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졸을 한 후에도 취직이 잘 되지 않아 걱정이다.
나에게 많은 충고를 해주던 형이 너무나도 그립다.
하지만 부모는 이렇게 힘들때에도 내 머릿속에 나타나지 않았다.
부모님은 나에게 원서를 단 한장뿐이 써줄수가 없댄다. 가정 형편이 넉넉치 않댄다....
둘째아들의 인생을 고작 8만원에 져버리는 부모가 지금은 원망스럽다. 한양대, SKY까지... 가고싶엇던 대학교는 많다.
하지만 엄마아빠는 고등학교까지 보내줫으면 됏지 대학까지 신경써야하냐며, 너의 형은 어떻게 뒷바라지 하냐고 하셧다.
그래서 난 나의 실력으로 장학금을 타 대학을 다니려고 실력보다 한참 아래인 대학교에 원서를 넣었다.
원서넣는날이 생각난다. 다른아이들 모두 고려대, 연세대, 포항공대, 서강대.... 나보다 못한놈들도 좋은 대학교에 원서를 제출하는데, 전교 1등이던 나는 가정형편이라는 악마에게 발목을 붙잡혀 건국대학교에 원서를 넣었다.
2008년에 건국대학교 경영학과에 원서를 넣고, 11월 난 수능을 쳤다.
나에게 수능이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등급 또한 1등급으로 줄을 섯었다. 이정도면 건대는 고사하고 고려,연세,서울,포공,카이스트....
내가 바라는대로 갈수있는 자유여행권인 올1등급 성적표가 나의 주먹에 쥐어져 있었다.
하지만, 나는 09학번으로 건국대경영에 입학했다. 다행히 장학금은 받더라.
가고싶은 대학은 많았다. 정말 가고싶었다.
안암 호랑이, 신촌 독수리가 벌이는 박진감넘치는 축제도 벌이고 싶었다.
파란옷을 입고 '아카라카'를 즐기고싶었고, 빨간옷을 입고 '입실렌티'를 즐기고 싶었다.
꿈같은 캠퍼스생활을 즐기고 싶었고, 고대 지하의 독서실에서 공부하다가 힘이 들때 편의점에서 캔커피 하나 사들고 밖으로 나와 해가 저물며 저녁놀을 뿌리는 환상적인 경치를 즐기고 싶었다.
하지만 난 썩어버린 건대의 호수를 보며 대학교 4년을 보냈다. 가고싶은 대학에 가지 못한 나는
이딴 건국대학교를 수시를써서 턱걸이로 들어온 놈들과 내가 똑같이 취급받는다는것이 싫다.
그런 놈들과 같은 학교에서 같이 밥을먹고, 같이 공부하고... 치욕이 따로 없다.
그렇게 불만과 증오가 가장 최고조였던 해인 2010년, 난 옛날에 가족끼리 찍어두었던 비디오카메라 테이프를 발견했다.
요즘엔 디카니 뭐니 해서 이런 동영상자료쯤 초등학생들도 곧 잘 찍어내지만, 내가 어렷을때만해도 동영상으로 자료 등을 남긴다는것은 약간 까다로운 작업이었다.
텔레비전에 빨간색 선, 노란색 선, 파란색 선... 모두 연결하고, 비디오카메라를 틀어보았다.
엄마가 보인다. 아빠가 찍고계시나보다. 아직 아기밖에 안되는 나와 동생도 함께 나왓다.
"우리 첫째아들,맏아들,작은아들,장남. 우리 진호!"
엄마가 밝게 웃으시면서 나를 번쩍 들으시며 말씀하셧다.
"우리 진호가 정말 많이컸어. 옛날엔 이 에비 팔뚝만하던 것이, 이젠 꽤 묵직한게 눈으로도 보이는구만."
카메라로 찍고계시던 아버지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
........
...............
난 왜 엄마아빠의 사랑을 모르고 있었을까.
