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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성 이용욱가옥
중요민속자료 제159호
전라남도 보성군 보성읍 득량면 오봉리 243
이집은 강골마을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마을 중앙에 위치하고있으며 1835년(조선 헌종 1년) 이진만이 지었다고 한다.
여인들이 거처하고 활동하는 공간인 몸채 또는 내당(內堂) 이라고도 하는 안채와
남자들이 거처하고 활동하는 공간인 사랑채와 출입문과 연결되는 문간채, 곳간채 등이 규모있게 구성되어 있다.
안채와 사당은 원래 초가로 지었으나 낡고 허물어져 이진만의 손자인 이방희가 와가(瓦家: 기와를 구워 얹은 집)로 개축 하였고
솟을대문도 원래 3칸이던 것을 이방희의 손자인 이진래가 5칸으로 개축 하였다고 한다.
특히 이 집은 안채, 사랑채, 곳간채, 행랑채, 중간문채, 사당과 연못 등을 모두 갖추고있어
이 지방 사대부들의 집 건축양식을 보여주는 중요한 민속 문화재라 하겠다.
마을 가장 중심부에 위치한 보성 이용욱 가옥(寶城 李容郁 家屋, 전남 보성군 득량면 강골길 36-6, 중요민속문화재 제159호)은
1835년 이용욱의 5대조인 이재 이진만(李齋 李鎭晩)이 지어졌다고 전해진다.
집 앞에 넓은 연지를 비롯해 솟을대문을 가진 문간채, 안채, 사랑채, 곳간채, 별당 등으로 구성된 마을에서 규모가 가장 큰 집이다.
대문을 들어서면 부농답게 넓은 사랑마당이 펼쳐져 있고, 왼쪽으로 중문간채와 오른쪽으로 사랑채가 맞대고 있다.
중문가채를 통해 안채로 들어서면 안마당 왼쪽 앞에는 곳간채를, 오른쪽에는 별당채를 배치했다.
안마당과 사랑마당은 중문간채를 통하지 않으면 출입하지 못하도록 나누어져 있다.
대문간채는 5칸으로 중앙에 솟을대문이 있고
왼쪽과 오른쪽에 온돌방이 여러 개 있어 머슴이나 일꾼들이 사용하도록 하였다.
사랑채는 남도식 구성으로 왼쪽부터 부엌·사랑방·사랑윗방·대청의 순으로 배치하고,
부엌과 사랑윗방 뒷쪽에는 툇마루가 있고, 부엌 위쪽에는 ‘공루’라는 수장공간을 설치해 생활용품을 보관할 수 있게 했다.
사랑방부터 대청까지 앞쪽에 툇마루가 있다.
정면 5칸 ‘一’자형 안채는 전후좌우면에 퇴를 두른 규모가 매우 큰 건물로 부엌 옆에 큰방 ·대청 ·작은방이 있으며,
큰방부터 작은방 앞까지는 툇마루를 설치했다.
작은방은 옆쪽에 출입문을 달아서 또 다른 공간으로 꾸몄다.
안채 오른쪽 ‘연정(蓮亭)’ 이란 현판이 걸린 별당채는
방 1칸과 마루 1칸을 각각 두고 사방 툇마루를 둔 정자와 같은 건물이다.
안채 앞에는 곡물을 보관하기 위한 정면 4칸의 큼직한 곳간채가 자리 잡고 있다.
이용욱 가옥 담장 너머에는 ‘소리샘’이라 부르는 특이한 우물이 있다.
이 우물가 담장에 네모난 구멍이 뚫려 있어 담장 너머 집주인은 우물가에서 들리는 마을 소식을 귀담아 듣고,
마을 사람들은 부잣집을 가만히 엿볼 수도 있었을 터. 바로 마을 사람들의 소통의 공간이기도 했다.
열화정
열화정은 이진만이 지은 정자로
1845년 쓴 열화정기에는 도연명이 쓴 귀거래사에 나오는
"친척과 정이 오가는 이야기를 나누며 기뻐하다" 라는 글을 따서 " 열화정 " 이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적고 있다.
득량 바다와 오봉산의 조망을 위해 연못주변에 담을 쌓지 않고 누마루의 기둥을 높게 올렸다고 한다.
지역선비들의 집합소이자 의병열사를 배출한 곳으로서 1984년 국가민속문화재 제 162호로 지정되었다.
강골마을 뒤 숲 가운데 자리 잡은 열화정은 주위의 숲을 그대로 살려
아름다운 공간을 연출하는 전통적인 한국 조경의 수법을 잘 간직하고 있는 곳으로,
정자 옆 연못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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