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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숭사리 교회개혁포럼 원문보기 글쓴이: 잠언
참 교회 건강한 교회는 어떤 교회일까?
참된 교제와 섬김과 봉사에 대하여
저는 교회에 대하여 할 말은 해야 하겠습니다.
최일도 목사의 밥퍼주기 교회
어떤 교회의 북한 선교회나 선교활동에 심혈을 기울이는 교회
어떤 교회의 노동자들을 위한 교회
어떤 교회의 장애인들을 위한 교회
어떤 교회의 환경운동에 주력하는 교회
어떤 교회의 정의를 세우고 복지를 증진시키기 위한 운동에 주력하는 교회
어떤 교회의 기독교 연합 운동에 주력하는 교회
어떤 교회의 가정에서 모이고 사역하는 데에서 교회의 본질을 찾는 가정 교회
어떤 교회의 평신도 중심의 교회에서 본질과 사명을 찾는 평신도 교회
어떤 교회의 협동조합운도이나 나누기 운동을 통해서 나눔을 실천하는 교회
어떤 교회의 공동체 생활(공산적)을 통해서 교회의 본질을 찾는 교회
어떤 교회의 농어촌 교회와의 연계(먹거리 나눔, 농어촌 목회자 지원)를 통해서 교회의 본질을 찾는 교회
어떤 교회의 성전 크게 짓고 성도들 배가 운동하고 전도활동과 교육관 짓고 기도원 짓는 것으로 자랑하는 교회
등등
개개 교회의 사명과 본질을 그런 활동에서 찾는 교회들이 많습니다.
교회의 어떤 부분적 기능이나 활동에서 본질을 찾는 것이지요.
네, 좋습니다.
그런 일이 나쁘다든지 해서는 안된 일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 필요하고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교회의 본질이 될 수 있을까요?
교회가 교회될 수 있는 참 교회로서의 본질적인 것은 무엇일까요?
교회가 교회되고 참 교회가 될 수 있는 조건은 그런 것은 아니라고 저는 봅니다.
개혁주의 교회관을 보면
1.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그것을 정기적으로 그대로 선포하고 믿고 살아가는 교회
2. 성례전이 올바로 집행되는 교회
3, 교회의 권징을 올바로 신실하게 실천하는 교회 등을 내세웁니다.
여러 교단이나 교회마다 각기 다른 조건들을 내세우기도 합니다.
기존의 교회들에 반발하는 교회들은 기성교회에 대해 비판하는 데에서 교회의 본질을 찾는 것 같은
그런 인상도 받습니다.
우리 교회는 십일조 안 한다.
헙금 공개 안 한다.
성전(예배당)을 크게 짓지 않는다.
목사의 전횡을 없애고 민주적으로 운영한다.
가정에서 모이고 교회를 가정 중심으로 운영한다.
우리 교회는 평신도 중심, 회중 줌심의 교회를 이룬다.
우리 교회는 만장일치제를 채택한다.
우리 교회는 기성 교단과 다르게 주님의 재림을 대비한다.
우리 교회는 성령운동을 하고 방언이나 은사활동을 추구한다.
등등 이런 것들을 가지고 교회를 개혁한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교회가 교회다울 수 있는 본질적인 것을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이 자신의 교회나 다른 교회가 참 교회, 교회다운 교회, 건강한 교회인지를 분별할 수 있는 척도
그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많은 교회들이 내세우는 것이 본질적인 것이 아닌 것을 가지고 교회의 본질인 것으로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어떤 교회는 신학상으로는 교회에 대해서 성서가 말하는 것을 내세웁니다.
1.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2, 진리의 기둥과 터이다.
3. 예수님이 세우시고 사도들에게 그 교회를 세우도록 명하셨다.
4.지상의 교회와 천상의 교회
5, 전투하는 교회
등등 교회에 대해서 성서에서 말한 것을 내세웁니다.
그러나 그것들도 보면 부족한 것들이 많은 것을 저는 발견합니다.
그리고 말한대로 실천은 전혀 안 되는 것을 봅니다.
주님을 영접하는다는 일도 실제적인 교회생활에서는 모호하게 보입니다.
실제로 교회의 체제나 운영 실제의 삶에서는 주님을 주님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교단체제, 헌법체제, 목사 중심체제, 사람중심의 운영을 합니다.
실제적인 면에서 성령을 통해서 말씀이 지배하는 통치가 교회 생활에서 나타나는 일이 없이도
이런 말을 하는 것으로 정당화됩니다.
1. 성서를 영감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고 선포하고 생활의 규범으로 삼는다.
2. 성례전을 신실하게 집행한다.
3. 성실한 권징을 실천한다.
4.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유기체이다. 공동체이다.
5, 진리의 기둥과 터이다.
6. 전투하는 교회이다.
7. 지상의 교회가 있고 천상의 교회가 있다.
줄줄줄 잘 나옵니다.
대체적으로 교회에서 가르치는 사람들은 말입니다.
네 좋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무엇이 부족하다는 것을 저는 느낍니다.
알맹이가 빠져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앙꼬 없는 찐빵이라는 말씀을 아실 것입니다.
