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외교관 등 고위 탈북민, 작년 10명안팎 한국입국
김정은 “대한민국은 주적” 첫 표현
지난해 한국으로 온 고위급 탈북민이 10명 안팎인 것으로 알려졌다. 해외 무역대표부 대표급, 고위급 외교관 등의 탈북이 잇따른 것으로, 강화된 대북 제재로 경제난에 봉착한 북한에서 엘리트층이 크게 동요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 엘리트층의 이탈이 이어지자 북한 당국은 지난해 말 재외공관들을 대상으로 대규모 검열을 실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복수의 정부 고위 소식통은 10일 이같이 전하면서 “평양 등 북한에서 바로 온 이들은 없고, 대부분 해외에 체류하다 한국으로 온 사람들”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전과 비교해도 이례적으로 많은 수준”이라며 “지난해 하반기에 (탈북이) 더 많았다. 고위급 탈북민이 올해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속에서 코로나19 봉쇄가 풀린 이후 해외에 나가 있는 엘리트층을 상대로 한 외화벌이 독촉이 더욱 심해지자 이를 견디지 못한 고위 인사들의 이탈이 가속화되는 것으로 우리 정보당국은 보고 있다. 북한이 해외 직원들을 최근 본국으로 소환하거나 재정난으로 인해 일부 재외공관들을 폐쇄하려는 움직임 등도 이들의 이탈에 영향을 줬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가운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8, 9일 중요 군수공장을 현지지도한 자리에서 “대한민국 족속들은 우리의 주적”이라며 “기회가 온다면 주저 없이 수중의 모든 수단과 역량을 총동원해 대한민국을 완전히 초토화해 버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위원장이 한국을 “주적”이라고 표현한 것은 처음이다.
“北 재외공관 검열에 동요… 평양 엘리트층 탈북 올해 더 늘듯”
정부 “외화벌이 압박-통제강화 첩보”
작년 외교관 등 北고위급 탈북 급증… “주민들까지 동요 北 체제에 큰 위협”
통일硏 ‘북한인권백서 2023’ 발간… “코로나 방역위반자 집단 공개처형”
지난해 한국 땅을 밟은 고위급 탈북민이 10명 안팎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북한 엘리트층의 동요가 매우 커진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지난해 말에는 북한 재외공관에 대한 검열이 있었다는 첩보도 우리 당국에 포착됐다. 정부 고위 소식통은 “북한 엘리트층은 심각한 경제난과 북한 당국의 통제 강화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며 “이런 심각한 내부 상황을 감지한 엘리트층의 이탈은 북한 체제에 큰 위협이 될 것”이라고 했다.
북한 고위급 인사들의 탈북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되던 시기엔 한 해 두세 명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크게 증가한 데 이어 올해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우리 당국은 보고 있다. 외교관·무역대표부 직원 등을 중심으로 탈북 시도가 이어지면서 엘리트층을 중심으로 북한 체제에 대한 불만이 확산돼 일반 주민들까지 흔들릴 수 있다는 것. 고위급 탈북민으로 분류된 이들은 신분 노출 등의 이유로 합동심문 후 탈북민 정착지원시설인 하나원을 거치지 않고 한국 사회로 나온다.
● 상반기 평양 핵심 엘리트층 탈북 가능성도
정부 소식통은 “코로나19 확산 시기를 거치면서 외화벌이 최전선에 있는 해외 공관 등에 대한 북한 당국의 옥죄기가 강화됐다”며 “이는 고위급 탈북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보인다”고 전했다. 다른 소식통도 “(북한 당국의) 압박 독촉 주기가 예년보다 더 짧아졌다는 얘기가 들린다”고 했다. 북한은 전방위적인 대북 제재로 외화벌이 상황이 악화돼 재정난을 겪자 지난해 전 세계 재외공관 53개 중 7개를 순차적으로 폐쇄하기도 했다. 일각에선 올해 북한이 철수할 공관이 10여 개에 달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엘리트층의 동요가 잇따르자 북한이 재외공관 등을 중심으로 통제를 강화하는 정황도 포착되고 있다. 정부 소식통은 “지난해 말 (재외공관들을 대상으로) 전반적인 검열이 있었다는 첩보가 있다”면서 “일반 주민들의 탈북과 달리 고위급은 고급 정보 유출 등 측면에서 김정은에게 골치 아픈 문제일 것”이라고 했다. 북한이 지난해 8월 이후 국경 개방에 속도를 붙이는 추세 등을 고려하면 당장 올해 상반기 평양에서 최신 정보를 가진 엘리트층이 본격 탈북할 가능성까지 우리 정보당국은 주시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입국한 고위급 탈북민들은 대개 국경 봉쇄로 해외에 수년간 체류한 이들이었지만 앞으론 정권 핵심부 가운데 탈북하는 이들도 나올 가능성이 있다는 것. 2010년대 1000명대를 유지하던 전체 탈북민 입국은 코로나19 발발 이후 60명대로 크게 감소했지만 지난해 190명대로 전년 대비 3배 가까이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코로나19가 진정 국면에 접어들면서 북한이 육로와 항공편 등으로 해외에 있는 직원들을 소환하고 있는 상황도 북한 엘리트층 동요를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보인다. 운항이 재개된 고려항공 노선을 통해선 이미 해외 장기 체류자들이 귀국하고 있다. 정부 소식통은 “수년 만에 귀국하는 이들에 대해선 북한 당국이 엄격한 사상 조사·검열 등을 하고 있다”면서 “귀국이 두려운 엘리트층이 자녀의 미래 등을 생각해 탈북을 감행할 수밖에 없는 여건까지 조성된 것”이라고 전했다. 일각에선 앞서 문재인 정부 때보다 윤석열 정부 들어 고위급 탈북민들에 대한 대우가 개선된 부분 등도 엘리트층 탈북에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도 나온다.
● 방역조치 어겼다고 공개처형
이런 가운데 북한은 사형 규정을 확대하거나 남한 문화 유입에 대한 감시·처벌을 강화하는 등 주민들에 대한 공포 통치를 이어가고 있다.
통일연구원은 10일 최근까지 북한에 거주한 탈북민 71명에 대한 심층면접을 거쳐 ‘북한인권백서 2023’을 발간했다. 이에 따르면 북한은 비상방역법(2021년), 반동사상문화배격법(2022년) 등 특별법을 제정했고, 이를 위반하면 최고형으로 사형까지 명시했다. 코로나19 등 방역조치를 위반한 사람들을 집단 공개처형했다는 탈북민들의 증언도 나왔다.
신진우 기자, 신규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