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려지지 않은 산
경주 금곡산(521m)
원광이 화랑오계 가르침 베푼 산
금곡산은 경주시 안강읍에 자리하는 해발 521m의 산이다. 청송군과 포항시를 지나 남하하던 낙동정맥이 경주시와 영천시의 경계를 이룬 어림산(510m)에서 동쪽으로 곁가지를 뻗어내린다.
이 곁가지 산줄기의 으뜸봉인 금곡산 자락에는 신라의 화랑오계(일명 세속오계)로 유명한 원광법사의 부도가 자리한다. 서기 600년(신라 진평왕 22년) 중국의 수나라에서 돌아온 원광법사가 운문산 가실사에 계실 때의 일이다. 하루는 사량부에 사는 귀산과 추항 두 화랑이 찾아와 평생의 경구로 삼을 가르침을 청하였다. 이에 원광법사는 사군이충, 사친이효, 교우이신, 임전무퇴, 살생유택의 다섯 가르침을 베풀었다. 그 뒤 두 사람은 이를 생활신조로 삼아 살았으며, 602년 아막성(지금의 운봉면) 전투에서 화랑의 일원으로 싸우다 장렬하다 전사하였다.
그후 이 오계는 화랑들의 삶에 금과옥조가 되었으며, 약소국이었던 신라가 차츰 강성하여 마침내 삼국을 아우르는 통일대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안강 화산곡지에서 산행 출발
금곡산 취재산행의 들머리는 안강읍 두류리의 화산곡지. 초록빛 못물이 일렁이는 못둑에서 바라보는 깊은 계곡 속의 금곡산은 전설이 풀풀 날리는 신비로운 모습이다. 뒤돌아 바라보는 북녘의 자옥산은 흡사 피라미드 모습이고...
화산곡지 왼쪽으로 굽이도는 첫번째 계곡에서 산불조심 팻말이 보인다. 이곳이 무릉산을 오르는 입구이다. 이곳에서 동녘의 등산길을 따라오르면 1시간이면 무릉산 정수리에 이른다. 취재진은 계속 비포장도로를 따라 계곡길을 이었다. 뒤이어 화산곡지가 끝나는 지점에 왼쪽(동쪽)으로 올라가는 수렛길 삼거리에 이른다.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는 수렛길을 지그재그로 이어오르면 무릉산에서 이어오는 능선길에 올라선다. 오늘 산행에는 고향의 동문 후배들인 권경순, 서희경, 73년 동갑내기 두 선녀가 함께 하였다. 겨울비가 가늘게 내리는 능선길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길게 이어간다.
안태봉으로 이어지는 금욕산 삼거리와 어래산으로 이어지는 삼거리를 지나 마침내 금곡산 정수리에 올라선다. 낙엽이 발목을 덮는 울창한 참나무숲 속에 오래 전에 달아둔 '금곡산 508.5m' 정상팻말이 보인다. 그러나 정상의 실제 높이는 521m이며, 북봉의 높이가 508.5m로 짐작된다.
하산길에 지나는 북봉에서 잠시 망설인다. 북녘으로 이어지는 뚜렷한 산길은 금곡사와 약 1km 떨어진 곳으로 이어진다. 필자는 두 선녀의 동의를 받아 동녘으로 능선길을 이었다. 20분 정도는 제법 길이 좋았으나, 해발 약 360m 지점의 묵무덤을 지나면 길이 희미해지고 상당히 가파른 내림이 시작된다. 조심조심 내려선 계곡길에서 골물을 따라 50m 지점에 금곡사가 자리한다. 세번째 들리는 금곡사이건만 여전히 산새소리만 들리는 고요한 산사다.
