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 꼬지마 다, 다리 꼬지 마~" 개성 강한 목소리와 재미있는 가사에 귀가 솔깃했다. 낯선 아이 둘이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요즘 방송과 어울리지 않게 소박한(?) 외모보다 더 놀란 것은 어린 나이에도 떨지 않는 당당함. 수많은 지원자들이 운명을 걸고 출전한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유독 이 아이들은 여유로워 보였다. 긴 여정 끝에 우승을 안고 지금 가장 핫한 뮤지션으로 활동 중인 이찬혁(18)·이수현(15) 남매, 악동(樂童)뮤지션이다. 이들을 키워낸 최초의 팬이자 영원한 후원자인 이성근, 주세희 씨를 만났다. |
편집부가 독자에게 ...
오늘, 행복하세요? 악동뮤지션이 출연했던 예능프로그램에서 짓궂은 MC가 물었습니다. 오디션 우승상금 전액 기부할 때 혹시 떠밀려서 한 거 아니냐고. "떠밀려서 기부할 수 있나요?" 란 열아홉 살 찬혁의 대답에 MC는 그만 머쓱해졌습니다. 악동뮤지션의 부모인 이성근, 오세희 씨를 만났습니다. 상금에 대해 물었죠. 전혀 생각지 않았던 상금이라 어리둥절했답니다.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도 되었고요. 찬혁이가 "기부하기로 했으니 기부해요" 라고 명쾌한 결론을 내려줬답니다. 웃는 눈이 사랑스런 수현은 갖고 싶던 신발이 생겨서 상금이 필요없었다니, 이리 욕심이 없으니 작은 일에도 행복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이렇게 비현실적인(?) 아이들의 부모는 어떤 생각을 가졌을까요? 테마 인터뷰에서 만나 보시지요. _김지민 리포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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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 이름은 '행복 발전소' |
[행복 : 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 또는 그러한 상태] 사전에 있는 행복의 정의. 소중한 가치지만 너무 흔해서 진부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성근(44), 주세희(42) 부부는 이 흔한'행복' 이 소중하다. "아내도 저도 성장 과정이 순탄하지 않았어요. 저는 중학교 때 부모님의 이혼으로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는 경험을 했고, 아내도 아픔이 있지요. 아픔을 가진 사람끼리여서 그런지 '행복한 가정' 에 대한 꿈이 있었죠." '행복 발전소' 란 가족명은 첫아이 찬혁이가 태어나면서 지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한 것만으로도 행복했는데 아이가 태어나니 행복이 두 배로 커지더라는 것. "그때 느꼈던 행복을 잊지 않고 싶었어요. 아이들이 자라면서 함께 행복을 만들어 가야겠다는 생각에 '행복 발전소' 라는 가족명을 지었죠. 행복은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아이는 하나만 낳을 계획이었다는 엄마도 찬혁을 보는 순간, '아이를 더 낳아야겠다' 라는 생각이 들 만큼 예쁘고 귀하더란다. 그래서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늘 해주는 말이 있다. "너희들은 하나님의 걸작품이야."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부부는 서로를 바라보며 자주 웃었다.
눈빛만으로도 서로의 얘기가 들고 날 자리를 알았다. 연인의 눈빛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부부라니. 사랑이 가득 담긴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부모의 품에서 '하나님의 걸작품'이라는 찬사를 들으며 성장한 아이들. 쟁쟁한 경쟁자들 사이에서 결코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던 찬혁과 수현의 정신적 힘의 원천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
'해줄 수 있을 만큼' 이면 충분하다 |
지원을 받아서 생활하는 선교사의 삶은 아껴도 늘 쪼들린다. 선교사인 성근씨도 예외가 아니었다. 밥과 김만으로 몇 달을 산 적도 있다. "그때는 아이들이 못 먹어 콩나물처럼 마르기도 했어요" 라는 세희씨의 말에 슬픔은 없었다. 그 시절을 지탱한 것은 '감사'. 식사 때마다 '밥과 김' 을 먹을 수 있는 것에 감사하고 우리 가족보다 더 불행한 사람들이 식사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그런 상황에서도 아이들은 즐거움을 찾더란다. 아침엔 밥과 김을 먹고, 저녁엔 간장에 찍어먹고. "지금도 아이들은 그때 먹었던 그 밥맛을 잊지 못해요."
