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접시 한 가득 넘치는 정
에티오피아 전통음식 ‘인제라’
“엄마! 저 사람들 팬케이크를 숟가락처럼 사용하고 있어요!”
전 세계적으로 폭발적 인기를 얻은 미국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에서 딸 리사가 인제라를 처음 본 후 묘사한 말이다. 리사의 말은 하나 틀림이 없다. 인제라를 먹을 때 포크, 숟가락, 젓가락, 접시 등 도구는 일절 필요하지 않으니까. 작은 구멍이 송송 난 따끈한 인제라를 뜯어 ‘와트(wat)’라 통칭해 부르는 매콤한 에티오피아식 카레 소스를 뜨거나, 구운 고기인 ‘팁스(tibs)’를 싸서 먹으면 끝. 마지막에는 접시처럼 맨 아래 깔려, 각종 소스에 폭 적셔 있던 것까지 다 먹는다. 진정 인제라는 음식이자 곧 식기인 것이다.
인제라는 에티오피안식 ‘납작 발효 빵’ 정도로 정의 내릴 수 있다. 프랑스식 크레페보다 두껍고 미국의 팬케이크보다는 얇은, 스펀지처럼 부드럽고 폭신한 식감과 고소하면서도 시큼한 맛이 미식가들을 사로잡는다.
슈퍼 곡물 테프(Teff)로 만든 건강식
인제라의 주원료는 유구한 3천년의 에티오피아 역사와 함께해 왔다 해도 과언이 아닐 고대 곡물, ‘테프(Teff)’다. 테프라는 이름은 암하라어로 ‘teffa(잃어버리다)’에서 기원했다. 세계에서 제일 작은 이 곡물은 지름이 1mm도 안 돼 미풍이라도 불면 전부 날아가 버리기십 상이니, 걸맞은 이름이 아닐 수 없다.
점처럼 작은 이 토착 곡물의 건강상 이익은 꽤나 방대하다. 먼저 라이신을 포함해, 성장 호르몬을 촉진시키는 아미노산이 여덟 가지나 들어 있다. 글루텐 프리 곡물이라, 만성소화장애가 있는 사람도 마음 놓고 섭취할 수 있어 좋다. 칼륨과 칼슘 함유량도 높아 뼈 건강 증진과 나트륨을 조절하는 데도 탁월하다. 이뿐만이 아니다. 미네랄도 풍부한데, 그 중 철분 함량이 월등히 높아 빈혈이 있거나 혈액 순환이 잘 안 되는 사람에게 도움을 준다. 당뇨가 걱정되는 이들도 주목하자. 테프는 인슐린 분비를 촉진하고 혈당을 조절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으니까. 무엇보다 가장 귀가 솔깃해지는 부분은, 식이섬유가 많아 포만감이 쉽게 오고 칼로리도 매우 낮아 다이어트 식단으로 안성맞춤이라는 것.
이렇게 일일이 전부 나열하기에 벅찰 만큼 좋은 성분으로 똘똘 뭉친 곡물이라는 걸 증명하듯, 영국의 데일리 메일(Daily Mail)지에서 기네스 펠트로와 빅토리아 베컴 같은 해외 스타들이 열광한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여러 모로 건강에 이롭다는 사실이 빠르게 입소문을 타면서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새로운 슈퍼 푸드로 각광받게 된 테프. 그 인기에 힘입어 에티오피아 농부들은 최근 수출 급증으로 인한 수요를 간신히 따라잡는 중이라 한다.
전통적인 인제라는 테프만 100%로 사용하지만, 몸값이 비싸진 테프 대신 밀, 보리, 옥수수 등을 테프 가루와 함께 섞기도 한다. 테프는 종류에 따라 흰색, 갈색, 적색 등 여러 가지의 색을 띄어 인제라의 색도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
인제라에 깃든 기다림의 미학
제아무리 팬케이크를 많이 만들어본 고수라 할지라도, 인제라 만들기에 쉬이 도전했다가는 낭패를 볼 것이다. 얼핏 보면 부침개 부치듯 단순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복잡하고 까다로운 과정이 녹아 있으므로. 손이 많이 가고 준비 시간도 짧지 않아 근래에는 가게에서 구입하는 가정이 늘고 있을 정도다.
인제라를 만드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단, 우리나라 김치처럼 가정에 따라 만드는 방식에 조금씩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요리 준비 시간 평균 3일 요리 시간 10분 준비물 테프 가루, 정제수(실온), 믹싱볼 큰 사이즈, 밀폐 용기
만드는 법
1. 제일 먼저 테프 발효에 필요한 이스트, 에르쇼(Ersho)를 만들어야 한다. 이는 천연 발효종으로, ‘사워도우 스타터(Sourdough Starter)’라고 생각하면 된다. ¾컵 분량의 물에 ¼컵의 테프 가루를 넣고 뭉침 없이 잘 갠 후, 밀폐용기에 넣어 따뜻하고 어두운 장소에서 24시간 동안 발효시킨다.
