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세 자영업자의 말 못할 사정을 아시나요?
윤승원 前 대전수필문학회장
어제(2021.09.13.) 저녁 TV조선 9시 뉴스 ‘신동욱 앵커의 시선’에서 <어느 자영업자의 죽음>이 방송됐습니다. 저는 이 방송 뉴스를 보면서 한숨을 짓다가 끝내 눈시울을 적시고 말았습니다.
저는 영세 자영업자의 말 못할 사정을 조금 압니다. 힘들게 살아가는 한 자영업자의 삶을 직접 눈으로 지켜 보면서 저는 몇 해 전에 <조선일보>에 단편적이나마 그 분들의 모습을 <에세이>로 쓴 적이 있으니까요.
조선일보 편집부 기자는 저의 에세이 원고를 곧바로 활자화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여부를 구체적으로 확인하는 이른바 ‘팩트 체크’ 과정이 있었습니다.
기자는 에세이 필자인 제게 꼬치꼬치 물었습니다. 제가 글 속에서 언급한 영세 자영업자의 어려운 사정을 재차, 삼차 꼼꼼히 확인하고 나서야 지면에 글을 실었습니다. 이런 내용입니다.
朝鮮日報 2018. 11. 30일(금) 오피니언
【에세이】
식당 문 닫고 새 길 모색하는 젊은이에게
윤 승 원 前 대전수필문학회장 그의 식당 앞을 매일 지나간다. 흔히 볼 수 있는 한식집이다. 식당 앞에 쌀 포대나 대파, 양파 자루가 쌓여있을 때는 안도감이 들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식사시간인데도 한산했다. 메뉴를 여러 번 바꾸었지만 손님이 늘지 않는 듯 했다. 그는 얼마 전까지 내 집에서 월세로 살았다. 단칸방에서 부부가 지냈다. 하지만 방세가 밀려 버티지 못하고 나갔다. 주변에서는 한 달이라도 밀리면 즉각 독촉하라고 했다. 하지만 30대 후반 젊은이가 휴일도 없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하면서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안쓰러운 생각이 들어 심하게 독촉하기 어려웠다. 오토바이로 음식 배달을 하는 그는 궂은 날이면 더 고생했다. 우비를 입어도 옷이 흠뻑 젖는다. 헬멧을 벗으면 이마에서 땀이 주르륵 흘렀다. 그의 얼굴은 늘 까칠했고 머리는 헝클어져 있었다. 2년 넘게 그와 한 지붕 밑에 살면서 고단한 모습만 보았다. 어쩌다 그와 마주치면 “죄송해요. 방세가 많이 밀렸죠. 요즘 장사가 잘 안돼서요. 하지만 조금씩이라도 입금할 게요.” 그는 심성이 착한 사람이었다. 집주인이 듣기 거북한 언사를 한 번도 쓰지 않았다. 죄송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말했다. “뵐 면목이 없어요. 방을 뺄게요.” 그는 “아내와 잠시 헤어지고 어머니와 살림을 합치기로 했다”고 했다. 젊은 부부가 아기를 갖지 않은 게 궁금했는데, 비로소 짐작이 갔다. 어려운 생활형편 때문이었다. “아내는 떨어져 살면서 다른 직장에 들어가고, 식당 홀 서빙과 주방 일은 어머니와 누이동생이 도와주기로 했어요. 저는 주로 배달을 하고요.” 그가 이사 가고 나서 우편물이 쌓였다. 우편물을 갖다 주기 위해 그의 식당에 들렀지만 문이 잠겨 있어 문자를 보냈다. 그러자 답이 왔다. “밀린 방세 오늘 오후에 조금 넣을 게요” 우편물 찾아가라는 문자를 ‘밀린 방세 독촉 문자’로 오해한 듯싶어 오히려 내가 미안했다. 이튿날, 밀린 방세 300여만 원 중 20만원이 입금됐다. 며칠 후 식당 앞에서 마주친 그는 “요즘 장사가 조금 되네요. 찾아오는 손님 기다리는 것보다 배달이 나은 것 같아요”라고 했다. 아, 이렇게라도 하면 형편이 나아지겠구나. 빨리 사정이 나아져 떨어져 사는 아내와도 다시 합쳐 행복한 가정을 꾸릴 수 있겠구나 싶어 그를 위로했다. 그 얘기를 들은 아내가 말했다. “방세 너무 독촉하지 마세요. 내 돈 떼어 먹고 도망간 사람이 있으면 감사하게 생각하라는 말이 있어요. 불쌍한 사람 도와 준 거라고 생각하면 그게 적덕(積德)인 거죠. 일부러 기부도 하고, 불우 이웃돕기도 하는데, 우리는 그렇게 남을 도울 일이 자연적으로 생긴 것이니, 방세 못 내고 나간 사람에게 감사하게 생각해요” 하지만 형편이 풀린다던 그의 식당에 갑자기 ‘임대’ 현수막이 내걸렸다. 