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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따라 강남 가지 말자!
참고말씀: 민13:30-14:1,21-23; 삼상18:1,3; 23:16; 삼하13:3; 왕상12:8,13,14,19; 마7:13,14; 눅12:32; 딤후2:22
읽을말씀: 출23:2; 잠13:20
주제말씀: 출23:2
“다수를 따라 악을 행하지 말며 송사에 다수를 따라 부당한 증언을 하지 말며.”
첫째, 친구 따라 강남 가지 말아야 합니다!
“다수를 따라 악을 행하지 말며 송사에 다수를 따라 부당한 증언을 하지 말며.”(출23:2)
‘친구 따라 강남 간다’(追友江南, 추우강남)는 사자성어(四字成語, 네 개의 한자로 이루어져 관용적으로 쓰이는 글귀)가 있습니다. 여기서 ‘강남’(江南)은 어디를 가리킵니까? 중국의 양쯔강 아래 지역으로, 오늘날의 상하이시, 난징시 등이 해당 됩니다. ‘가을에 제비가 강남으로 날아간다’ 할 때의 그 강남이기도 하고요.
이 사자성어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습니까? ‘친구가 좋아서 어디라도 함께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나, ‘자신의 뚜렷한 주관 없이 남에게 끌려서 덩달아 하게 됨’, 즉 ‘남을 따라 무분별하게 행동함’을 경계한 말이기도 합니다.
왜 우리는 이 사자성어를 다시 새겨보아야 합니까?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친구 따라 강남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남들을 따라 무분별하게 행동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너무나도 많은 것입니다.
왜 우리는 이를 경계해야 합니까?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다고 해서 다 옳은 것이 아니며, 많은 사람들이 이미 그리로 가고 있다고 해서 우리도 거기에 편승(便乘)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이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다수를 따라 악을 행하지 말며...”(출23:2 상)
많은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다수결(多數決)의 원칙’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엄밀히 말하면 매번 동일시될 순 없습니다. 종종 다수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가나안 정탐꾼 사건 등을 통해 알 수 있듯이 말입니다.
당시 열 사람의 정탐꾼들은 갈렙과 여호수아과는 달리 가나안 땅에 대해서 어떤 보고를 했습니까? 악평(惡評), 즉 부정적인 보고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결국 누구의 보고를 믿었습니까? 다수, 즉 열 사람입니다. 그 결과 그들은 어떤 비극을 맞고 말았습니까? 출애굽 1세대 전체가 모두 광야에서 생을 달리해야 하는 비극입니다.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조용하게 하고 이르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나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이르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정탐한 땅을 악평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그 거주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을 것이니라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백성이 밤새도록 통곡하였더라.”(민13:30-14:1)
“그러나 진실로 내가 살아 있는 것과 여호와의 영광이 온 세계에 충만할 것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영광과 애굽과 광야에서 행한 내 이적을 보고서도 이같이 열 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한 그 사람들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을 결단코 보지 못할 것이요 또 나를 멸시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그것을 보지 못하리라.”(민14:21-23)
이를 통해 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진리는 수효의 많고 적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공의에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비록 다수라 할지라도 그 가치관이 하나님의 공의에 어긋날 때에는 어떠해야 합니까? 거기에 타협하거나 양보하지 말아야 합니다. 즉 모두가 다 “예”라고 해도, 우리는 과감히 ‘아니오’라고 해야 하며, 또한 모두가 다 “아니오”라고 해도 우리만은 꿋꿋하게 “예”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진리를 위해서는 때로는 외로운 소수가 되는 것도 기꺼이 감수해야 해야 할 것입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마7:13,14) /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눅12:32)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여전히 친구 따라 강남 가려고 하지 않습니까? 군중심리(群衆心理)에 편승하여 온갖 어둡고 나쁜 일에 참여하지 말고, 이제부터라도 그것들을 끊어낼 수 있기를 원합니다.
