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하자마자 구식이 되어버린 안습의 61식 전차 후계로서 60년대 중반부터 레오파르트1이나 AMX-30 같은 경장갑 고기동형 전차로 개발을 시작, 74년에 제식채용 된다.
[ 일본이 자체 개발한 61식 전차 는 설계당시 이미 구식이 된 차량으로 . 일본자위대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도입한 자국산 전차. 1세대 MBT로 분류되는 모델이지만, 등장이 너무 늦었던 데다 허약한 방어력과 조악한 품질로 악명이 높았다.]
105mm주포의 화력과[2] 피탄경사를 중시한 날렵한 차체, 일본 전차 최초의 파워팩과 전후는 물론 좌우가 독립적으로 조절 가능한 유압식 현가장치, 레이저+컴퓨터 제어식 사통장치 등 등장 당시에는 드디어 세계 수준에 상응하는 전차로서 상당히 높은 평가를 받았다. 74식 전차의 현가장치는 K-2 흑표 이전까지 MBT에 적용된 것으로는 세계 유일로 이름높다. 다만 74식은 낮은 포탑 탓으로 주포의 부앙각 조절 능력이 형편없기 때문(-6~+9도로 다른 전차의 절반 이하. 참고로 패튼 시리즈가 -9~+19도 이다)에 이 기능은 필수적이긴 하다.
[74식 전차는 105mm주포의 화력과 피탄경사를 중시한 날렵한 차체, 일본 전차 최초의 파워팩과 전후는 물론 좌우가 독립적으로 조절 가능한 유압식 현가장치, 레이저+컴퓨터 제어식 사통장치 등 등장 당시에는 드디어 세계 수준에 상응하는 전차로서 상당히 높은 평가를 받은 전차이다]
다만 자위대 무기 특유의 어딘가 나사빠진 듯한 구석도 여전해 유압 현가장치 때문에 상부 지지륜을 빼버린 캐터필러는 달리는 도중에 이탈해버리는 사고가 많아 불평을 샀으며 국산화 때문에 수냉식이 아닌 공냉식을 고집한 엔진은 소음이 심하고 쉽게 과열되는데다 연비도 거지같아 두통거리였다. 유압 현가장치도 초기에는 문제 투성이라 홋카이도의 자위대 제7사단에 배치된 차량 전부가 동파(凍破)로 인해 행동불능이 되는 사고가 있었을 정도이다.
[74식 전차는 우수한 전차라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자위대 무기 특유의 어딘가 나사빠진 듯한 구석도 여전해 유압 현가장치 때문에 상부 지지륜을 빼버린 캐터필러는 달리는 도중에 이탈해버리는 사고가 많아 불평을 샀으며 국산화 때문에 수냉식이 아닌 공냉식을 고집한 엔진은 소음이 심하고 쉽게 과열되는데다 연비도 거지같아 두통거리였다. 유압 현가장치도 초기에는 문제 투성이라 홋카이도의 자위대 제7사단에 배치된 차량 전부가 동파(凍破)로 인해 행동불능이 되는 사고가 있었을 정도이다]
90년대 후반까지 고무패드가 없는 특이한 궤도를 장착하고 있어서 일반 도로주행이 사실상 불가능했다는 요상한 핸디캡도 갖고 있었다.(현재는 미국식 고무패드 부착형 궤도를 사용하여 도로 주행이 가능해졌다) 중량감소를 위해 전륜을 알루미늄제로 만들 정도로 감량에만 신경쓰는 바람에 전면 장갑은 80mm 전후로 추정되는 수준이라 방어력은 90mm 포에도 안심못할 수준. 게다가 등장 시점에 이미 세계 전차개발의 추세가 4차 중동전쟁 쇼크로 인해 경장갑 고기동형보다 중장갑 및 대구경 주포로 돌아가고 있었다는 것도 안습.
[하지만 74식 전차는 90년대 후반까지 고무패드가 없는 특이한 궤도를 장착하고 있어서 일반 도로주행이 사실상 불가능했다는 요상한 핸디캡도 갖고 있었다.(현재는 미국식 고무패드 부착형 궤도를 사용하여 도로 주행이 가능해졌다) 중량감소를 위해 전륜을 알루미늄제로 만들 정도로 감량에만 신경쓰는 바람에 전면 장갑은 80mm 전후로 추정되는 수준이라 방어력은 90mm 포에도 안심못할 수준. 게다가 등장 시점에 이미 세계 전차개발의 추세가 4차 중동전쟁 쇼크로 인해 경장갑 고기동형보다 중장갑 및 대구경 주포로 돌아가고 있었다는 것도 안타까운 현실이기도 하다]
배치 30년을 넘기면서 급격한 소모율을 보이고 성능 저하도 감출 수 없어 퇴역이 시작되었으며 최근 개발된 신예 10식 전차가 그 자리를 메꿀 것으로 보인다. 일본제 무기의 공통적인 약점 중 하나로 내구도가 상당히 떨어지는 것을 들 수 있는데 이것은 전차나 항공기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이를 입증하는 예가 T-33 제트훈련기로 미국제 중고+라이센스 생산으로 조달했으나 정작 먼저 퇴역한 것은 라이센스 생산형이었고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현역기들은 모두 미제 중고였다는 웃지못할 사례에서 잘 드러난다.
