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Ⅱ.이스라엘에서
드디어 이스라엘에 왔다. 이스라엘 입국은 까다로워 긴 줄로 늘어서 있고 시간이 엄청 걸렸다. 늦어지는 바람에 밤이 되어 일정에 있던 롯의 소금기둥도 보지 못하고 사해 Le meridien호텔에 곧바로 가서 짐을 풀었다. 여행 짐을 지혜롭게 챙겨야 고생을 덜한다. 현지 음식이 너무 훌륭한데 쓸데없이 음식물을 많이 가져왔고, 너무 두툼한 옷을 가져온 것을 후회한다. 참고로 이스라엘에선 식당 음식 외에 다른 음식 반입은 금지이다. 여행 짐은 최대한 가볍게 ! 내일 아침 6시 기상, 7시 식사, 10시 출발이란다. 식사 후 1시간 30분 동안 사해에 몸을 담가볼 수 있다.
1월 17일, 초등학교 사회 교과서에서 배웠던 사해에 직접 몸을 담그다니 정말 기분이 좋았다. 모두들 수학여행 온 학생들처럼 하하 호호 웃으며 물 속에 들어간다. 모두 서로 손잡고 둥그렇게 원을 만들어 하나 둘 셋 하며 물에 드러 눕는다. 언제 이렇게 성도들과 교제하고 어울릴 시간이 있었던가? 일요일 잠깐 얼굴만 보고 헤어지던 사람들과의 열흘간 교제는 참 값진 것이었다. 1호차, 2호차 나뉘어서 다니지만 모두 가족 같은 한 마음이다. 사해에 누워 파란하늘을 보고 하늘 아래 누런 광야의 바위산을 본다. 그동안의 피로가 단번에 물러간다. 얼마나 잘 떠 있는지 팔 올려 책을 읽어도 될 것 같다.사해에 누워 파란 하늘을 보니 꿈만 같다. 누런 바위, 사막위에 펼쳐진 하늘은 왜 그렇게도 새파랄까? 사해는 굉장히 큰 바다였다. 물줄기가 계속 흐르지 못하고 막혀 증발되는 바람에 사해의 규모가 점점 작아지고 염도도 높아 간다고 한다. 물 맛은 짜다 못해 썼다. 우리가 거쳐 왔던 시나이 반도, 마라의 우물 맛이 바로 이 맛이었는가 보다. 눈에 소금물이 들어가면 엄청 따갑다. 곧바로 모래사장에 설치된 수도로 가서 씻어내어야 한다. 다음일정을 위해 호텔로 돌아와 스파에 가서 몸을 씻고, 서둘러 짐을 꾸려 버스에 탄다. 여리고성에 가는 길에 쿰란에 들렸다. 오래된 성경이 발견된 곳이란다. 베두인 목동에 의해 우연히 발견된 성서들은 양피지와 파피루스에 기록되어 굴 속 항아리에 보관되어 있었다고 한다. 예수님을 부인하는 사람들에게 예수임이 바로 메시아임을 깨닫게 하는 귀중한 자료라고 한다. 이 자료를 본 학자들은 구약과 신약이 뚫리는 느낌이었다고 한다. 당시 예수님은 민중들을 구약으로 지도하셨다는 것, 왜 예수님이 죽으셔야 하는지를 이해 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4번 동굴에 있는 이사야서는 거의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었다고 한다. 쿰란 자료 영화를 통해 수도자들이 성경을 필사하는 장면을 보았다. 공동체 생활을 하며 절제하며 협동하며 오로지 성경필사에 매진한 젊은이들이다. 남자들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 남자들의 참 아름다움을 느꼈다. 점심을 먹은 후에는 식당에 이어져 있는면세점에 들려 이스라엘의 기념품을 몇 가지 샀다. 성지 순례의 일정이 너무 빡빡하여 물건을 살 기회가 없기에 사해 비누와 컵받침, 작은 책자 등을 샀다. 사해의 비누와 머드팩은 좋은 품질로 유명하다고 한다. 이어서 여리고 성에 들어가 삭개오의 돌 무화과 나무를 보았다. 우리는 뽕나무라고 알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돌무화과 나무였다. 예수님이 40일동안 사탄에 시험을 받으신 시험산을 멀리서 보고 내려와서는 엘리사의 샘을 보았다. 여리고는 꽤 큰 도시였는데 여름엔 무척 덥다고 한다. 