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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 집회의 수많은 인파 속에서 선생님을 만났을 때, 무척이나 반가웠습니다. 함께 대학 시절 동문수학을 했던 모습이 기억 속에서 오래 더듬어야 할 정도로 꽤 긴 세월 저편에 있었습니다.
근황을 묻는 나에게 선생님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얼버무리는 듯한 손짓으로 ‘그럭저럭’이라며 대답했습니다. 괜한 질문을 했다 싶었지요. 교사들의 오랫동안 억누르며 참아왔던 질문을 터뜨리는 그 자리에 모인 것 자체가 모든 질문에 대한 모든 대답이었으니까요.
뜨거운 햇볕에서, 차디찬 빗줄기 사이에서, 우리는 작은 점들이 되어 신음소리를 내며 명멸했습니다.
그러나 7주간 이어진 여정이 우리로 하여금 긴 선이 되고 커다란 면으로 변하게 했습니다. 30만 명이 펼친 커다란 면의 힘은 상처 입은 우리들의 욱신거리는 아픔을 살포시 쓰다듬어 주는 위로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희망으로 잡았던 교편을 절망으로 놓아버리는 선생님들의 소식이 들리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저마다 가진 아픔은 동일하지 않은 사연에 기반하고 있기에 동일한 위로는 의미가 없었습니다.
우리 함께하는장애인교원노동조합은 장애가 있는 교사들이 모인 단체입니다. 장애인 교사들은 교권 침해에 비장애인 교사보다 더욱 많이 노출되어 있습니다.
장애를 이유로 학부모로부터 수업이나 담임에서 배제해달라는 민원에 시달리기 일쑤이고, 학생으로부터 놀림을 당하거나 수업 방해를 겪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교육 당국은 그것이 장애와는 관련 없다며 장애인 차별을 철저히 묵인하고 있습니다. 장애인 차별 행위가 발생해도 이를 거부하거나 지도할 수 없다면 학교는 장애인 차별을 가르치는 꼴이 되고 맙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2022년 5월, 수업 시간에 강원도교육청 소속 청각장애 교사에게 학생 여섯 명이 교사의 장애를 비하하고 조롱하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해당 학생들은 교사가 청각장애가 있으니 듣지 못할 거라 말하며 큰 소리로 수업을 방해하고 노래를 부르는 등의 방식으로 수업을 방해했다고 합니다. 심지어 차분하게 타이르는 청각장애 교사에게 욕설까지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강원도교육청 교권보호위원회는 장애인 차별로 판단할 근거가 없다며 일반적 심의 기준에 따라 교권 침해를 심의했습니다. 장애에 대한 고려는 권고 내용에 학교에서 학생을 대상으로 장애인 인식 개선 교육을 진행하라고 덧붙인 것이 전부였습니다.
또 다른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한 시각장애인 교사는 자신의 수업에 다른 학급 학생이 들어와서 대리 출석하는 일을 겪었다고 합니다.
그 학생은 한 시간 내내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아무렇지도 않게 수업에 참여했습니다. 교사가 여러 차례 본인이 맞는지 확인했음에도 태연하게 거짓말로 넘어갔다고 합니다. 대담하게도 그 학생은 그다음 시간에도 다시 수업에 찾아와 대리 출석을 시도하다가 다른 교사에 의해 발견되어 원 학급으로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이 또한 짓궂은 학생의 장난 정도로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학교 규정부터 법률까지 그 어디에도 장애인 교사에 대한 장애인 차별은 따로 규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장애인 교사는 일부 학부모와 학생들의 악의적인 행동에 무방비로 노출됩니다. 그러나 열악한 제도 및 규정으로 인해 장애인 차별을 신고할 수 없고 학교에서 장애인 차별을 이야기하면 유난을 떤다는 시선이 돌아옵니다. 자신의 몸을 보호하기 위해 했던 말과 행동이 도리어 아동을 학대한 것이라며 학부모로부터 신고를 당하기도 합니다.
선생님, 제가 광장에서 선생님을 만났을 때 당신께 드렸어야 했던 질문은 이것이어야 했습니다. ‘행복하십니까?’ 삶의 깨달음을 통해 학생들의 가슴 속 깊이 숨어 있는 선을 발견하도록 도와주는 이가 되겠노라고 아침 공기를 마시며 텅 빈 교실에서 다짐했던 그 첫날의 가슴 떨림을 아직도 기억하고 계시는지요? 학생들의 재잘거리는 웃음소리와 반짝이는 눈빛이 우리로 하여금 교직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게 했었지요.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부스럭거리는 불안한 눈빛으로 교직에 대한 회의감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희망을 노래하고 앎의 기쁨을 나누어야 할 교실에서 목숨을 끊어야 했던 서이초 선생님의 깊은 슬픔은 어디에서 연유한 것일까요? 무엇이 어디부터 잘못되어 온 걸까요? 무너지는 교단을 어디서부터 바로잡아야 할까요? 어려운 길이지만 첫걸음을 떼야 합니다. 더 이상, 교육 현장의 문제가 감춰져서는 안 됩니다.
