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이제 막 중1 올라간 큰애, 민기 담임과 상담을 나눴다.
학년초면 의례하는 상담이고 대개는 직장때문에 전화상담을 요청했지만
이번엔 조금 벼르고 선생님을 만나고자 신청했었다.
중학교 올라가면서 이런저런 통제와 규율에 답답함을 많이 느끼고
벌써부터 성적에 집착하는 담임선생님의 언행에 불만을 토로하는 아이를
바라보고만 있을 수 없어서
이번엔 직접 선생님을 뵙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같은 어른이고 아이의 부모로서
'교사와 부모가 함께 만들어 가야 할 교실 상(象)'에 대해
마음을 열고 얘기를 나누고 싶었다.
그런데 신청했던 상담시간이 너무 늦다는 이유로 전화상담으로 바꿨음 하는 전화가 담임에게 걸려왔고
본인의 바쁜 업무때문에 '어차피 전화 통화가 된 지금, 괜찮으시면 그냥 상담하는 건 어떠시겠냐?'고 하셨다.
뭔가 빨리 끝내려는 의도가 비춰지는 담임의 태도에 이건 아니다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어쨌든 내색않고 최대한 예의를 지키며 상담에 임했다.
선생님이 속사포처럼 용건을 늘어놨다.
"민기는 목표의식도 분명하고 집중력도 있고 학습태도도 좋고 성실한 아이다.
그런데 진단평가 결과가 상위권으로 나온 편은 아니라 좀 더 긴장하고 노력할 필요가 있다.
학원은 안다니고 있는 걸로 아는데 방과후 교과수업도 신청 안하고 너무 느슨하게 있는 거 같아서
이상하다고 느꼈다. 그리고 친한 친구들도 그다지 공부 잘하는 친구들이 아니어서 좀 더 자신을 발전시킬 수
있는 상위권아이들과 어울리는 게 좋을 듯 싶다.
지금 어떻게 공부 시키고 있는지, 중요과목은 학원을 보내셔야 하는 거 아닌가,
고등학교는 어디를 보내시려고 하는가,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에 가려면 지금부터 바짝 공부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아서 말씀드린다'
얘기를 들으면서..대부분의 엄마들이 이런 담임의 충고에 어떻게 반응했을까?를 생각해 봤다.
아무리 소신을 가지고 아이와 잘 소통하면서 (꼭 대학입학이 아닌)아이 나름의 꿈과 희망을
키워주려는 선한 어른, 자존감있는 부모라 할지라도 다른 사람도 아닌 학교담임이 이런식으로 말하는데
한치의 불안감없이 의연할 수 있었을 까? 예상보다 강한 펀치에 순간 어안이 벙벙했다.
순간 감정을 추스린 뒤..냉정하고 조심스럽게 같은 부모의 마음을 대신(?)해서 말문을 열었다.
'우리애, 그동안 스스로 열심히 공부하고 밝게 커온 아이다. 교과서는 스스로 복습해왔던 편인데 진단평가가
그렇다는 건 교과서내에서 문제를 냈는지 의심스럽다. 도저히 못 풀겠는 문제가 몇개 있다고 들었다.
그 응용문제 지금 몇 개 잘 풀고 못 푸는 게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매일 출근하는 기분으로 학교 간다면서 이렇게 '불편한 교복'을 입고 어떻게 '편하게 공부하라'고 하는 지
모르겠다는 아이다. 통제와 규율이 너무 어색하다고 느끼는 아이가 어느정도 그 낯설음을 극복하는 시간으로
학기초를 잡았다. 모든 아이들이 그래야 된다고 본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너무 환경이 다르지 않냐,
민기는 친구를 성적과 무관하게 사귄다. 아이들이 그래야 하는 거 아닌가, 오히려 칭찬해야 될 점이라고 본다.
방과후는 (선행은 금지되어 있으니-선생님도 인정한 부분)결국 복습을 하는거 아닌가, 집에서 복습하겠다는 게 무슨 문제인가,
잘 할수도 있고 못할 수도 있다. 대학을 목표로 하든 안하든 그 아이의 인생은 이제 얼마나 긴 마라톤을 달려야 하는가,
벌써부터 백미터달리기 하듯이 고시생처럼 학과공부에 시달리게 하고 싶지 않다. 그 아이의 무한한 가능성,잠재력을 믿는다.
그리고 그 아이가 주역이 될 10~20년뒤는 모름지기 이런 획일화된 문제에 답 잘 맞추는 아이들을 필요로 하는 세상이 아닐
것이라고 믿는다. 같은 어른으로 고민하고 함께 가길 원한다'
학부형으로서 너무 심하게 가르쳤나(?)싶은 생각이 들어서 수습을 한답시고 마지막으로 한 말이,
'저는..사실은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라는 시민단체 활동을 하고 있고요 저희 아이는 이미 오래전부터
그 속에서 성장해 오고 있어서..이렇게 좀 특이하게 느긋하고 그렇습니다"
그 모든 얘기를 들은 선생님, 처음과는 달리 톤다운된 목소리로 이렇게 고백하셨다.
