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구정
반구정과 압구정 (역적과 충신, 석정 홍정흠)
요즘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의 흥행은
단종의 서사를 대중에게 새롭게 각인시켰고
한명회라는 인물을 떠올리게 함으로써
역사와 영화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권력의
본질을 성찰하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나역시 영화를 관람하고 눈물을 훔쳤다.
단종은 동강에서 그렇게 동강났다.
시체를 거두는 자는 능지처참한다 했다.
두 강이 흐른다.
임진강과 한강. 강변에 두 정자가 있었다.
하나는 갈매기와 벗하며
세상의 무게를 내려놓은 자리,
또 하나는 권세의 그림자 속에서
세속을 잊고자 했던 자리.
정자는 단순한 건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주인의 삶과 철학을 담은 그릇이었다.
"황희"와 "한명회".
두 사람은 조선 역사 속에서 서로 다른 자리에 섰다.
한 사람은 청렴과 겸손으로 기억되고
다른 한 사람은 권모와 야망으로 남았다.
그러나 두 정자의 이름은 모두 갈매기를 품었다.
갈매기는 자유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그 자유는 서로 다른 빛으로 갈라졌다.
우리는 묻는다.
우리는 어떤 갈매기를 따라가는가?
황희는 세월의 깊이를 아는 사람이었다.
다섯 임금을 섬겼다.
태종, 세종, 문종,단종, 세조
권력 중심에 있었으나 욕심을 내려 놓았다.
반구정은 그의 마음이었다.
임진강 변에 세운 정자.
그는 강 위의 갈매기와 벗하며
세상의 번잡함을 잊었다.
청렴은 그의 무기였다.
권력을 쥐었으나 권력에 물들지 않았다.
반구정의 바람 속에는 갈매기 울음이 남아 있다.
그 울음은 자유롭고, 평화롭고,
세상의 풍파를 넘어선다.
오늘도 반구정은 그 자리에 있다.
강물 소리 속에서
우리는 황희의 삶을 떠올린다.
권력은 도구일 뿐이다.
자유는 자연과 조화 속에 있다.
한명회는 달랐다.
그는 권력을 움켜 쥐었다.
세조의 즉위를 도왔다.
그는 승리자였다.
그러나 그의 삶은 음모와 야망으로 얼룩졌다.
압구정은 그의 은신처였다.
한강 변에 세운 정자.
이름은 갈매기를 누른다는 뜻이었다.
세속을 제압하고 초월하려는 욕망이었다.
정자는 그의 권세만큼 화려하지 않았다.
세조의 총애 속에서 지어졌으나 불타 없어졌다.
그는 죽은 뒤에도 간신으로 남았다.
압구정은 사라졌으나 이름은 남아있다.
서울 압구정동. 오늘날 부와 유행의 상징.
고급 아파트와 명품 거리.
갈매기의 자유는 사라지고
소비와 욕망의 물결만 흐른다.
두 정자는 갈매기를 품고 있었다.
그러나 한쪽은 자유를 노래했고,
다른 한쪽은 욕망을 쫓았다.
황희의 ‘유(鷗)’는 갈매기였다.
그것은 조화와 겸손의 상징이었다.
한명회의 압구정은 누르는 갈매기였다.
지배와 초월.
역사는 이 대비를 조선의 갈등으로 본다.
성리학의 이상은 청렴과 도덕을 강조했으나
현실의 정치에는 권모와 야망이 있었다.
이 차이는 묻히지 않았다.
오히려 오늘날 더 선명하다.
압구정동의 네온사인 아래서
우리는 한명회의 유산을 소비한다.
파주 반구정의 고요한 강변에서
우리는 황희의 정신을 되새긴다.
서울의 번화가를 걸으며 우리는 묻는다.
나는 어떤 정자를 마음속에 짓고 있는가?
강남의 바람 속에서
나는 반구정의 고요를 기억하는가?.
현대 사회는 압구정의 유혹으로 가득하다.
부동산, 명품, 화려한 소비.
그러나 우리는 잊는다.
자유는 갈매기처럼 나는 데 있다.
그것을 누르는 데 있지 않다.
황희처럼 권력을 내려놓고
자연과 벗하는 삶. 그것이 평화다.
반구정은
여전히 파주 임진강 변에 서 있다.
압구정은 지명으로만 남았다.
권력의 정자는 불타기 쉽다.
겸손의 정자는 오래 남는다.
갈매기는 단순한 새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다.
자유인가, 욕망인가.
우리는 각자의 마음속에 정자를 짓는다.
그 정자가 반구정이 될지,
압구정이 될지는 우리의 선택이다.
강물은 흐른다.
역사는 흐른다.
시간은 흘러간다.
우리는 어떤 울음을 듣고 싶은가?
권력과 욕망은 사라지지만
겸손과 조화 속에 사는 삶은 오래 남는다.
- 좋은 글 감사합니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 로데오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