갈렙과 여호수아를 비롯한 여러 명이 여리고 정탐을 하고 돌아가 모세에게 보고한 내용이 떠오른다. 사람의 시각 차이가 이렇게 무섭다. 결국 여호수아의 의견이 받아들여지고 그는 모세를 이은 지도자가 된다. 버스를 달려, 나는 꿈에도 그리던 예루살렘성에 입성하였다. 먼저 예수님이 기도하기 위해 자주 오르셨던 감람산(올리브산)에 올라갔다. 감람나무는 올리브나무라고 한다. 성경에 올리브라고 했으면 훨씬 이해가 쉬웠을 것을 하필 감람나무라고 하여 생소함을 주었는지 모르겠다. 2000년도 넘은 올리브 나무들이 7~8 그루 서 있었다. 맨 처음 간 곳은 예수님 승천교회이다. 거기에서 우리는 아름다운 화음을 넣어 찬양을 하였다. “신자 되기 원합니다. 참맘으로 참맘으로~~~ 다음 간 곳은 주기도문 교회(pater noster)이다. 세계 여러 나라의 언어로 주기도문이 새겨져 있었다. 우리에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신 곳이다. 다음은 예수님이 눈물을 흘리신 눈물교회(Dominus, Flevit church)에 갔다.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히고 또 예루살렘이 망할 것을 예언하며 주님이 눈물을 흘린 곳이라고 한다. 다음 간 곳은 전 세계인들의 헌금으로 세워진 겟세마네 만국교회이다. 들어가서 찬송을 하기도 하고 기도도 하였다. 감람산 맞은편에 있는 예루살렘의 랜드마크인 황금돔을 보니 비로소 예루살렘에 온 게 실감난다. “거룩한 성 ”노래 한 구절이 저절로 흥얼거려진다. 예루살렘! 예루살렘! 그 거룩한 성아! 호산나 호~산나 호산~나~ 부르자. 나 어젯밤 잘 때 한 꿈을 꾸었네. 그 거룩한 성에 들어갈 때에.....
예루살렘성은 오스만 터키 황제 때 재건축 되었지만 무너지고 터 만 남았었는데 그 터 위에 이슬람 사원을 세운 것이라 한다. 진짜 금을 입힌 것이란다. 황금돔 뚜껑을 열면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 드리려 했던 바위가 있다고 전해진다. 고고학자들은 뚜껑을 들어내고 밑을 보고 싶어 한다고 한다. 저 밑에는 솔로몬의 성터가. 헤롯의 성터가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잠시 예루살렘 투어를 접고, 나머지 예루살렘은 내일 오전에 보기로 하고 힌놈 골짜기를 지나 베들레헴으로 향하였다. 예루살렘을 벗어나 베들레헴으로 가는 길에 본 하늘의 구름은 예사롭지 않았다. 찻 속이어서 제대로 찍을 수 없는 게 참 아쉽다. 베들레헴은 팔레스타인 자치구역으로 분쟁지역이다. 예수님이 태어나신 지역이 분쟁지역이라니......장벽이 쳐 있었고 이스라엘 군인들이 지키고 있었다. 낮에 이스라엘 경찰이 들어왔다는 정보에 팔레스탄인들이 너도 너도 손에 돌을 들고 곳곳에 서 있었다. 그 때문에 시내에 차들이 꽉 막혀있었다. 일체의 사진 활영도 금지다. 우리 버스를 향해 이스라엘 군인 둘이서 총을 겨누고 있다. 실탄이라는 가이드 말에 갑자기 오싹한다. 아까 내 핸드폰으로 영사관에서 경고 메시지가 왔었다 분쟁지역 여행을 자제하라는 안내 메시지다. 우리나라도 분쟁지역이지만 이곳 팔레스타인 분쟁 문제는 보다 심각하였다. 우리가 예수탄생교회에 도착했을 때엔 이미 문을 닫아 겉모습만 볼 수밖에 없었다. 크리스마스가 지난지가 한 참인데 아직도 관광객을 위한 배려인지 거리엔 크리스마스 트리들이 반짝거리며 그대로 걸려 있었다. 화려한 크리스마스트리가 아니었으면 이 도시는 얼마나 황량하고 어둡고 침침하고 살벌하였을까? 호텔 이름도 세인트 훼밀리 호텔 등 예수님 탄생과 관련된 게 많았다. Intercontinental 호텔에서 또 짐을 풀었다. 이 호텔 옆에 들판 목자교회가 있다는데 우리는 그냥 지나쳤다. 어찌 다 볼 수 있으랴?
