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 2008년 5월
수원 삼성전자 본사 R4 연구동 5층. 4평짜리 작은 사무실 유리창에 갑자기 외부 차단막이 생겼다. 이후 사무실은 내부직원 출입도 엄격히 통제하는 '비밀의 방'으로 변했다. 그리고 10여명의 엔지니어가 연구에 몰두했다. 삼성전자 3D 개발 태스크포스팀 이동배 수석연구원은 "업계에 삼성전자는 3D 개발에 관심이 없다는 유언비어가 돌 정도로 보안에 신경을 썼다"고 말했다.
연구원들에게 맡겨진 임무는 '능동형 3D TV'〈
키워드〉를 개발하라는 것. 김대식 수석은 "개발 지시를 받은 직후가 20년 회사생활에서 가장 막막한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참고할 제품도 없고 국내외 경쟁업체의 동향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말 그대로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해야 했다.
- ▲ 수원 삼성전자 R4 연구동에서 3D TV 개발팀원들이 개발 중인 TV 옆에 서 있다. 삼성전자는 사진 속에 보이는 TV들을 올해 안에 출시할 계획이다. / 수원=주완중 기자 wjjoo@chosun.com
TV로 볼 3D 콘텐츠가 없어서 직접 3D 콘텐츠를 만들고 콘텐츠를 재생할 재생기(3D 하이퍼 리얼 엔진)도 만들었다. 이 수석은 "막막한 가운데 새로운 경험의 연속이었다"고 했다.
삼성전자는 이렇게 해서 올 2월말 세계에서 가장 먼저 '초고화질 3D LED TV'를 출시했다. 삼성전자TV의 차세대 성장동력을 탄생시킨 것이다. 제품에 대한 호응은 기대 이상이다. LED 패널이 모자라 제때 제품공급을 하지 못할 정도다. 하지만 김대식 연구원은 "엔지니어에게 만족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보통 사람 눈에는 보이지 않는 단점들이 끝없이 나타난다"면서 "내년에 더 좋은 제품을 내놓기 위해서는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2 지난 22일 오전
서울대 연구공원 내 LG전자 디지털TV연구소 3층. 디지털TV연구소 임진석 수석이 눈을 홍채인식기에 대자, 연구소로 들어가는 문이 열렸다. 실험실에 들어가니 한 무리는 능동형 3D TV 앞에, 다른 무리는 수동형 3D TV〈
키워드〉 앞에 모여 TV 시청에 열중하고 있었다. 임 수석은 "3D TV를 직접 본 적이 있나. 우리 제품이 어떤지 평가해달라"고 했다. 3D 안경을 쓰니 눈앞에는 3D 애니메이션 '슈렉'의 주인공들이 뛰어다녔다.
LG전자가 25일 발표한 3D LED TV는 작년 초 이곳에서 개발하기 시작한 작품이다. 제품에 대해 묻자 임진석 수석은 에피소드 하나를 꺼냈다. 그는 "작년 초만 해도 연구원들조차 3D 입체영화를 볼 기회가 거의 없었는데, 개발과제를 받고 황당해했다"고 말했다.
1년여 개발 기간 중 최근 한 달은 LG전자 디지털TV연구소 연구원들에게 가장 부담스러운 기간이었다. 삼성전자가 한 달 먼저 제품을 출시했기 때문이다. 임 수석은 "스트레스가 많았던 건 사실이지만, 경쟁사보다 더 좋은 제품을 만들면 그만"이라고 말했다.
삼성·LG전자가 세계 3D TV 시장 쟁탈전에 뛰어들었다. 지난 2월말 세계최초로 '초고화질 3D LED TV'를 출시한 삼성전자는 올해 전 세계에서 3D TV를 200만대 이상 판매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삼성전자는 3D TV뿐 아니라 3D 블루레이 플레이어·3D 홈시어터·3D 안경을 모두 직접 생산할 생각이다. 이를 통해 회사는 '3D=삼성'이라는 공식을 소비자들 머릿속에 각인시킬 계획이다.
