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천사가 당신에게 나타나 세 가지 소원을 묻는다면 뭐라고 답해야 할까? 작가 헤벨이 주는 정답은 이렇다.
첫째 소원은 무슨 소원을 빌어야 할지 알 수 있는 지혜를 달라는 것.
둘째 소원은 무얼 빌어야 할지 물어서 알게 된 그 소원을 비는 것.
셋째 소원은 후회하지 않게 해달라는 것이다.
현실에서 천사가 나타나 세 가지 소원을 물어줄 일은 없다. 무엇을 빌어야 할지, 어느 길을 가야 할지 아는 지혜를 누가 주겠는가. 결국 내 스스로 얻은 인식과 경험과 삶에 대한 통찰이 그 지혜다. 헤벨의 정답에 한 가지 사족은 달수 있을 것 같다. 사람인지라 택해서 가고 있는 길에 후회가 아주 없을 수야 없다. 그래도 온 지혜를 모아서 어렵사리 한 선택, 추억이 묻어 있는 선택, 혹은 정말이지 그렇게밖에는 할 수 없었던 저 어려웠던 선택을 기억하며 견뎌가야 한다고. -pp.28~29
유대인들에게 자신들은 다 사라져도 남아 있어야 할 그 마지막한 사람이 시인이었다. 자신들이 게토에서 겪은 그 모든 일을 기록하여 민족이 사라진 후에도 그 이야기를 글로 전할 수 있는 사람. (……) 일 년 반 정도 수용되어 있는 동안 카체넬존은 그 모든 것을 4행씩 15연으로 구성된 열다섯 편의 긴 노래로 만들어 머릿속에 담고 있었다. 마침내 어찌어찌 글을 쓸 수 있게 되었을 때 그는 사흘 동안 깨알 같은 글씨로 적어 여섯 부를 만들어놓고 숨겨두었다.
그 직후 여권이 위조임이 발각되어 그는 곧바로 아우슈비츠 가스실로 실려가 목숨을 잃었고, 숨긴 여섯 부 중 두 부가 나중에 세상 밖으로 나왔다. 한 부는 풀려나는 유대인의 가방 가죽 손잡이를 뜯고 그 안에 넣어 꿰맸던 것이고, 다른 한 부는 유리병에 담아 수용소 안 전나무 아래 파묻었던 것이다. -pp.64~65
수능인지 무슨 문제집인지 그런 데서 나온 문제라는데, 어떤 위기 상황에서 여러 연령, 다양한 직업의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 그중 몇을 없애야 한다는 것이었다. ‘누구를 희생시킬까?’ 하는 문제였다. 그런데 어떤 대학생이 정교한 논리로 사회복지가의 꿈을 가진 눈먼 소년을 희생시켜야 한다는 주장을 폈는데 자기들은 석연치 않고 정말 모르겠으니 조언을 달라는 것이었다.
세상에 누가, 정말이지 어느 몹쓸 인간이 그런 문제를 냈단 말인가. 한참 있다가 학생들에게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이야기했다. 그건 답을 내고 못 내고의 문제가 아니고 문제 자체가 틀렸다는 것을. 누구를 죽여야 하는가로 문제를 내고 설득력까지 갖춘 답을 내게 한다면, 또 그 답을 낸다면 그거야말로 범죄라는 것. 세상의 큰 범죄들도 결국은 다 그렇게 해서 생겨나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