"아..그러시군요,,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잘 알고 있지요,,좋은교사운동에서 출발한 단체잖아요..
어머님, 교사로서 제가 학원가라고 얘기하는 거..정말 부끄럽네요. 어머님 소신대로 민기 잘 이끌어주세요.
민기 학교생활에 관해서 궁금하시면 언제든 연락주시길 바라겠어요..감사해요"
첫댓글 읽으면서 제 심장이 바운스바운스하네요... 저도 담임샘이 그리 얘기하면... 아이뜰님처럼 그렇게 당당하게 이야기 할 수 있을까요...
와....말씀 정말 잘하셨네요. 존경합니다.
예전에 누군가 그런 선생님 고발(?)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던 말이 생각나네요. 아이뜰님께서 소신있게 말씀하시니 민기 선생님은 바로 부끄럽다고 인정하시는군요. 아이뜰님 말씀처럼 어머님들이 선생님께 그런 말 들으면 당연 흔들리고 당황하겠어요.
정말... 감동이예요. 지역모임 회원들과의 이야기를 나누고싶어요.
오오오... ㅠㅠㅠㅠ 읽으면서 웃음도 나고 눈물도 찔끔나네요~~~ 반전의 반전이 있는 이야기!!
아이뜰님 같은 부모들이 곳곳에 계셔서 그래도 우리 교육에 희망이 있어요!
담임샘이 통화 끊고서, 밤새 고민하셨을거 같아요... 그 분이 교사로서의 자신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지 않을까요~
큰 일 하셨어요 아이뜰님~~~~ ㅠㅠ
반전의 반전이라는 말씀 공감합니다. 담임샘도 번개맞은 느낌이셨을 듯! 선생님이 되려고 결심한 초심의 번개와 회심의 물벼락이셨기를 바라봅니다. 교사로서 뜻 펼치고 싶었어도 몰지각한 학부모님들 성화탓에 자포자기하셨을 수도 있겠지요. 글 읽고보니 역시나 우리 '사교육걱정'에서 준비된 엄마이시네요. 저도 늘 깨어 준비하는 엄마 되어야겠다 다짐해봅니다. 아이뜰님! 순간의 흔들림에 냉정잃지 않으신 것 박수쳐드리고 싶어요. 글 잘 읽었습니다.
오늘 저녁 담임상담 가는데... 감정이입이 격하게 되면서 정말 심장이 떨리네요. 이건 아닌데
하면서도 샘처럼 차분히 응대할수 있었을까 싶어요. 심호흡 길게 내쉬고 연습좀하고 가야되려나....
이런 기회가 있어서 다행이지않나 싶어요. 담임샘도 학부모들이 천편일률적으로 성적에 매달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몸소 체험하시는 기회가 되셨을테니 말예요^^
아이넷 모두 중학교 과정을 마치고 이제 막내가 고1인데요, 아이뜰님의 글 조마조마 하면서 읽었네요~~^^ㅠㅠ 선생님께 조목조목 말씀하시는 장면에서는 저의 간담이 다 서늘 했습니다. 그 상황에서, 그렇게 말씀하실수 있는 분이 많지 않아서 말이에요, 셋째아이 중1 담임 선생님과 처음 면담때, “신근이가 수학에 부담을 가지고 있다. 학원을 전혀 다니지 않고, 스스로 조금씩 공부해서 ..” 라는 말에 " 어머님, 그러면 정말 어렵다" 라고 하셨던 말씀이 갑자기 떠오르기도 하구요, 내아이의 속도를 전혀 다른사람의 속도로 밀어내지 않고, 끝까지 뒤를 따르며 응원한다면, 그게 가장 정확한 속도였다는 것, 그것을 꼭 알게 된답니다.
민기, 범기 화이팅~~!!!!! 입니다~~~^^
한 편으론 아이뜰님이 얼마나 설득력있게 말씀을 잘 하셨을까 싶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인정할 거 인정하시는 담임 선생님도 보통분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요즘 말이 안 통하는 선생님들이 하도 많아서..
저처럼 과하게 선생님을 가르치려 들다간 역효과가 나기 쉽겠죠ㅋㅋ 그런데 전 매번 어떤 선생님을 만나도 비슷한 얘기를 했어요.저희단체 얘기도 했지요. 우리들 모두 교사,부모이기 이전에 아이들을 이끄는 기성세대이고 어른들이 아니냐구요..다 같이 이런 기형적인 교육현실에 대한 책임이 있는 거고 같이 갈 필요가 있다고요.
