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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미국 유인 우주왕복선
콜럼비아1호 발사, 무사 귀환
아폴로 계획을 이어 소련의 소유즈에 대항
하기 위해 6년 만에 재개된 유인 우주왕복
선 실험의 주인공으로, 제작 계약은 1972
년7월 20일에 했고 제작 후 1981년 4월
12일, 유리 가가린의 우주 진출 이래 20
주년이 되는 날에 존 영과 로버트 크리펀
의 STS-1 미션으로 데뷔한 역사상 최초의
재활용 가능 우주선이다. 이름은 미국 건국
초기에 탐험선으로 활약했던 범선 컬럼비
아 에서 따왔다
▶2015년 제7차 세계 포럼 대회 개최 (대구.경북)
▶2011년 농협 전산망 마비 사태
농협중앙회에서 전산장애로 창구거래 등
전체 금융업무가 마비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농협중앙회에서 전산장애로 창구거래 등 전체 금융업무가 마비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농협은 지난 12일 오후 5시부터 전산망이 불통돼 13일 오후까지 영업점 창구 통장 입출금과 일부 신용카드 거래를 제외하고 현금카드와 현금입출금기(ATM), 인터넷뱅킹 등을 통한 거래가 불가능해졌다.
농협 측은 전산망 유지·보수를 담당하는 협력업체의 노트북 PC에서 명령어가 입력돼 운영시스템과 주요파일이 훼손되는 사태가 발생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전했다.
이후 농협의 자체 조사 결과, 서버의 유지·보수를 담당하는 한국IBM 직원의 노트북에서 농협 서버의 OS를 삭제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던 것으로 확인됐다. IBM 직원의 노트북은 전산망에 문제가 있을 경우에 대비해 항상 서버에 연결돼 있다.
한국은행은 나흘째 전산 장애 사고를 낸 농협에 대해 직권으로 공동검사에 착수했으며, 정부도 전 금융회사의 보안실태 점검에 착수해 농협과 현대캐피탈의 사고 여파로 금융업계가 대대적인 검사를 받게 됐다.
이번 사태로 금융전산망에 대한 농협의 보안 의식이 심각한 수준임이 단적으로 드러났다.
▶2010년 태국 반정부 유혈 시위 29여명 사망
▶2006년 신상옥 대한민국 영화 감독사망
▶ 2004년] 캐나다 50년 만에 바다표범 포획 허용
캐나다의 한 사냥꾼이 2003년 3월 동부해안 세인트 로렌스만(灣)의 빙원에서 어린 바다표범을 몽둥이로 때려잡는 장면을 국제동물복지기금(IFAW)이 2004년 4월 12일 공개한 사진.
캐나다 정부가 2004년 4월 12일 50년 만에 최대 규모의 바다표범 포획을 허용, 동물 보호단체들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캐나다 정부는 이날 30여만 마리를 포함해 3년간 바다표범 100만 마리의 포획을 허용했다. 이에 따라 사냥꾼 2500여명과 트롤어선 150여대가 이날부터 일제히 동부해역의 뉴펀들랜드와 래브라도 빙원(氷原)으로 향했다.
캐나다는 25년 전인 1979년 사냥꾼들이 어린 바다표범을 몽둥이로 처참하게 때려잡는 장면이 TV로 방영되면서 국제사회의 항의가 거세지자 포획 쿼터를 연간 1만5000마리로 제한해왔다.
캐나다 천연자원부의 존 에포드 장관은 “이번에 포획을 다시 허용하게 된 것은 북대서양의 바다표범 숫자가 520여만마리로 적정 수준을 넘어섰고, 침체된 지역경제 회복을 위해서도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캐나다 정부는 과거의 논란을 감안, 앞으로는 몽둥이 구타 방식이 아닌 총기로 바다표범을 잡게 하는 등 포획 방식을 엄격히 감독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국제동물복지기금(IFAW) 등 동물 보호단체들은 바다표범이 산 채로 가죽이 벗겨지는 등 관련 당국의 지침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며 반발했다. 미국에 본부를 두고 있는 ‘휴메인 소사이어티’는 항의의 뜻으로 미국 내 주요 일간지들에 캐나다 방문이나 관광을 하지 말자는 전면 광고들을 내기도 했다.
