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 6년 빨라진다… 75만채 안전진단 ‘면제’
30년 넘은 아파트 재건축 규제 완화… 재개발도 완화해 4년간 95만채 공급
관련법 개정안 국회통과해야 가능
野 “안전진단 폐지 납득 안돼” 반발
尹 “다주택자 징벌적 중과세 없애야”
尹, 일산 최고령 아파트 찾아 윤석열 대통령이 10일 경기 고양시 일산신도시의 최고령 아파트인 백송마을 5단지의 한 가구에서 거주민의 설명을 듣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날 “30년 이상 노후화된 주택은 안전진단 없이 바로 재건축에 착수할 수 있게 하겠다”고 말했다. 대통령실 제공
정부가 재건축 사업 첫 단계인 안전진단을 사실상 폐지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이 방안이 시행되면 서울의 경우 사업 기간이 최대 6년 단축된다. 신축 소형 빌라나 오피스텔을 산 다주택자들은 향후 2년간 ‘다주택 중과세’를 일부 감면해 준다. 일부 조치는 법 개정 사항이 맞물려 있고 공사비 급등 등으로 침체된 시장에서 실효성을 가질지는 미지수라는 지적도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은 10일 경기 고양시 아람누리에서 ‘국민이 바라는 주택’을 주제로 한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를 열고 “재개발·재건축 규제를 아주 확 풀어버리겠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또 “다주택자를 부도덕하게 보고 징벌적 과세를 하면 그 피해는 서민들이 본다”면서 “이런 중과세를 철폐해 서민들, 임차인들이 혜택을 입도록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이날 발표한 1·10 공급대책 중 재건축·재개발 규제 완화로 총 95만 채를 도심에 공급하기로 했다. 우선 준공 30년만 넘으면 재건축 추진위원회나 조합을 먼저 설립하고, 안전진단은 사업계획 승인 전까지만 받도록 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 개정을 추진한다. 다만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려면 야당 동의를 얻어야 한다. 더불어민주당 이개호 정책위의장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재건축을 하는데 안전진단을 하지 않는다는 건 뜬금없고 납득이 가지 않는 이야기”라며 “내용을 확실히 파악해보고 (대응책을) 판단하겠다”고 했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이에 “안전진단이 재건축의 걸림돌이 되는 일이 없게 할 것”이라고 했다. 실제 국토부는 도시환경법 개정과 별개로 올해 6월까지 안전진단 기준을 추가 완화하는 내용으로 시행령을 고칠 예정이다. 정부는 이를 통해 2027년까지 30년 이상 아파트 173만 채(2022년 기준) 중 75만 채를 재건축한다는 목표다.
재개발 추진 요건도 준공 30년 이상 건축물 비중을 구역 내 전체 주택의 ‘3분의 2(66.6%) 이상’에서 ‘60% 이상’으로, 촉진지구로 지정되면 ‘50% 이상’으로 내린다. 신축 빌라가 난개발돼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던 지역 일부도 재개발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재개발을 통한 공급 목표는 2027년까지 20만 채다.
소형 빌라 및 오피스텔에 대한 세제 혜택은 이날부터 내년 12월 31일까지 준공된 신축 주택을 이 기간 내 살 때로 한정한다. 전용 60㎡ 이하로 수도권은 6억 원, 지방은 3억 원 이하인 경우다. 지방의 준공 후 미분양 주택은 아파트를 포함해 전용 85㎡ 이하 주택을 사면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다주택자라도 1주택자와 똑같이 간주된다.
30년이상 아파트 안전진단 없이 재건축… 野 “총선용 포퓰리즘”
[1·10 주택공급 대책]
재건축 착수후 안전진단 받으면 돼
수서-상계-고양 등 단지 수혜 예상…재개발도 동의 요건 등 낮추기로
野 강력 비판… 법개정 난항 예고… 정부, 시행령 바꿔 일부 추진 방침
1988년 준공된 서울 양천구 신정동 목동신시가지아파트 11단지. 1595채 규모로 재건축 안전진단을 2019년부터 추진했지만 현재까지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인근 13개 목동신시가지아파트 단지가 모두 안전진단을 통과하고 단지 간 연계 개발을 논의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10일 정부 발표대로 도시및주거환경정비법이 개정될 경우 이 단지는 안전진단을 거치지 않고 바로 추진위원회나 조합을 설립해 재건축 사업을 시작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안전진단은 재건축 막바지 단계인 사업계획 인가 전까지만 받으면 된다.