버티지 못하고 폐업하기로 했단다. 아내는 “착한 젊은이인데, 참 안됐네요. 더 좋은 일자리를 찾을 거라고 믿어요”라고 했다. 나는 힘든 생활전선에서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안간힘을 쓰는 그에게 ‘기적’이 일어나길 기도했다. 절실함이 기적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며칠 후 그의 전화를 받았다. “식당 정리하고 다른 곳으로 이사했어요. 새 장사 시작하려고요. 밀린 방세는 꼭 갚을게요. 그동안 베풀어주신 따뜻한 정과 용기 주신 말씀 잊지 않을게요.” 남달리 성실하고 심성 착한 그 젊은이가 새롭게 모색하는 사업이 부디 성공하길 기원한다. ■ 2018.11.30. 조선일보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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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을 쓴 지 3년이 지나, 이런 비극적인 뉴스를 보게 됩니다. 사정은 조금 다르지만 <자영업자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착잡합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힘들게 살아가는 영세 자영업자 여러분들이 부디 용기를 잃지 않도록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따뜻한 위로를 보내고 싶습니다. [필자]
TV조선 유튜브 링크 / 사회 뉴스9
[신동욱 앵커의 시선] 어느 자영업자의 죽음
2021.09.13 21:52
https://www.youtube.com/watch?v=E0NVFFsL8fU
TV조선 사회 뉴스9
[신동욱 앵커의 시선] 어느 자영업자의 죽음
2021.09.13 21:52
신동욱 기자
"난 싸구려 인생이 아니야! 윌리 로먼이라고!"
그는 성실하고 행복하게 살아온 자동차 세일즈맨 이었습니다. 열심히 일하면 반드시 성공한다고 믿었지요.
하지만 대공황이 닥치면서 모든 게 바뀌었습니다. 그는 해고당한 뒤 파국으로 치닫습니다.
"34년이나 몸 바쳐 일했는데 이제 보험료 낼 돈도 없다고!"
그는 가족에게 사망 보험금을 물려주려고 마지막 길을 떠납니다. 시대를 초월해 소시민의 좌절을 파고든 걸작이지요.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에 빠져 40년 가까이 윌리 로먼을 연기한 배우가 전무송씨입니다. 그는 연극학도 시절 이 작품을 보러 갔던 때를 잊지 못합니다. 옆자리 중년 신사가 손수건을 꺼내 자꾸 눈물을 훔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무자비한 시대에도 우리는, 도처에서 윌리 로먼과 마주치고 있습니다. 남이 아니라 내 이웃들이고, 때로 누군가의 자화상이기도 합니다.
20년 넘게 이름난 맥줏집을 꾸려온 50대 주인이 코로나의 폭풍우에 떠밀려 세상을 떴습니다.
그는 마지막 안식처였던 원룸을 빼, 가게 월세와 직원 월급을 줬다고 합니다.
온라인 추모 공간에는 그의 성실함과 인간미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애도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코로나가 상륙한 뒤 지난 6월까지만 자영업과 소상공인 점포 45만 곳이 문을 닫았습니다. 하루 평균 천 개꼴입니다.
그러는 사이 얼마나 많은 사람이 피눈물을 쏟았겠습니까. 지금 위로와 격려가 절실한 사람들이 누구겠습니까.
"국민지원금이 힘든 시기를 건너고 있는 분들께 조금이나마 위로와 격려가 되었으면 합니다"
재난지원금이 풀리자, 지급기준을 골품제에 빗댄 '계급표'가 나돌고, 못 받는 사람들의 반발이 쏟아졌습니다.
그러자 여당이 지급 대상을 90%까지 늘리겠다고 나섰습니다. 여기에 드는 비용은 3천억원 정도라고 합니다.
