라 당장 신문에 광고했다‘. 화물차 소유주 돈
없이 돈버는 아이템’광고를 보고 찾아온 사람들에게 한강의 수마석을
수집해서 서울지역대리점에 공급하고 낙동강돌은 대구와 부산에, 섬진강
은 전라도에, 금강은 대전과 충청도에 공급하는 조건으로 대한민국 강을
모두 팔았다. 그런데 섬진강을 산 사람이 찾아와 수마석이 없다면서
계약해지를 요청하여 반환해 주는 웃기는 일도 있었다. 이일로 인해
대리점으로부터‘신 봉이 김선달’이란 칭호를 얻었다.
수석사진사업으로 또 다시 새로운 아이디어에 도전할 사업자금을 만든
것이다. 이때가 88년 올림픽이 열리던 해였는데 많은 아이디어 중에 나침
반이 부착된‘나침반지도’자동차운전으로 누적된 피로를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자동차용안마기’성경구절이나 반야심경 등 글씨가 침실벽면에
그림자로 비치는‘장식등’동판을 조각한‘동판작품’을 주야로 연구하여
제품을 만들었다.
참고로 발명품이 탄생하기까지 어려움을 소개하고 싶다. 누구나 자동차
운전에 졸음과 어깨통증을 느끼면 잠시 쉬거나 주물러 해결하지만 발명
가는 이와 같이 불편을 해결할 아이디어를 생각한다. 아이디어를 착상
하는 것은 순간이지만 자동차용안마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엄청난 노하
우와 전문지식, 노력이 필요하다. 제품의 형태, 디자인, 사출에 필요한
금형과 금형을 제작하기 위한 설계, 전기와 전자부품에 대한 전문지식,
진동체와 진동체의 수명은 물론 국가가 만든 법규를 알아야 하고 박스
디자인, 마케팅을 위한 카탈로그에 이르기까지 모두 전문가가 필요하고 시장에서의
경제성과 마케팅도 전문가가 필요하다.
이 많은 전문지식 중에 단 한가지도 없는 필자가 자신감 하나로 도전 하여 잠잘때도
문제해결을 위한 고민을 안고 수면하는 방법으로 잠을 청한다. 비몽사몽간에 해답
을 얻기도 하고 사물의 이치를 터득하는 노력을 하루도 게을리하지 않아 누구의
도움없이 디자인과 설계, 절단, 용접 등 모든 공정을 스스로 해결하였다.
나침반지도
자동차용안마기
1년에 4개의 발명품을 시장에 내놓았다. 4개 중 하나만 성공해도
아비로서, 남편으로서, 가장으로서 체면이 선다는 생각에 밤을 낮 삼아
제품을 만들어 소비자를 찾았다. 그중‘나침반지도’는 국제화재보험사와
금강제화에서 판촉물로 써주어 개발비를 겨우 건지고 나머지는 난지도
쓰레기매립장으로 보냈다.
또 다시 살아남기 위해 돈 없이 돈 버는 아이디어사업, 생활도자기를
판촉물로 판매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3개월간 도자기를 공부하고
카탈로그를 만들어 견본 겸 판매 할 도자기를 외상으로 구입하여 사업을
시작할 무렵 공장이자 창고이고 사무실인 무허가건물에 불이나 전부
잿더미가 되었다.
이웃집에서 글로 쓸 수 없는 욕설로 스트레스를 줘도 무허가 건물을
다시 지어야하는 입장이니 손발이 닳도록 용서를 비는 처량한 신세가
되었다.