알맹이가 빠진 껍대기만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교회의 지도자는 목사도 평신도도 그 누구도 아닌데 주님이 통치하실 자리를 내어주지 않습니다.
그것이 어떻게 하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면서 입으로는 주여! 주여!수십번 수천번 수만번 말합니다.
주여! 삼창도 크게 합니다.
입으로 크게 부른다고 진실로 주님으로 주님을 인정하는 것입니까?
1. 말씀에 대해서 그것을 성령의 영감으로 된 말씀이고 우리의 모든 삶의 규범이 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교회에서 모이면 형식적으로는 에배를 드리고 설교를 듣습니다.
그것이 끝나면 차례를 지내고 금방 돌아서듯이 하나님 안녕히 계십시요! 빠이!빠이!
그래 놓고는 말씀보다는 다른 이 세상 것으로 치우칩니다.
사교에 치우치고 수다를 떨고 이 세상 이야기로 빠져듭니다.
그것이 하나님 나라를 세워나가는 그런 의식 속에서 삶을 나누는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예배 시간이 끝나고 부서별이나 구역별로 말씀을 공부하더라도 깊이 있는 말씀 공부는 없습니다.
그리고 그 공부가 끝나면 이 세상으로 금방돌아갑니다.
진지하게 말씀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도 어떻게 그렇게 해야 하는지 잘 되질 않습니다.
그리고 그 문제가 무엇이며 이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습니다.
그런 문제를 긑까지 의식하고 해결하고자 하는 사람들도 거의 없습니다.
성경 공부 시간을 그렇게 오랜 세월동안 가져왔어도 말씀의 전체가 골고루 가르쳐지고 연구되고 실천되지 못합니다.
특히 자녀들 교육에서는 이 세상 교육 기관에 자녀들을 맡겨버리고는 방치하고 맙니다.
하나님 말씀과는 거리가 먼 입시 위주의 이 세상 교리를 배우도록 내팽개치고 맙니다.
실 생활에서는 부모들이나 어른들은 연속극이나 TV 시청 시간이 말씀 공부하는 시간보다 훨씬 더 많습니다.
특히 주부들 말입니다.
조금 성서 공부를 하고 끝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식으로 잡담을 하다가 음담패설도 서슴없이 합니다.
누구는 어떻고 누구는 어떻고 가수나 탤런트 개그맨 소위 연예들에 대해서는 상세하게 압니다.
그것을 알아야 이 세상에 대해서 잘 적응하는 것이라고 생가하는 것 같습니다.
연속극 내용이나 연예인들의 주변이야기를 쫙 꿰고 있습니다.
그 열심으로 하나님을 알고 그 나라일에 투자했더라면 갈 길이 보였을 것입니다.
요즘 세상에는 유우머라고 하는 그런 것이 있어야 대인 관계를 잘 한다.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설 수 있고 호감을 살 수 있다.
그래서 섹스나 성적인 것들이 많이 섞인 농담, 유무머들을 쫙 끼고 있습니다.
그래야 모임에서 인기 짱이 될 수 있습니다.
뜨는 사람 인기있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인간관계를 잘 하고 사교성이 좋다고 말들합니다.
요즈음은 얼굴이 이뻐야 하고 남자는 근육질이어야 하고 여자는 가냘프고 S라인이어야 합니다.
유우머가 있고 재치가 있고 분위기 메이커가 되어야 합니다.
키도 크고 날씬하고 섹시해야 합니다.
위트위고 재미있고 분위기 있고 말 잘하고 가려운 데 살살 긁어주는 그런 남자들을 여자들은 선호합니다.
잠자리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성적 능력과 돈도 팍팍 잘 써주는 재력있는 그런 남자를 능력있는 남자로
학벌 좋고 사회에서 알아주는 직장이나 직위에서 뜬 사람을 선호합니다.
매우 세속적입니다.
멋 있는 남자는 요리도 잘하고 가정 일도 잘하는 만능 슈퍼맨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가정 가정에서의 남편의 위치와 사명에 대해서는 생각하기 싫습니다.
그런 것을 이야기하면 갑자기 밥맛 떨어지고 기분 잡치고 얼굴이 찌그러집니다.
그런 점에서는 다분히 매무 매우 이 세상적입니다.
남자들이라고 다릅니까?
그들은 얼굴 잘 생겼고 날씬하고 잠자릴 즐겁게 해주는 S라인의 몸매를 잘 갖춘 섹시한 여자를 좋아합니다.
그러면서도 상냥하고 돈 잘 벌어다 주고 희생 봉사하는 그런 여자를 좋아합니다.
남자들도 진정으로 성서에서 여인이 해야 할 위치와 그들의 사명과 임무에 대해서는 생각하는 것
그것 자체를 생각하고 쫓고 싶어하지도 좋아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니까 부부생활이나 가정생활을 하나님 말씀의 각도에서 진지하게 고민을 하는 일이 없습니다.
직장 생활은 더구나 말씀과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악착같이 일해서 쫓겨나지 않고 거기서 성공하고 출세하여 돈 잘 벌고 명예를 얻으면 하나님 잘 믿는 것이죠.
교회에서는 높이 보고 인정해주는 사람이 됩니다.