[74식 전차는 배치 30년을 넘기면서 급격한 소모율을 보이고 성능 저하도 감출 수 없어 퇴역이 시작되었으며 최근 개발된 신예 10식 전차가 그 자리를 메꿀 것으로 보인다. ]
자위대의 전차 감축안에 따르면 10식 전차나 90식 전차나 다 합쳐봐도 300대밖에 안될 분량이라 74식이 완전퇴역하면 일본은 군비경쟁이 치열한 아시아에서 300대만의 전차를 보유하는 완전한 서유럽형 육군전력을 갖추게 된다.(...) 아무리 섬 지형이라 육군이 비대할 필요가 없다지만 일본의 국토환경[3]을 생각하면 과하게 군축하는 감이 없지 않다. 비록 성능면에서 이러니 저러니 해도 800여대에 달하는, 일본전차치고는 방대한 숫자로 국토방위를 책임지던 74식의 전량 퇴역과 함께 육자대는 전차대수에서 심각한 숫적열세라는 큰 문제를 떠안게 될것으로 보인다.
[자위대의 전차 감축안에 따르면 10식 전차나 90식 전차나 다 합쳐봐도 300대밖에 안될 분량이라 74식이 완전퇴역하면 일본은 군비경쟁이 치열한 아시아에서 300대만의 전차를 보유하는 완전한 서유럽형 육군전력을 갖추게 된다.(...) 아무리 섬 지형이라 육군이 비대할 필요가 없다지만 일본의 국토환경[3]을 생각하면 과하게 군축하는 감이 없지 않다. 비록 성능면에서 이러니 저러니 해도 800여대에 달하는, 일본전차치고는 방대한 숫자로 국토방위를 책임지던 74식의 전량 퇴역과 함께 육자대는 전차대수에서 심각한 숫적열세라는 큰 문제를 떠안게 될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걸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는 게 중국군의 상륙이 이뤄지려면 일본 해자대와 공자대. 그리고 미 7함대까지 궤멸시킨 뒤여야 하는데 그 동안 미군의 재배치 등으로 어떻게 시간을 벌 수 있고, 또한 시가지와 산악지대가 대부분인 일본 특성상 중국 지상군이 진격하는 과정에서의 희생도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일본 상륙 과정에서 상륙군이 처할 위협을 최소화하자면 한반도를 장악하는 게 필수인데 한국 지상군은 서방 군대 중에서 미군을 제외하고는 가장 거대한 지상전력을 보유하고 있어 제압부터가 용이하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즉 전력을 재편하고 미 지상군을 끌어들일 시간을 벌 수 있는 것이다.
[74식전차 특유의 무릎꿇기 자세..유기압 현가장치를 이용한 독특한 특징으로 일본 역시 한국과 비슷하게 산지가 많은덕에 추가된 독특한 특징으로 K1 전차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전차중 유일하게 가능한 자세중 하나였다]
즉 자위대의 전차대수 감축안은 현 국제구도 상황에서는 그렇게 큰 문제가 되는것은 아닐 확률이 크며, 신속대응군 체제를 갖추게 됨으로서 상륙거부능력과 게리코마 제압능력을 극대화하는데에 목적을 두는만큼 전체적인 육자대의 전투력 자체는 오히려 상승할 여지가 많다, 대신 타국에 대한 적극적인 침략전쟁은 거의 불가능하게 되기 때문에 자위대의 창설이념에 더욱 부합하게 되는 개편안이라고 볼수도 있다.[4]
1960년대 초 일본에서는 이미 구식이 되어버린 61식 전차의 후계를 놓고 다툼이 있었다. 결정적인 105mm 주포의 탑재를 놓고 개발진들은 61식 업건 사양의 61식 개, 혹은 아예 새로운 전차의 개발의 두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65년에 아예 새로운 전차를 개발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으며 이 전차의 개발 프로그램은 ST-B 프로그램으로 불리게 된다.
65년의 개발 결정이 내려지기 전 이미 유압식 서스펜션과 같은 몇몇 기술들은 개발이 진행되고 있던 상태였다. 65년 3월, 공랭식 700마력 엔진의 개발이 끝났으며 주포의 경우에는 로얄 오드낸스 105mm 주포의 라이센스 생산을 결정하였다.
66년에 프로토타입 포탑의 개발, 주포 탑재가 완료되었고 67-68년 동안 포탑 회전-조준 테스트가 진행, 장전 보조장치 또한 도입되었다.
66년 3월, ST-T라고 명명된 시험 차량을 통해 동축 기어 조향, 유압식 서스펜션, 700마력 엔진의 통합 테스트가 시작되었다. 67년 8월, 프로토타입 엔진은 10ZF 엔진으로 교체되었으며 69년 4월 테스트가 끝날 때까지 ST-T 차체에 주포 탑재를 통한 사격 시험, ST-T 차체에 프로토타입 포탑을 통한 사격 시험 등이 실시되었다.
