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이렇습니다] Q: '천추태후'는 황보(皇甫)씨인데 친남매간인 왕은 왜 왕(王)씨인가?
KBS TV 사극 '천추태후'에서 주인공 천추태후는 고려 6대 왕 성종과 친남매인데, 왜 성이 왕(王)씨가 아니라 황보(皇甫)씨인가요?
― 경북 영주시 독자 유욱종씨
A: 고려 왕실은 족내혼(族內婚) 성행으로 딸은 모계 성을 따라 황보씨
천추태후는 고려 5대 임금 경종(景宗)의 부인인 헌애(獻哀)왕후입니다. 6대 임금 성종과 친남매이기도 하지요. 천추태후는 아들 목종(穆宗·7대)이 즉위한 뒤 섭정을 하면서 실권을 장악했는데, 천추전(千秋展)에 거처한다고 해서 천추태후로 불렸습니다.
천추태후는 태조 왕건의 일곱째 아들인 왕욱(王旭)의 딸로 어머니는 선의왕후 류(柳)씨입니다. 천추태후는 부모가 모두 일찍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할머니인 신정왕후 황보(皇甫)씨의 보살핌을 받고 자라났습니다. 그래서 친자매인 헌정왕후와 함께 황보씨의 성을 사용했습니다.
KBS 드라마 '천추태후'의 전산 책임PD는 "고려 초기에는 족내혼(族內婚)이 성행했기 때문에 외가 친척과 결혼하는 경우가 많았다. 임금인 왕(王)씨가 외가인 황보쪽 집안과 결혼하는 일이 생겨나 자녀 중 일부는 황보라는 성씨를 따서 붙이게 됐다"고 설명합니다.
'새로 쓴 500년 고려사'의 저자 박종기 국민대 부총장은 "고려시대 임금의 딸은 왕(王)씨 왕족과의 혼동을 피하기 위해 어머니나 외가 성을 따랐다"고 설명합니다. 4대 광종의 첫째 부인인 대목(大穆)왕후는 어머니 신정왕후 황보씨의 성을 따랐고, 둘째 부인인 경화 궁 부인도 어머니 의화(義和)왕후 임(林)씨의 성을 따랐습니다. 박 부총장은 "8대 현종부터는 근친혼의 폐해가 드러난 때문인지 족내혼에서 벗어나 다른 집안에서도 왕비를 구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후대에도 배우자 중 하나는 근친혼을 했다고 합니다.
황보씨는 황주(黃州)의 호족으로 태조 왕건이 고려를 건국한 뒤 지방 호족을 포섭하기 위해 결혼정책으로 끌어들인 유력집안입니다. 태조는 왕후 6명, 부인 23명 등 모두 29명의 배우자를 뒀는데, 이들의 출신지를 보면 옛 신라·고구려·백제 지역을 골고루 망라하고 있습니다.
조선일보 2009.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