1월18일 아침 일찍 다시 예루살렘으로 갔다. 어제 미루어둔 나머지 투어를 위해서다. 38년 된 병자를 고치신 베데스다 연못에 먼저 들렀다. 정원이 아름다웠다. 38년이나 된 고질병을 고친 사람은 얼마나 감사하고 시원하고 행복했을까?
이어서 이번 여행의 가장 핵심이라고 보는 십자가의 길을 14곳을 차례로 따라갔다. Via Dolorosa(슬픔의 길, 고난의 길)라고 하는 이 길은 빌라도 법정에서부터 골고다 언덕까지 14코스로 되어 있다. 10코스부터 마지막 14코스는 성묘 교회 내에 있다고 한다. 3번 코스에서 처음으로 쓰러지셨다는데 웬지 가슴이 에이었다. 죄 없이 죽으신 예수님을 생각하면 기가 막히다. 그런데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세상엔 알게 모르게 정말 억울한 사람이 많다고 한다. 예수님의 경우를 보자. 정말 이렇게 억울할 수가 있나? 내가 살면서 분하고 억울한 일을 당할 때면 항상 죄 없이 죽으신 예수님을 떠 올렸었다. 거기에 비하면 나의 억울함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 보다 더 억울한 일이 이 세상에 또 있겠느냐 말이다. 예수님 묘로 추정되는 성묘교회를 둘러보았다.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어머니 헬레나가 기독교로 개종한 후 지었다는데 현재는 그리스 정교회 소유이고 문지기는 이슬람교도 라고 한다. 통곡의 벽을 갔다. 사진 촬영이 금지된 곳이다. 많은 유대인들이 벽에 손을 대고 기도하고 광장 안에선 의자에 앉아 성경을 소리 내어 읽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나의 의식행사 같았다. 우리도 벽에 손을 대고 조용히 기도를 했다. 이 곳 성지에서 무엇보다 확고한 믿음을 다지게 하소서. 다음엔 시온산에 있는 마가의 다락방에 가 보았다. 다락방은 다윗왕의 가묘 가 있는 건물의 2층이었다. 최후의 만찬이 이루어진 곳이라 한다. 다윗왕의 가묘를 본 후 베드로 통곡교회에 갔다.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하고, 후회를 하며 통곡한 베드로를 기념하여 지어진 교회란다. 그래도 인간적으로는 이해되는 부분이 있다. 우리는 세 번이 아니라 수백 번 예수님을 거스르며 살지 않았나! 인간의 한계이리라. 베드로에게 “닭이 울기 전에 나를 세 번 부인하리라”라던 예수님의 말씀이 떠 올라 통곡을 한 베드로! 그래서 교회 지붕엔 닭의 조각물이 걸려있었다. 독일 여행할 때 독일교회들 지붕에도 닭의 조각물들이 걸려 있었었다.