죽기로 일하면 산다
1981년 망하여 오고갈 때가 없을 때 물도 전기도 화장실도 없는 방배동
빈공터를 무상으로 빌려줘서 한쪽엔 천막을 쳐서 공장이자 창고로 사용
하고 한쪽은 6평정도 건축에 사용하고 버린 거푸집으로 벽을 만들고
천막으로 비를 막은 무허가 사무실에서 그림사업, 뿌리찾기운동, 서각
제작사업, 수석사진사업, 발명품제작업, 도자기판촉업으로 12년간 물과
화장실은 가까이에 있는 어린이놀이터에 화장실을 이용하고 전기는 이웃
집에서 양해를 구하여 사용하며 희로애락을 함께한 공장이자 사무실이
전소된 것이다. 필자가 오늘이 있기까지 방배동 공터를 무상으로 빌려준
덕분이 아닐 수 없다. 이 글을 빌어 이용원님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화재로 놀란 이웃집들이 화가 어느정도 해소된 시기에 다시 천막으로
창고와 사무실을 만들어 도자기 판촉사업으로 9개월에 12억 7천만원을
판매하여 빚을 갚고 남는 돈으로 나침반지도의 문제점을 개선하는 아이
디어를 마누라가 제공하여 나침반지도는 플라스틱 박스에 부착한 버튼을
누르면 뚜껑이 열리면서 찾고자 하는 교통정보와 지도가 돌출된다. 지도
에 인쇄된 방향좌표와 나침반에 가르치는 방향을 일치시키면 목적지가
어느 방향이고 어느 도로를 선택해야 할지 금방 알 수 있는 지도책으로
요즈음 내비게이션에 모체라 할 수 있다.
나침반지도의 불편을 해결하는 아이디어를 아내가 제공한 덕분에 지도
책으로 개선하는 아이디어가 세 개나 떠올라 그 아디이어를 지도책 전문
제작업체에 제공하고 지도책을 만들도록 용역을 주었다.
지도책이 완성되는 1년이란 기간에 필자는 남한과 북한의 관광지와
국보·보물에 대한 역사와 전설, 야사를 집대성한‘남북관광총람’이란
책을 출간하기 위해 집필 하였다. 집필의 이유는 평소 가족의 건강을 위해
전국관광지와 명산을 전부 찾았는데 소중한 관광자원이 훼손되고 있었
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10년간 모아온 자료와 동국여지승
람, 삼국사기, 향토지 등 많은 역사자료를 번역하여 관광자원의 역사와
전설을 집대성하여 4×6배판 980페이지 방대한 분량으로 출간하였는데
현재 한국관광공사와 도서관에서 볼 수 있다.
세종대왕상 수상
드디어 지도책이 완성되었다. 지도책명을‘10초지도’라 명명하여 1992년 시중
판매와 자동차보험회사에 판촉물로 80만부 판매를 시작으로 2002년까지 10년간
매년 1 5 0만부 를 보급하여 교통 문화 발전에 크게 기여하는 동시에 성공한 발
명가가 되었다. 자동차종합보험을 들면 판촉물로 주는 지도책으로 표지에 지명과
오색칼라로 색인부가 인쇄된 지도책이 바로 필자가 개발한 지도책이다. 이 발명으로 필자는 특허청에서 시상하는 ‘세종대왕상’을 수상하였다.
생활과 시간적으로 여유가 생겨 만학을 시작하였다. 연세대학교, 숭실대
학교, 고려대학교, 중앙대학교, 세종대학교, 서울대학교에서 경영과 생명
공학 등 전문교육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얻어 열심히 배웠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발명에 도전하여 망하고 재기하기를 수 없이 반복하며 살아남기 위해
불철주야 머리를 쓰다 보니 하늘이 감복했는지 내게 직관과 뛰어난 창의력,
뛰어난 응용능력을 선사하였다. 일례를 들면 어느 공장을 우연히 방문했는데
마침 악성폐수를 이송하는 피스톤펌프가 고장이 나서 수리를 하고 있었다.
고장난 원인을 물어 보니 피스톤 작동에 따른 불가피 한 문제점을
말했다. 이때 즉각 떠오른 착상이 ‘물은 무겁고 공기는 가볍다’는 각이 떠올랐다.