▶2004년한국 토종 야생 여우 사체 고환서
‘살아있는 정자(精子)’ 채취성공
▶2004년한국계 일본 작가 사기사와 메구무 자살
일본의 대표적 한국계 소설가 중 한 사람인 사기사와 메구무(본명-마쓰오 메구미)씨가 2004년 4월 12일 도쿄의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기사와씨는 18세이던 1987년, 고등학교 3학년 때 쓴 소설로 일본 문학계 신인상을 최연소 수상해 스타덤에 오른 유명작가다. 일본 최고 권위의 아쿠타가와상 후보에 네 번이나 올랐었고, 연달아 화제작을 발표했었다.
소설가 데뷔 때까지도 자신이 한국계임을 알지 못했던 그는 92년에 발표한 ‘달리는 소년’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할머니가 한국 출신임을 알게 됐고, 이후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서울에 유학하는 등 한국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재일교포 청년을 밝게 그린 ‘진짜 여름’, 역시 재일교포를 주인공으로 한 ‘너는 이 나라가 좋으냐’ 등 독특하고 경쾌한 분위기의 작품을 발표, 신세대 교포문학의 대표 중 한사람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이날 그의 죽음은 의문투성이었다.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고, 전달 3월에 신작을 발표해 6월에 연극으로 상연할 계획이었다.
▶2004년세계에서 가장 비싼 집 ‘런던의 타지마할’ 1460억원 세계 최고가에 매매
▶ 2003년 NBA 마이애미, 마이클조던 등번호 영구 결번
▶2002년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 사임, 이틀 후 복귀
▶2002년우리 손으로 만든 고속열차(KTX) 첫 선
▶2000년전세계 개발도상국 `77그룹 정상회담(G77)`,
창설 26년 만에 쿠바에서 개최
▶1999년최준례 여사의 유해 75년 만에
백범 김구 선생과 합장
▶1999년원로 한학자 임창순 선생 별세
▶1992년파리의 유로디즈니랜드 개장
▶1992년백범 김구선생의 암살범 안두희씨 암살배후 폭로
백범 김구 선생의 암살범인 안두희씨(76)가 범행 43년 만에 김구 선생의 암살배후에는 당시 특무대장이었던 김창룡씨가 관련돼 있다고 1992년 4월 12일 폭로했다. 안씨는 또 범행에 앞서 김씨 외에도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당시 미CIA 한국 담당자였던 미군 중령과 수차례 만나 김구 선생은 없어져야 한다는 언질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같은 사실은 권중희씨 등 3명이 4월 12일 오전 11시쯤 인천시 신흥동 안씨의 집을 방문, 8시간동안 면담하는 과정에서 밝혀졌다. 안씨는 "입당이후 서너차례 경교장에 드나들며 백범 암살기회를 노리던 중 1949년 6월 26일 우연히 경교장에 들렀을때 김구 선생이 독서를 하고 있어 범행적기라고 생각해 암살을 결행했으며 당시 자신은 포병장교로서 일선 중대장으로 나갈 예정이었기 때문에 권총과 실탄은 항상 휴대하고 다녔다"고 밝혔다. 또 안씨는 범행직후 헌병대로 연행됐으나 그날밤 곧바로 특무대로 이송되어 김창룡으로부터 "안의사 수고했소" "불편한 것 있으시면 말하시오"라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안씨는 이 때문에 특무대에서의 생활은 아침에 커피를 마시고 술·불고기·냉면·담배 등은 언제든지 먹을 수 있는 특별대우를 받았다고 덧붙였다. 한편 안씨는 지금까지 이같은 사실을 밝히지 않은 이유에 대해 김대장에 대한 개인적인 의리와 언론에 공개될 경우 나에게 쏟아질 보복때문에 미뤄왔다고 밝혔다. 안두희씨는 1996년 10월 23일 오전 11시30분쯤 인천 자신의 집에서 버스운전기사로 일하는 박기서씨에 의해 피살됐다.