예루살렘을 돌아보면서,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도들이 화합하여 상생하며 어울려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생각들이 오갔다. 다른 종교를 인정하지 않는 편협함은 꼭 버려야 할 것이다. 유대교를 믿는 이스라엘 민족은 지금까지도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슬람은 알라만이 유일한 신이라 주장하고 있다. 캐돌릭은 라틴어를 사용하는 로마 중심의 서방 정교와 희랍어를 사용하는 동방정교로 나뉘어져 왔고 또 중세의 부패한 카돌릭으로부터 개신교로 나뉘어졌다. 어디 그 뿐인가? 개신교도 계속 분열하여 지금까지 변화와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개신교는 예수님 당시의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루터의 주장에 따라 나타난 결과이다. 루터는 독일의 신부였으나 부패한 캐돌릭에 반기를 들고 예수님이 세운 초대교회에 가장 가까운 참 교회를 외치게 된 것이다. 개신교는 400년도 안된 역사이기에 이곳의 교회들은 사실상 모두 성당들이다. 이런 문제들은 워낙 심오한 문제여서 내겐 벅차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에게 하나님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다. (아멘). 오후에는 해롯 대왕이 만든 지중해 항구도시 가이사랴에 갔다. 지중해에 꼭 가보고 싶었는데 여기 와서 지중해를 볼 줄이야! 헤롯이 로마 황제를 위해 원형경기장, 전차 경기장 등 로마의 도시와 똑 같이 만들었다고 한다. 지금은 아랍과의 전쟁과 지진으로 파괴되고 터만 남아 있었다. 로마의 막강한 힘을 다시금 느낀다. 지중해를 건너 이스라엘, 아라비아 반도까지 차지한 거대한 로마제국의 힘을 느낀다. 이어서 므깃도에 갔다. 므깃도는 여호수아 때부터 존재하던 고성이란다. 솔로몬이 중건한 요충지라고 하며 유다 왕 아하시아가 이스라엘 왕 예후에게 죽은 장소라고도 한다. 유다 개혁왕 요시아가 애굽왕 바로 느고에게 패하여 죽은 자리, 아마겟돈으로 예언된 바로 그 자리이다. 무깃도가 인류의 앞길을 예언해 준다. 3시에 문을 닫는다고 하여 서둘러 왔지만 이미 입장시간이 넘어 도착하였다. 정 목사님의 노력으로 겨우 들어가 모형만 보고 왔다. 예수님이 성장시절을 보낸 나자렛으로 이동한다. 나사렛으로 이동하면서 보니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란 말이 실감난다. 평야가 끝없이 펼쳐져 있고 푸른 초목으로 우거져 있다. 오렌지 나무 올리브 나무 과수원이 끝이 없다. 미국 서부 켈리포니아에 온 듯 착각했다. 흔히 이스라엘 하면 광야, 사막 이런 것 만 떠 올렸는데 북부 이스라엘은 전혀 아니다. 에덴동산이 맞다. 나자렛에서 먼저 마리아 수태고지 기념교회 성 요셉 기념교회에 갔다. 16세의 마리아는 현재 중3 나이었을 터인데 어떻게 천사의 말에 수락했는지 정말 그 믿음이 놀랍다. 캐돌릭은 성모를 아주 중요하게 여긴다고 하는데 아마도 그 믿음 때문일 거라고 생각해 본다. 오늘 마지막 일정인 가나 혼인잔치 기념교회에 갔다. 물을 변하여 포도주가 되게 한 기적이 일어난 것을 기념하여 세운 교회이다. 가나 혼인잔치 교회의 두 개의 푸른색 청탑에서 은은하게 종소리가 온 거리에 울리고 있다. 얼마 만에 들어 보는 성당 종소리인가? 마을이 평화스러워 보인다.
가나의 혼인잔치 교회에서는 신랑 신부들이 결혼하기 위해 청약이 밀려 있다고 한다. 교회 근처 기념품 가게에는 포도주 들이 탑처럼 쌓여져 있다. 지친 몸을 버스에 싣고 갈릴리로 갔다.
