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오는 길목
그제 우리니라로 접근해 온 태풍이 큰 피해를 남기지 않고 사그라졌다. 제주 인근까지는 태풍의 눈이 선명해 바짝 긴장했으나 정작 목포 연안에서 내륙으로 들자 세력이 수그러들었다. 태풍이 지나고 보니 폭염을 날려줄 바람이나 가뭄을 해갈시킬 흡족한 비가 내리지 못함이 아쉬울 따름이다. 팔월 넷째 주말을 맞은 여름 끝자락인데 더위는 아직도 식을 줄 모르고 계속된 나날이다.
나는 새벽부터 근교 산행을 위한 길을 나섰다. 집 앞에서 첫차로 운행하는 101번 시내버스를 탔다. 시내를 관통해 마산합포구청 맞은편에서 내려 진북 서북동으로 가는 73번 농어촌버스를 탔다. 서북동을 가려면 마산역 광장 모퉁에서 삼진 방면으로 다니는 농어촌버스를 탔으나 새벽 첫차를 받아 타려고 마산의료원 앞으로 갔더랬다. 아침 이른 시각인데도 버스 승객은 더러 있었다.
진동 환승장과 진북 면소재지에서 거의 다 내리고 덕곡천을 따라 올라가면서 텃밭을 경작하는 노부부가 내렸다. 서북동 종점까지 타고 간 승객은 나 혼자였다. 종점에서 내려 임도로 오르면서 산등선을 쳐다보니 파란 하늘에 양털구름이 인상적이었다. 일시적으로 여름이 아닌 가을 구름 같더니만 금세 먹구름이 몰려왔다. 구원사를 지날 때 바위틈으로 귀여운 다람쥐가 마중 나왔다.
행정 당국에선 임도 길섶 무성한 풀들을 깔끔하게 정리를 해놓았다. 선산 벌초 하듯 풀을 자르는 일은 좋으나 한 가지 아쉬움이 남았다. 이왕 자를 풀이라면 시기를 좀 당겨 한여름이 오기 전 잘랐으면 좋을 듯하다. 가을이 오는 길목 풀을 자르니 길섶에 자라던 산국이나 구절초와 쑥부쟁이 멱이 다 날라 가버렸다. 잎맥이 다시 자라 꽃봉오리를 맺을 시간적 여유가 부족해서다.
산허리 T자 갈림길에서 부재로 가지 않고 감재로 향했다. 부재로 가면 의림사나 부재골로 내려설 수 있다. 나는 감재로 향해 여항산 임도를 걷고 싶었다. 금산 편백나무 숲으로 가는 길림길을 지나 감재 비탈로 내려섰다. 임도 길섶 자연석 더미에 앉아 국순당을 한 병 비우면서 아까 찍어둔 파랗게 드러난 하늘의 새털구름과 여항산 임도 안내판을 사진에 담아 몇몇 지기에게 보냈다.
여항산 임도는 오른편으로 돌면 봉화산 허리를 거쳐 봉성저수지에 닿는다. 나는 그 길을 여러 차례 걸었다. 왼편 법륜사 가는 길은 어느 해 봄날 한 번 걸었다. 이번엔 법륜사로 가는 숲길을 걸을 요량이다. 길섶에는 가을 들머리에 피는 노란 마타리꽃을 만났다. 한여름에 핀 등골나물꽃도 아직 지지 않고 있었다. 산초나무는 가지 끝마다 꽃송이가 달려서 열매를 맺으려고 준비했다.
산기슭에는 헛개나무 군락지가 보였다. 높이 자란 헛개나무에는 자잘한 열매들이 달려 있었다. 소나무 숲길을 나아가 약수터 산장에 이르렀다. 여항산 북사면 산중 식당으로 바깥에서 찾는 사람들이 더러 있을 듯했다. 약수터 산장을 돌아 산마루에 오르니 평상이 놓인 쉼터가 나왔다. 쉼터에서 아까 남긴 국순당을 마저 비우면서 가을이 오는 길목 야생화 사진을 지인들에게 보냈다.
법륜사까지 가질 않고 등산로가 묵혀진 산등선을 따라 숲을 헤쳐 나갔다. 바위 능선이 나와 고소공포가 있는 나는 허리를 낮추어 조심스럽게 지나니 함안 조씨 선산이 나왔다. 더 아래로 내려가니 약수터 산장 오르는 길과 이어진 곳에 보갑사가 위치했다. 마침 음력 칠월 백중을 맞아 법당에는 많은 불자들이 찾아와 재를 올렸다. 절간에서는 부처님 오신 날 다음으로 큰 행사였다.
공양간 아래 연못의 청청한 연잎을 사진에 담고 별천으로 내려섰다. 산언덕엔 미끈한 적송이 자랐다. 늦여름 피서객이 몇몇 찾아온 계곡으로 내려가 손을 담그고 이마의 땀을 씻었다. 읍내로 가는 버스를 타 봉성저수지를 지난 한우국밥촌에서 점심을 들고 함안역으로 갔다. 순천에서 부전으로 가는 무궁화호는 섬진강을 건너 진주로 오고 있었다. 열차에 오르니 금방 창원중앙역이었다. 18.0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