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2. 6. 큐티
여호수아 24:14 ~ 18
그러므로 여호와만 섬기라
관찰 :
1)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 14절.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 너희의 조상들이 강 저쪽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치워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 여호수아가 내리고 있는 결론입니다. 그가 하나님의 음성을 대언하면서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지도자들을 모아 유언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의 결론인 것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우선이 되어서 온전하게, 그리고 진실함으로 여호와를 섬기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호와께서 인격이시라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그냥 형식적으로 섬기라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께서는 형식이 아니라 그 중심을 아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이시기에 여호와를 섬기는 척 하는 것은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른 신들을 모조리 치워버려야 합니다. 여호와는 여호와 하나님 외에 다른 신들, 다른 방법을 추구하는 것을 결코 원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그런 모든 이방 신들을 치워버려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을 온전하고 진실되게 섬길 수 있습니다. 그것이 또한 여호와를 경외하는 마땅한 모습입니다.
- 15절.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하니” => 여호수아는 너무나 확고합니다.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이 말은 이미 여호수아가 말한 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행하신 위대하신 일들을 전제로 하고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홍해를 가르시고, 이집트의 정병들을 수장시키시고, 바산 왕 옥과 아모리 왕 시혼을 왕벌들을 통해서 무찌르게 하시고, 요단 서편의 31명의 왕들과의 싸움에서 모두 승리하게 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밑바탕에 깔고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여호수아의 말은 당당합니다.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거주하고 있는 땅의 이방인들이 섬기는 신들이든지 섬길 자를 택하라는 것입니다. 이것도 섬기고 저것도 섬기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른 신들은 그렇게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여호와 하나님은 그런 것을 원하시는 분이 아니시며, 그렇게 섬길 수 있는 분도 아니시라는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는 강력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 것이지 백성들을 선동하거나 위협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인생 전체를 통해서 여호와를 경험함으로 체득한 하나님 여호와에 대한 너무나도 분명한 신앙고백입니다. 이에 동참하던지 말던지 할 것을 분명히 할 것을 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2) 그는 우리 하나님이심이니이다
- 16절. “백성이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결단코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기를 하지 아니하오리니” =>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수아의 결단에의 촉구에 대해서 더욱 열정적으로 반응하고 있습니다. 우상을 숭배하거나 다른 신들을 섬기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절대로 여호와를 버리지 않겠다고 맹세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호수아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여호와, 이스라엘을 친히 보호하시고 크신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 여호와를 본인들도 분명히 경험했기 때문에 나타나는 반응입니다. 이스라엘의 광야 2세대들은 이렇게 하나님에 대한 분명한 신앙고백에 동참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자신들이 경험한 것을 부정할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 17절. “이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친히 우리와 우리 조상들을 인도하여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올라오게 하시고 우리 목전에서 그 큰 이적들을 행하시고 우리가 행한 모든 길과 우리가 지나온 모든 백성들 중에서 우리를 보호하셨음이며” => 여호수아가 언급한 이적들에 대해서 그것이 하나님이 친히 하신 역사라는 것에 동의하고 있습니다. 그 일들을 자신들도 경험했고, 그것이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는 것을 자신들도 알고 있다는 맞장구를 치고 있습니다. 이전 광야 1세대들은 이집트에서 종살이 하며 누리던 그 조그만 유익 때문에 광야가 아닌 이집트로 돌아가고자 했었습니다. 그로 인해서 그들은 광야에서 모두 ‘먹다 죽은 인생’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이들 광야 2세대이자 가나안 1세대들은 하나님이 함께 하심에 대한 분명한 신앙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신들을 보호하시지 않았다면 자신들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여 살고 있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는 것을 백성들도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자신의 사명을 이렇게 잘 감당했다는 것을 보게 되는 말씀입니다.
- 18절. “여호와께서 또 모든 백성들과 이 땅에 거주하던 아모리 족속을 우리 앞에서 쫓아내셨음이라 그러므로 우리도 여호와를 섬기리니 그는 우리 하나님이심이니이다 하니라” =>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조상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만으로 하나님을 보고 있지 않습니다. 또한 자신들의 지도자였던 모세의 하나님, 여호수아의 하나님만으로 보고 있지도 않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여호와를 자신들의 하나님, 우리 하나님으로 비로소 인식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반응하고 있는 결단과 확신도 분명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가르침 :
1) 여호와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을 “I will be who I will be”로 알려주셨습니다. 그렇게 자기 자신을 자신의 백성들에게 드러내시며, 계속하여 관계를 맺어가는 가운데 자신을 드러내시는 양식으로 자기 자신을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분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러한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들 역시 하나님을 알아가는 가운데, 그 하나님께 경험하는 과정 속에 합당한 반응을 올려드려야 하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그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제 하나님을 ‘우리 하나님’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열심이 열매 맺는 결과입니다.
2) 여호수아의 믿음의 결단과 그 모범은 그의 리더십의 영향을 받는 이스라엘 백성 전체에게 소중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는 고백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우리도 여호와를 섬기리니 그는 우리 하나님이심이니이다”는 고백을 이끌어 내고 있습니다. 마치 마중물과 같은 모습입니다. 참된 믿음은 또 다른 참된 믿음을 끌어 올리는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오늘날도 그렇기에 지도자의 바른 믿음이 바른 신앙을 끌어 올리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온전하지 못한 지도자의 믿음은 그 공동체의 믿음의 수준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3) 안타까운 것은 이들의 신앙고백이 다음 세대로 이어지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신앙은 지켰으나 자신들이 경험한 하나님을 후손들에게 보여주지 못함으로 그들이 그 땅의 우상들에게 넘어가 하나님과 우상을 함께 섬기고 결국은 하나님을 떠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적용 :
1)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알아간다면, 또한 그에 합당하게 하나님께 반응을 드려야합니다. 하나님만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알려주시고, 하나님의 백성들은 변함이 없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수아의 마지막 유언에 도달했을 때, 놀라운 믿음의 진보를 이루고 있습니다. 곧, “우리도 여호와를 섬기리니 그는 우리 하나님이심이니이다”라는 고백을 한 것입니다. 누가 이끌어주어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주님을 믿고 따르겠다는 고백입니다. 그렇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알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자발적인 모습입니다. 제가 알게 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변하지 않고, 언제나 똑같은 것이 아니라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하나님을 사모하는 모습으로 드러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제 아내가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찬송가 314장을 마지막까지 부르길 소망하며 기대했던 것을 잊지 않겠습니다. 오늘도 주님과 동행하는 연습을 통해서 주님을 알아가고 주님께 더 나아가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2) 귀한 신앙의 동지들을 만납니다. 신학교 동기 형님들입니다. 매년 이 즈음에 만나기로 했습니다. 주님의 은혜와 위로의 이 시간을 통해서 하나님을 더욱 깊이 찬양하게 될 것을 기대합니다. 참으로 여호와만 섬기는 기쁨이 증거되고 나누어지게 될 것을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