당연히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학비 마련이 힘들어 홈스쿨링을 해야 했다. 그 홈스쿨링마저 인터넷 강의를 듣게 해주는 것이 전부였다. 수현이는 어릴 때부터 노래하기를 좋아했다. 본인의 재능과 진로를 일찍 발견한 셈이다. "아이의 능력을 알았지만 따로 레슨을 시키거나 학원을 보낼 수 없는 형편이었어요. 그 대신 언제 어디서든 마음껏 노래를 부르게 해주었어요. 그리고 수현이가 들으면 좋아할 노래를 다운받아서 듣게 해주었죠." 그걸 따라 부르면서 발성과 다양한 창법들을 스스로 익혔다. "수현이의 가장 큰 장점이 개성인데 아마 아이를 학원에 보냈다면 지금의 수현이는 없었을 것" 이라는 것이 엄마의 생각이다.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길 좋아하는 수현을 위해 마을의 잔치든, 교회의 행사든 수현이 설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 주었다. 이런 기회를 통해 자연스럽게 무대 매너를 익혔다.
춤을 좋아하는 찬혁을 위해서는 다양한 춤의 동영상을 다운받아 볼 수 있게 해주었다. 다만 인터넷 강의든 동영상이든 까다로운 자체 검열 기준을 세웠다. 부모는 최선을 다해서 양질의 콘텐츠를 선택하고 아이들과 공유한다는 원칙을 지켰다. 인터넷 사용에는 많은 제한을 했지만 아이들은 다운 받은 동영상만으로도 충분히 배우고, 즐기며 또 배운 것을 친구들에게 가르치기도 했다. 이들의 재능을 귀하게 여긴 사람들의 도움으로 찬혁과 수현은 피아노와 기타를 익힐 수 있었다.
많은 부모들이 무리를 해서라도 자녀에게 많이 해주고 싶어 한다. 풍족하게 해주지 못해 죄책감을 느끼는 부모도 있다. "그런 마음이 아이들에게 전해지면 아이들은 오히려 결핍과 불만을 느껴요. 아이들은 어떤 환경에서든지 스스로 즐거울 수 있는 능력이 있어요. 부모들이 죄책감을 가지면 아이도 부모도 행복하지 않아요." 부부는 입을 모아 강조한다. 할 수 있는 범위에서 최선을 다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믿는다. |
" 아빠가 미안해" |
연애할 때부터 서로에게 한번도 큰소리를 낼 일이 없었다는 이 부부에게도 찬혁의 사춘기가 찾아왔다. 돌이켜보면 여느 아이들보다 약하고 수월하게 지나간 사춘기인데 그 당시에는 벽을 대하듯 막막했단다. 아빠는 어느 틈엔가 입을 닫은 찬혁을 보며 "난 저만 할 때 안그랬다" 며 화를 냈고 처음으로 부부싸움을 했다. "나에게는 사춘기가 없었다고 생각했어요. 돌이켜보니 내가 찬혁이 또래였을 때는 주변에 조언이나 위로를 해줄 만한 어른이 없었던 거예요. 찬혁이와 나의 다른 점을 인정하지 않았던 거죠." 성근씨의 고백이다.