부모의 사랑은 없어지지도, 무뎌지지도, 달라지지도 않는데 그것을 받아들이는 내가 달라진 것 같다.
내가 어렸을때, 우리 가족은 모두 행복했겠지. 이렇게 돈으로 서로 얼굴 붉히고, 힘들어 하진 않았을것이다.
흘러가는 시간에 몸을 맏긴채 많은 생각을 하지 못했었다. 내가 성장함에 따라 그에 걸맞는 공부를 미친듯이 하느라 이런 기분을 모르고 살아왔다.
내가 태어나고, 약 7살정도 까지 우리는 다가구주택의 2층, 202호에서 살았었다.
놀이터에서 형과 함께, 동네 또래들과 함께 뛰놀다 아빠의 퇴근시간이면 쪼르르 주차장으로 달려가서 기달렸었다.
아버지는 차에서 내리시고 우리에게 찡긋 눈웃음을 하셨었고, 우리는 그런 아버지를 보며 되지도 않는 힘으로 아버지를 슈퍼마켓까지 등을 밀었었다. 아버지는 우리에게 밀려주시는 척 하시며 슈퍼마켓으로 떠밀려 가셧고, 과자 한봉지씩을 사주셨었는데...
저녁을 먹고 온 가족이 밖으로 나와 귀뚜라미 소리가 들리는 공원을 한바퀴 돌기도 했었다.
이 기쁨. 이 여유. 이 편안함.... 이제는 두번 다시 체험하지 못할 소싯적의 아름다운 나의 추억.
오랜만에 고향에 가고싶었다. 경기도 안산시 와동으로. 평범하던 어렸을때의 추억으로.
내가 다니던 유치원. 내가 아버지의 등을 밀어 과자 한봉지 얻어 먹던 슈퍼마켓. 내가 장난감을 사던 문구,완구점......
어머니의 심부름을 받아 파 한 단 사오던 대형 마트까지...아직도 있다.
우리 가족이 살던 다가구 주택까지 아직도 있다. 나의 추억,나의 여유는 이곳에 아직도 그대로 있다.
마음이 편해지고, 눈이 뜨겁다. 눈에선 여유와 기쁨을 찾은 나의 눈물이 흘러 내린다.
동네가 참 아담하다...... 어렸을때는 그렇게 달려도 달려도 닿지 않을 것 같던 집이, 이젠 조금만 걸어도 닿을 수 있다.
벌써 해가 지고 붉은 노을이 하늘에 일고 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다. 주황빛 구름과 우리가 살던 다가구 주택, 그리고 온통 빨간 하늘... 너무도 그리웠던 어렸을적의 그 풍경.
울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숨이 막히고 눈이 부을때까지 운건 정말 오랜만이다. 너무나 그리웠다. 이 여유, 이 풍경을...
다시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갈떄까지 석양이 지고있었다. 버스를 타고 보는 하늘의 석양은 너무나 아름다웠다.
아름답다. 이 세상은. 나를 이렇게 키워주신 부모님께 너무도 죄송스럽다.
이제 나도 성인이다. 부모님은 다 늙으셔서 이젠 당신들 힘으로는 아무것도 하실수 없으시다.
이렇게 떳떳히 자란 나. 나를 위해 당신의 인생을 희생하신 부모님에게 잘 해 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카페 게시글
인소닷단편소설
[단편]
[원효대교] 향수.
원효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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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0.03 12:23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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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다시 한번 가족의 정을 깨닫게 해주네여..ㅠㅠ 잘 보고 갑니다
건국대비하발언인가요 -_ -;;
건국대를 간건 님의 선택인데 왜 가만히 있는 건대를 비하합니까? 이제와서 건대생들한테 화풀이하는 건가요? 님 정신상태가 우습군요...... 당신이 진정 공부를 잘했고 능력이 좋았다면 이런 글은 쓰지조차 않았겠지. 이런 글 썼다는건 당신 능력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절실하게 보여주네요. 남 비하하면 자기도 비하받는다는것 알고 계셨으면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