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물동이
국경휴가를 빌어 나는 오래만에 친청집에 갔었다.
그날 어머니는 베란다로 나가시더니 무언가를 바구니에 들고 땅을 핧을것처럼 몸을 꾸부정하고 나오는것이였다. 순간 나는 어머니의 이 모습을 보고 옛날에 엄마가 무거운 뜨물을 이고 다니던 모습이 눈앞에 떠오르는것이였다. 아, 우리는 그젠날 이 초라한 페인트물통하나로 살아오지 않았던가?! 순간 나는 자기도 모르게 코마루가 찡해나면서 땜질 투성이의 물통에 대한 추억이 새삼스레 떠올랐다.
……
지금으로부터 40년전, 《문화대혁명》이란 동란의 세월은 연변우전국전보과 과장으로 근무하던 아버지를 “외국특무”로 전락시키고 끝내는 귀중한 생명까지 앗아갔다.
당시 어머니는 연길시아동복장공장의 재단사로 일하셨는데 식구가 많다보니 어머니 한 사람의 로임으로만은 모든것이 역부족이였다. 그때로부터 어머니는 섬약한 녀인의 몸으로 다섯 아이에 할머니까지 일곱식솔의 생계를 위해 손발이 닳도록 일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37원의 로임으로는 생활이 도저히 되지 않았다. 그래서 어머니는 집식구들의 생계를 위하여 돼지를 키우기 시작하였다. 어머니는 여윈 중돼지를 값 눅게 사서는 하루라도 굶길세라 정성들여 키웠다. 돼지를 기르는데는 사료가 관건이였는데 어머니는 매일마다 날이 미처 밝기도전에 일어나 물통을 이고 먼곳에 가서 돼지뜨물을 날라오군 하셨다. 퇴근해서도 짬만 있으면 그 바께쯔와 따발을 가지고 집문을 나섰다. 그때 나는 역한 냄새가 풍기는 뜨물과 땀으로 얼룩진 어머니의 얼굴을 거의 매일이다싶이 보았다.
돈이 귀한데다 물자가 궁핍한 세월이여서 어머니는 그 뜨물통을 마치 금덩이나 되는것처럼 닳을세라 아꼈다. 뜨물을 날라와서는 그 물통을 깨끗이 씻어서 엎어놓군 하셨다. 어머니가 아무리 아껴 써도 물통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밑으로부터 닳아 구멍이 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어머니는 두꺼운 나무판을 얻어다 톱으로 동그랗게 쓸어서 물통 밑바닥의 구멍이 난 곳에 대고는 구두밑바닥에나 박는 작은 못을 사다가 빙 돌아가며 박았다. 그리고는 솜을 적셔 손바닥으로 살살 비벼서는 물통밑굽의 둘레에 송곳으로 꽁꽁 틀어막고 그우에 페인트를 발라 말리우군 하셨다. 이렇게 하면 물통수리가 끝나는 셈이다.
그때 나는 비록 철이 들지 않은 어린애였지만 내 기억속의 어머니는 항상 고달파보였다. 아녀자의 몸으로 나무를 톱으로 켜고 망치로 박군 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이상하게 생각하군 했다 (어머니는 왜서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하는가?)
그때 어머니의 손바닥에는 항상 피멍이 졌고 손등은 탁탁 갈라터져 소나무껍찔처럼 꺼칠꺼칠하였다.
어머니는 비바람이 불어치는 한 여름이나 칼바람이 기승을 부리며 부르하통하 강물의 얼음도 짱짱 소리내며 갈라터지는 엄동설한이나를 막론하고 물통을 한번도 쉬우지 않았다. 나는 언제 한번 누워 계시거나 앉아서 쉬는 어머니를 보지 못했다. 삶의 아짜아짜한 벼랑에서 어머니는 용케도 이 물통을 이고 고난의 굽이굽이를 억척스레 넘어오셨다.