도문화재자료 제97호인 금곡사지 원광법사 부도탑 옆에는 두 개의 안내판이 자리한다. 경북 안내판은 '이 부도탑은 원광법사(?~630)의 부도로 알려져 있다. 높이 2m 정도로 부서진 채 일부만 남아있던 것을 복원하였다. 1층 몸돌 4면에는 4각형의 문틀을 새기고 파내어 불상을 안치하는 감실을 만들고 그 안에 앉아있는 불상을 돋을 새김하였다. 지붕돌은 밑면 층급 받침이 4단이다. 원광법사는 속성이 박씨 또는 설씨로 80세 혹은 99세를 살았다고 한다. 화랑도의 생활신조가 된 세속오계를 지어주고, 수나라에 보낸 걸사표를 지을 정도로 불교사상뿐만 아니라 문장에도 능하였다. 신라 진평왕 52년(630)에 황룡사에서 돌아가시자 명활산에 장사지내고 삼기산 아래 금곡사에 부도를 세웠다고 하는 기록이 삼국유사에 전한다'고 기록되었으며,
경주 안내판에는 '원광법사(553?~637)는 금곡사에서 수도를 하고 있었으며 589년 중국의 진나라로 유학을 했다. 그는 거기서 전도와 교화로 이름을 떨쳤기에 중국의 당속고승전에 전기가 실릴 정도였다. 원광법사는 11년간의 유학에서 600년에 귀국하니 모든 국민뿐만 아니라 진평왕도 면대해서 공경하고 성인처럼 높였다. 원광법사는 귀국하여 잠시 가실사(청도 운문산 근처의 절)에 있었는데 귀산 추항에게 화랑오계를 가르쳐 주었다는 것은 유명한 얘기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는데 주역을 담당한 화랑들에게 그들의 정신적, 도덕적 기반을 마련해 주었고 생활지침을 제공했던 것이다. 원광법사는 608년 왕의 요청에 의해 수나라에 걸사표를 지었으며, 말년에는 왕이 손수 의복과 약물 등을 마련해 주었고, 637년 임종하자 장례도구를 내리어 임금의 장례와 같이 했다. 그의 부도는 (우리나라 최초의 부도이며) 금곡사에 안치했는데 임진왜란 때 절은 소실되었고 부도의 일부가 파괴되었다'로 기록되어 있다.
부도탑 앞에 두손을 모우고 머리를 숙인다. 아득한 그 옛날의 귀산과 추항이 되어 간절한 마음으로 원광법사에게 가르침을 구해본다. 필자의 나이 어언 칠십. 삼천산의 시탑을 향한 뜨거운 염원은 여전하건만, 여생의 앞날에는 어느덧 어둑어둑 땅거미가 내리고 있으니...
*산행길잡이
화산곡지-(10분)-등산로 입구-(30분)-주능선-(1시간30분)-금욕산-(1시간10분)-금곡산-(1시간)-금곡사
금곡산을 오르는 코스는 여럿이다. 안강읍 두류리의 화산곡지 입구에서 비롯되는 무릉산~금욕산~금곡산~금곡사에 내리는 코스를 비롯하여, 현곡면의 진덕여왕릉~안태봉~말구불재~금욕산~금곡산 코스, 금곡사 입구 900m 지점의 서남능선을 오르는 최단코스 등이 있다. 필자는 겨울산행의 짧은 시간을 감안하여 화산곡지 상류~금욕산 서봉~금곡산~금곡사를 잇는 5시간 산길을 소개했다.
취재진의 금곡산 산행들머리는 포장도로가 끝나는 화산곡지 댐이다. 화산곡지 동쪽으로 이어지는 비포장길을 따라가면 입산금지 현수막이 보인다. 이곳이 무릉산으로 오르는 지름길이다. 계속 남쪽으로 호안길을 이어가면 왼쪽(동쪽)으로 올라가는 수레길 삼거리에 이른다. 큰길을 버리고 왼쪽의 수레길을 지그재그로 오르면 무릉산~금욕산을 잇는 능선에 올라선다. 더러 리번을 만나는 능선길을 길게 이어가면 간이헬기장을 지나 안태봉으로 이어지는 금욕산 서봉(지도상의 금욕산은 이곳에서 동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자리하며 '경주 424, 1995' 삼각점과 정상팻말이 있음)에 이른다.
다시 이곳에서 서쪽으로 능선길을 이어가면 어림산과 금곡산으로 갈라지는 삼거리에 이른다. 양쪽으로 리번이 많이 달린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크게 꺾어 동녘 산길을 이어가면 '금곡산 508.5m' 팻말이 있는 정수리에 올라선다. 하산길은 북녘으로 이어지는 북봉에 가서 뚜렷한 북녘 산길을 이어가면 금곡사와 약 900m 거리를 둔 계곡길 삼거리로 내린다. 취재진은 북봉에서 동쪽으로 이어지는 무덤길 능선을 따라 내렸다. 마지막 부분에서 길이 희미해지고 제법 가파른 경사를 만났으나 조심조심 계곡에 내려서고 뒤이어 금곡사에 도달하였다. 그러나 취재진이 내린 금곡사 지름길은 겨울에는 가파른 경사로 상당한 주의를 요한다.
*교통
고속버스 또는 기차로 경주에 가서 경주터미널~경주역~안강읍을 연결하는 시내버스로 안강터미널 하차. 안강터미널의 택시를 이용해 두류리 화산곡지 하차(요금 15,000원). 포항터미널에서도 안강행 시외버스와 시내버스(700번)가 수시 운행한다.
승용차의 경우 산행 입구인 화산곡지 위쪽의 공터에 주차가 가능하다. 하산지점인 금곡사에서 안강터미널까지 택시요금은 25,000원.
*잘 데와 먹을 데
산행 들날머리에 숙박시설과 식당이 전혀 없으니 안강읍의 시설을 이용한다.
글쓴이:김은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