68년 4월부터 69년 6월까지, 시험차량 1,2번(STB-1, STB-2)의 제작이 진행된다. STB-1에는 750마력 엔진이 장착되었었는데, 신뢰도 문제의 발생에 따라 실제 74식 전차에는 720마력의 엔진이 탑재되게 된다.
71년 5월, STB-1과 STB-2 모두 성능 평가를 통과함에 따라 개발 프로그램은 2번째 단계로 넘어가게 된다. 이 단계에서, STB-1/2의 몇몇 사양들이 지나치게 비싸거나 필요 없다는 이유로 삭제되게 되는데, 원격 조종 기관총과 오토로더 등의 삭제가 그것이다. 동년도에 이 변경점들이 반영되고 좀 더 연장된 포탑이 탑재된 STB-3이 제작되었고 73년에 최종 프로토타입의 STB-6이 나오게 된다.
74식 전차의 생산은 75년 9월부터 89년 1월까지 진행되었다. 93년, 74식 전차의 개량형인 74식 개가 제시되었지만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74식은 아무래도 연세가 있으신 몸인지라 과연 전면 핵전쟁을 염두에 두었는 지가 좀 의심스럽고, 따라서 양압 장치에 의한 화생방 방호 능력이 있는 지부터가 여러모로 의문인데, 일단 일본 측의 자료에 따르면 의외로 있다는 것 같다. 일단 잠수도하를 가능케 하기 위한 수밀구조를 갖추고자 하는 과정에서 겸사겸사 밀폐된 차내를 여압시키기 위한 양압 장치도 달았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아무래도 소련군과 홋카이도에서 치고 박을 걸 염두에 둔 사양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소련군과 자위대 사이에 지상전이 터지면 높은 확률로 소련군이 핵을 쏠 거라고 그쪽에서도 생각하긴 했던 모양(…).[5]
2013년 9월 17일, 미국 워싱턴주 야키마 훈련장에서 열린 미 육군 제7보병사단과 육상자위대의 합동 훈련에 소수의 74식 전차가 참여하여 기동간 실사격 훈련등을 실시했다.
2015년 8월 18일, 일반인이 관람 중인 후지종합화력연습 중 궤도가 벗겨지는[6] 수모를 당했다. 그리고 23일엔 자위대의 최신형 전차인 10식 전차가 또다시 궤도 이탈이 일어났을 뿐만 아니라 사이드스커트가 종잇장 처럼 구겨지는 추태를 보였다(...).
월드 오브 탱크의 일본 중형전차 트리의 최고 티어로 74식 전차의 첫 프로토타입인 STB-1(1968년 처음으로 선보임)이 등장한다. 개발년도가 1970년을 초과하지 않아 큰 문제가 없다는듯. 당시 많은 서구권 국가에서 채용한 로열 오디넌스 105mm포를 장착하여 나오는데, 테스트섭에서는 한방 데미지가 390인데 이걸 장전기 없이 분당 7.5발씩이나 쏴서 DPM이 2925에 달한다! 부각 역시 10도로 매우 우월한 편. 이는 비슷한 컨셉을 가지고 있는 레오파르트1보다도 300정도 뛰어난 DPM이다. 다만 관통력이 다른 10티어 미듐보다는 10 떨어지는 258이다. 덕분에 레오파르트, 패튼 등을 완전히 묻어버릴 것으로 기대했으나 높은 추중비를 묻어버리는 끔찍한 지형적응(10티어 중형중 최악인 E-50M과 비슷한 수준. 일본 특징이 좋은 지형적응성이었는데 추중비 20에 달하는놈이 지형적응까지 좋으면 레오파르트보다 기동성 방어력 연사력 모두 상위호환이 되버린다), 0.36이라는 나쁜 명중률과 시너지를 일으키는 거지같은 하탄, 기동시 크게 벌어지는 에임 등 종합적으로는 패튼보다 좀 더 공격적인 올라운더 정도의 평범한 성능이 되었다. 안티노라가 싫어한다
워게임: 레드 드래곤에서 자위대 전차로 등장한다. 명중률이 뛰어나서 눈물나는 가성비를 가진 한국군 m48을 대신하여 많이 쓰인다.
타미야 제품답게 부품수는 단촐합니다. 7개 런너 약 157개 부품구성 입니다. 사출색은 짙은 다크그린 입니다.
이 제품은 1974년 첫출시되었는데 대부분의 타미야 자위대 관련 아이템이 그렇듯 상당한 명품과 고증에 충실한 제품입니다. 특히 당시로는 획기적인 현가장치 분리구성과 약간만 개수하면 현가장치를 가동상태로 만들수 있는등 출시된지 40여년이 다되어 가지만 타미야의 명품중 하나로 불리는 제품중 하나 입니다. 이 제품은 1993년 개수되어 인형 2명과 스키 그리고 자켓이 입혀진 포신이 금형수정으로 추가된 제품입니다. (아울러 가격도 올랐으나 워낙 인기없는게 자위대 아이템인지라.. 그다지 비싼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