실제로는 우리의 실 생활은 말씀과는 거리가 멉니다.
겨우 전도한다는 것이나 선행하는 것으로 자신을 정답화하고 합리화합니다.
성서의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기 위해서는 배경지식도 필요합니다.
역사도 공부해야 하고 필요한 배경 지식을 공부해야 합니다.
말씀을 실천하려면 역사의 흐름과 현 시대와 사회, 문화적 현실도 알아야 합니다.
교회사나 신학에 대한 것 뿐만 아니라 성서적 세계관이나 그것에 입각한 다양한 분야를 공부해야 합니다.
실제적 삶과 관련된 일반적 분야와 내가 추구하는 특수 분야에 대한 성서적 관점에서의 지식과 경험이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세상의 역사나 시대, 사회, 문화 유산도 습득해야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한가하게 잡담이나 즐기면서 놀고 음담패설 농담이나 배우고 할 시간적 여유가 없습니다.
우리를 공격하는 이 세상 문화가 얼마나 강력하게 우리를 둘러싸고 공격하는 지를 안다면 말입니다.
우리의 신분과 우리가 처해있는 상활을 안다면 우리에게는 시간이 모자랍니다.
힘이 딸립니다.
혼자서는 역부족입니다.
대학 나오고 대학원 박사까지 학위를 받은 사람들은 취직하고 출세하고 돈 벌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자하죠?
전체 인생이 그 것이 전부인 것처럼, 마치 그리스도인의 삶은 부수적인 것처럼 거기에 목숨을 걸고 전력 투구합니다.
그것이 생존을 위해서는 할 수 없다?
그것이 하나님 나라의 사명이다?
거기서 성공하고 출세하는 일이 하나님 나라를 위하는 일이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 나라의 전사로서 그 일을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의 특수부대 요원으로서 자신을 자각하고 그 사명수행으로서 하는 일은 결코 아닙니다.
그럴 실력도 능력도 안 갖추어져 있습니다.
이 세상적 지식이나 기능적인 것은 갖추었어도 하나님 나라와 주님의 일에는 기초도 안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교회나 기독교 단체에서는 명함을 내고 발언도 하고 가르치기도 합니다.
가정주부나 그리스도인들이 일반 소설이나 잡지를 읽고 투자하는 일에는 얼마나 많은 것을 투자합니까?
부동산과 주식이나 재테크를 하는 일에 얼마나 많은 시간과 정력을 쏟아붓습니까?
그런 일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
할 수는 잇다지만 꼭 그래야 하는 일입니까?
주가 무엇이고 부가 무엇인지는 알아야 하는데 전혀 그런 것 없습니다.
그런 일을 할 때에도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깨달음이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 관점에서 그런 지식이나 정보를 분석하고 해석할 능력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 나라를 깨닫기 위해서 하는 그런 공부는 하품이나 나오고 따분합니다.
눈이 초롱초롱해지고 눈이 삧나면서 머리가 팍팍돌아가는 꿀맛같고 달콤한 맛은 전혀 보지를 봇합니다.
그리고 교회에서도 그런 것 할 생각도 안하고 그렇게 하도록 가르치지도 않습니다.
다른 노는 것이나 다른 일에는 그만큼 많은 시간과 정력과 금전을 투자하면서도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실제로 교회나 가정이나 개인의 삶에서 그 분의 음성을 듣기 위한 공부는 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현실에서 말씀을 들을 수 있고 그래야 한다는 것을 불신합니다.
여자들이 화장품을 사고 화장을 하고 머리를 다듬는 데는 얼마나 많은 비용과 정력을 기울입니까?
옷을 사고 음식을 먹고, 다이어트 하고 몸매를 가꾸는 일에는 또 얼마나 많은 금전과 시간과 비용을 투자합니까?
그러나 정작 하나님을 알고 그 분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투자하는 시간과 돈과 노력은 얼마나 됩니까?
그런 불성실한 태도를 목회자나 교회 지도자 자신들이 가지고 있습니다.
말씀으로 현실을 꿰뚫어 볼 능력이 없습니다.
그런 지적을 성도들에게 하지 않습니다.
그런 불신과 어리석은 짓을 맹려렬히 질타해야 합니다.
그래나 그랫다가는 인기 없습니다.
심지어는 쫓겨나갈 수 있습니다.
복음을 제대로 전하면 사람들은 싫어하고 다들 다른 살살 긁어주고 칭찬해주는 교회로 옮기고 맙니다.
그러므로 목사들도 이런 눈치를 잘 알고 잇습니다.
하나님의 일보다는 이 세상적인 교회의 일로 분주합니다.
진실로 하나님앞에서 깨어지고 회개하는 일은 없습니다.
여러 성도들이 같이모여서 이런 일을 힘써서 하자고 나서지도 않습니다.
그러면서 성서를 염감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고 모든 생활에 있어서 하나님이 주신 유일한 생활의 규범이라?
그런 말이 무슨 송요이 잇습니까?
그렇게 말한다면 하나님은 그런 우리의 입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실까요?
그 고백을 하나님은 얼마나 역겨워하시겠습니까 안하겠습니까?
너희는 말로는 나를 주여주여 하면서 실제로는 나는 배척하고 이 세상을 좇는 구나!