둘째, 친구 따라 교회 와야 합니다!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 미련한 자와 사귀면 해를 받느니라.”(잠13:20)
마찬가지로 잠언 기자도 무엇을 지적합니까? 미련한 친구를 사귀면 같이 해를 받는다는 점입니다. “...미련한 자와 사귀면 해를 받느니라.”(잠13:20 하) 어째서입니까? 근묵자흑(近墨者黑)이라는 사자성어가 있듯이, 먹을 가까이하면 검어질 수밖에 없듯이 나쁜 친구를 사귀면 물들기 쉽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암논이라는 왕자가 있었습니다. 다윗의 첫 번째 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이복동생 다말에게 못된 짓을 하고 자신도 후일에 그녀의 오라비 압살롬에게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고 만 것입니까? 잘못된 친구를 사귀었기 때문입니다. 나쁜 친구의 잘못된 조언을 듣고 그 지경이 되고 만 것입니다. “암논에게 요나답이라 하는 친구가 있으니 그는 다윗의 형 시므아의 아들이요 심히 간교한 자라.”(삼하13:3)
또한 르호보암이라는 왕이 있었습니다. 그는 솔로몬의 아들로서 통일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른 자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분열되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어쩌다가 그 지경이 된 것입니까? 그 역시 잘못된 친구들을 사귀었기 때문입니다. 솔로몬 때부터 있었던 지혜로운 신하들의 충언을 멀리하고, 자신과 함께 자라난 철부지 친구들의 말만 듣고 백성들을 강경하게 대하다가 결국 이 일을 자초하고 만 것입니다.
“왕이 노인들이 자문하는 것을 버리고 자기 앞에 모셔 있는 자기와 함께 자라난 어린 사람들과 의논하여.”(왕상12:8) / “왕이 포학한 말로 백성에게 대답할새 노인의 자문을 버리고 어린 사람들의 자문을 따라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는 너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나는 너희의 멍에를 더욱 무겁게 할지라 내 아버지는 채찍으로 너희를 징계하였으나 나는 전갈 채찍으로 너희를 징치하리라 하니라.”(왕상12:13,14) / “이에 이스랄엘이 다윗의 집을 배반하여 오늘까지 이르렀더라.”(왕상12:19)
비단 암논이나 르호보암의 경우가 아니라고 할지라도, 우리 주변에는 친구 하나를 잘못 사귀었다가 패가망신한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어떤 친구들을 사귀고 있습니까? 순간의 호기심이나 객기 때문에 나쁜 친구들을 만나 엉뚱한 길로 나아가고 있습니까? 삼류 인생으로 전락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제라도 그런 친구들을 끊어낼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환경을 바꿔야 합니다. 옛말에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라는 말이 있습니다. 즉 맹자의 어머니가 아들을 위해서 묘지, 시장, 학교 부근으로 3번이나 이사한 데서 유래한 말입니다. 즉 맹자로 하여금 학교 근처의 면학적인 분위기에 적응해 공부하도록 교육적 환경을 만들어주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나쁜 친구를 끊어내려면 우리의 환경부터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필요하다면 내가 즐겨 다니던 곳, 내가 즐겨 하는 것도 과감히 끊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나아가 누구를 사귀도록 힘써야 합니까? 지혜로운 친구입니다.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잠13:20 상) 어째서입니까? 지혜로운 사람을 가까이 하다 보면 나도 덩달아 지혜롭게 되며, 그로부터 많은 긍정적인 영향력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누구입니까? 다윗과 요나단입니다. 물론 나이상으로는 요나단이 형이었지만, 성경 전체를 살펴봐도 이 두 사람의 우정을 따라올 사람이 있을까 할 정도로 그들은 “찐” 우정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를테면 다윗이 흔들릴 때마다 요나단이 신앙적으로 격려하고 힘을 북돋아 주었던 것입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기를 마치매 요나단의 마음이 다윗의 마음과 하나가 되어 요나단이 그를 자기 생명 같이 사랑하니라.”(삼상18:1) /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생명 같이 사랑하여 더불어 언약을 맺었으며 요나단이 자기가 입었던 겉옷을 벗어 다윗에게 주었고 자기의 군복과 칼과 활과 띠도 그리하였더라.”(삼상18:3) /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일어나 수풀에 들어가서 다윗에게 이르러 그에게 하나님을 힘 있게 의지하게 하였는데.”(삼상23:16)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나쁜 친구는 멀리하고 믿음의 좋은 친구들을 사귀도록 힘쓰고 있습니까? “또한 너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딤후2:22) 원컨대 친구 따라 강남 가지 말고, 친구 따라 교회 올 수 있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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