2. 테프 가루 4컵을 큰 믹싱볼에 넣고, 어제 만들어 둔 천연 발효종 에르쇼를 부어준다. 물 6컵을 넣고 손으로 치대며 잘 반죽하되, 크레페보다는 더 걸죽하고 팬케이크 보다는 묽게 농도를 맞춘다. 물을 조금씩 넣으며 농도를 확인한다. 완성되면 커다란 밀폐용기에 담아 다시 24시간 발효에 들어간다.
3. 발효가 끝난 반죽 표면에 노르스름한 물이 생기면 이를 따라 버린다. 끓였다 한소끔 식힌 따뜻한 물을 인제라 반죽에 천천히 부으며 주걱으로 저어, 농도를 조절한다. 다시 밀폐해 약 4시간 동안 재발효를 한다. 이 후 반죽을 서늘한 곳에 두거나 냉장고에 잠시 넣어 쿨링 과정을 거치는데, 이는 인제라의 눈(eyes)이라 불리는 구멍이 더 많이 생기게 하기 위함이다. 구멍이 작고 많을수록 더 맛있고 폭신한 인제라가 된다.
4. 시원해진 반죽통을 연 후, 위에 뜬 물은 버리지 말고 다른 용기에 따라 둔다. 만약 인제라의 농도가 너무 되직하다 싶으면, 앞서 분리해둔 발효종 물을 조금씩 부어 맞춘다. 이 물은 따로 보관해 냉장고에 두고 다음 번 인제라를 만들 때 스타터로 사용하면 된다. 1컵 분량의 발효종 물로 약 5장 정도의 인제라를 만들 수 있다.
5. ‘미타드(Mitad)’라고 불리는 인제라 전용 번철을 준비한다. 전통적으로는 점토로 만들어진 번철에 구웠지만 요즘은 전기로 된 미타드를 주로 사용한다. 팬이 화씨 450도 정도로 달궈지면 반죽을 바깥에서 안쪽으로 천천히 원을 그리며 부어준다. 이때 두께가 일정하고 빈틈이 없도록 한다. 인제라 표면의 반 이상에 구멍이 생기기 시작하면, 미타드의 뚜껑을 닫아 스팀으로 익힌다. 약 20초간 기다리면 완성.
에티오피아에 가면 에티오피아 법을 따르라
인제라를 먹을 때 알아 두면 좋을 에티켓이 있다. 첫 번째, 반드시 깨끗이 씻은 오른손을 사용해 먹을 것. 왼손은 청결하지 않다는 의미가 있으므로 사용에 주의하자. 두 번째, 인제라를 싸서 친구나 가족에게 먹여주는 관습, ‘구르샤(Gursha)’다. 구르샤는 암하라어로 ‘입안 한가득’이라는 뜻인데, 보너스, 뇌물, 팁이라는 뜻도 있다. 에티오피안 지인이 손으로 음식을 싸서 주더라도 당황하지 말고 받아먹은 후, 다른 사람에게 구르샤를 해줘도 좋다.
에티오피아에 “같은 접시의 음식을 나눠 먹는 사람들은 서로를 배신하지 않는다(Those who shares the same plate will never betray each other)”라는 속담이 있다. 태초부터 에티오피아 사람들은 최소 두 명 이상의 가족 및 친지, 지인들과 함께 다정히 인제라를 나눠 먹으며 정과 두터운 신의를 다져온 게 아닐까? 음식을 보면 그 나라의 국민성을 알 수 있다고도 했다. 서로에게 음식을 먹여주는 미덕을 거의 매끼마다 행하는 에티오피아 사람들. 그 마음의 온도가 얼마나 따뜻한 지 가늠해 볼 수 있겠다.
첫댓글 먹고싶네요ㅎ
아디스아바바 타나호수 근처에서 이렇게 먹고 커피 한잔 하는 것이 하나의 코스 입니다.
명칭만 다를뿐,
미국식 중국음식에도 저리 먹는 게 있네요.
참 신기하죠. 타코나 또띠야, 도네르케밥, 그릭 자이로, 따미야 등등 알고 보면 전병에 각 재료 넣어 요거트나 야채, 소스 넣어 간단히 조리하는 방법. 아프리카도 비슷한 요리가 여러나라에 걸쳐 있더군요.
그러고보니 얼마전 kbs세계인에서 십년전 대지진난 아이티 가서 보여주던데 아직도 복구 못하고 많은 사람들이 힘들게 살더군요 한참 힘들때 아이들이 흙으로 구운 진흙쿠키 먹는다고 나왔는데 요즘은 좀 나아졌는지 모르겠군요
한쪽에선 먹을게 남아돌아 마구 버리는데 다른 세상에선 굶주려 죽는 사람들
그게 그 나라의 대통령이 얼마나 현명한가 멍청한가에 따라 다르더라고요,
멍청한 대통령은 독재자,
나름 자신은 똑똑하다고 생각하겠죠.
@칸츄리꼬꼬(미국) 그게 그 나라의 국민이 얼마나 현명한가 멍청한가에 따라 다르던데요? 멍청한 국민은 나름 자신은 똑똑하다고 생각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