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격차] [2] 사회적 배려가 격차 줄인다
군포시의 배려… '기회' 주어지자 점수 '쑥쑥'
상위 30%는 일반학생 추월… "정부차원서 조기 개입해야"
초등학교 2학년생 김은미(9·가명)양은 경기 군포의 39.6m²(12평)짜리 영구임대주택에서 허리가 아픈 어머니(53)와 함께 산다. 어머니의 월 소득은 정부 지원금 60여만원이 전부. 태어나 학원 한번 못 가봤지만, 은미양은 작년 1학년 2학기 기말고사에서 5과목 모두 100점을 받았다.하지만 은미양에게도 고민은 있었다. 어머니는 "TV를 보면 영어유치원에 간다는 얘기도 많이 나오던데 은미는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지 않아 ABC조차 접하기 힘들어 걱정이 컸다"고 말했다. 그러던 중 작년 10월 군포시청에서 만든 '시립(市立) 영어학원'인 군포국제교육센터에 공짜로 다닐 수 있다는 담임교사 얘기에 눈이 번쩍 떠졌다.
영어 기초가 전혀 없던 은미양은 예상대로 10월 입학 때 치른 레벨(수준) 테스트에서 100점 만점에 11점을 맞았다. 애플(apple)이며 스쿨(school) 같은 간단한 단어의 철자(스펠링)도 몰랐다.
14단계 중 최하위 등급반에 들어간 은미양은 그러나 원어민 교사와 일주일에 세 번씩, 하루 90분의 영어 공부를 시작하면서 놀라울 정도로 성적이 뛰어올랐다. 11월에 95점, 12월에는 96점…. 은미양은 이제 영어로 자기소개까지 유창하게 할 수 있게 됐고, 영어는 가장 자신 있는 과목이 됐다.
은미양이 영어와 친해진 데는 호화청사 대신 350억원을 들여 국제교육센터를 만들고 영어 사교육업체에 운영을 위탁해 저소득층은 무료로 영어를 배울 수 있게 한 군포시의 배려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사회적 배려'로 기회를 주니 경제적 배경에 따른 영어격차가 해소되었던 것이다.
가톨릭대 성기선 교수(교육사회학)는 "영어격차는 상당 부분 개인 노력이나 능력으로 극복될 수 없는 계층 차이 등으로 발생하고 있다"며 "정부 차원에서 영어격차를 줄일 수 있도록 조기 개입은 물론 어려운 아이에게 혜택을 집중시키는 '역차별'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취재팀은 군포국제교육센터에 의뢰, 영어 강의를 듣는 2000명의 초·중등 수강생을 전수(全數) 분석해봤다. 문 연지 6개월 된 이 센터에는 '장학 학생'으로 불리는, 학비를 면제해주는 저소득층 가정의 무상(無償)학생이 400여명 있다. 이들과 월 12만원의 수강료를 내는 일반학생을 분리해 두 그룹의 성적 추이를 따라갔다.
예상대로 센터가 문을 연 작년 9월 당시 무상학생과 일반학생의 영어 성적 차이는 상당했다. 흥미로운 점은 초등 1·2학년에 격차가 심했다가 공교육에서 영어수업이 시작되는 3학년 이후 다소 낮아지지만 특목고 열풍이 심해질 6학년이 되면 다시 벌어진다는 점이다.
6개월간의 영어 공부 기회가 제공된 후 성적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초1의 경우 일반학생의 점수를 100으로 했을 때 무상학생의 점수는 얼마에 해당되는지를 나타내는 '상대점수'가 작년 9월 초 38점에서 올 2월 말엔 51점으로 확 늘었다. 6개월 만에 13점이나 따라붙은 것이다.
같은 기준으로 초2~6 모두 상대점수가 1~7점씩 늘었다. 박진영 센터 교수부장은 "저소득층 학생들은 처음 배우는 학원식 영어공부라 아주 어색해하지만 금세 적응을 해 성장 속도에서 일반학생을 앞지른다"면서 "이렇게 빨리 효과가 나타날지는 우리도 예상 못 했다"고 말했다.
- ▲ 원어민과 영어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지 6개월도 안돼 성적이 쑥 올라온 허은진양(왼쪽)과 심화목양이 군포국제교육센터에서 미국인 강사 제프 버드(Byrd)씨와 함께 공부하고 있다. /오종찬 기자 ojc1979@chosun.com
무상학생 중에서도 상위 30%의 성적을 분리해 분석하자 더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초1을 제외한 초2~중3의 전 학년에서 무상 상위 30% 학생들이 6개월 만에 일반학생들을 앞지른 것이다. 이들은 작년 9월엔 일반학생들보다 4~19점씩 뒤처져 있었다.
박수진양(11·초4·가명)도 그중 하나다. 학교에서 청소일을 하는 어머니(42)와 함께 사는 수진이는 반에서 3등 안에 든다. 학원은커녕 변변한 교재 하나 사주기 어려워 어머니는 늘 "선생님 말씀 놓치지 말고 잘 들어라"고 당부를 하는 게 최선이었다.
하지만 초3 때 학교 영어 수업이 시작되자 '선생님 말씀'으로는 한계가 왔다. 또래 아이들은 학교 밖에서 영어회화까지 배워왔다. 수진이네 형편으로는 한 달에 3만2000원 하는 방문 영어 학습 지도도 부담하기 힘들어 포기해야 했다. 그런데 군포국제교육센터의 무료 공부 기회가 주어지니 달라졌다.
처음에 25점이던 수진이의 점수는 3월에 90점을 돌파해, 최우등 학생에 뽑혔다. 공주대 이명희 교수는 "영어는 다른 과목보다 사교육비가 더 높아 저소득층에게 더욱 불리하다"면서 "정부나 지자체가 공교육과 사교육의 접목, 공립학원 설립 등의 방식으로 저소득층에게 학습할 기회를 제공해줘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