교권과 학생 인권의 이분법적 대립이 아니라, 상생과 상호존중을 기반으로 교실 회복을 시도해야 합니다. 장애인 교사를 포함해 학교 구성원이 모두 행복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법 개정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학교 내 포용성과 인권 감수성을 증진할 수 있는 예산 및 제도 수립, 그리고 무엇보다도 학교 구성원 모두의 실천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여태까지 이어온 대한민국의 입시 위주 교육과정 철학을 전면 재검토하고 다 함께 살아가기 위해 모든 것을 원점에서 논의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동안 중요한 문제를 너무나 많이 건너뛰어 왔습니다. 작은 한 걸음부터 시작하되, 그것은 멀리 근본적인 변화를 바라보는 큰 걸음이 되어야 합니다.
장교조는 그래서 여러 선생님과 함께 행복해지기 위해 이 뜻을 주장하고자 합니다.
첫째, ‘교원지위법’ 제15조 교육활동 침해 행위에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따른 장애인 차별행위도 포함되도록 개정하여야 합니다. 교육부의 「교육활동 침해 행위 및 조치 기준에 관한 고시」에도 장애를 이유로 교육활동을 방해하는 행위를 별도의 교권 침해 행위로 추가하여야 합니다.
둘째, 모든 교육 관련 법안 개정 및 시행 전 과정에 교사를 반드시 참여시켜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장애인 교사들의 목소리가 누락되어서는 안 됩니다. 가장 취약한 환경에 놓인 장애인 교사의 교권을 보호하는 것이 모든 교사의 교권을 보호하는 가장 정확하고도 빠른 방법입니다.
셋째, 수업 분리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세우고 수업에서 분리된 학생들의 학습권이 보장될 수 있는 현실적 방안을 마련하여야 합니다. 대한민국의 학교는 장애 학생 및 다양한 요구를 가진 학생들에 대한 지원 체계 또한 매우 미흡한 실정입니다.
이러한 교육 현실에서 장애학생과 다양한 요구를 가진 학생들이 ‘문제아동’으로 몰리고 긴급한 상황에서의 분리 조치를 넘어 장기적 분리와 학습권 침해를 받는 일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들에 대한 교육적 지원책이 함께 마련되지 않으면 분리는 또 다른 차별의 시발점이 될 것입니다.
넷째, 아동복지법을 개정하여야 합니다. 모호하고 포괄적인 아동학대 법 제17호 제5호는 명확성의 원칙을 위배하고 죄형법정주의라는 형법의 근간을 흔들고 있습니다. 교사들의 정당한 생활 지도와 훈육, 때로는 자신을 보호하려는 행동조차 부당하게 신고 대상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다섯째, 제도 정비와 더불어 학교의 전문성 있는 인력이 상주할 수 있도록 조직과 예산으로 뒷받침하여야 합니다. 조직과 예산 없는 제도 개선은 오히려 교사들에게 더 많은 행정적 부담만을 가중시킨다는 것을 지난 수십 년간 우리들은 목도했습니다.
여섯째, 마지막으로 교사, 학생, 학부모 등 모든 학교 구성원이 교육 현장에 있는 모든 사람의 권리를 존중하도록 학교 문화를 바꾸어야 합니다. 학교에는 지금보다 더 높은 인권 감수성과 포용성이 필요합니다.
지난여름 교사들의 일련의 행동이 우리 모두의 안전과 더 나은 교육을 위함이었음은 장애인 교사와 유모차를 끈 선생님들을 위한 세세한 편의 조치에서 얼마간 증명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운동이든 그 형태는 그 운동을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목적을 반영하기 때문입니다. 학교 문화를 더 포용적으로 바꿔나가는 길에 이젠 모든 교육공동체 구성원께서 함께해 주십시오.
선생님, ‘함께하는장애인교원노동조합’은 공교육의 정상화와 장애인과 비장애인 어느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교육공동체를 위해 이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아마도 모든 선생님께서 학생들이 학교에 있는 동안 앎의 기쁨으로 행복한 시간을 보내기를 바라실 것입니다.
이제는 한발 더 나아가 학교 전체에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말뿐이 아닌 실천으로 뿌리내려야 할 때입니다. 이 글을 읽는 선생님과 모든 교육공동체 구성원이 함께해야만 달성할 수 있는 높은 꿈입니다. 교육공동체가 배움, 존중, 신뢰로 가득하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다시금, 여쭙습니다.
선생님, 지금 행복하십니까?
2023년 9월 14일
함께하는장애인교원노동조합 조합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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