깊어지는 아버지와 아들의 골을 보며 아내가 나섰다. 아들과 남편이 한 판 붙고 나면 남편에게는 남편의 편이 되어주고, 아들에게는 아들의 편이 되어주었다. 각자의 편이 되어주되 남편에게는 아들의 입장을, 아들에게는 남편의 입장을 넌지시 건네는 것을 잊지 않았다. 생각이 깊은 찬혁에게는 말보다 쪽지를 많이 사용했다. "가장으로서 가족을 책임져야 한다는 중압감 때문에 가족 구성원 모두가 내 통제 아래 들어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것이 가족들에게 부담이 된다는 생각을 못했던 거죠. '행복은 함께 만들어가는 것, 내일을 위해 오늘의 행복을 포기하지 않는 것' 이라 생각했던 초심을 잃었던 거죠."
사춘기 아들과 아빠의 깊은 골. 많은 가정에서 겪는 어려움이다. 이 가족은 어떻게 그 골을 메웠을까. 먼저 아빠가 스스로의 문제점을 인정했다. 아이들의 학습에 대한 압박감, 힘든 모습을 보이기 싫었던 마음들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 중압감을 아이들에게 잔소리로 쏟아낸 점도 인정했다. 마지막 순서는 진심 어린 사과. "아빠가 미안해." 이로써 온 가족이 함께 앓았던 사춘기라는 감기는 지나가고 '행복발전소' 는 다시 정상 가동되기 시작했다. |
WOW!! 부모의 격한 리액션은 아이를 춤추게 한다 |
아이들의 숨겨진 잠재력이 폭발하기 시작한 것이 이즈음이었다. 아이들에게 자유를 주었다. 공부가 하기 싫어 딴짓 하던 아이들이, 딴짓에서 자유로워지자 하고 싶은 공부를 찾더라는 것. 솜사탕을 만들 때 처음엔 설탕 가루 돌아가는 소리만 들린다. 가느다란 실한 가닥이 나오기 시작하면 쉴 새 없이 설탕 실이 만들어지고 이내 풍성한 솜사탕이 만들어진다. 찬혁의 재능이 그랬다. 스마트 폰을 갖지 못한 아쉬움의 소산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갤럭시'라는 제목의 첫 곡.
'갤럭시 너 혹시 나와 같이 걸어가 볼래, 반짝이는 은하 너머 손잡고 나와 같이 걸어가 볼래' 로 시작하는 이 상큼한 곡이 찬혁의 첫 작품이다. "놀라웠죠. 가족 모두 종일 그 노래를 함께 흥얼거렸어요. 칭찬으론 부족했죠. 환호를 아이에게 쏟았어요. 평소 조용하기만 한 아이의 마음속에 이렇게 고운 시와 멜로디가 담겨 있다는 사실이 경이로웠어요." 부모의 진심 어린 환호에 찬혁은 뚝딱 뚝딱 곡을 만들어냈다. 수현과 화음을 만들고, 집의 거실은 매일 아이들의 콘서트장이 되었다.
아빠는 이런 아이들의 모습을 담아 인터넷에 올렸다. 악동(樂童)뮤지션이란 이름도 이때 지었다. 많은 이들이 그들의 노래가 담긴 동영상을 찾았고 그들을 초청하는 공연들도 있었다. 방송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간 것은 이런 과정을 거친 뒤였다. 오디션 도전 역시 "하고 싶으면 도전해 보는 것도 좋겠네. 탈락하더라도 좋은 경험이 될 거야" 라는 마음으로 허락했다. 우승하고, 상금 전액을 기부하고, 최고의 기획사에 들어가 만든 처음 음반이 인기 순위에 랭크되고…. 밖에서 볼 때 지금 그들의 삶은 어쩌면 미운오리 새끼가 백조로 변신한 모습일 수도 있다. 하지만 성근씨와 세희씨의 생각은 다르다.
"몽골에서 어렵게 살 때나, 여건이 훨씬 좋아진 지금이나 저희 가족은 달라진 것이 없어요. 행복은 외적인 조건에 의해 더 커지거나 작아지는 것이 아니거든요. 가족이 함께 만들어가는 시간과 추억의 크기가 바로 행복의 크기입니다."
미즈내일 |