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오르다보면 사찰 다음으로 자주
접하는 역사 유물이 산성이다. 한반도는 지리적으로는 산지가 많고, 역사적으로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크고 작은 외침과 내란이 끊기지 않다보니,
전략적 요충지라 할 만한 곳에는 어김없이 험한 자연지세에 의지할 수 있는 산성이나 도성을 쌓았다.
산성하면 부산시민들의 경우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금정산성부터 떠올리겠지만, 역사서의
기록을 토대로 해도 남한에만 1천200여 개의 산성이 지어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산성이 있는 산은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일단 적의 접근을 막을
수 있는 험준한 직벽과 높은 봉우리를 낀 분지 지형이 천험의 요새지로 꼽힌다. 반면 군영이나 군창 등을 짓고 많은 군사가 주둔하기 위해서는 성
내부가 넓고 평탄해야 한다. 또 식수로 사용할 수 있는 못이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 축성에 필요한 바위나 단단한 돌이 많아야 한다.
경북 칠곡의
가산(架山·901.8m) 역시 산성을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는 산이다. 외침에 대비하기 위해 축성된 가산산성은 험준한 자연지세를 이용한 조선
후기의 축성기법을 잘 보여주고 있는 대표적인 산성이다.
경사 완만하고 숲길 아름다워
대구 근교선 인기 있는 산행 코스
'가팔환초' 40여㎞ 종주 출발지
금실 좋은 부부 모습 닮았다는
할아버지·할머니바위 '친근'
왜란·호란 뒤 축조된 가산산성
한국전쟁 땐 최고 격전지 숙연 팔공산 도립공원 가산산성지구에 속해 있는 이 산은 팔공산의 명성과 위세에 가려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산성과 아름다운 숲길이 어우러져 대구 시민들에게는 매우 인기 있는 근교산행 코스다. 대구경북 산꾼들 사이에
'가팔환초'라 불리는, 가산~팔공산~환성산~초례봉을 잇는 40여㎞ 종주코스의 출발지이기도 하다. 바람에 흩날리는 낙엽비 속에 구불구불 산자락을
휘감아 도는 산성길은 깊어가는 가을의 정취가 물씬 풍긴다.
이번 산행은
팔공산 탐방지원센터를 출발해 정자쉼터~치키봉~할아버지 할머니바위~가산 정상~유선대~중문~가산바위~동문을 지나 임도를 따라 탐방지원센터로 돌아오는
원점회귀 코스다. 총 거리 10.2㎞에 이동 시간은 3시간20분, 휴식까지 포함하면 4시간30분쯤 걸린다.
기점은 경북 칠곡군
동명면 남원리의 팔공산 탐방지원센터다. 주차장에서 임도를 따라 3분쯤 오르면 치키봉 이정표 삼거리가 나온다. 그대로 직진하면 동문으로 오르는
직등코스인데 거리가 짧은 반면 다소 가파르다. 우측으로 꺾어 치키봉 방면으로 간다. 거리가 길지만 경사가 완만해 가족단위나 산행 초보자들도
편안히 오를 수 있다. 완만한 대나무 오솔길을 밟아 20분쯤 올라가면 억새로 지붕을 두른 휴게 정자가 있는 삼거리다. 오른쪽 단풍나무 군락
사이로 난 흙길을 따라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단풍, 은행, 벽오동나무 등 활엽수들이 겨울 채비를 하느라 벗어버린 낙엽들이 오색 융단을
깔아놓았다. 눈 덮인 겨울산처럼 수북이 쌓인 낙엽 때문에 길을 찾기가 어려울 지경이다.
20분 뒤 지능선 안부에 올라서면 허물어진
성곽이 보인다.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북쪽 성곽길을 따라 7분쯤 올라가면 삼각점이 있는 곳이 가산의 동쪽 봉우리인 치키봉(756.6m)이다.
독특한 이름 탓에 한국전쟁 당시 미군들이 이름을 붙인 것으로 착각할 수 있지만, 산세가 곡식을 까불러 쭉정이를 골라낼 때 쓰는 키와 닮아서
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 치키봉에서 우측 능선을 따라 내려가면 한티재와 팔공산으로 이어진다.