바로 어머니의 억척스러운 물통에 떠받들려 우리 다섯 자매들은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잘도 커갔다. 그런데 물통은 나무쪼각을 밑바닥에 붙여댈수록 무거워졌고 어머니의 키도 날이 갈수록 줄어드는것 같았다. 한동안 쓰다보면 물통은 또 좁쌀만한 구멍이 나기 시작하고 그러면 어머니는 또 같은 방법으로 닳은 곳을 오려버리고 작은 나무쪼각을 거기에 붙여대여 놓군 했다. 그래서 물통의 밑바닥은 온통 땜질투성이였다.
실로 우리 어머니가 그 물통에 몇백톤의 뜨물을 담고 몇만리길을 걸으셨는지는 누구도 모를것이다. 그 발자국마다에는 어머니의 피땀이 스며있는것이다. 이 물통은 어머니의 마음을 고스란이 받아드렸다. 힘든것, 더러운것, 따가운것, 찬것, 쉰것, 언것, 사랑과 쓸쓸함, 인생의 희로애락을 다 떠받아나갔다. 그것은 바로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의 마음이였다.
그때 나는 이 물통이 우리 온가족의 생명줄과 련계되고 어머니의 인생파노라마를 연출했다는것을 미처 몰랐다. 사실 이 물통은 우리 어머니의 눈물과 희망 그 자체였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이 닳아빠지는만큼 어머니의 희망은 영글어갔다. 오늘 이 물통을 회억하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도는것은 아마 그것이 자꾸 어머니와 클로즈업되였기때문이리라.
그때 공장에서 만들어파는 물통 하나 사는데 5원좌우 했다. 그러나 당시 5원이란 돈은 우리 가정에게 있어서 천문수자나 다름없었다. 어머니는 돈 5원을 내고 도저히 물통을 살수 없었다. 그래서 어머니는 철물상점에 가서 50전을 내고 빈 페인트통을 사다가 그렇게 가치있게 쓰셨던것이다.
그때로부터 세월이 흘러 세상은 이젠 천지개벽의 변화가 일어났다. 요즘 누가 이런 헌 물통을 거들떠보기나 하겠는가? 지금 세월이 좋아 집집마다 수도를 쓰느라고 물통을 쓰지 않는다. 물을 저장할 필요도 없고 상하수도 있고 또 마실 물은 직접 광천수를 집에다 날라다주군 한다. 옛날 양철포에 가면 제일 중요하게 만드는것은 바께쯔, 물동이, 물땅크 등이였다.
그동안 여러번 새집을 이사하느라 가보가 없어졌다. 이 가보는 어떤 값으로도 매길수 없는 우리 가정을 살려준 대물림보배이며 우리집에 마멸할수 없는 공을 세웠다.
나는 어머니의 처절한 삶의 자취와 애환이 스며있는 이 별 보잘것 없는 초라한 페인트통을 회상하면서 울먹이는 가슴을 오래도록 진정할수가 없다.
그렇다. 물통은 어머니의 소박한 마음 그 자체였고 인류의 어머니들만이 가질수 있는 모성애를 담았던 소중한 보물이였다.
지금 물통은 이미 종적을 감췄지만 때고 때고 또 땠던 허물투성이의 그 물통은 내 마음속에 하나의 보물로 남아있다.
첫댓글 연변녀성 10기 34페지에 실린 문장이군요. 제목이 <<어머니의 물통>>던데 제목부터 수술당했는가요? 아무튼 본문을 잘 보고 내립니다. 고생하신 부모님들을 잘 모시고 삽시다.
두만강님: 제가 (...... 물동이)로 원고를 보냈는데 그곳에서(.. 물통)으로 고쳤습니다. ..하여 나는 나의 식대로 물동이로 글을 올렸습니다. 오해 하지 마십시오. 제가 이 글을 쓰면서 마음속으로 부터 흐느끼며 쓴 글임니다. 저는 눈으로 친이 목격하거나 마음속으로 체득하거나 귀로 직접 들은 글 들을 잡지에 투고함니다. ..아무튼 못난 글을 읽어 주어 고맙습니다.
