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G에서 요훔 탄생 100주년에 발 맞추어 베토벤 심포니 전집을 새로 복각, 메모리얼 에디션으로 선보였다. 오래 전 운명만 슈베르트 미완성과 커플링되어 염가반으로 출시됐을 뿐, 다른 연주들은 LP로 구해야 했던 아이템들. 실로 특필할 만한 발매라 할 수 있다.
브루크네리안으로 정평있는 요훔이지만 베토벤에 대한 집념 또한 남달랐다. 기실 그의 베토벤 녹음사는 브루크너와 더불어 193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메이저급 음반제작사였던 텔레푼켄은 젊은 요훔을 기용, 1937-8년 3,7,9번을 연달아 레코딩했다. 이후 요훔이 손댄 베토벤 사이클은 총 3종. 1952년부터 1961년까지 베를린 필 및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을 파트너로 시도한 교향곡 전집, 1967년에서 1969년 사이 로열 콘서트 헤보우와 작업한 리메이크반 (Philips), 그리고 1977년에서 1979년 사이 런던 교향악단을 지휘한 마지막 전집 (EMI)이 그것으로 이 세트는 제일 오래된 결과물을 담고 있다.
역시 1950년대 만들어진 브람스 전집이 순전히 모너럴 녹음인 것과는 달리 스테레오 레코딩이 절반 가량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시기에 베토벤 4번만 1956년, 1961년 두 차례에 걸쳐 녹음했다는 점. 여기서는 스테레오 버전을 채택하고 있다.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이 1,5,9번을 맡고 있으며, 나머지 곡은 모두 베를린 필이 담당했다.
연주는 기대 이상으로 탁월하다. 만년의 런던 교향악단 사이클만큼 스케일이 웅장하진 않지만, 온건하고 보수적인 콘서트헤보우 전집보다 훨씬 음악적 형태가 야무지다. 50대 원숙기를 맞이한 요훔은 순간의 영감에 의지했던 과거의 낭만적 지휘 전통으로부터 결별을 선언한다. 그는 어디까지나 굳건한 독일 정신에 기초하면서도 직관적 수사법에 논리적 사고를 단단히 결합시켜 베토벤 교향악을 꽉 짜인 프레임 안에서 중후하고 준열하며, 관 파트는 시종일관 투명한 음빛깔로 내비친다. 그렇다고 해서 곡조가 무미건조한 것은 결코 아니다. 견고한 리듬과 강력한 파워, 가속과 감속을 적절히 활용한 탄력적인 프레이징을 버무려 지휘자는 연주하는 곡마다 정력적인 생명감과 풍부한 감정을 불어넣는다. 빠른 부분은 샴페인 거품처럼 부글부글 거리고, 서정적인 패시지는 충분한 온기를 갖추고 있다. 2,4,5,7,8번에서 이끌어내는 그 늠름한 기골, 씩씩한 불호령을 만나 보라. 이 외유내강의 명장이 몸 안에 지니고 있는 뜨거운 음악혼을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
리매스터링이 성공적이어서 스테레오는 물론 모너럴 음원도 매우 선명한 사운드를 들려준다. 슬림 케이스에 LP 포맷을 닮은 듯한 보들보들한 질감의 속지로 CD 겉면이 손상되지 않도록 처리한 배려도 돋보인다. 요훔의 레코딩을 많이 맡았던 밸런스 엔지니어 클라우스 샤이베는 DG에서 베토벤과 브람스 교향곡 전집을 내놓지 않은 것을 늘 안타까워했다. 이제 그 희망사항이 이루어졌다. 요훔 팬이라면 누구라도 기뻐할 만한 세트이리라. (이영진)
출처: 코다 2003년 1월호
Eugen Jochum (1902-19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