북서쪽으로 뻗어나가는 성곽을 반시계 방향으로 따라간다. 군데군데 임도로 내려서는
갈림길이 나오지만 무시한다. 15분 뒤 억새로 뒤덮인 묵은 헬기장을 지난 뒤 다시 5분쯤 더 가면 입석 형태의 기암 2개가 마주 서 있는데 금실
좋은 부부의 모습을 하고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바위다. 근엄한 자태로 서 있는 뒤편의 바위가 할아버지, 다소곳한 자세로 앉아 있는 것이
할머니바위다. 할아버지바위 뒤편을 우회하면 중단부 바위턱에 오를 수 있다.
제법 가팔라지는 능선을 20분쯤 타고 오르면 동문 방면 갈림길이 있는 삼거리다.
이정표상 용바위를 따라 1시 방향으로 올라간다. 826봉에 가까워지면 10여m 높이의 내성 성벽이 위용을 드러낸다. 깊게 판 해자와 비밀통로인
암문까지 성의 골격을 갖췄다. 가산산성은 조선 인조, 숙종, 영조 대를 거치면서 세 번에 걸쳐 축조됐는데, 외성, 내성, 중성 순으로 지어졌다.
826봉을 경계로 치키봉을 휘감고 있는 것이 외성(3㎞), 가산 정상과 가산바위를 두르고 있는 것이 내성(4㎞)이다. 중성(460m)은 내성의
안쪽에 있다. 가산산성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뒤 외침에 대비하기 위해 쌓였지만, 실제로는 한국전쟁 때 국군과 인민군의 치열한 교전지가 됐으니
역사의 아이러니다.
15분쯤 능선을 오르면 가산 정상이다. 밋밋한
봉우리에 조망도 가려 볼품없다. 정상 바로 밑에서는 옛 관아터 등 가산산성 공해지(공공기관 터) 발굴조사가 한창이다. 정상에서 3분쯤 더 가면
돌출바위 전망대인 유선대가 있다. 유선대에서 북동쪽으로 보이는 암봉이 용바위인데, 아무래도 위에서 내려다보면 위용이 떨어진다.
유선대를 반환점 삼아 다시 공해지 발굴조사장 쪽으로 돌아간 뒤 중문 방면 이정표를
따른다. 가산바위까지는 성 내부를 따라 등로가 이어진다. 낙엽송이 황금비늘처럼 떨어지는 편안한 산책로다.
중문을 통과해 10분쯤
더 가면 거대한 수석 같은 암봉이 우뚝 솟아 있다. 산 이름이 유래한 가산바위다. 남쪽과 서쪽 절벽 아래로 높이 20m가 넘는 아찔한
수직암봉이지만 270㎡에 이르는 바위 상층부는 평평한 너럭바위여서 도시락을 먹는 산행객들로 시끌벅적하다. 가산바위는 파노라마 조망이 펼쳐지는
최고의 조망처다. 남쪽으로 대구시내 너머 비슬산, 청룡산, 주암산이, 서쪽으로는 합천 가야산과 구미 금오산, 백운산이 우뚝하다.
가산바위를 내려선 뒤 이번에는 우측으로 꺾어 동쪽 절벽 아래 성곽길을 따라
중문으로 되돌아간다. 성곽을 계속 따라가면 남포루와 해원정사를 지나 종점인 탐방지원센터로 갈 수 있지만, 산행이 단조로워지기 때문에 동문을
지나는 계곡 오솔길을 택한다.
남포루 방면 갈림길 삼거리에서 그대로
직진해 동문으로 내려간다. 계곡을 왼편으로 끼고 금모래빛 낙엽송림, 봄에 노란 꽃을 피우는 복수초 군락지를 차례로 지난다. 10분 뒤 임도와
만나면 그대로 진남문 방면으로 내려간다. 동문에서 내리막 임도는 S자를 그리며 수차례 굽어진다. 중간마다 아래쪽으로 가로지르는 지름길이 있다.
임도와 암괴류 지대를 차례로 통과하면 처음 지나쳤던 치키봉 방면 삼거리에 이르고, 곧이어 종점인 탐방지원센터다. 동문에서 35분. 산행
문의:라이프레저부 051-461-4164. 전준배 산행대장 010-8803-8848.
글·사진=박태우 기자 wideneye@busan.com
그래픽=노인호 기자 noga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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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칠곡 가산 (※ 사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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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칠곡 가산 (※ 사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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