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는 물러가려나
지난 주중 제법 큰 세력으로 다가온다던 태풍 솔릭이 목포 연안에서 뭍으로 오르면서 슬그머니 사그라졌다. 기상청 오보였는지, 공중파 호들갑이었는지 학교는 단축수업과 휴업으로 학사 일정에 혼란이 왔다. 한반도 내륙을 얌전히 관통한 태풍으로 비바람이 약해져 인명이나 재산 피해가 적어 다행이다. 태풍이 지나고 나니 비를 흡족히 내려주지 않아 조금 아쉬움이 남을 정도다.
태풍이 스쳐 지난 주말은 다시 더위가 이어질 거라는 예보를 접했다. 나는 엊그제 토요일 이른 아침 진북 방면으로 산행을 나섰다. 도시락은 준비하질 않고 얼음생수에 국순당을 챙겨갔다. 마산 시내를 벗어나는 즈음 차창 밖 하늘에는 아침노을이 엷게 물들었다. 어릴 적 어른들로부터 들은 ‘아침놀이 비치면 그날 중 비가 온다.’는 얘기가 떠올랐다. 일기예보는 비가 없는 날이었다.
서북동 종점에서 가야사와 구원사 절간 들머리 임도를 따라 오르면서 산등선을 바라보았다. 파란 하늘에는 일시 아름다운 양털구름이 퍼져 있었다. 나는 산등선과 경계를 이룬 파란 하늘과 구름을 사진으로 남겨두고 서북산 임도를 따라 걸었다. 아직 도토리가 떨어지기 전인데 바위틈에 귀여운 다람쥐가 들락날락거렸다. 나는 녀석이 나를 마중 나와 준 것으로 착각하고 흐뭇해했다.
산허리 갈림길에서 감재로 향해 걸어 고개를 넘었다. 그즈음 파란 하늘은 이미 온데간데없고 먹구름이 덮쳐왔다. 아까 이른 시각 마산 시내를 빠져나올 때 본 차창 밖 아침놀이 떠올랐다. 예전 어른들이 경험에서 체득한 날씨 정보가 기상청 예보보다 정확함을 인정해줄 만했다. 하늘에선 금방 비가 내리지는 않아도 언제든 내릴 낌새였다. 나는 우산을 챙기지 않고 길을 나섰더랬다.
그날 법륜사 방향 여항산 둘레 길을 걸었다. 약수터 산장을 지난 산마루에서 법륜사로 가질 않고 지름길 등산로를 따라 보갑사로 내려서 별천에서 읍내로 가는 시골버스를 기다렸다. 별천정류소에서 버스를 기다린 때가 정오 이전인데 흐린 하늘에선 예상대로 소나기가 부슬부슬 내렸다. 아침놀이 비치면 그날 날이 저물기 전 비가 온다는 어릴 적 어른들 얘기가 그대로 들어맞았다.
빗속에 시골버스를 타고 함안역 근처로 나갔다. 봉성 한우국밥촌에서 점심을 들고 함안역에서 무궁화호를 타고 창원으로 복귀했다. 창원중앙역에 내리니 역시 소나기가 내렸다가 그치길 반복했다. 나는 우산도 없이 소나기를 맞으면서도 한낮 더위를 식혀주는 고마운 비라고 생각했다. 올여름은 워낙 폭염에 시달려 정말 태풍이라도 하나 우리나라로 다가와 더위를 식혀주었으면 싶었다.
이렇게 정작 기다린 태풍 지날 때는 비바람이 적다가, 태풍 영향권에서 벗어난 주말부터 비가 내려 더위를 식혀주고 가뭄이 다소 해갈되었다. 이튿날 일요일에는 더 많은 비가 내렸다. 즐겨가던 산행은 마음을 접고 우산을 받쳐 쓰고 진해 칠십 리 바닷길 안골포 구간을 걷고는 가덕도로 건너가 집안 형님을 찾아뵈었다. 와병 중인 형님이 건강을 조금씩 회복하고 있어 마음이 놓였다.
여름 끝자락 팔월 마지막 주간이다. 월요일 새벽에도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전날 서부경남 일대는 호우경보가 내려질 정도로 짧은 시간 많은 비가 내렸다는 보도를 접했다. 우리 지역에서도 여름날 볼 수 없는 시원한 빗줄기였다. 지난 유월 말 짧게 지난 장마 이후 제대로 된 비가 내리는 셈이다. 아침 일찍 출근해 내가 돌보는 봉숭아 꽃밭을 살피니 물을 줄 일 없어 다행이었다.
조락한 벚나무 낙엽을 쓸고 하루 일과를 시작했다. 수업 빈 시간 창밖을 바라보니 간간이 비가 내렸다. 폭염에 일시 발갛게 타던 운동장 잔디는 생기를 되찾아 파래졌다. 어디선가 날아온 몇 마리 까치가 부지런히 부리를 쪼다댔다. 잔디 밑 숨어 있을 지렁이를 찾는 듯했다. 이번 내리는 비는 며칠 간 더 내릴 거라는 예보였다. 이제 더위는 물러가려나. 물은 더 주지 않아도 되려나. 18.0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