뒤이어 피스톤을 공기로 대체 하면 고장 날 것이 없을 것이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즉각 시험해 보니 너무나 신기할 정도로
에너지도 절감되고 피스톤펌프에 비교하여 작업능률이 10배도 더
좋았고 고장도 없었다. 한국은
전자동 탈수 시스템
세준DO펌프
물론 미국과 일본에 특허를 받아 제품화하여 현재 삼성과 현대중 공업,
L G산업 그리고 염색 폐수를 비롯한 악성폐수처리 현장과 다수의
산업현장에서 고장없이 가동되고 있다.
MBC뉴스데스크 초등학교 학력 부부 금상 은상수상 뉴스
매년 정부가 특허기술을 평가하여 시상하는 1998대한민국특허기술
대전에서 필자와 집사람이 나란히 행운을 얻었다. 집사람은 편리한 지도
책발명으로 특허청장상인 은상을 수상하고 필자는 공기를 피스톤으로
바꾼 초고압펌프발명으로 산업자원부장관상인 금상을 수상하였다.
이 소식을 MBC저녁 9시 뉴스데스크에서 국내최초 초등학교학력부부 금상 은상
수상소식을 특종으로 보도했다.
기계 공학을 배워서가 아니라 누구나 알고 있는 자연의 이치를 응용한 것이다.
이와 같은 응용능력으로 하나를 알면 열가지로 응용하여 신개념의 용존
산소펌프, 버블시스템, 에너지절약형 보일러 등 수십 종의 기계류와 폐수
처리시스템, 음식물쓰레기자원화시스템, 대기환경시스템, 발효시스템,
친환경식물성장촉진제 및 과일당도 촉진제 등 다양한 분야에 도전하다보니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을 개발하고 그 미생물을 응용한 기능성사료와
수십 종의 건강기능식품 등 180여종을 누구의 도움없이 스스로 발명하고
제품화하여 사업화한 노력으로 발명가로 자처해도 부끄럽지 않을 만큼
창의력이 발달한 것으로 생각된다. 많은 사람들이 IQ가 얼마냐고 묻는다.
이때‘살기 위해 쫓기는 바퀴 벌레는 IQ 180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쫓기다
보니 쫓기는 바퀴벌레가 된 것 같다고 답한다.
필자는 초등학교시절 상이라곤 운동회에서 주는 그 흔한 공책 한 권도
못 타보고, 다섯 자를 배우면 네 자를 잊는 석두 중에 석두였다. 그래서
94년에 출간한 자서전의 책명을「나는 돌머리」라 명명했다.
필자의 이야기에 과장은 없는지 특허청 홈페이지‘특허무료검색’창에
키워드‘박세준’을 입력하면 5분 이내 특허출원 180개에 발명자가 1인임을
확인할 수 있다.
1998년 경기도 시흥시 음식물쓰레기 1일 100톤 퇴비화시설기술공모에서
7개의 대기업을 제치고 필자의 기술이 1위로 평가받았다. 1위로 평가된
배경은 음식물에 포함된 비닐조각, 수저 등 이물질과 염분을 분리하고
톱밥을 거의 사용하지 않아 운영비가 획기적으로 절감되면서도 양질의
퇴비를 생산하는 기술로 평가 받았기 때문이다.
1일 100톤의 음식물쓰레기자원화시스템은 음식물을 이송하며 비닐조각,
철, 돌, 조개 등 이물질을 분리하고, 분쇄하여 탈수하는 기계공학과 음식
물을 발효하는 발효공학, 폐수처리환경공학, 악취와 분진을 해결하는
대기환경공학을 전공한 5~6명의 전문가가 연구해야 가능한 기술인데
필자는 단신으로 개발하여 1위로 선정되었기에 더욱 영광이었다.
단 한번도 대규모 공사를 해본 경험이 없으므로 망할 것을 우려하여
가족의 만류는 이만저만이 아니였으나, 필자가 직접 1998년 말부터
02장 2001년 대통령상 수상[연제 다음내용]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