내게 오지 말라!
나와 네가 무슨상관이 있다고 주여! 주여! 그러느냐!
가증스런 그런 입 치워라!
그런 주둥이 발로 차버릴까 조심하라!
우리의 현실이 그런 것입니다.
2. 성례전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례전에 관한 논의는 여기서 안 합니다.
단지 세례를 받고 주님의 몸과 피를 기념하는 일이 갖고 있는 성격이 무엇입니까?
그것을 잘 밝혀야 합니다.
이것도 제대로 밝히고 실제적 삶에 적용하면 가르치는 자 자신이 그대로 살지 못합니다.
그런 마음으로 접근해서 그런지 그 바른 의미를 깨닫지도 못합니다.
그러니 실제적 삶메는 적용이 안됩니다.
그 일이 현실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에 대해서 추상적인 말만 해버립니다.
구체적인 삶에서의 적용은 하지 못합니다.
하더라도 매우 피상적으로 교회의 생활을 합리화하는 식으로만 해석해버립니다.
성도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무거운 짐을 지우는 이야기는 안하고 맙니다.
따라서 진정한 세례와 주님의 몸과 피를 기념하는 것의 진정한 의미와 그것이 요구하는 삶은 살지 못합니다.
전하는 자 자신이 그런 삶을 두려워합니다.
바로 그런 삶을 살려면 자신이 자신을 부정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자신의 현실을 모두 뒤바꾸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바로 그 일이 언약 공동체로서의 삶과 연결되는 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예수님과 우리가 세운 언약관계에서 나온 일입니다.
언약 백성으로서의 우리의 특권과 의무가 무엇인지 알고 실천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런 언약에 잇어서 봉신으로서의 삶이 무엇인지도 헷갈려 합니다.
그래놓고 세례나 성찬을 성실히 집행한다고?
3. 성실한 권징의 행사
이것도 교회법 교단의 교리나 각 교회가 시행세칙으로 만든 법에 따라 집행하고 맙니다.
목사나 장로 재직회 중심으로 처리되고 맙니다.
먼저 권징이 되려면 교회의 본질적인 면을 알고 교회가 교회로서 바로 서야 합니다.
교회가 교회답게 서고 건강한 교회일 때 교회의 권세가 서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의 권징도 사실은 성령께서 결정권자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먼저 믿은 자들이 충분한 가르침을 받고 생활의 모범으로 건강한 교회로 서 있어야 합니다.
교회에서는 실제로 성령께서 통치하시고 성령께서 치리하셔야 합니다.
교회는 이 일을 수종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일이 공정하고 바르게 집행되려면 그만큼 주님의 인도와 음성을 듣고 좇는 일에서 가능합니다.
우리 현실에서는 그런 일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일이 제대로 시행되지 않습니다.
헌법이나 시행세칙대로도 하지도 않습니다.
그냥 두리뭉실 편리한대로 넘어가고 맙니다.
그것을 은헤롭게 처리한다고 둘러붙입니다.
그리고 이런 두리뭉실한 경향을 반대하고 엄정한 준주를 내세우는 그런 교회들에서는 너무나 법에 매입니다.
자신들이 만들어놓은 규칙에 경도되어 잇습니다.
그래서 실제적으로 자신들이 어떤 존재들인지 먼저 자신들도 돌아보지도 않습니다.
자신들을 반성하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세운 규범, 법대로 치리를 해버립니다.
인간이 인치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신치를 하는 신정국가, 신정사회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사회에 맞는 순종이 있어야 교회입니다.
그런 교회의 진정한 건강성 없이는 진정한 교회의 권세도 없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 교회들은 어떤 문제를 치리하기 전에 치리할 능력을 상실해버린 자신을 보아야 합니다.
교회가 제일먼저 성령께서 직접 통치하시고 직접 음성을 들려주시는 일에 바로 서야 합니다.
그런 것을 식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처음 세워진 터 자체가 본질적인 것에 충실하지 못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것을 실천하려는 자들도 진지하고 성실하지도 못합니다.
자신들의 아집과 편견 속에 갇혀 있습니다.
이런 자신들을 평소에 관찰하고 반성하고 돌아보아 회개하고 변화도어 나가야 합니다.
말씀 안에서 진리 안에서 그런 변화는 필요합니다.
그러나 얼마나 우리는 이런 회개에서 약합니까?
그런 일에서 바로 서서 성령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을 수종드는 교회이어야 합니다.
1. 지역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한 단위사회입니다.
하나님이 왕으로서 직접 통치하시는 언약 공동체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 세상 속에 하나님 나라의 해방군, 진압군으로 존재합니다.
거룩한 용사이신 예수께서 친히 이 땅에 오시어 죽음으로써 마뀌의 세력을 꺽으시고
거룩한 에클레시아를 이 땅 위에 세우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선포하고 정식으로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 취임하심을 선포하셨습니다.
오순절은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서 등극하신 예수님을 이 세상에 공식적으로 선포하는 행사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이 하나님 나라의 진영에 투항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주군, 주와 왕으로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이 세상을 배반하고 하나님 나라에 항복하는 일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투항해서 그 나라 군대에 가입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생명, 자신의 삶, 자신의 직업, 자신의 소유 모든 것을 하나님 나라 소속으로 바꾸는 것
전체적인 헌신을 처음 믿을 때부터 요구하는 것입니다.