그래도 민원이 가라앉지 않으면 또 2퍼센트씩 늘릴 건지요? '국정이 무슨 장난이냐'는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벼랑 끝에 선 자영업자들은 까다로운 지원 기준을 못 맞춰 아우성입니다. 그런데 국민 지원금 25만 원은 많은 경우, 있으면 좋고 없어도 괜찮은 돈이어서, 주는 명분이 희미해졌습니다. 지금 나라를 끌고 가는 정치인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서민들이 살아보려고 흘리는 피와 땀과 눈물을 알기나 하는 것이냐고, 그것조차도 혹시 표로 환산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 아픔이 오죽했으면 자영업자 온라인 카페 이름이 이렇겠습니까.
'아프니까 사장이다' 9월 13일 앵커의 시선은 '어느 자영업자의 죽음' 이었습니다.
2021.09.13.
첫댓글 기사를 보니 뭉킁하네요.
서민들만 말 못하고 힘든 세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화려한 세상 같아도 힘들게 살아가는 이웃도 많습니다.
※ 어느 문인단체 회원 대화방에서
◆ K 시인의 소감 2021.09.14. 19:00
정말로 오늘날 현상의 차창에 비친 아픈 이야기를,
어느 대하소설보다 감명 깊이 읽습니다.
- 시나 소설의 순기능 하나가 이 시대의 대변자 역할
아픈 세월의 곡비라면,
저 자영업자 / 오토바이 배달 / 그리고 수많은 일용직, 무직 젊은이들의 비루를 읽습니다.
하루아침 한 달에 수천 수억이 오르는 빌딩 아파트, 그리고 그 바닥에 한숨, 젊음을 깔고 바퀴로 기어 다니는 개미 인생....
도대체 이 나라의 민생을 챙기겠다고 4년, 5년마다 마이크쟁이들의 거짓 목소리....
이 나라 찐밥 기득권 무뢰배 같은 정상배는
이제 그 자리를 젊은 정신의 푸른 깃발에게
내 주는 것이 마지막 기회의 선행이 될 것입니다.
- 임대 식당 앞의 폐업 플래카드가 핏빛 노을처럼 절규하는 것 같군요.
통독하고 갑니다.
▲ 답글 / 윤승원 2021.09.14. 20:00
저의 졸고 에세이를 그 어느 때보다 성의있게 세밀하게 살펴 주셔서 감사합니다.
김 시인님의 시대적 통분이 담긴 예리한 답글 소감이 마치 큰 북소리처럼 필자의 가슴을 때립니다.
역시 좋은 시를 빚는 시인의 답글 소감은 깊이가 다릅니다.
저녁 식사 중에 숟가락을 잠시 놓고 김 시인님의 답글 행간에서 들리는 큰 북소리를 가슴으로 듣습니다.
방세가 밀려 미안해하던 그 젊은 자영업자의 울음 담긴 표정을 김 시인님도 따뜻한 인간애로 헤아려 주셨기에 저의 졸고에 진지한 답을 주신 것이지요.
<세상이 왜 이래~>. 이런 노래 가사는 요즘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일찍이 한과 설움 삼키던 가난한 서민 대중의 입을 통해 전파돼 온 노랫말입니다.
※ ‘올바른 역사를 사랑하는 모임[올사모]’ 댓글
◆ 낙암 정구복(역사학자,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2021.09.15. 03:26
그렇습니다. 자영업자가 당하고 있는 삶의 고민과 생의 고투는 현재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과 도시의 뚫린 낭떠러지입니다. 그중에 착하고 성실한 사람도 벗어날 수 없는 환경과 구조적 변화 때문입니다. 이런 자영업자에게 재난 지원금을 몰아주어야 하는데 정치는 표를 의식해서 생색내기에 재난 지원금이 일 년에 몇 차례 쏟아붓습니다. 그런데도 요즘 자신만이 아니라 가족의 경제를 책임져야 하는 사람들의 고민과 절망은 전쟁의 공포보다도 더 심합니다.