1월 19일, 저녁에 와서 갈릴리 바다를 제대로 못 보아서 아침 일찍 나가 보니 잔잔한 갈릴리 바다가 고요히 흐르고 있다. 성도들은 벌써들 일어나 사진들을 찍고 있다. 예쁜 꽃들, 지저귀는 새들, 탐스런 대추야자 나무들 , 정말 평화로운 광경이다. 키부츠에서 키운 싱싱한 야채들로 아침식사를 했는데 정말 맛이 최고다. 치즈 당근 오이 등 모든 야채들이 신선하고 맛이 있었다. 버스로 이동하여 갈릴리에서 배를 탈 거란다. 오늘이 한국에서 주일이니 선상 예배를 드리기로 하였다. 선상에서 예배를 드리니 너무나 은혜로웠다. 말씀도 찬양도 모두 다 은혜였다. 뱃세다 들판을 지나 갈릴리 상류로 이동하였다. 텔 단에 갔다. 이스라엘은 앞에 “텔” 이란 말이 붙은 지명이 많은데 지층이 형성돼 역사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지형을 ‘텔’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수도인 텔 아비브는 예외란다. 이스라엘의 수원지는 헬몬산의 3개 지역에서 발원된다. 바니아스, 하스바니, 그리고 단 지역이다. 단은 물이 많고 나무와 숲이 우거져 아름답다. 이스라엘 전역을 표현할 때 단에서 브엘샤바까지 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단은 가장 최북단 도시, 브엘사바는 가장 최남단 도시이다. 요단강은 1년 내내 마르지 않는다. 베드로가 주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고백한 가이사랴 빌립보에 갔다. 자연이 아름답다. 다음에 간 팔복교회는 주변 경치가 멋지다. 오병이어 교회, 베드로 수위권 교회, 가버나움을 지나 요르단 암만으로 이동하였다.
가장 기대했던 이스라엘, 그렇지만 이슬람 유대교의 그늘 속에 있는 기독교의 현실을 보니 마음이 무거웠다. 선교사님들이 열심히 선교활동을 하지만 풀어야 할 숙제가 많은 듯 하다. 예루살렘처럼 모두 어울려 상생하는 지혜를 가져 봐야 겠다. 이 땅에 평화를 주소서!
이스라엘을 떠나며 기도한다.
빌립보 가이사라" 베드로가 예수님께 신앙고백을 한 곳
2000여년이나 된 올리브 나무
베들레헴 인터콘티넨탈 호텔
예루살렘 주기도문 교회
예수님이 돌아가신 곳으로 추정되는 성묘교회 돔
황금성이 보이는 예루살렘 입성
베드로의 부인을 예언한 예수님(통곡교회로 들어가는 문이다)
슬픔의 길 3번:여기서 처음 쓰러지셨다고 함
베드로 통곡교회(지붕 위에 닭의 모습이 보인다
다윗왕 가묘의 내부
고난의 길
성모 수태고지 교회에 걸린 한국의 성모와 아기
지중해의 관문 가이사라의 입장권 구입
나자렛의 과일 가게 : 엄청난 과일들이 곳곳에 있었다
지중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 이란 말이 실감나는 평야지대
가나 혼인잔치 앞마당에서
가나 혼인잔치 교회 모습 마침 저녁이어서 네온이 들어와 멋있다. 양쪽 청색의 종각에서 은은한 종소리가 들려왔다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 잡이 하는 어부들(베드로의 후손들)
잔잔히 흐르는 갈릴리 호수의 배 위에서
첫댓글 우리 친구들! 명절은 잘 보냈나요? 개학이 되니 2014년이 된 것 같습니다요. 새해 복 많이 받고 올해 건강하고 행복한 일 가득하기를 빌어요. 위의 사진은 틈이 없어 설명을 못 쓰네요. 컴퓨터 실력 부족입니다. ㅎㅎ
수련이 너 그럴줄 알았다. 춥다고 집에만 있을 네가 아니지~~성지순례 1,2년안에 가려고 계획하고 있었는데
많은 참고가 될것같아 고맙다. 갈릴리 바다에서 예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던? <나를 따르라!>
이집트쪽은 아무래도 고려해야 할 듯하다. 생각보다 위험한 곳이네. 이스라엘과 요르단 터키 쪽으로 우회하는게 좋겠어. 요즘 어떻게 지내니? 인천으로 간 뒤 이야기를 많이 못했구나
사진과 글 잘 보았습니다. 나는 1997년 1월에 이집트, 이스라엘 코스로 다녀 왔었다오.
수련아, 잠잠하다 했더니 거대한 작품을 내놨구나. 사진도 잘 찍었다. 출애굽 여정 했을때 페트라 벽의 조각전체가 사진에 담기지 않아 애먹었는데 한방에 찍었구나 역쉬...이스라엘은 담에 꼭 가보고 싶은 곳인데 참고가 많이 될 것 같아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