일본 헌병이 되기 위한 충성적 활약
김창룡은 1916년 함남 영흥군 요덕면 임상리 한 산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당시 조선의 현실은 일본 식민 통치하의 암울한 시대였다. 당시 일본은 한민족의 식민지 통치에 대한 저항을 폭력적으로 제거하는 한편 황국신민으로서 충성을 바치도록 조선인을 동화시키려는 이중적인 정책을 펴고 있었다.
이러한 조선 역사의 비극적 시기를 살아간 조선인들의 삶은 민족이 당한 처참함만큼 처절한 것이었다. 특히 일본은 일본인에 의한 식민지 강권 통치가 조선인에 의한 민족적 감정을 자극하여 반일 투쟁이 강화될 것을 우려했고, 그래서 구상한 책략이 조선인에 의한 조선인의 지배였다. 바로 이러한 역사적 상황에서 김창룡은 일본 제국주의 식민지 통치자들이 원했던 바로 그런 사람으로 성장하였다. 4년제 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5세 때 영흥으로 나와 영흥공립농잠(農蠶)실습학교에서 2년 과정을 마친 김창룡은 일본인이 경영하는 편창(片倉)제사공장에서 직공 생활을 하면서, 일본인과 밀접한 관계를 맺기 시작하였다. 이 공장에서부터 일본인 경영자에게 신뢰를 받게 된 그는 그간의 공로를 인정받아 2년만에 만주 장춘역(長春驛) 직원으로 추천 받았다. 김창룡은 만주에서도 또 한 번 그 특유의 충성심과 헌신성으로 일본인의 신임을 쉽게 얻어낼 수 있었다. 다시금 일본인의 소개로 마침내는 북지(北支)에 있는 일본 헌병 부대의 군속(軍屬)으로 들어가는 행운(?)을 잡았다. 그러나 그는 군속이 아닌 진짜 헌병이 되기를 소원했다. 김창룡은 일본 장교의 눈에 들도록 온갖 노력을 다했고, 그 노력의 결과인지 1940년 초 장춘에 있는 관동군 헌병 교습소에 들어가게 되었다. 고기가 물을 만난 듯 열성인 김창룡은 소정의 과정을 마치고, 마침내 그렇게도 바라던 일본 헌병이 되었다. 보조 헌병이지만 그는 드디어 소원을 이룬 셈이었고 그때 그의 나이는 25세였다.
한걸음 더!
백범김구선생 1949년 6월26일 안두희에게
암살당하셨는데,1994년에야 '국회 진상규명
위원회'가 처음으로 꾸려졌다??
그 사이 45년간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렇게 늦여 졌나!
<이승만12,3년,박정희18년,전두환7년,노태우 5년 합43년!> 이게 '정답'아닐까?
1994년 오늘,
국회 법사위원회, 김구 암살 사건의 조사를 위한 백범 김구 선생 시해 진상 규명 소위원회를 첫 가동
김구 암살범 안두희,국회 증언"장은산이 지시"..가장 치욕적인 미제사건
지난해 6월 26일 오전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린 김구 선생 제69주기 추모식에서 유가족이 헌화 후 인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1994년 1월 4일 백범 김구(1876∼1949년) 암살 사건 범인 안두희(1917∼1996년)의 국회 증언이 이뤄졌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백범 김구 선생 시해진상규명 소위원회’는 이날 회의를 열어 안두희 등으로부터 증언을 들었다.
안두희는 증언에서 ▲‘장은산 포병사령관이 암살을 지시했다’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녹음테이프의 진술 내용은 사실 ▲진술은 자유스러운 상태에서 한 것을 시인했다.
백범시해진상규명위원회 측은 이날 1992년 6월부터 1993년 9월까지 안두희가 “처음으로 고백한다. 마지막 유언이다”라며 진술한 내용을 담은 121개의 녹음 테이프를 증거자료로 제출했다.
하지만 이런 국회 차원에서의 김구 암살 사건 진상 규명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건의 진상은 밝혀지지 않았다.
안두희는 1996년 10월 23일 인천광역시에 있는 자택에서 박기서에게 피살됐다. 김구 암살범이자 사건의 진상을 밝힐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이었던 안두희가 죽음에 따라 김구 암살 사건은 영구 미제사건으로 남게 됐다.
