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길을 걷는 영혼
“사랑하는 자들아, 타국인 같고 순례자 같은 너희에게 권고하노니 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신의 정욕들을 멀리하라”(킹성경 벧전 2:11)고 했다. 이는 중생한 영혼을 향하여 하신 말씀이다. 중생한 후에는 두 가지 변화가 생긴다.
첫째, 바울도 영혼의 생각으로는 선하게 살려고 했으나 겉사람인 육체의 정욕을 깨닫고(롬 7:17-25) 날마다 쳐 복종하였다고 한다(고전 9:26-27). 그래서 성령의 충만한 은혜로 육체의 행실을 죽이라고 한 것이다(롬 8:13).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갈 5:16-18).
이 싸움은 중생한 영혼에게는 누구든지 생기게 마련이다. 영적 싸움에서 매일매일 이기는 자는 영혼의 평화와 승리의 기쁨이 있으나 이 싸움에서 지는 자는 영적인 괴로움과 고통이 찾아오며 심지어 쫓기는 경우도 있다.
이것은 아브라함의 후손 중에 하갈의 태로 출생한 이스마엘이 이삭을 핍박함과 같이(갈 4:20-30) 첫 아담의 후손으로 난 육신의 정욕이 둘째 아담의 씨로 난 중생한 생명을 핍박하는 것과 같이, 혈육인이 중생인을 회롱 한다.
둘째, 이 세상은 나그네의 길을 걸어가는 행인과도 같다. 여기 나그네란 육신의 고향을 떠나 객지에 사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영혼의 고향인 하늘을 떠나(렘 38:16) 이 땅의 길을 걷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나그네의 참 안식은 고향에 돌아가 부모님 품에 안길 때 이루어진다. 이같이 구약의 모든 신앙인들은 영원한 본향을 사모하며 살았다(히 11:13-16).
마찬가지로 중생한 영혼은 하나님 아버지가 계신 천국을 사모하면서 하루하루 살아간다. 여기에 대하여 히브리 기자도 말하기를, “그들이 이렇게 말함은 자신들의 본향을 찾고 있음을 분명히 나타낸 것이라”(킹성경 히 11:14).
“만일 그들이 실로 떠나온 고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되돌아갈 기회가 있었겠지만 이제 그들이 사모하는 곳은 더 좋은 본향,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하나님이라 불리우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니 이는 그들을 위하여 한 도성을 예비하셨음이라”(킹성경 히 11:15-16)고 말한 대로 나그네의 길을 걷는 인생과 영혼은 아버지가 계신 본향에 가야 안식이요 평안이다.
(1) 궁정을 사모하는 영혼이다.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히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시 84:10-11).
(2) 본향으로 평안히 돌아가는 영혼이다.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도하기를 여호와여 주께 구하오니 내 영혼을 건지소서 하였도다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의로우시며 우리 하나님은 자비하시도다 여호와께서는 어리석은 자를 보존하시나니 내가 낮게 될 때에 나를 구원하셨도다 내 영혼아 네 평안함에 돌아갈지어다 여호와께서 너를 후대하심이로다”(시 116:4-7).
(3) 적신으로 오고 적신으로 돌아가는 영혼이다.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욥 1:21).
(4) 나사로의 영혼은 천사들이 받들어간다.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눅 16:21-22) 하신 것을 보아 나사로의 영혼은 구원을 받아 낙원에서 안식한다.
(5)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전진하는 신앙이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갑니다 내 뜻과 정성 모두어 날마다 기도합니다 내 주여 내 발 붙드사 그 곳에 서게 하소서 그 곳은 빛과 사랑이 언제나 넘치옵니다(찬송가 543장 1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