투항하는 바로 그 시점에서 요구하는 것입니다.
믿는 것은 바로 시작할 때부터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복음입니다.
새로운 인류, 국가, 가족인 언약공동체에 소속하고 그 나라 시민이 되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원수에서 이제는 하나님의 자식이 되고 신부가 되고 그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 기업, 유업, 산업을 상속받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 세상에 대하여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일입니다.
그런 하나님 나라의 단위 사회는 이 세상에 존재하나 이 세상에 속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과 전쟁하는 사회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 나라를 이 땅 위에서 건설하고 이 해방전쟁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재림하는 그 날까지 교회는 이런 전투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처음 믿는 신자는 여기에 들어와서 양육을 받고 자라나가야 합니다.
열심히 훈련도 받고 단련되어 하나님 나라의 군사로서 전투에 참여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건설에 참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런 일은 개인주의로서는 할 수 없습니다.
믿음의 영웅이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지도자는 한 분 예수 뿐입니다.
예수께서 성령을 통해서 직접 다스리시는 그런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통치에 순종하는 하나 하나의 지체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개인의 경건생활 뿐 아니라 여러 군사들이 합동 작전을 하는 것입니다.
전투를 하면서 여러 군사들이 같이 전투하는 것이 상례입니다.
어떤 경우는 특수부대가 활동하기도 하고 개인이 가서 전투할 수도 있지만 상례는 아닙니다.
이런 하나님 나라의 성격을 교회가 갖지 않는다면 그것은 교회가 아닙니다.
2. 언약 공동체입니다.
왕이요 주군이신 예수께서 우리와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주군이신 예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이 있습니다.
바로 그 신약의 은혜 언약 공동체입니다.
우리는 그 언약 공동체에 가입하는 것입니다.
주군이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행하셔야 할 당신의 의무가 있습니다.
반면에 이 언약곧동체에 들어 온 백성들이 지켜야 할 의무들이 있습니다.
이는 개인적인 의무들만이 아니라 언약 공동체로서의 의무 수행이 필요합니다.
오늘날 교회들은 복음을 설명할 때 이 언약적 성격을 신학적으로만 말하고 실제에는 적용 안 합니다.
그래서 예수 믿고 구원얻는다는 이야기만 하지 그것이 어떻게 역사적으로 공동체적으로 연결되는지
복음이 가지는 언약적 성격, 공동체적 성격, 역사성, 현실성 등 이런 것들을 밝혀주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구원이 개인의 구원으로 그칩니다.
교회 나오고 충실히 교회생활 잘 하면 되는 것으로 끕납니다.
믿음이 개인의 영웅주의로 흘러갑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삶이 같는 이런 특성이 나타나지를 않습니다.
과연 그런 것입니까?
그러면서 교회가 착한 일을 하고 이런 저런 일들을 하고 구호를 외치고 산다고 해서
그런 교회가 주님의 교회 맞습니까?
그렇게 모여서 교회를 이룬다고 교회인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인다운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3.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유기적으로 연결된 생활공동체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되면 모든 것을 함께 나누는 운명공동체 생활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신앙의 초기에 발생해야 할 일입니다.
<네 떡 네가 먹고 내 떡 내가 먹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부분적으로 맞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반드시 공산적 공동체로서 살아가야 하는 것 아닙니다.
얼마든지 사유재산을 갖고 자유롭게 직업도 갖고 가정도 갖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상적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는 변해야 합니다.
말로만 입으로만 고백하고 그런 생활의 변화가 따르지 않는다면 아군인지 적군인지 알수가 없습니다.
말로만이 아니라 실제 행동으로 큰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투항해 오는 일, 자발적으로 포로가 되어 오는 일은 많은 희생을 처음부터 요구합니다.
희생이 아니라 영광스럽고 즐거운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는 일입니다.
머든 것을 버리나 믿음의 눈으로 보면 사실은 실제로는 엄청난 부자가 되는 일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 적으로 볼 때는 고난받고 어리석고 무능하고 희생이 따르는 좁고 협착한 길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부대에 소속하기 위해서 필요하다면 거주지도 옮기고 직장도 포기하고
다른 모든 것들을 포기해야 할 상황도 있습니다.
심지어 바울처럼 유익한 것도 포기해야 할 그런 상황도 있습니다.
죽음도 각오해야 하기도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믿은 성도들이 그러한 삶을 살고 있어야 합니다.
교회가 공동체적으로 그런 요구를 할 수 있는 삶의 실천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복음을 말로 전하기 전에 이런 삶의 공동체로서 복음이 전파될 수 있는 사회가 건설되어야 합니다.
먼저 믿고 살아가는 교회가 그런 생활을 하지 못하면서 처음 들어오는 자에게 그것을 요구할 수 없습니다.
그것도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므로 그것을 잘 가르쳐서 스스로 결단하고 실행하도록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이런 급진성, 이 세상에 대해서 죽어버리는 극단성을 복음은 요구합니다.