김구 암살은 민족지도자의 암살이었을 뿐 아니라 암살범이 현장에서 검거됐고 이후 수십 년 동안 국내에서 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건의 진상을 밝히지 못했다는 점에서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비극적이자 치욕적인 미제사건으로 남아있다.
백범(白凡) 김구(金九) 선생 암살범. 1949년 6월 백범을 암살하여 종신형을 선고받았으나 감형, 잔형면제를 받았으며 정치적 의혹에 대해 김구 선생 살해 진상 규명 위원회가 발족하자 잠적하였다. 여생을 은신생활로 보내다가 끝내 배후를 밝히지 않았으며 박기서에게 피살되었다.
▶1991년통계청,인구주택총조사결과에서1990년 11월 1일 현재 우리나라 총인구는 4,352만199명으로 발표
▶1988년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작가 페이턴 사망
▶1983년해럴드 흑인 최초 미국 워싱턴 시카고 시장에 취임
▶1983년소련, 남북교차승인 반대
▶1981년12년간 세계 헤비급 챔피언이었던 미국 권투선수 조 루이스 사망
▶1981년미국 유인 우주왕복선 콜럼비아1호 발사, 무사 귀환
▶1975년서울대생 김상진군 할복자살
▶1973년티우 월남 대통령 내한
▶1971년 서울역-청량리 1호선 지하철 공사 착공(1974. 8. 15 개통)
▶1970년영국 선교사 스코필드 박사 사망
▶1964년소련 폴리오트 2호 발사
▶1962년드라마센터 개관
▶ 1961년유리 가가린, 최초 우주비행 성공
“하늘은 무척 어두웠지만 지구는 푸른 빛이었다. ”
소련의 우주비행사 유리 가가린이 인류최초의 우주여행을 마치고 지구로 돌아와 던진 첫마디였다.
1961년 4월 12일 오전 9시7분, 4.75t 무게의 소련 우주선 보스토크 1호가 유리 가가린을 태우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가가린이 지구를 한 바퀴 돌고 1시간48분 동안 우주에 머물다 지구로 무사히 귀환하자 미·소 간 우주대결에서 또 이겼다는 자부심이 소련 전역에 넘쳐났다. 소련의 이즈베스티야 지(紙)는 ‘세계를 뒤흔든 108분’이란 제목을 대문짝만 하게 달았고 프라우다는 호외를 찍었다. 가가린은 중위에서 소령으로 두 단계나 건너뛰었고, 레닌훈장까지 받아 소련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그가 어린시절을 보냈던 그자츠크는 이름을 아예 가가린으로 바꿨다.
소련은 여세를 몰아 이후에도 보스토크 이름을 단 유인우주선을 여섯 번이나 발사, 모두 성공시켰다. 가가린의 우주여행 3주 뒤 미국 역시 셰퍼드 중령을 태운 우주선 ‘머큐리’ 캡슐을 쏘아 지구궤도비행에 성공시켜 겨우 체면은 세웠지만, 1957년 10월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발사 때의 충격에 이은 또 한번의 패배로 자존심은 구겨질 대로 구겨졌다.
소련의 우위는 이때까지. 스푸트니크 충격 때 대통령과학기술특별보좌국과 국립항공우주국(NASA)을 창설하는 등 부산을 떨었던 것처럼 이번에도 새로운 계획이 발표됐다. 1961년 5월 25일 케네디 대통령이 1960년대 안에 인간을 달에 착륙시키겠다는 야심찬 ‘아폴로 계획’을 발표한 것이다. 미국 정부는 250억달러라는 막대한 돈을 투입하며 총력전을 펼쳤다. 1969년 7월 20일 아폴로 11호를 타고 날아간 암스트롱이 달 착륙에 성공, 미국은 비로소 승리의 축배를 들 수 있었다.