그렇게 진정성을 갖고 얘기하면 어떤 선생님도 뭐라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응원군을 만난것처럼 좋아하시더라구요. 모든 엄마들 특히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우리 회원들에게 우리 아이에 대해 언제나 당당하시라고 (성적이 바닥을 쳐도)기죽지 말고 아이들의 무한한 잠재력을 믿어주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교사를 적대시하거나 학교를 회피하지 말고 공감을 이끌어내서 같이 가야 할 교육의 큰 축이라는 걸 알아야 된다고 보여져요. 선생님들도 많은 엄마들한테 시달려서 자꾸만 초심을 잃고 타성에 젖는데 이렇게 살아있는(?) 엄마들이 있다는 걸 안다면 조금이라도 반성하고 긴장하지 않을 까 싶거든요.우리 모두 사교육걱정없는세상속에서 이렇게 화이팅해요~~!!!
공감을 이끌어낸다는 것.... 정말 중요하네요~~
부모냐 교사냐 서로 대립할 존재가 아니라, 아이들을 위해 서로 협력해야 할 공동체적 운명인데~~^^
소신있게 말씀하시는 모습에 부러움과 감동입니다.
같은 생각으로 살아가면서도 괜히 별세계 사람처럼 움츠러드는 제 모습을 반성도 합니다.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어 참 조으네요~^^
ㅎㅎㅎ 글 읽으면서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구 용감하게 말씀하시나 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부분이 반전입니다. 우리가 하는일이 당당하고 값진 일인데 세상에서는 가끔 현실을 모른다고 타박을 주는 사람도 있네요. 지금과 같은 환경에서 본인의 소신을 말한다는게 쉽지 않은 일인데 대단하세요^^ 그 용기에 박수 쳐드립니다, 짝짝짝!!!
저희 아이는 초등6학년인데 몇주전 학부모 상담 갔다가 선생님께 영어학원 옮기라는 비슷한 이야기 들어서 그땐 정말 저는 아무말 못하고 되려 학원을 알아오는 못난 엄마 였습니다. 대단하십니다.
아이뜰님 멋지시네요. 민기 담임쌤도 좋은 분이실 듯 해요. 아이뜰님 같은 학부모님이 민기반에 더 많이 계시길... ^ ^
저도 오늘 수진이 상담있어요
민기랑은 아직 많이 다른 여건이지만 생각이깊어져요
좀전에 한살림마을모임에서도 읽어드렸는데요 다들 공감과응원을 보냅니다^^
응원 너무 감사해요ㅎㅎ
우리 지역모임에서도 단체이름으로 내아이의 학교,교실 변화를 위한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면 어떨까 싶어요~ 부모 개개인이 풀어갈 문제가 아니기때문에 집단의 힘이 필요한데..저희에겐 든든한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있으니까요!!
이렇게 말씀하시는 학부모님이 반에서 몇 분 씩만 있다면 학교가 변화는데 그리 오래걸리지 않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인천과 부천에서도 이렇게 말씀하실 수 있는 학부모님 많이 나오게 열심히 지역활동 할게요.
맞아요ㅎㅎ 저도 이렇게 부딪혀보니까 우리 힘으로 교실을 조금씩 바꿀 수 있을 것이란 자신감이 생겼어요.
우리 지역대표들이 그렇게 해나가도록 해봐요^^
멋지시네요! 우리 모두가 그런 생각을 가진다면 아이들은 더 행복 할 것 같아요 ㅜㅜ
민기 상담이 아니라 담임 선생님 상담해주신것 같네요. 응원합니다!! 끝까지 사교육 없는 세상에서 보란듯이 잘 완주할수있도록
말씀 아주 잘 하셨습니다. 제가 다 창피하고 부끄럽네요~
우하하하~기분좋아지는 이야기입니다~저도 소신것 말할수있는 사람이되도록^^
참 잘했어요. 라고 박수 쳐 드리고. 싶어요. 그런데 전 계속 흔들리네요.. ^^ 봉사활동 시간. 아들에게 시간을 채우는 게 아니라 두달에 한번이라도 제대로 된 봉사활동을 하자고 설득해 봉사단체에 가입했습니다. "그 아이의 무한한 가능성,잠재력을 믿는다" 멋지세요.
ㅠㅠ 어머...................정말 대단하십니다!!!!!!!!!
이도 저도 아닌, 맨날 갈팡질팡하는 제가 너무 부끄럽습니다. ㅠㅠ
전 제가 우리 아이 정말 학원 안다녀도 되겠냐고 물어봤어요.ㅜㅜ ㅎㅎㅎ
그러니 선생님께서 안다녀도 된다고 하시더군요. 그 시간에 좋은 책읽고 운동하라고.
지금은 혼자 공부하는 방법을 익혀야할때라면서요.
창피해서 사교육걱정없는세상 회원이라는 이야기도 못합니다. 에혀;;;
진짜 존경스럽습니다.
그리고 선생님도 학부모 간 보시나봐요.
학부모 성향봐서 말씀하시는 게 다른가 싶기도 한 것이.
그렇게 인정하시고 솔직히 말씀하시는 선생님도 참 좋은 분이신 것 같아요^^
아.. 뭔가 후련한 기분..
장하십니다..............................
학교에 가면... 정말 현실로 다가오는군요.. 내년에 학부모가 될지 안될지 모르지만...
저는 홈스쿨링쪽을 고민하고 있어서요... 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