아예 이 세상에 대해서 죽어버리는 새롭게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차원이 다른 삶을 요구합니다.
말씀이 선포된다고 하면서 이런 기본적인 복음이 선포되지 않으면 그것이 어디 복음의 말씀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고 직접 성령을 통해서 교회에 자신의 음성을 듣게 하시고 다스리시는 통치
이것이 교회에는 하나님 나라의 사회에는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 사회에 주님의 임재, 말씀이 없다면 그것이 어디 하나님의 나라입니까?
그리스도의 몸입니까?
그러면 그리스도의 음성, 성령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개인 뿐만 아니라 교회가 전부 나서서 부지런히 성서도 공부하고 교회사는 물론 신학이나
역사 등등 하나님 나라의 유산과 이 세상의 현실도 공부하면서 기도하고 나서는 것 아닙니까?.
지식이 필요할 때 지식을 탐구해야 하고 구하고 찾고 두드려야 합니다.
단순히 지식 추구만이 아닙니다.
같이 기도하고 토론도 하고 상의도 하고 대화도 하면서 평소에 주님의 행하심과 인도를 찾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디 누구가 감히 교회나 하나님 나라의 지도자로 치리자로 군림할 수 있습니까?
교회를 한 지도자가 결코 마름대로 좌지 우지해서도 안됩니다.
담임 목사가 교회의 모든 일을 결정하고
장로들이나 재직회는 들러리에 불과하고
다른 사람들은 담임 목사에게 조언이나 하고
결정은 담임 목사가 한다면
그것은 주님의 직접적인 통치를 방해하는 것입니다.
왕이신 주님께 반역인 것이지요.
교단의 교리나 헌법에 의해서 모든 것을 처리하는 것도 성령님을 통한 통치를 방해합니다.
목사가 사실은 필요없습니다.
성서에 다르면 장로와 집사 직분만이 있습니다.
장로들이 가르치고 다스리는 일을 한다고 해서 모든 일을 독점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들이 모든 판단을 다하고 결정을 내리는 것이 아닙니다.
집사나 다른 성도 가운데서도 가르칠 수가 있습니다.
치리도 장로들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든지 교회의 몇 몇 임원들이 결정해서는 않됩니다.
그들은 먼저 나사서 어떤 일을 조사도 하고 의견도 묻고 조율도 하고
그런 일에 솔선수범해서 교회의 일들이 성령님에 의해서 잘 처리되도록 하는 것이지
그들이 북치고 장구치고 다 해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장로나 집사들이나 재직회니 심지어 평신도들이~~
그런데 목사가 독재 안 하면 그들이 독재한다고 성령님이 그 교회를 직접 다스리는 것입니까?
심지어 모든 성도들이 다 다스리는 민주주의이고 만장일치제를 추구한다고 주님이 직접 통치하는 것입니까?
민주주의는 하나님 나라의 적이 아닙니까?
하나님 나라는 과두재나 공화정, 일인독재, 회중, 민주주의 모두 다 아빈니다.
신정국가입니다.
참 신령한 성전을 수행하는 공동체입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 실제로 말씀과 필요한 모든 것들을 추구하지도 않고
늘 깨어서 주님께 순종하고 그 분의 움성을 든는 그런 교회가 아니라면
그런 제도들을 바꾸는 일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리고 교회에 소속이 된 성도라면 그 어떤 성도의 주장이라도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신중하게 저 작은 소자의 목소리도 주님의 목소리가 아닌지 경청해야 합니다.
교회의 매사는 신중하게 해야 하고 공정하게 해야 합니다.
어떤 사회에서든지 살다가 보면 자기들끼리 잘 통하는 사람들끼리 그룹이 형성됩니다.
교회를 좌지우지하는 그룹도 생겨납니다.
우세하고 힘 있는 세력이 교회를 지배할 수 있습니다.
물론 어떤 사안은 교회의 지도급에서 알아서 처리해야 할 일도 있습니다.
모든 성도들에게 안 알리고 처리해야 개개 성도에게 피해가 가지 않은 일도 있습니다.
모든 일에 성도들이 다 나서서 알아야 하고 관여해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각 성도들이 언제든지 이의가 있을 때 합리적으로 의견을 개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처럼 교회는 어떤 한 사람이나 한 그룹이 죄지우지해서는 안됩니다.
그렇다고 만장일치제라고 해서 주님의 뜻은 아닙니다.
성령님이 교회에 주시는 음성에 복종해야 합니다.
어떤 중대한 일에는 주님의 음성에 순종하기 위해서는 다수가 반대해도 굽히지 않아야 할 일
그런 일들도 발생합니다.
교회에 내분이 생겨도 주님이 요구하시면 내분도 있어야 합니다.
내분이 두려워 덕을 세운다는 명목으로 다수에 다라버린다면 교회가 주님과 먼 길로 가게 됩니다.
그처럼 교회는 개인 뿐만 아니라 확고하게 주님의 말씀, 음성을 듣기 위해서 모두가 깨어 있어야 합니다.
평소에 그런 노력이 있어야 하고 그것이 누적되어 자라야 합니다.
그런 교회라면 크리스천 학교도, 직업이 터전이 될 수 있는 하나님 나라적 기업도 추구할 것입니다.