● 재건축·재개발사업 기간 단축… 야당 설득이 관건
이날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금까지 재건축·재개발이 규제 대상이었다면 앞으로는 지원 대상으로 전환할 것”이라고 했다. 이 같은 전환은 서울 주요 지역 재건축 단지도 공사비를 감당하지 못해 사업이 중단되는 등 건설 경기 침체가 도심 주택 주요 공급원인 정비사업에까지 타격을 입히고 있기 때문이다. △사업요건 완화 △기간 단축 △수익성 개선 등을 통해 사업 추진을 원활히 하려는 것이다.
우선 준공 30년만 넘으면 안전진단 없이 우선 추진위나 조합을 결성해 사업을 시작할 수 있게 된다. 안전진단은 사업인가를 받기 전에만 진행하면 된다. 기존에는 추진위나 조합이 없는 상태에서 안전진단을 진행하려다 보니 수억 원의 비용을 누가 마련할지 명확하지 않아 지지부진한 경우가 많았다. 추진위부터 결성되면 이런 문제가 해소돼 사업 기간이 짧아질 수 있다.
수도권에서는 준공 30년이 넘었지만 아직 안전진단을 통과하지 못한 △서울 강남구 수서동 신동아 △노원구 상계동 상계주공7단지 △경기 고양시 백송5단지 △경기 성남시 한솔3단지한일 등이 대표적인 수혜 단지로 거론된다.
재개발 사업의 경우에도 도시정비법을 개정해 구역 내 지분이 쪼개진 토지의 경우 소유자 전원 동의에서 75% 동의로 요건을 낮추는 등 추진 요건을 완화한다. 이를 통해 최장 3년까지 사업 기간이 줄어들 것으로 국토부는 보고 있다.
다만 이 방안들이 현실화하려면 야당을 설득하는 게 우선이다. 야당은 이번 대책을 놓고 “집값을 띄워 표를 얻으려는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윤영덕 원내대변인은 “(윤 대통령이) 총선용 포퓰리즘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고 비판했다.
● 시행령 개정으로 일부 우선 추진… 실효성 논란도
반면 시행령 개정을 통해 정부가 곧바로 추진할 수 있는 조치들도 있다. 안전진단과 관련해 국토부는 올해 6월까지 기준을 추가 완화하겠다는 계획이다. 구조안전성 대신 노후도 비중을 대폭 높여 30년 이상 된 아파트라면 안전진단을 통과하지 못하는 일이 거의 없도록 만들겠다는 것이다. 국토부는 “안전진단에서 1년, 사업단계 압축에서 2년가량 기간 단축이 가능할 것”이라며 “여기에 서울시의 신속통합기획까지 적용하면 최장 6년까지 사업기간이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도 추가 완화한다. 신탁 운영비나 공공임대 비용 등을 초과이익 산정 때 비용으로 폭넓게 인정해 부담금의 기준이 되는 초과이익을 줄여주겠다는 것이다. 국토부는 “1인당 부담금이 1억1000만 원으로 매겨진 단지의 경우 3월 개정 재초환법 시행에 따라 5500만 원으로 부담금이 줄고, 이번 대책까지 적용되면 2800만 원까지 낮아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미 진행 중인 정비사업도 공사비 인상 등으로 중단되는 등 갈등을 겪고 있는 상황이라는 점이다. 실제 서울 노원구 상계주공5단지, 은평구 대조1구역 등 재건축·재개발 사업이 공사비 문제 등으로 멈추는 사례들이 속출하고 있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정책 방향은 올바르지만 지금 당장 효과가 나오기는 어려운 정책”이라며 “주택 시장이 되살아났을 때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김형민 기자, 최동수 기자, 윤명진 기자, 이축복 기자, 이상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