자식사랑하는 어머니정 은 다갚을수가 없지요 죽는 날까지 갚아도 못값는게 어머니 정 이라고 합니다 그먼옛날 회상하고 부모님 생각을 잊고있다가도 한번더 생각하고 바라볼수있는글 감사하게 잘보았습니다 다이런감정과 감동을 모르고 있다가도 이렇게 글을 보고나면 부모님 안부라도 묻는 전화라도 자신도 모르게 하게되거든요 그래서 우리들의카페가 아름다운 곳 입니다 연길 꽃바람님 잘보았어요..감사합니다
부모들이 열을 생각할때 자식들이 하나를 생각한다는 말이 있더군요.우리 친구들을 보면 부모가 돌아간 다음 효도를 제대로 못해서 많히 후회하는것을 보앗습니다. .어머니가 우리 다섯 형제를 키우느라 고생을 한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남니다.하여 나는 출퇴근때에 많이 들려도 보고 적은 색다른 음식이라도 가져다 드리군 함니다. .사람의 인생이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고.....부모들이 남은 인생을 사랑해주고 아껴줍시다. 고맙습니다.
그시대 어머님 아버님들 각기 부동하게 고생 얼마나 하셧는지.. 지금 생각하면 눈물 납니다 .. 나라가 개혁 개방 하지 않았다면은 아마 우리들도 그런 고생 똑 같으게 했어야 할겁니다 .. 얼마나 다행입니까 ? 그러게 나라가 잘 살아야 백성들이 행복을 누리게 되죠 .. 북조선을 생각하면 우리네 그때 그시절같겠죠? ..언제면 개혁 되겟는지 ㅜㅜ
당의 11기 3중전회의 정신이 아니였다면 우리나라가 어떻게 개혁개방할수 있겟습니가? 등소평어른님의 덕분에 우리들의 생활수준은 나날이 향상되고 있습니다. 기아와 추위에 허덕이는 사람들에게도 이런 광명이 있어야겟는데.... 못난 글 읽어 주어 감사함니다.
연변이나 한국이나 우리들에겐 어머니! 위대한 어머니들이 항상 계셨습니다. 임의 글을 읽으면서 우리 어머니들께 뜨거운 감사와 최고의 찬사를 보냅니다.
감사함니다.
그럼 연변녀성에 실린글이 연길 꽃바람님이 쓴 글인가요?다시오린 글은 좀 수개되였네요.아뭏튼 축하합니다.님이 글을보니 새삼스레 우리엄마 옛 모습 떠 오릅니다. 추억을 상기하는 글 잘 보고 내립니다.
본 작품은 도작이 아니라 제가 삶의 체험을 쓴 글임니다. 제가 본문의 작가이니깐요. 가을꽃님이 읽으셨다면 고맙습니다. 나는 나의 본문을 올린것이고 잡지사에서 제목을 고쳤습니다.앞으로 많은 건의 의견을 제기하여 주신다면 고맙겠습니다.
참 좋은 글이네요, 잘 읽었어요. 연변녀성에 발표작이면은 발표작 모음방에도 올려주세요.
그닥지 않은 글인데 두곳에나 올려도 될가요??? 응원하여 주어 고맙습니다.
추억의 좋은글 잘 보고 갑니다.
감사함니다. 앞으로 더욱 열심히 쓰기에 노력에 박차를 가하겟습니다.
주마등처럼 빠르게 돌아가는 요즘 세상...자식들로부터 알게모르게 소외되거나 방치되여가는 어르신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본문처럼 주위를 감동시키고 여운을 남길수 있는 더 많은 작품들을 기대하면서 이치랑님이 부른 :어머님 용서하세요"를 한국음악방에 올려놓고 갑니다.
님들의 응원과 격려에 보답하기 위해 멋진 글을 쓰기에 노력하겟습니다.