삼성의 3D 전략이 콘텐츠부터 TV, 플레이어까지 모두 생산하는 수직계열화라면 LG전자는 다양한 TV에 승부를 걸었다. 작년 수동형 3D LCD TV를 출시한 LG전자는 25일 능동형 3D LED TV를 출시해 능동형과 수동형 3D TV를 모두 만드는 업체가 됐다. LG전자는 LCD뿐 아니라 PDP·프로젝터 등 모든 종류의 3D TV를 내놓을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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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제품을 개발하기 위한 도전
3D는 지금도 발전하고 있는 젊은 기술이다. 거꾸로 말해 그만큼 원숙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 같은 시간을 볼 때 평면화면보다 눈이 더 피로해진다. 삼성전자 김현석 전무는 "가장 오랜 시간 피곤하지 않게 볼 수 있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 제품에는 3D 입체감을 강하게 혹은 약하게 조정할 수 있는 기능이 있다. 사람마다 3D 효과를 받아들이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적절한 수준에서 조절하라는 의미다.
또 3D TV는 90도 각도로 머리를 기울이고 보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삼성전자는 90도에 가깝게 누워서 봐도 선명하게 보이도록 제품을 설계했다. 윤부근 사장은 "그냥 4년 연속 세계 1위를 한 것이 아니다"라며 "3D 화면을 통해 1위 업체의 저력을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3D TV와 관련된 70여명의 연구원을 지휘하는 LG전자 최승종 연구위원(상무). 그는 "3D 자체가 원래 사람이 사물을 보는 방식을 거스르는 것"이라고 했다. 3D는 기술적으로 두 개의 영상이 겹쳐 보여 입체감을 느끼게 한다. 이는 사람의 눈에 피로감을 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최 상무는 3D TV를 일반인들이 더 편하게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개발자들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 ▲ LG전자는 25일 세계 두번째로 능동형 방식 3D LED TV를 내놓았다. 이 제품의 주역인 LG전자 디지털TV연구소 연구원들이 3D 안경과 3D TV 회로기판을 들고 활짝 웃고 있다. / 이준헌 객원기자 heon@chosun.com
최승종 상무는 "어떻게 하면 눈에 부담을 줄이고 '온 가족이 편안하게 3D TV를 볼 수 있느냐'가 고민이었다"고 했다. 이번에 내놓은 제품에도 그의 이런 고민을 담았다. 최 상무는 "화면 겹침 현상을 최소화하고, 입체감을 미세하게 조정하는 기능을 구현하는 데 중점을 뒀다"면서 "어른과 아이가 느낄 수 있는 눈의 피로감이 다르다는 점도 고려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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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기업들의 도전과 시장전망
2010년을 기점으로 3D TV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전망이다. 시장조사업체 디스플레이서치는 3DTV 시장 규모가 내년 412만대에서 2012년 912만대, 2013년 1597만대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2014년에는 미국 가정의 최대 25%, 유럽 가정의 최대 15%가 3D TV를 본다. TV 업체 입장에서는 오랜만에 큰 장이 열리는 것이다.
시장 쟁탈전의 첫 번째 분기점은 6월 월드컵(6월 12일~7월 11일)이다. 세계 3위 TV 제조업체인 소니는 월드컵을 겨냥해 6월 10일 3D LED TV를 출시한다. 파나소닉은 이달 50인치 3D PDP TV를 출시했다. 저가제품으로 미국 TV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킨 비지오도 올여름 3D 제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또
필립스·도시바·JVC·하이얼 등이 정확한 시기를 밝히지는 않았지만 연내 3D TV 출시를 선언한 상태다.
☞ 능동형·수동형 3D TV
3D TV용 안경은 평면TV에 나타나는 2개의 영상을 왼쪽 눈과 오른쪽 눈이 각각 분리해 받아들이는 역할을 한다. 이를 기술방식에 따라 능동형(셔터안경 사용)과 수동형(편광안경 사용)으로 분류한다. 능동형은 안경 속의 액정이 60분의 1초 이상의 짧은 순간에 번갈아 가면서 빛을 차단해 양쪽 눈에 서로 다른 정보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반면 수동형은 왼쪽은 수평의 빛, 오른쪽은 수직의 빛만 각각 받아들이도록 해 양쪽 눈에 서로 다른 정보를 제공한다. 이렇게 양쪽 눈이 받아들인 각각 다른 정보를 뇌가 조합해 입체로 인식한다.
수동형은 TV화면에 고가의 편광필름을 붙여야 하기 때문에 TV 가격이 비싸고 편광안경은 싼 반면, 능동형은 반대로 액정과 배터리가 들어가는 안경이 개당 10만원이 넘는 고가다.
입력 : 2010.03.26 02: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