최초의 유인 우주선 보스토크호 발사
1961년 4월 12일 소련에서 최초의 유인 우주선 보스토크 1호가 발사되었다. 보스토크 1호는 우주비행사 유리 A. 가가린을 태우고 오전 9시 7분에 발사되어 최고 고도 301㎞에서 1시간 29분 만에 지구를 1바퀴 선회비행한 뒤 오전 10시 55분 소련에 착륙했다. 이후 보스토크 우주선은 2년 동안 6번 발사되었다. 같은 해 8월에 발사된 보스토크 2호는 25시간 이상 우주에 머물면서 지구둘레를 17바퀴나 돌았다. 나머지 보스토크 우주선은 짝을 지어 발사되었다. 보스토크 3호는 94시간이나 우주에 머물러 새로운 기록을 세웠고, 지구궤도에서 256만㎞ 이상을 비행했다. 보스토크 우주선 가운데 마지막 우주비행을 한 보스토크 6호에는 최초의 여성 우주비행사 발렌티나 V. 테레슈코바가 탑승했다.
▶1961년유엔(UN) 정치위원회,
북한 조건부초청안 채택
▶1956년북대서양조약기구(NATO)7개국,
지중해서 해,공군 합동 훈련
▶1955년소아마비 예방 백신
`소크 백신` 접종 결과 안전하다고 발표
▶1954년원자폭탄 개발을 지휘한 미국 물리학자 오펜하이머에 대한 청문회 시작
오펜하이머
▶1953년호지명군 라오스 침공 개시
▶1950년한국, 보스턴마라톤 제패
(1위 함기용, 2위 송길윤, 3위 최윤칠)
▶1945년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사망.
해리 트루먼이 승계
루스벨트 [Roosevelt, Franklin Delano, 1882.1.30~1945.4.12]
미국 최초의 4선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1945년 오늘 뇌출혈로 숨졌다.
루스벨트는 1933년 대통령 취임 후 경제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강력한 내각을 조직하고 뉴딜정책을 추진해 큰 성과를 거뒀다.
1936년 대통령에 재선되고 1940년 3선에도 성공했다.
루스벨트는 2차 세계대전에서 처음에는 중립을 선언했지만 1941년 일본의 진주만 공격을 계기로 미국의 참전을 선언했다.
카이로, 얄타 회담 등 연합국 회의에서 주도권을 장악해 전쟁종결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루스벨트는 미국사상 최고의 정치가로 평가받았다.
1944년 4번째로 대통령 임기를 시작한 그는 이듬해 4월 세계대전의 종결을 보지 못하고 숨졌다.
▶1933년네덜란드 경제학자 틴베르헨 출생 - 계량경제 모델을 발전시켜 노벨경제학상 수상
▶1933년스페인의 오페라 소프라노 가수 카바예 출생
▶1932년이광수의 장편 `흙` 동아일보에 연재 시작
▶1927년장제스(蔣介石), 상하이서 반공쿠데타
▶ 1861년 미국 남북전쟁 발발
남북전쟁의 첫 총성은 링컨이 대통령에 취임한 지 한 달쯤 뒤인 1861년 4월 12일 사우스 캘롤라이나주에 있는 포트 섬터 항구의 연방 초소에서 들렸다.
남군정부는 지금까지 연방에서 파견주둔하고 있던 군대를 남군에 소속된 주(州)로부터 철수를 요구했고 이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실력행사에 들어간 것이다. 주둔하던 연방군대는 반격 한번 못하고 백기를 들었다.
이날 희생된 것은 단지 말 한필이었으나 5년간의 남북전쟁의 시발점이 됐다. 링컨은 민병대를 소집한 뒤 조속한 진압을 지시했고 두달 만에 맥도웰 장군이 이끄는 북군이 남군의 수도 리치먼드를 향해 출정해 본격적인 남북전쟁이 시작됐다.
▶ 1834년 구두교수법 개척한 미국의 교육자 로저스 출생
▶ 1817년 체계적인 성운, 성단 목록을 편집한 프랑스 천문학자 메시에 사망
▶ 1633년 오늘,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에 대한 종교재판 시작!
1564년 2월 15일 이탈리아 피사에서 출생~1642년 1월 8일 이탈리아 Arcetri에서 사망
▶ 1627년 정묘호란 종식
▶ 1432년 한성에 전염병 발생
▶ 823년 신라, 유성 나타남
https://youtu.be/ZafFZo6s5JU
출처 네이버지식백과, 반가운의hi스토리,솦트리종려나무
편집 뜨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