일자리도 성도들이 연합해서 만들 수 있습니다.
교회가 그런 일에 지원할 수 있습니다.
그런 일들이 시급하게 필요합니다.
교회와 교회들이 협력하여 하나님 나라의 일을 수행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 일은 수없이 많습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기초적이고 본질적이고 근본적이고 시급하고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그런 일들을 가려내서 먼저 추구하고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진행상태 이 세상과의 전투적인 상황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이런 본질적인 면을 갖추어야 합니다.
교회로서의 사명이 교회의 본질에서 나와야 합니다.
그 다음에 이런 선하고 좋은 일도 상황에 맞게 본질적인 것 속에서 추구할 수 있습니다.
교회가 그러한 선하고 좋은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본질적인 것을 추구하는 맥락 속에서 그 뜻과 의미도 달라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거룩한 하나님 나라의 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 것이 없다면 아무리 선하고 착한 일이라도 하나님 나라의 일은 아닙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교회는 선교활동을 위한 단체도 아니고(인간적인 교회의 확장이라는 의미의)
이 세상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구제 단체도 아닙니다.
서로 나누고 지역사회에 봉사하는 단체도 아닙니다.
해외에 선교활동을 하는 것도 일차적이고 우선적인 일은 아닙니다.
교회 성도들이 헌금을 해서 구제사업을 하고 가난한 자와 어려운 이웃을 돕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만 가지고 진정한 교회를 이루었다고 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을 하기 위해서는 사람도 돈도 시간과 노력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있다고 하나님 나를 건설해나갈 수 잇다고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는 먼저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그들의 삶에서 추구하고 구현해야 합니다.
가정과 직장과 이웃들과 어울린 지역사회 생활, 좁은 의미의 교회 활동 그리고 자녀교육과 문화활동
이 모든 삶에서 이 세상과 다른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단위 사회이어야 합니다.
이 세상과 다른 하나님 나라의 문화를 창조해내는 그런 사회이어야 합니다.
이 세상과 이처럼 삶을 통해서 교육과 일을 통해서 삶의 방식과 문화를 통해서 거룩한 삶이 요구됩니다.
이 세상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며 이 세상과 전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바로 언약 공동체로서 존재해야 합니다.
역사적이고 현실적인 이 세상과의 전투를 하면서 생존하고 사명을 다해나가는 일이 우선입니다.
그런 일은 없이 직장 생활은 각자가 알아서 하고
자녀 교육도 부모가 알아서 해야하고
기타 사회 생활도 각자가 맡은 바 지역 사회 내에서 알아서 하고
이 세상 직장에서 하나님 나라를 구현해 나가는 일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노예 생활에 허덕이면서
자녀들은 이 세상 교욱기관에 맞겨 하나님을 부정하고 대항하는 문화, 사상으로 무장하도록 만들면서
이 세상 자녀들도 신음하고 고통하는 그런 장소에 넣어놓고 명문 대학에 가면 하나님의 은혜라고 착각하면서
TV나 이 세상 문화에 어른이나 아이나 그 누구나 그대로 노출되고 지배를 당해도
이를 하나님 나라의 문화로 대응하고
적극적으로 하나님 나라 사회 문화로 이 세상에 빛을 비추는 일은 전혀 관심도 없으면서
성경을 깊이 연구하고 이 세상 역사 뿐만 아니라 역사 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역사를 발견하고
이 시대의 역사적 흐름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발견하고
우리의 역사적 사명을 발견하고
이를 개인의 삶만이 아닌 유기체로서 공동체적 삶을 통해서
이 세상과 대결하면서 하나님 나라를 구현해나가는 이런 일은 전혀 하지 않고
성도들이 열심히 교회에 나와 교회생활 잘 하고 헌금 많이하면 된다?
선교 열심히 하고
가난한 자들 구제하고
장애인들 돌보고
정의를 외치고 사회개혁을 주장하고
환경과 복지를 위해서 노력하는 그런 교회가
조그만 곳에서라도 나눔을 실천하겠다고 나서는 그런 교회가
참 교회이고 건강한 교회라고 생각한다면
그리고 실천이 우선이지 실천은 안하면서 비판만한다고 나무라면서
본질과 그 본질에서 나오는 사명은 무시하면서
그런 교회들이 건강한 교회이고 참 교회라고 생각한다면
이러한 생각은 교회에 대해서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몰라도 한참 모른다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교회는 이 세상과 다른 삶을 살아가는 언약 공동체입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지만 엄연히 이 세상 나라와는 다른(거룩한, 구별되는) 하나님 나라 사회입니다.
이 세상 나라가 그리스도와 그의 백성들을 대적하며 오늘도 공격하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에는 전혀 관심도 없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 소경이면서
이런 문제는 너무나 어렵고 힘든 일이라고 치부해버리면서
착한 일하고 좋은 일하면 좋은교회 건강한 교회 참교회라고 생각한다면
이 세상 사람들의 눈으로는 그렇게 칭찬할만하지만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자처하는 사람들이
성서가 가르치는 교회,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이렇게 생각한다면
정말 몰라도 한참 모른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일 하면 이 세상 사람들로부터는 칭찬 받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면 이 세상 나라와 그에 속한 사람들이 좋아할리 없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나라를 이해하지 못하고 조소합니다.