윤 선생의 몇 년 전 수필은 수필이 아니라 현장의 고발서였습니다. 지금 코로나로 전 국민의 균형발전, 전 국토의 균형발전, 삶의 균형 등이 필요한 때임을 예견하신 글입니다. 저도 주변에서 이런 상황에 빠진 여러 사람을 보면서 가슴 아픔을 느끼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자영업자의 문제를 해결함에 정치가들에게 다시 한번 SOS를 칩니다. 오죽하면 생의 마지막 결단인 자살을 택할까 이는 남의 고민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의 고민이어야겠습니다. 좋은 내용을 일깨워 주신 점 감사드립니다.
▲답글/윤승원 2021.09.15. 06:15
존경하는 정 박사님께서 시대의 아픔을 세심하게 파악하고 걱정을 함께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특히 “자신만이 아니라 가족의 경제를 책임져야 하는 사람들의 고민과 절망은 전쟁의 공포보다도 더 심하다.”라는 현실 진단이 가슴을 울립니다.
“개인적인 자영업자의 문제를 해결함에 정치가들에게 다시 한번 SOS를 칩니다. 오죽하면 생의 마지막 결단인 자살을 택할까 이는 남의 고민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의 고민이어야겠습니다.”라는 호소가 담긴 결론은 우리 사회 모두의 책임임을 절절히 깨우쳐 주시는 각성의 말씀이었습니다.
이른 아침에 귀한 댓글을 읽으면서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감사합니다.
※ 조선일보 독자 댓글
◆ 남기열 2018.12.12 10:41:14
아들이 밴쿠버에서 식당 관계 일을 하고 있어 남의 일 같지 않아 읽었습니다.
글 쓰신 분 참 마음이 따뜻하신 분이시네요. 특히 사모님 생각이 훌륭하세요.
복 받으실 겁니다. 적선지가에 필유경이라 했습니다.
그 젊은이 꼭 식당은 과다 현상을 보이는 한국에서 고생해도 성공하기가 지난할 겁니다.
차라리 워킹 비자 가지고 밴쿠버로 오면 주방 경험자라면 할 일은 많습니다.
그렇게 일하다 보면 10년 후에 내 가게 가질 거구요.
노후에는 연금 나와 걱정 없구요. 문제는 용기겠지요.
잘 읽었습니다.
◆ 신은주 2018.11.30 13:01:57
부부가 마음만 합치면 좋은 날 꼭 옵니다.
자녀도 미루지 말고 낳아서 키워가면서요.
자녀를 통해서 복이 들어오니까요.
※ ‘올바른 역사를 사랑하는 모임[올사모]’ 댓글
◆ 지교헌(수필가, 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교수) 2021.09.15 20:21
경제학과 사회학과 정치학은 모두 나의 관심사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 읽은 내용이나 당시에 느꼈던 감정도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날이면 날마다 조간신문을 펼치며 "오늘은 또 무슨 기사가 시선을 끄는지도 모르게" 잔글씨를 읽어 나간다. 역시 마음은 우울해지고 긴 한숨이 나오기도 한다. 어둡기만 한 기사들이 너무나 많다.
비상식적이고 철면피하고 반지성적인 행태가 너무나 많이 노출되고 있다. 도대체 우리 사회는 언제부터 이처럼 타락한 사회가 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이러한 타락한 사회의 先鋒에는 정치라는 그림자가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정치의 선봉을 자처하는 정치인들은 과연 정치의 본질이나 개념을 얼마나 파악하고 체득하고 실천하는지 매우 의아하다. 정치의 본질이나 개념도 파악하지 못하고 사리사욕과 당리당략을 위하여 그저 물불을 가리지 않고 거품을 물고 뿜어대는 것이 당연한 줄로 아는 모양이다.{이어짐}
"政은 正야라"고 한 공자의 말이 떠오른다. 정치란 잘못되고 바람직하지 못한 것을 "바로잡는 것"이다.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 위하여 얼마나 고민하고 탐구하고 잠을 이루지 못하였는지 너도나도 반성할 일이다. [지교헌]
“극단적 선택을 한 자영업자가 전국적으로 잇따르고 있다”는 뉴스가 어제도, 오늘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오늘도 조선일보 독자란에는 <“살려달라”는 이들의 절규를 외면하지 말라>는 국민의 목소리가 실렸습니다.
이른 아침, 이 시대 큰 어르신이시자 원로 문인이시고 학자이신 지교헌 박사님의 고뇌가 담긴 댓글을 읽으면서 근본 원인을 어디에서부터 찾아야 하는지 답을 얻습니다. 함께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