좋은글을 올리시였네요.<< 어머니의 물동이>> 이 글을 읽으면서 저도 옛날에 저의집에도 그런물통이 있었습니다. 시골에서 뽐푸는 없고 멜대로 물을 길어야 하는데 물통이 하나밖에 없어서 하나는 어디에서 낡은 양철로 만든것이 였습니다. 거기에 량옆에 구멍을 뚫고 낀을 달아서 멜대로 메고 다녓습니다. 저의 기억에는 아마도 70년초까지 그 물통으로 물을 길었습니다. 부모님들은 모두 일하러 다니기에 제가 그냥 그 물통으로 물을 길었는데요. 물을 한 반쯤 담아서 메고 다녔습니다. 연길꽃바람님의 올리신 글을 보니 저도 모르게 옛날에 추억들이 머리에 떠오릅니다. 좋은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흰구름님 반가워요. 사방산의 산행에서 많은 본보기를 보여 주었어요 . 고생도 험난도 두려워하지 않는 녀영웅기개 ....남성들도 깜짝 놀라하더군요. .. 그날 선생님이 저에게 자작글에 글을 올리라고 격려하여 나의 삶의 체험을 올렸습니다. ...앞으로 상ㅇ봉의 기회에 흉금 털어 놓고 실컷 마음껏 이야기 하여 봅시다.
이 글은 읽는 순간 눈시울이 찡해납니다 .글 읽으면서 그시기 우리 부모님들의 고달팠던 인생길 되돌아 보게 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글 .
감사함니다. 노을빛님!!!
감동적인 글입니다. 좋은 글에 머물다 갑니다
더욱 열심히 하라고 주는 삶의 계시라 하겟습니다.
좋은 글이여 자신이 걸어온 세월을 다시 돌아보게되지요. 그 품성 그대로 앞으로도 쭉 좋은 글을 오려주십시요.ㅎㅎ
알았습니다. 회장님인데 어찌 함부로 거역하겟습니까? 있는 힘껏 노력해 보지요!
너무나 감동된 글을 읽엇습니다,어머니의 희생은 오직 자식 사랑의 그 자체십니다.당신 하나 희생하여 자식을 위해 자기 몸 버리신 위대한 어머니! 그 어머니! 모두가 살아생전 부모님께 효도를 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영혼님 : 보아주심에 감사함니다.
좋은글 올렸습니다.이글을 읽노라니 저도모르는사이에 어릴때 엄마가 고달프게 일하시던모습 눈앞에 선히떠오르면서 생전에 어머님께 효도해야 되겠다는 다짐 또한번 더하게 되였습니다.
옳은 다짐임니다. 우리자식들은 말로만이 아니라 행동상에서 출퇴근에도 부모들이 무엇을 하시는가 들여다 보고 전화한통화라도 해주신다면 매우 기뻐하심니다. 나는 매달마다 어머니에게 우유한상자와 핸드폰 비용을 물어드리고 매일 전화 한통화씩하는 것이 이미 규칙적인 것으로 되였습니다. 리플 감사!!!
온몸을 불태워 광명을 주는 초불처럼 자식들을 위함이라면 그 어떤 고생도 희생도 감내하는 우리 어머님들의 진솔한 삶의 모습을 너무나 감명깊게 그려낸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그래도 어머님 생전이시라니 얼마나 다행이십니까어머님 모시고 오래오래 행복하게 사세요
고맙습니다. 꼭 부탁을 어기지 않고 어머님께 효도 더 잘 하기에 노력하겟습니다.
엄마가 연상되네요.코 끝이 찡해나네여.
저의 못난 글 보아주심에 감사함니다. 22:53
어머니가 자식에 대한 사랑은 이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랑입니다.일곱식구의 가장으로 험난한 인생로정에서 떳떳하게 살아왔다는 자체가 감동을 줍니다.좋은글 즐감하고 내립니다.앞으로도 좋은글 많이 기대합니다
인정세계님: 보내온 쪽찌도 반갑게 받았습니다. 기분이 억망이였다가 풀렸습니다. 갈수록 성숙해지고 성대해지는 코스모스화원에서 코스모스회원으로서의 자호감을 듬뿍 받고 감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