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의 감꽃
너와 함께였던 방에 배를 대고 누웠어. 5월이어도 꿉꿉하다며 군불을 넣었지. J의 결혼 소식을 들었어. ‘밭을 일구다 호미로 맥주병을 따는 게 행복하다는 그녀를 만났습니다. 사람과 여행을 좋아하고 장래 희망이 이장님이라는 그를 만났습니다. 참 닮은 두 사람이 드디어, 이제야 만났습니다.’ 라는 청첩장. 정말 예쁘지 않니? 선물로 주고 가려고 그녀와 닮은 책을 가져왔어. 달팽이와 들꽃이 그려진 그림책이야. J가 없는 집에 그녀의 빈자리가 느껴져. 우리를 보고 컹컹 짖던 ‘보리’도 다른 집에 보내졌데. 그래도 이 집의 냄새는 그대로야. 그리워하던 그대로.
이번에는 제대로 뱀사골에 다녀왔어. 정류장에 있는 버스 시간표를 볼 줄 몰라 지나는 사람에게 물었더니, 그 밑에 쓰인 운수회사에 전화해서 물어보래. 답을 가장 잘 아는 사람에게 물어야 하는데 가끔은 그걸 잊어. 탐방로를 따라 걷는데, 단풍잎이 많더라. 가을에 오면 더 좋겠다고 생각했지. 연두색의 잎에서 붉은 가을을 보다니. 선물 같은 현재를 보지 못하느냐고 네가 한 소리 했겠지.
뚝방길이 아닌 입석마을을 지나 실상사로 갔어. J가 ‘기분 좋은 고갯길’이라 부르던 그 길로. 제주 중산간의 풍경은 농부들이 완성한다는 김영갑의 글 기억해? 산내의 풍경도 농부들이 완성하고 있어. 모내기를 마친 논에 물이 가득해서 산이 비춰졌어. 높은 반야봉도 논 속으로 내려왔고, 그 위로 소금쟁이가 떠다녀. 힘들게 지리산을 종주했었는데, 소금쟁이는 쉽게도 반야봉을 오르는구나. 남이 하는 건 다 쉬워 보이니까.
실상사 안 쪽, 네가 좋아하는 산신각에 들렀어. 들팡에 감꽃이 가득 떨어져 있더라. 사람 발길이 적은 곳이라, 꽃이 모두 온전했지. 꽃을 모아 감꽃체로 네게 편지를 썼어. ‘그립다 너’라고 쓰고 섬돌 위에 두고 왔어. 낯이 좀 간지럽지만, 그게 내 마음이니까. 좋은 곳을 너랑 나눠가져서, 혼자와도 옆에 너를 그려넣는다. 친구야. 뜨거운 여름이 오면, 감나무 그늘 아래서 매미 소리를 들을래? 발이 푹푹 빠지는 눈 내린 겨울이라면, 아궁이에 고구마를 구워 먹자. 또 와도 좋은 곳에 너랑 다시 오고 싶다.
# 산내 이야기
길 : 동서울에서 마천행 버스를 타고 실상사에 내림
잠 : 감꽃홍시 게스트 하우스, 토닥 게스트 하우스
식 : 살레 국수, 계동 치킨, 토닥, 카페 소풍, 남원 추어탕
락 : 실상사, 뱀사골, 지리산, 인월장, 둘레길 3코스, 산내마을도서관, 토닥 강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