오늘날 교회들과 이에 속한 사람들도 오히려 이런 말을 하면 조소합니다.
신온에서 안일한 자들입니다.
그들은 소경입니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이 소경인지를 모릅니다.
선교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 나라와 이를 추구하는 성도들을 조소면서도 이 세상과 다른 그 나라를 그들은 갈망하고 있습니다.
속으로는 소망이 있는 사회를 갈망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무지하고 악해서 핍박하기도 합니다.
교회의 본질과 사명은 일차적으로 그런 본질적인 일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인이 되셔서 그 나라를 직접 통치하시는 그런 사회, 신령한 나라를 구현하는 일입니다.
그런 일을 하는 가운데서 본질적인 면이 자리를 잡으면서 상황에 따라 구제나 봉사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일은 하나님 나라의 진행과 처지에 맞는 가운데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런 일이 없이 본말이 전도되어 착한 일 하고 봉사 잘하는 교회를 건강하고 좋은 교회라고 착각한다면
그것이 우선이 되고 교회의 본질과 속성, 사명을 그런 데에서 찾으려고 한다면
이는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몰라도 너무 무르는 것입니다.
물론 그런 일조차도 못하는 교회들이 허다하게 많으니까 상대적으로 그런 일을 하는 교회들이 좋다고 합니다.
그런 점에서는 이해가 갑니다만 교회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바르게 생각할 줄 알아야 합니다.
십일조 안 한다고 목사라는 직임이나 명칭 없앤다고 교회제도만 뒤바꾼다고 개혁이 되는 것 아닙니다.
가장 우선해야 할 일은 성서의 가르침, 복음에 대한 바른 이해와 하나님을 아는 지식입니다.
하나님을 경험적으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에 사로잡혀 터질듯 분출하는 거룩한 빛 속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해야 합니다.
직접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그런 사회로 가야 진정한 개혁입니다.
이는 개혁이 아니라 재창조입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이런 것들을 비판하면서도 자기들은 꼼짝 안하고 자기들의 삶은 바꿀 줄 모릅니다.
그런 교회나 성도들은 이를 비판할 자격이 없다고 봅니다.
그러나 해보려고 해도 합류하는 세력이 전혀 없을 때에는 고립된 체로 싸울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점에서 참 교회가 무엇인지
교회의 본질과 사명이 무엇인지
가장 먼저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부차적이고 상황에 따라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우리는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고 봅니다.
예수 사회
하나님이 주인이시요, 왕이 되시는 사회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통해서 직접 다스리시는 사회
전 삶의 영역에서 하나님 나라가 추구되는 유기적인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
하나님 나라의 사회, 문화를 찾고 구현하는 일
이것이 우선적이고 가장 중요하고 시급히 추구해야 할 일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는 먼저 복음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가르치고 배우고 탐구하는 일이 매우 시급하고 중요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유산을 이어받아 우리가 역사적으로 어떤 위치 상황에 직면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역사적 사명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를 삶의 전영역에서 구현해나가야 합니다.
이런 지역 교회, 하나님 나라를 구현하는 사회 단체와 활동, 문화 창조 활동
이런 것들이 시급히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그런데 자녀들을 이 세상 교육기관에 처박아 놓고 이 세상 사상과 문화로 압살시켜도
오히려 명문대학에 못가서 안달복달하는 그런 부모와 교회
그들이 명문대 들어가고 자녀들의 성적이 올라가고 유망한 기업에 입사하면 좋아해도
이 과정에서 그들의 영혼이 울고 신음하며 죽어가면서 살려다라고 비명을 지르는 일은 모르는 소경이면서
교회 일에는 열심이고 봉사활동에는 힘과 정력을 쓰면서
유명 기업에 입사해서 돈도 많이 벌고 사업도 번창하여
이 세상에서 돈을 잘 벌고 높은 지위를 얻고 출세하면 성공한 것으로 알고
그것이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으로 착가하는 사람들
그들이 기업이나 관공서 교육기관 사회 다양한 기관이나 경제활동 부분에서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의 사명은 전혀 감당하지 못하고
하나님 나라의 일이 어떤 일인지도 모르면서
오히여 애굽, 바벨론에서 노예생활하면서 돈을 벌고 성공 출세하는 것을 좋아라고 추구하면서
자식들이 실업자가 되면 안달복달 걱정을 하면서도
성도들이 서로 연합하여 하나님 나라의 기업, 일자리를 만들고 이 세상에 빛이 되는 기업,
그런 일터를 만들고 자녀들을 양육할 수 있는 하나님 나라의 양육의 터를 만들지 못한다면
그것이 무슨 주님의 교회이고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고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겟는가!
참 교회를 세우고 건강한 교회를 만들고 하나님 나라를 구현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이를 실천해 나가는 일이
우리에게 요청되는 시대적이고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현실의 급선무라는 것을
저는 이 시점에서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첫댓글 양이 많아 다 읽지는 못했지만 공감하는 바가 많습니다.
시간날때마다 다시 읽어보고 진정한 교회를 이루기위해 노력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