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지나간다.
소나무 사이로 부는 바람이 서늘하다.
가을은 바다에서 더 빨리 느낀다.
비가 주적주적 내리는 오늘, 점심을 먹고 노인회관에서 사귄 동갑내기 남자와 망상해수욕장으로 커피를 마시러 갔다.
캠핑장은 텅 비어 있었다. 캠핑장 마루에는 빗물이 흥건하다.
그런데 캠핑장 바로 옆, 커다란 소나무 사이에 봉고차 한 대가 서 있고, 허름한 텐트가 있었다.
옆에 있는 캠핑장을 무시하고 굳이 그곳에 텐트를 친 것은 하루 만원의 사용료를 아끼려는 것 같다.
봉고차도 오래 되었고, 텐트는 요즘에는 사용하지도 않는 너무 낡은 것이다.
커피잔을 들고 서서히 다가가서 열심히 살폈다.
도대체 만 원의 사용료가 없어 아무도 없는 비오는 날에 그곳을 점령한 사람들이 궁금했다.
젊은 부부와 아이 하나였다. 아이는 칭얼대고 있었고 부부는 난감해 있었다.
문득 서늘한 생각이 들었다. 혹시 세 명의 가족은 살 곳이 없는 사람들은 아닌지. 전셋집이나 월세집애서 쫒겨난 것은 아닌지.
혹시, 전세 사기를 당해서 집이 경매에 넘어 간 것은 아닌지.
별의별 생각이 다들었고, 그들이 불쌍해졌다.
이제 막 시작된 가을의 서늘한 바람이 내 가슴을 더욱 쓸어 내렸다.
가을이 이런 식으로 다가오면 안되는데. 더 이상 슬픈 가을은 싫은데.
아내가 죽고 수도 없는 슬픈 가을이 이제 겨우 지나갔는데.
가을은 왜 이렇게 어김없이 찾아와 바닷가 소나무 사이로 하염없이 지나가는가.
왜 집없는 젊은 부부를 안타깝게 하는가.
커피 맛이 없었다. 애써 눈물을 감추고 그곳을 떠나야 했다.
내가 할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가을은 이렇게 지나가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